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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뱅이' 대표 안명자씨 산문집 〈김치는 나의 혼 우리의 문화〉

명인이 들려주는 '김치 철학'

'음식을 맛나게 잘 만드는 사람은 참으로 많다. 손맛 좋은 사람도 부지기수다. 더욱이 맛의 고장 전라도에서는 왠만해서 음식 잘한다고 자랑하기가 쉽지 않다. 하물며 김치로 승부를 보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런 현실에서 대학교수의 아내로 살던, 평범한 주부였던 안명자씨(57)가 '신뱅이'상표를 걸고 김치 사업을 시작한 것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자신의 오늘이 있게 한 과일 김치를 만들어 발표회를 연 후 평소 그를 아끼던 인사가 "그까짓 김치 좀 한다고 요란 떨지 말라, 순한 남편의 얼굴에 먹칠하지 말고 조용히 살라"는 가슴에 대못을 박는 충고도 들어야 했다.

 

그런 곡절을 거쳐 안씨는 전주 한옥마을을 살찌우는'김치 명인'이 됐다. 그가 대표로 있는'신뱅이'식당은 한옥마을의 인기 투어코스며, 전국 각지에서 그의'김치학'강연 초청이 쇄도한다. 일본에서 김장축제를 열어 '김치 한류'를 일으키는 데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1999년 김치 사업에 손을 댄 지 10여년만에 현재 김치 사업가로서, 김치 연구가로서, 김치 전도사로서 명성을 굳건히 한 안명자씨가 오늘의 그가 있기까지 과정과 '김치 철학'을 책으로 담았다. 산문집 〈김치는 나의 혼 우리의 문화〉(이룸나무).

그는 이 책에서 '신뱅이'이름이 붙여진 과정을 상세히 소개했다. 1992년부터 완주군 구이면 항가리 신전(新田)5반에서 살았던 인연을 바탕으로 신뱅이를 탄생시켰다. 그곳 주민들은 5개 마을을 합쳐 신뱅이로 부른단다. 전주한옥마을에 새 밭을 일구는 마음으로, 김치 만드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겠다는 각오가 그 이름에 담겼다.

 

안씨는 오늘의 '신뱅이'가 있게 한 데 어머니와 남편의 공을 높이 평가했다. '안명자식 절대 미각'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단다. 남편(이철량 전북대 교수)은 우리 전통문화 중에 아직 인정받지 못한게 식문화며, 그중에서 가장 하대받는 김치가 각광을 받을 날이 올 것이라는 말로 격려했다. 10년, 20년을 내다보고 김치에 무엇을 담을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남편의 충고가 오늘날까지 김치를 돈이 아닌, 문화로 생각하게 한 바탕이 됐다.

 

독일인 여교수가 김치의 매력에 빠진 일화, 외교관들에게 김치를 강의하는 보람, 김대중 대통령도 맛본 신뱅이 김치, 과일 김치가 나온 배경, 생활한복을 벗은 이유, 일한 식문화연구회를 만들고 일본 김장 축제를 치렀던 경험, 그 과정에서 독학으로 일본어를 공부해 지금은 통역 없이도 강연을 할 수 있게 된 과정 등 김치와 얽힌 진솔한 뒷이야기들을 책에서 만날 수 있다.

 

저자는 김치맛의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과학적으로 레시피를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세계시장에서 건강식품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정작 맛의 고장 전주에서는 김치 소비가 줄고 있는 점도 안타까워 했다.

 

"나의 인생 최대 목표는 김치에 나의 꿈을 담는 것이다. 신뱅이에서 매일 만나는 고운 인연들에게 친정 엄마의 따뜻한 정성을 나누고 싶다. 안명자가 있어 한국의 김치가 일본에서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는 평가를 듣고 싶다. 한옥마을에서 우리 김치가 다시 생명력을 얻어 부활하고 있다는 보람을 느끼고 싶다"는 게 저자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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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용 kimwy@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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