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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가장자리

▲ 정상석 대학언론협동조합 이사장
나는 ‘헬조선’이라는 말에 크게 공감하지 못했다. 적당히 둔감한 성격에 어지간하면 긍정적으로 생각해버리는 버릇 때문일 수도 있다. 금수저는 아니다. 동수저와 은수저의 경계에서 태어났고 그 경계를 넘어본 적은 없다. 독립한 지금은 흙수저지만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춥지만 좁지 않은 저렴한 옥탑방과 고양이 두 마리, 불안정하지만 제때 월급 나오는 직장이 있고 이루고자하는 목표도 있다. 과분한 사람과 연애하는 사치까지 부리고 있으니 불만을 가질 틈이 없었다. 행복하다고 느낄 때도 있다.

 

강한 악마를 이기기 위해서는

 

그런데, 이상하게 사람들이 죽는다. 나는 행복한데 남들은 그렇지 않다. 하루에 40명씩 자살한다. 다들 어딘가 뒤틀려있다. 불만이 많고 엄살이 심하다. 며칠 전엔 수저색깔을 비관한 한 서울대생이 자살했다. 우울증 때문이라고 했다. 우울증을 치료하면 “이 수저는 흙색이 아니라 ‘자애로운 대지의 여신 가이아색’이야!”하며 수저색을 긍정할 수 있을 텐데, 정신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높은 자살률을 만들어 낸 게 틀림없다.

 

내가 이렇게 교만한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운 좋게 지옥의 가장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지옥의 가장자리는 유황이 들끓는 지옥불이 아니라 한증막 수준이다. 어느 날 갑자기 기르는 고양이가 아파서 동물병원에 데려 가면, 살고 있는 옥탑방이 머지않아 재개발되면, 제때 월급 나오는 직장이 내년 6월에 계약 만료되면, 부모님이나 동생이 병에 걸리면 나는 지옥의 중심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지금의 행복은 어쩌면 우연이 빚어낸 찰나에 불과했다.

 

만약 당신이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저학력, 부양가족, 실직, 질병, 예민한 성격 등의 요소 중 많은 부분에 해당한다면 당신은 지옥불 중심으로 끌려갈 것이다. 지옥의 가장자리에 남은 사람들은 끌려가는 당신을 향해 비아냥댈 것이다. “그러게 조금만 더 노력하지. 그러면 나처럼 편하게 살 수 있는데.”

 

당신이 하지 않은 노력은 단 하나. 당신을 지옥 중심으로 끌고 가는 악마를 뿌리치려는 노력이다. 그 악마는 공권력이기도 하며 은행, 병원, 대기업, 복지제도, 사회분위기 등이기도 하다. 악마는 당신보다 강해서 당신이 일대일로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 열 명이 달라붙어도 어림없다. 지옥에 있는 모두가 연대해서 싸워야한다.

 

특히 상대적으로 여유있는 지옥 가장자리 사람들이 힘을 합쳐야만 지옥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지옥 가장자리 사람들은 적당히 뜨뜻한 상태가 오래도록 유지될 거라 착각한다. 지옥 가운데로 끌려가는 일은 자기에게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악마를 물리치고 지옥을 바꿔보자고 말하는 사람에겐 ‘이 정도도 견뎌낼 의지가 없느냐’, ‘지옥에서는 지옥의 법을 따라라’, ‘아프니까 지옥이다’식의 구박을 주며 우월감을 느낀다.

 

지옥에 있는 모두가 연대해 싸워야

 

우리는 지옥 가장자리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단테의 신곡에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는 구절이 있다. 개인적으로 지옥을 탈출하거나 단체로 지옥을 뒤엎지 않는 한 언젠간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에 처박힐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지옥 가장자리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지옥 중심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해주는 언론이 아닌가 싶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대학언론협동조합이 지옥을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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