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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노진선(魯珍善)】하얀 지등(紙燈)의 고향을 그리던 향토적 시인

▲ 노진선 시인

남원시 운봉면 덕산리에서 출생, 경기대학 국문과를 졸업하고 중학교 국어과 교사를 거쳐 교장으로 정년퇴직함. 1980년 '시문학'으로 등단 후 한국문인협회 회원, 1991년 5월 '두리 문학' 창설 회원(회장, 최진성, 부회장 노진선)으로 참여하여 이후 전북문학상, 풍남문학상, 백양촌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 '물레방아'(해동출판사, 1977년) 외 23권에 달하는 시집으로, 그의 초기시는 삶의 고뇌와 고향에 대한 애착 그리고 토속적이고 전통적인 세계를 노래하면서 늘상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곤 하였다.

 

울타리도 없는 마을

 

너는 휘동그라니 눈을 뜨고

 

때론 지긋이 감는

 

김씨네 며느리…….

 

검정 고무신 허리춤에 끼고

 

가난을 곱게 다져온

 

맨발바닥은

 

차라리 하늘보다 높다.

 

물레 잣듯이

 

휘감기는 부뚜막 종그랭이

 

잠시 물 묻은 손을 털고

 

빈지문으로 스미는

 

초승달빛으로

 

막내딸의 번듯한 이마를 잰다.

 

누이야 · - '누이야' 전문, 1980

 

등단작이기도 한 이 작품 속에서도 향토적이고 전통적인 가치관을 지향하고 있다. '울타리도 없는 마을'로 시집을 간, 그리하여 '검정고무신 허리춤에 끼고/ 가난을 곱게 다져온/ 맨발바닥'의 누이를 못 잊어, '물 묻은 손을 털고/ 빈지문턱으로 스미는/ 초승달빛'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안타까운 마음과, 이들 곁에서 지켜보는 오라버니의 따뜻한 시선이 지난 날 정겹던 우리네 가족의 모습이다.

 

달빛 하얀 창가에 새어나는

 

낭낭한 선비 글 읽는 소리 그리우면

 

지등(紙燈)을 켜든 글방을 찾을텐데

 

지폐로 셈하는 글줄을

 

이 땅에 묻을텐데

 

- '하얀 지등'에서, 1989

 

'하얀 지등'은 지폐로 모든 것을 셈하는 오늘의 세태, 곧 물질 위주의 배금사상으로 위축된 우리 민족 고유의 정신적 가치들이 사라져 가고 있음에 대한 아쉬움이다. '하얀 지등'은 이러한 민족 고유의 '선비 정신'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 아닌가 한다. 선비(정신)가 사라지고 지폐(물질)로 모든 것을 셈하는 세태에 대한 고발이 '하얀 지등'의 주요 정신이다.

 

세상만사가 모두 물거품인거야

 

내가 살아온 게 그렇고 살고 있는 게 그렇지

 

배우고 가르치고 아무 것도 단단한 게 없구려

 

살고 있는 것도 모든 자체가 물거품인 거야

 

잔잔히 흐르는 강물에 금방 생겼다가 꺼져 버리는 거

 

졸졸졸 흐르는 물줄기 따라 금방 일어났다가 사그라지는 거

 

모두 다 꺼져버리고 자취도 안 남는 거

 

- '세상만사가 물거품인거야'에서, 2009

 

그러나 최근에 와선, 급격하게 약화된 시력으로 거동이 불편한데다가 글마저 마음대로 읽고 쓸 수가 없게 되자, 이처럼 생의 쓸쓸함과 허무감을 토로하면서, 젊은 날의 그 의욕과 순수에의 열정이 사라지고 있어 우리의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한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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