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학교를 마치고 우리 동네를 들어서려면 금방이라도 안아 줄 듯 거대한 팔을 벌리고 서있는 당산나무가 있었다. 평상시 당산나무 아래는 동네에서 가장 좋은 쉼터이자 놀이터였다. 어르신들은 한가로이 장기를 두다가 며느리가 내어온 두부김치 막걸리 한 사발에 맛깔 나는 노랫가락 한 자락과 너털웃음 얹으셨고, 아이들은 당산나무에 기대어 연신 말뚝박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그 당산나무는 이 모든 것들을 포근하고 지긋이 감싸주었다. 이렇게 우리들에게 유년시절 아름다운 그림으로 기억되는 당산나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들이 있었다. 바로 어떤 의미인지 오색의 천으로 그 몸을 휘감고 있었다는 것이다.
동해안에서 가장 규모 큰 마을축제
도대체 무엇일까? 원인은 ‘굿’이다. 그 마을과 마을 사람들의 안녕과 기원을 담아 굿판에서 사용되거나 이에서 비롯된 형형색색의 천과 띠, 금줄 등이 한아름 당산나무를 휘감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굿판은 한 사람이 벌리는 그 사람만을 위한 위안의 자리가 아니었다. 굿판이 벌어지는 날이면 온 동네사람들은 당산나무 아래 함께 모여 굿판을 타인을 진정으로 위로하며 기원해주었고, 그 자리를 통해 마을 공동의 안녕과 평원을 기원하는 공동체의 정신이 녹아있는 공동체 행사였던 것이다. 특히, 우리민족의 공동체 의식을 가장 원형있게 간직하며 전승되어 오고 있는 강릉단오제(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 2005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와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이 바로 그 것이다.
강릉단오제는 음력 5월 5일 ‘높은 날’ 또는 ‘신 날’이란 뜻의 수릿날 개최되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축제로, 마을을 지켜주는 대관령 산신을 제사하고, 마을의 평안과 농사의 번영, 집안의 태평을 기원한다. 강릉단오제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매년 3, 4, 5월 중 무당들이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3일동안 굿을 벌였다는 남효온(南孝溫 1454~1492)의 문집 〈추강냉화(秋江冷話)〉 기록과, 조선 중기의 문신 허균(許筠)의 문집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 강릉단오제를 구경했다는 기록이 있다. 강릉단오제는 제관의 의해 이루어지는 유교식 의례와 무당들의 굿이 함께 거행되는 동해안에서 가장 규모가 큰 마을축제로 수많은 군중이 모여들고 난장이 크게 벌어진다. 특히 관노가면극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무언극으로 대사 없이 몸짓으로 관객을 웃기고 즐겁게 한다. 민간신앙이 결합된 우리나라 고유의 향토축제이며, 지역주민이 화합하고 단결하는 협동정신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유일 해녀굿…공동체 강조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은 제주시 건입동의 본향당(本鄕堂)인 칠머리당에서 하는 굿으로, 건입동은 제주도의 작은 어촌으로 주민들은 물고기와 조개를 잡거나 해녀작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마을 수호신인 도원수감찰지방관(都元帥監察地方官)과 용왕해신부인(龍王海神夫人) 두 부부에게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비는 굿을 했다. 즉, 이 굿은 영등신에게 해녀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우리나라 유일의 해녀굿으로 특이함과 학술적 이유로 문화재로 인정을 받고 있지만, 해녀들 뿐 아니라 배의 주인, 어업관계자는 물론 제주시내 전체 해녀들이 함께 참여하는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 의식이라 할 수 있다. 하루하루 타인을 의식하며 경쟁속에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잠시라도 ‘함께’라는 행복감을 줄 수 있는 우리의 소중한 전통문화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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