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트위터의 대통령으로 불리던 소설가 이외수는 ‘존버 정신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이 말을 듣고 존버라는 위인의 삶의 태도를 이야기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존버 정신이 무어냐 묻는 혜민스님에게 ‘스님, 존버 정신은 존X게 버티는 정신입니다’이라는 답변을 한 일화를 듣고 3초는 웃고, 그 뒤로는 오래 씁쓸해졌다.
본인이 가는 길에 자긍심 있다면
‘예술가는 배고프다’라는 관념은 기정사실이다. 현대에 들어 관립단체는 물론, 예술가가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가 사라지고 있다. 젊은 예술가들이 예술로 생계를 유지하기가 너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필자 역시 대학교를 한국음악으로 졸업하고 상실감과 회의감으로 하루하루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로 일본에 간 적이 있다. 오사카와 교토에서 머무르며, 그곳에서 만난 두 분이 나에게 젊은 예술가로서 버텨야 하는 이유를 만들게 했다.
오사카 모모다니에는 우리말로 ‘달맞이’라는 카페가 있다. 이곳에는 제일교포 2세인 고정자 선생님이 있다. 해방 이후 유신시대를 거쳐 오며 ‘반쪽바리’로 불리며 멸시 당한 이야기, 동일본의 대지진 때 일어난 조선인 학살사건 등 그 분이 살아온 이야기는 한 편의 영화 같기도 했다.
긴 이야기에 이어 고정자 선생님은 한국을 매우 사랑한다고 했다. 특히 전통음악 ‘판소리’를 좋아하는데, 일본 특유의 받침 있는 말을 하지 못하는 게 가장 가슴 아프다고 했다. 오사카에 사는 제일교포 3세의 소리꾼이 있는데 그 소리꾼이 받침 있게 판소리를 완창하는 날이 일본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일 거라고 이야기했다. 한 발은 일본에, 한 발은 한국에 둔 사람에게 판소리는 얼마나 큰 의미일까. 선생님의 말은 내 안에서 크게 울렸다.
다음 일정은 교토였다. 일흔이 넘은 시마주 타케오 할아버지는 금각사 옆에 산다.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너무나 좋아하던 시마주 선생님은 일본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우리나라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분이었다. 맨 처음 필자에게 걸어온 이야기는 광동대지진 사건이었고, 당시 학살된 사람의 수가 어마어마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멸시 받는 제일교포를 위해 다양한 운동을 했는데, 일본 간첩 사건 때 사식을 넣었고, 강제노역을 당한 광산의 역사를 간직한 단바망간기념관의 이사로도 활동했다. 일본인에게 듣는 우리 아픈 역사에 만감이 교차했다.
일본에 계시는 두 선생님은 전주세계소리축제를 맞아 한국에 방문해서 우리 음악을 듣고 막걸리를 드시며, 춤을 추고 흥겨워한다. 한국음악을 전공한 나를 참 좋아하며, 진심으로 부러워했다. 생계를 위해 음악을 포기하려던 나는 버텨야 하는 이유를 두 선생님을 통해서 찾을 수 있었다.
흔들리지 않고 올곧은 길 갈 수 있어
예술가들은 흔히 이야기한다. ‘버티는 놈이 이긴다’고…‥. 하지만 무엇으로 버틸 수 있는지 그 이유는 막연하다. 돈이 삶의 기본요소가 된 시대에, 예술가에게만큼은 돈을 떠나 살라고 말하는 시대. 물론 많은 부를 원한다면 다른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본인이 걸어가는 길에 대한 정체성과 자긍심이 있다면, 우리는 자연히 ‘존버’ 정신을 갖게 되고, 흔들리지 않은 채 올곧은 길을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젊은 예술가들이여! 젊다고 해서 버티는 것이 아니다. 버틸 수 있는 이유가 있어서 버틴다면 성공의 길도 그다지 멀지 않을 것이다.
△김지훈 대표는 문화공간 ‘cafe 마실’을 운영하며 국악협회 전북지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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