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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표지석에 새겨진 내용

남원은 동학 창시자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선생께서 1861년 경주로부터 피신해 오시어 교룡산의 은적암(隱蹟庵)에 약 반 년 동안 은거하시며 『논학문(論學文 : 일명 동학론(東學論)』등 동경대전의 주요 경전을 집필하시며 포교하셨던 동학의 성지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에는 김개남(金開南) 장군이 음력 6월 하순에 무혈 입성하여 북으로는 금산, 진산에서부터 남으로는 순천, 광양까지를 관장하는 전라좌도 대도회소와 전라좌도 대집강소를 설치하여 업무를 관장했는데 그 자리가 여기 남원부 관아터이다. 7월 중순에는 7만여명의 농민군이 운집하여 남원대회를 열었으며 김개남 장군이 정병을 이끌고 북상한 뒤에 남은 농민군이 운봉을 공격하려다가 방아치 전투에서 수천명이 순절하였고 이어 남원성 전투에서 민보군에게 패전하여 사실상 막을 내렸다. 이후 일본군이 진주하여 많은 백성을 살상하고 방화하는 참상을 겪었으나 살아남은 농민군은 신간회, 3·1독립운동 등의 구국 운동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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