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07 03:23 (Fri)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사회 chevron_right 사회일반
일반기사

5·18 민주화운동 첫 희생자 고 이세종 열사를 기억하다

전북대 학생회관 농성 중 군인들 폭행에 숨져 / 함께 농성했던 김성숙씨 "우리 사회 큰 비극"

▲ 5·18민중화운동 제37주년 기념 이세종 열사 추모식이 열린 17일 전북대학교 이세종 열사 추모비 앞에서 참석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박형민 기자

5·18 민주화운동 당시 전국 첫 희생자로 알려진 이세종 열사는 전북대 농과대학 2학년 재학 중 학생회관에서 농성을 벌이다 건물에 진입한 군인들의 폭력에 의해 숨졌다. 수년 동안 ‘임을 위한 행진곡’도 제창할 수 없이 희석된 5·18 정신을 당시 이세종 열사와 함께 농성한 동료와 이세종 열사의 고교, 대학 후배들의 입을 통해 다시 되새겨본다.

 

△“내가 (이)세종이었다면 다시 살아 하늘을 보고 싶었을 것 같아요”

 

전북대 안 이세종 열사의 추모비에는 ‘다시 살아 하늘을 보고 싶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故 신영복 선생이 쓴 글씨로, 이 문구를 생각해 낸 사람은 5·18 유공자 김성숙 씨(59)다.

 

당시 전국적인 민주화 분위기는 전북 지역도 예외가 아니었다. 전북대 학생회관에서 농성 중이던 이세종 열사와 김 씨를 비롯한 30여명의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1980년 당시 전북대 국문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김성숙 씨는 5월 17일 ‘그날 밤’을 “밤 날씨가 무척이나 좋았던 날이었다”고 회상했다.

 

김 씨는 1980년 5월 17일 저녁 데모가(歌)를 함께 녹음하던 이세종 열사를 떠올렸다.

 

“그날 데모가를 녹음해야 해서 8~9명이 녹음실에서 ‘흔들리지 않게 우리 단결해’ 같은 노래를 녹음했죠. 그때 세종이가 데모 노래지만 사납게 부르지 말고 기왕이면 합창도 해서 잘 불러보자고 말했어요. 세종이가 중부교회 합창단이어서 노래도 잘하고 음감도 있어 모두 그렇게 따랐죠. 그래서 세종이를 기억해요.”

 

녹음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려는 순간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고 했다.

 

“세종이가 군인들이 오고 있으니 빨리 도망치라며 모두를 깨웠어요. 그러고는 함께 있던 20~30명의 학생들이 모두 경찰에 끌려갔죠. 그때 세종이가 옥상으로 가지 않고 농성장 안으로 우리와 함께 들어왔다면… 죽지 않고 우리와 같은 길을 걸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군인들은 학생들이 모여있으면 심하게 때리지는 않았거든요.”

 

김 씨에 따르면 1980년 그날 이후 아무도 ‘그날’일에 관해 묻지도 말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20년이 지난 2000년에서야 5·18 보상을 위해 모인 자리에서 처음 그날의 이야기를 꺼냈다고 했다. 이날 이후 5·18 모임도 만들어졌다.

 

김 씨는 이세종 열사의 비석이 큰 플라타너스 밑에 어둡고, 습하게 있던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려 비석을 햇빛이 있는 곳으로 옮기자고 제안했다. 추모비에 들어갈 문구도 생각해냈고, 글씨도 故 신영복 선생께 부탁했다.

 

“내가 만약 세종이었다면 어떤 마음일까 생각하니 다시 살고 싶은 거에요. 다시 살아서 하늘을 보고 싶었을 것 같았어요.”

 

2003년 5월. 그렇게 이세종 열사 추모비는 현재 위치에 자리 잡게 됐다.

 

김 씨는 “5·18은 내 기억 속에 똬리를 틀고 나 스스로가 꽉 닫아놓은, 남편에게도 말하지 않은 그런 기억”이라며 “그 정권 때 저질러진 수많은 일이 해결되는 것 하나 없이 돌아가는 과정을 지켜봤잖아요. 그 기억을 흔쾌하게 내놓을 수 없게 됐죠. 그것이 우리 사회의 큰 비극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되짚었다.

 

△ “선배님의 후배여서 자랑스럽고, 그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전라고 3학년 김승한 군은 “학교 정문에 이세종 선배님의 추모비가 있고, 매년 추모행사를 하지만 1980년에 일어난 이 사건은 우리 세대에게는 매우 먼 이야기로만 느껴져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작년 겨울 박근혜 게이트를 겪고 나서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가짜였다는 사실을 배우게 됐다고 한다.

 

김 군은 “우리 학생들도 37년 전 그날처럼 민주화를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며 “선배님의 희생정신을 본받고 교훈을 찾아 다시는 이러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북대 농업생명과학대학 학생회장 박진 씨(25)도 “그 시대를 살아내지 않은 우리가 그 당시의 감정을 느끼긴 쉽지 않지만, 이세종 선배와 5·18에서 희생된 모든 분들이 이뤄낸 민주주의를 우리 세대가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학생들의 대표로 목소리를 내는 입장으로서 이세종 선배님과 같이 불의를 참지 않고 나서서 행동해야 함을 느낀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천경석 1000ks@jjan.kr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사회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