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립박물관·군산대박물관, 진안 도통리 청자 요지 2차발굴 개토제
초기 청자(靑瓷) 요지(窯址)이면서 후백제의 가마터로 추청되는 진안 도통리 유적에 대한 조사가 재개됐다. 국내 청자사를 새로이 정립하는 유물 발굴이 전망되면서 문화재 지정도 요구되고 있다.
국립전주박물관과 군산대 박물관은 1일 오전 11시 진안군 성수면 도통리에서 초기 청자 요지 문화제 시굴조사를 위한 개토제(開土祭)를 지냈다. 매장 문화제를 조사하기 전 토지신에게 비는 개토제를 시작으로 2차 조사가 이뤄진다.
이번 조사는 유적의 정확한 범위를 파악해 문화재 지정 및 본격적인 발굴조사의 기초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1차 조사지 인근 1800㎡의 면적에 걸쳐 실시한다.
도통리 청자 요지는 지난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1차 조사를 통해 초기 청자의 유입과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유적지로 평가받고 있다.
이곳은 지난 1960년대 지표조사를 실시하면서 존재가 알려졌고 지난해 군산대 박물관은 중평마을의 모정이 들어서 있는 서쪽구역에서 유물을 발굴했다.
당시 가마를 만들었던 돌인 벽돌편과 투박하고 문양이 없는 초기 청자의 전형적인 찻그릇인 완(碗)이 집중적으로 발견됐다. 선해무리굽, 중국식해무리굽, 한국식 해무리굽 초기청자편 등과 함께 다양한 형태의 요도구도 출토됐다. 불에 그을린 벽돌편은 전축요의 존재 가능성을 나타낸다는 게 학계의 설명이다.
한반도 남부 내륙지방에서 유일하게 발견된 10세기 초기 청자의 중국식 벽돌 가마와 유물을 통해 진안 지역이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 인근으로 발전·확산했다는 가설이 제기됐다. 진안지역이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 초 사이에 청자 문화를 도입했고 이는 부안지역의 한국식 진흙 가마로 이어졌다고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후백제와의 관련성이 제기돼 그 의미를 더했다. 전주 동고산성에서 나온 초기 청자의 경우 중국제 청자로 학계에 보고됐지만 그 생산지가 진안 도통리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후백제가 중국 청자의 본향으로 알려진 오월과 45년간 외교를 펼쳐 그 결실로 청자 기술이 후백제로 전래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
군산대박물관 책임조사원 곽장근 교수는 “918년 견훤은 오월이 말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 배로 말을 보내기도 했고 927년 오월 왕 전유는 감사의 뜻을 담아 반상서를 대표로 하는 사절단을 전주에 파견할 정도로 왕성한 교류가 있었다”며 후백제를 통한 청자의 전래설을 제기했다.
이같은 내용은 국립전주박물관이 지난해 4월 1차 조사 성과를 알리기 위한 ‘진안 도통리 청자’전을 개최해 조망했다.
하지만 이런 중요성에도 도통리 청자 요지는 아직까지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고 국가 지원이 없어 체계적인 관리가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초기 청자요지로 밝혀진 용인 서리(사적 제329호)와 시흥 방산동(사적 제413호) 유적은 문화재로 지정됐지만 진안 도통리는 방치돼 지속적으로 훼손되는 실정이다. 더욱이 벽돌 가마터는 현재 마을회관이 들어선 상태다.
곽장근 교수는 “지난 2013년 1차 조사 때 유물을 대거 발견한 만큼 이번 조사도 높은 가치의 유물이 기대되며, 앞으로 사적지 지정이 뒤따라야 한다”면서 “청자에 관한 역사를 다시 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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