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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 멈춘 '연탄 시인' 시 애정 글로…안도현 산문집 〈그런 일〉

성장과정·문학열정 등 담아

고향집을 떠나 대도시로 유학온 소년이 낯선 도시에서 처음 배운 것은 연탄불을 꺼트리지 않는 법이었다. 붉고 푸른 불꽃은 궁핍한 자취생에게 밥이 되었고 집이 되었다. 눈 오는 날, 자취방에서 학교로 이어지는 비탈길을 무사히 갈 수 있었던 것도, 신춘문예 열병에 시달릴때 그를 위로한 것도 연탄의 온기였다.

 

안도현(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시인의 시 ‘너에게 묻는다’와 ‘연탄 한장’, ‘겨울밤의 시 쓰기’등은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안 시인이 산문집을 묶었다. <그런 일> (삼인). 직업이라고 믿었던 ‘시 쓰기’를 멈춘 지 3년여.

 

“시 한 편 쓰지 않고 천 그릇도 넘게 밥을 먹었다”는 시인은 “ ‘마감’이 없는 저녁은 호사롭고 쓸쓸하였다. 이러다 시가 영영 나를 찾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의 무게는 헤아리기 어렵다. 하룻밤에 백 편이라도 시를 꺼낼 것 같고 또 꺼내야만 한다는 생각 때문에 오래 뒤척인적도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비유마저 덧없는, 참담한 광기의 시절’을 견디고 있는 시인은 시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또다른 형태의 글쓰기로 돌려놓았다.

 

<그런 일> 은 그가 14년 동안 쓴 글을 모으고, 버리고, 꿰매고, 다듬어 내놓은 것이다. 시심의 근원인 고향 경북 예천에서 “내성천 물길을 따라 오르내리던 한 마리의 어린 물고기”가 시인의 꿈을 키우다 전교조 해직교사가 되고 전업작가가 되었다가 대학 강단에 서기까지, 시인의 성장담이자 문학여정이다.

 

수많은 변주로 등장하는 고향과 문학청년시절의 고민, 시작노트, 서평, 교우관계까지 작품의 근원과 맥락을 내밀하게 보여준다. 등단시 ‘낙동강’(1981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의 실체는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며,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묻는 연탄은 외로웠던 대구 유학시절의 애환을, ‘서울로 가는 전봉준’은 당대를 사는 시인으로서 세상에 빚을 갚는 일이었다. 글의 대부분은 이렇게 시를 그리워한다.

 

시인에게 시를 읽고 쓰는 것은 이 세상과 연애하는 일이다. 따라서 “시간을 녹여 쓴 흔적이 없는 시, 시간의 숙성을 견디지 못한 시, 말 하나에 목숨을 걸지 않은 시”는 신뢰하지 않는다. “한 줄 한줄이 전전긍긍이었으므로 이 산문들은 그 흔적들이라고 해두자. 하지만 그런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나를, 지금, 이곳에, 나로 있게 해준 말들 앞에 옷깃을 여민다.”

 

시를 쓰지 않는 이 시간, 더 치열하게 시를 숙성시키고 있는 시인의 산문집은 친절한 시학강연이자 수십편의 문학강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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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정 euns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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