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산길 위에서 느닷없이 냄새가 혀를 밀어 넣었다
하얀 앞발톱의, 엎어져 있는 두더지 주검
두더지는 반지하 방이 되고 있었다
잘 닦은 화이바 같은, 검은 갑옷의 벌레가
시체에 세 들어 늦깎이 신혼방을 만들고 있었다
주검이 있을 때, 짝을 맺는다는 송장벌레
저 더듬이 끝이 뭉툭한 것은
그 교감도 한때는 부딪혀 옹이 박힌 것
구린 터 속에서도 더듬거리며 전등을 갈겠지
저 등판의 빛은 그들 눈에 모닥불이 타오르는 증거다
자글자글 끓는 된장찌개 투가리, 그런 뜨거움 올린
양은밥상을 들고 거뜬히 문지방 넘는 삶
둘은 두더지를 땅에 묻을 때까지
쉬지 않고 흙을 파내려갈 테지
흙으로, 나무뿌리를 갉았을 몸을 닫고 쓰러진 밑바닥 위에
꽃 장판을 깐 다음
반지하가 지하가 된 방 안에서 서로를 쓰다듬겠지
때로는 이웃 풍뎅이 애벌레와 다툴 일도 있겠지만
샛별 같은 알을 낳고 그 아이들은
가까스로 냄새를 막은 몸의, 한 터럭까지 다 뜯어먹고서야
벽 틈새에 손톱 밀어넣는 것이 햇살이었음을 알겠지
목숨이 윤이 나는 저 까만 옷의 청소부 부부
오늘 같은 초야(初夜)면,
숲 속은 달이 익어 참 부끄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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