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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코스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엉성한 티 코스터지만  뜨개질할 땐 자신감 쑥

▲ 권화담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3학년

여러 가지로 1년이 되어가고 있다. 내가 집을 나오게 된 것이 올해 2월이니 이제 10개월이 되어가고, 아직 12개월이 되어가지 않는 일들도 있지만 어쨌든 2017년이라는 한 해가 지나고 있다. 토요일 두 번만 지나면 이 해도 끝이다. 한국식 셈 나이도 이제 스물넷이니 이십대 중반이 아니라고 하기에 어려운 나이가 되었다. 복학하고 여러 활동을 하다보니 나보다 학번이 낮은 학우들을 만난다. 누군가 나를 선배나, 언니, 누나라고 부르고 가끔은 호칭이 낯설게 느껴져 차라리 ‘화담 씨’라고 불러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지난 시간들을 반성하며 최근에는 뜨개질을 하고 있다. 솜씨가 좋은 집안 내력을 이어받아 솔직히 손으로 하는 일들을 ‘못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유일하게 잘 하지 못했던 뜨개질에 도전을 하게 된 것이다. 유튜브 동영상들을 찾아보며 코도 하나, 둘 떠보고 코를 몇 개 빠트리기도 했지만 차마 목도리로는 만들지는 못하고 코를 조금 넓게 떠서 코스터로 만들었다. 겉뜨기 하나로 반 뼘 조금 못되게 떠서 누구 앞에 내놓기에 민망할 정도의 와인색 코스터. 하지만 괜히 마음이 가서 컵을 사용할 때는 꼭 코스터 위에 올려놓게 되었다. 겨우 이거 하나 만들었다고 금세 의기양양해져서는 유튜브 동영상을 찾아보며 이번에는 다른 스타일의 뜨개질들을 또 찾아보고 있다.

 

손도 대지 않던 뜨개질을 하게 된 이유는 별거 없었다. 선물 받은 목도리가 조금씩 늘어나서 보기 안 좋아진 것도 있고, 요즘 얇은 목도리가 유행인데 하나 갖고는 싶지만 사기는 조금 아깝고, 그리고 무엇보다 요즘은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서, 이것이라도 잘 못해내면 정말 가치 없는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작은 것이라도 도전해서 해내고 싶었다. 문구점에서 대바늘과 마음에 드는 색인 와인색 실을 사서 동영상을 보고 차근차근 해냈다. 목도리는 아직 만들진 못했지만 연습 삼아 코스터를 만들어냈다.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남들이 보기엔 엉망이겠지만, 이 코스터 하나 만들었다고 나는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무언가 더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루저’로서 권화담의 글을 보며 알고 계시겠지만, 나는 별로 잘난 사람이 아니다. 화도 잘 내고, 울기도 울고, 아프기도 꽤 아픈 사람이다. 전북일보에 글을 쓰게 되고 내 이런 감정을 담아내도 되는 것일까 고민을 많이 한 편은 아니다. 한 잘나지 않은 청년의 글을 쓰고 싶었다. 물론 내가 너무 하향 평준화시킨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조금 있긴 하지만 이런 잘나지 않은 청년도 화 낼 때는 화를 내고, 아플 때는 아프고, 슬플 때는 슬픈, 이런 고민을 한다고 드러내고 싶었다. 뜨개질을 하며 내 그런 감정들을 조금 생각해봤다. 솔직히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지금 상태에서는 그런 감정들이 전부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심도 들지만 어쨌든 그런 고민을 하는 권화담(곧 한국식 셈 나이 24세)도 권화담(지금은 한국식 셈 나이 23세)인 것으로 결론지었다.

 

화를 내기도 엄청 내고, 울기도 엄청 울고, 고민과 선택의 연속이었던 2017년도 이렇게 다 끝나가고 있었다. 새 해를 엄청 대단하게 맞이할 것 같지는 않다. 새 해를 제때 볼 것 같지도 않고 오히려 눈 뜨고 일어나면 이미 2018년도 1월 1일 오전 11시일 것 같은 예감이 들지만 이번 해도 꽤 쓸 만한 코스터 하나는 나올 것 같다. 아니, 코스터 하나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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