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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무령군 유자광' 재조명 목소리

류정수 전 용북중 이사장 책자 펴내…시의회서도 거론

남원지역에서 조선 전기의 대신인 ‘유자광(柳子光)’에 대한 재조명 목소리가 이어져 눈길을 끌고 있다.

 

류정수 전 용북중 이사장이 최근 ‘조선왕조실록에 의한 무령군 유자광’이라는 책자를 펴냈다.

 

류 전 이사장은 “무령군 유자광은 실력도 없이 장기간 자리를 보전한 간신으로 세간에 알려져 있으나, 그는 실력을 겸비한 철저한 왕권 수호자였다”면서 “서출의 출사가 절대 불가능했던 조선왕조에서 불굴의 의지로 한 시대를 살았던 유자광의 삶이 재평가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류 전 이사장은 “국사편찬위원회가 조선왕조실록을 국문으로 번역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게 전산화한 내용을 근간으로 유자광을 재조명했다”면서 “유자광은 철저한 왕권 수호자였기에 왕권 강화에 힘을 쏟아 세조부터 중종까지 5대조를 섬기며 왕을 보필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7월 남원시의회에서도 ‘조선시대 유자광은 난세를 평정한 충신’이라는 내용이 공식적으로 거론됐다.

 

당시 박문화 시의원은 5분 자유발언을 통해 “남원 출신인 유자광은 역사를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전국적인 인물이다. 다만 희대의 간신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면서 “유자광이 세조부터 중종에 이르기까지 5대에 걸쳐 어려운 난세를 풀어 평정했던 충신임을 찾아 알려야 된다. 남원시 고죽동에는 무령군 유자광에 대한 역사적인 현장이 그대로 남아 있다. 남원시는 고죽 일대를 유자광마을로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유자광 재조명에 대한 움직임이 학계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서얼 출신으로 세조의 총애를 받았던 유자광(1439∼1512)은 재상의 반열에 올랐고 중종 7년에 유배지에서 사망했다. 유자광은 죽은지 400여년이 지난 1908년(순종 1년)에야 죄명을 벗고 원래의 관작(官爵)을 회복했다.

홍성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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