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09 02:44 (Su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문화 chevron_right 문학·출판
일반기사

해직기자 아내로 산 아픈 과거와 화해하다

정연주 전 KBS 사장 아내 부안출신 조영화 시인 등단 17년만에 첫 시집

 

무단결석을 밥먹듯 하는 반 아이가 있었다. 결석계도 내지 않았던 아이에게 어느날 담임 선생님은 자를 세워 손을 때렸다. 그 아이는 피하는 법도 없이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체벌을 받았다.

 

며칠 뒤 선생님은 장날 시장 한 켠에서 바지락을 팔고 있는 아이를 봤다. 선생님은 순간, 죄의식이 들어 자기 반 아이를 아는체하지 못했다. 이듬해 여름 선생님은 아이가 물에 빠져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통곡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선생님은 아이에 대한 안타까움을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

 

'만경(萬頃) 갯벌 나가/왼종일/보리개떡 하나 못 먹고/바지락 주워/앙상한 생활을 엮는다//황해바람 가지에 손은 거북등/대대손손(代代孫孫) 찌든 가난/하마 기죽은 갈잎이 알랴//망태기에 반도 안 찬 바지락들/어머니 멍든 가슴 토하누나//어슴저녁 하늘가, 기러기 떼/허기진 시오리 길 북극성 된다.'

 

부안 태생으로 전주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조영화 시인이 지난 1996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한 지 17년 만에 '느림의 계단'이라는 시집을 냈다(도서출판 화백). 만경고등학교에서 영어교사를 하던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한 등단작 '어린 제자'를 비롯해 켜켜이 묻었던 52편의 시를 세상에 드러냈다.

 

그는 "느림은 사유와 사색의 전제 조건이다"면서 "자연과의, 타인과의, 나 자신과의 화해를 하는데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이제는 마음의 분노를 정제된 언어로 표현할 수 있어 책을 출간했다"고 덧붙였다.

 

그가 겪은 분노의 대상은 특정인이 아니라 권력과 나라였기에 자신과의 화해를 하는데 세월이 필요했다. 그는 정연주 전 KBS사장의 부인으로 지난 1980년 해직기자로 투옥과 수배를 겪은 남편 때문에 경찰서 밀실에서 머리채도 잡혀보고 맞아도 봤다. 미행은 일상적이었다. '일천구백칠십팔년 겨울 며칠-면회가는 날'에는 당시 심경이 담겨있다.

고초를 겪고 난 뒤 1982년부터 19년간 미국에 살면서도 트라우마는 남았다. 그는 "미국에 간 뒤 2~3년간은 휴스턴 길 한복판을 걷다가도 누가 쫓아오나 뒤를 힐끔 돌아보거나 머리채를 잡힐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고 밝혔다.

 

'느림의 계단'에는 '화해'하고 난 뒤 서정적인 정서가 가득하다. 시인 강기옥은 시집의 해설에 부쳐 조영화의 시세계를 '등로주의(登路主義)적인 삶의 서정적 이미지'라고 압축했다. 서정주의 속에 깊은 내면의 가치와 함께 입체적인 주제가 담겨있다고 풀이했다.

 

'느림의 계단' 이라는 시의 경우 '산중의 시계는 느리다/범종 소리도 느리다/적묵당(寂默堂) 돌담 아래/채송화동 느리게 핀다/선(禪)스님 기도 소리는 더욱 느리다.'처럼 변함없는 물리적 현상을 상대적인 개념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조영화 시인의 정서를 지배하는 것은 바로 전주다. 그는 "유년시절 정서가 평생 간다"며 "고향은 전동성당과 만경평야로 상징되는데 답답한 일이 있어도 전주에 오면 위로를 받고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