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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꿈

▲ 안도

깊은 잠 꿈속에서 그립던 사람 만나서 행복했었는데 홀연히 사라져 버린 새벽입니다. 이야기꽃을 피우던 순간들이 아쉬움으로 남아 억지로 눈을 감고 잠을 재촉해 보지만 깨어버린 잠과 열려 버린 새벽은 변함없이 찾아오는 아침의 방문객을 맞습니다. 꿈속의 미소를 현실로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리움의 갈증에 냉수만 한 사발 들이킵니다.

 

그대의 손길이 내게 닿으면 난 움직이는 산맥이 됩니다. 그대의 입술이 내게 닿으면 난 가득 찬 호수가 됩니다. 호수에 노를 저으며 호심으로, 물가로, 수초 사이로, 구름처럼 그대가 가라앉아 돌면 난 눈을 감은 하늘이 됩니다. 어디선지 멧새소리 가물거리고 그대의 눈물이 내게 와 닿으면 난 무너지는 우주가 됩니다.

 

입을 버리고 말을 버리고, 춤추는 손으로 대답합니다. 춤추는 가슴으로 대답합니다. 우주는 주인 잃은 꿈꾸는 악기입니다, 악기가 울면 허공에 별 하나 뜨고 지상의 목숨들은 탈춤을 춥니다. 떨리는 나뭇잎도 가지 끝에서 출렁이는 물결도 바닷가에서 탈춤을 춥니다.

 

나는 아파트에다 토담집을 짓습니다. 아파트 사이사이로 돌아 나가는 강물이 있어 산책길에 내 발을 적십니다. 음악이 들리는 창문, 장미가 피는 창문, 라일락이 서 있는 창문은 모두 다 내 집입니다. 저녁달이 오르면 내 눈은 거대한 우주가 되어 아파트 위에 둥실 떠오릅니다. 내 눈은 이제 빛입니다. 푸른 초원에서 그대를 향한 여름밤 빛입니다.

 

나는 그대의 몽당연필이 되어도 좋습니다. 침 발라 쓰다가, 쓰다가 쓸 수 없을 때 버려도 좋을 한 자루 몽당연필로 살아도 좋습니다. 우리들이 살아갈 세상이 시커먼 흑연 빛이 아니라 5월의 푸른 하늘같이만 될 수 있다면 그 푸른 하늘을 나는 종달새 같이만 될 수 있다면 나는 그대의 몽당연필로 살아도 좋습니다.

 

단 한 번도 이룰 수 없는 꿈을 꾸어보지 않은 인생, 단 한 번도 현실 밖의 일을 상상조차 하지 않는 인생, 그런 인생은 인생도 아닙니다. 허무맹랑하고 황당무계해 보이는 꿈이라도 가슴 가득 품고 설레어보아야 인생이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것이야말로 눈부신 인생의 특권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밤에도 그대의 꿈을 꾸고 싶습니다. 절대로 안 된다고 떼쓰지 마십시오. 정말 꿈이란 어딜 가나 지름길입니다. 꿈속에서라도 그대와 함께 하늘까지 갔다 온 기쁨이야말로 내 인생의 축북입니다. 매일 밤 그대의 꿈을 꾸고 싶습니다.

 

목마른 서로에게 물 한 잔씩 건네주는 꿈, 그렇게 살아야겠습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다시 사랑해야겠습니다. 누구에게나 물 한 잔 건네는 그런 마음으로 목마른 마음으로…. 꿈에서 나는 때로 천사이지만 꿈을 깨면 자신의 목마름도 달래지 못합니다. 주렁주렁 매달린 꿈, 턱 괴고 모로 누우면 그저 절로 떨어지지만 농익은 꿈이 짓물러 터지면 허사입니다. 나무에 올라가 가지를 흔들고 작대기로 후려쳐 기다리는 꿈은 결코 꿈이 아닙니다. 바람도 구름도 한 점 없는 새벽 숲엔 별빛만 더욱 푸릅니다. 속가슴 가득 파란 하늘을 담습니다. 매일 별꽃을 바라보다 나는 작은 별 됩니다.

 

더 추워지기 전에 어느 하루쯤은 혼자서 한적한 산 속으로 걸어 들어가 하늘 보고 눕고 싶습니다. 쳐다보이는 하늘이 이왕이면 뿌옇게 흐려주었으면 더 좋겠고 흐린 만큼 푸근한 가을 숲에서 내가 살고 있는 집 주소와 숱하게 드나들던 슈퍼마켓이랑 병목현상이 잦은 출근길, 이런 것들도 그 날 하루는 저절로 함께 쉬이 잊혀 졌으면 좋겠습니다.

 

물방울 하나가 새벽 꿈속에 떨어집니다. 꿈속의 물방울은 잠긴 문을 두드려 몽매를 흔들고 우둔을 깨워 내 삶을 적시는 울음입니다. 돌아다 볼 어제가 아닌, 미루어 둘 내일도 아닌 바로 지금 이 시간 눈동자 위에 핏방울처럼, 채찍처럼 잠긴 문을 밀고서 아프게 날 깨우는 그대의 근심과 그대의 사랑입니다.

 

△시인이자 아동문학평론가인 안도씨는 현재 전북문인협회 회장과 전북문학관 관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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