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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소통 2021 시민기자가 뛴다] 내가 싼 똥이 썩지 않는다면

요새 ‘제로웨이스트’가 핫하다. 기업이나 각국 정부에서 친환경 관련 제품이나 정책을 전면에 내걸고 있다. 제로웨이스트는 ‘포장을 줄이거나 재활용이 가능한 재료를 사용해서 쓰레기를 줄이려는 세계적인 움직임’을 일컫는다. 즉, 웨이스트(낭비)를 제로(0)으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도서 '대한민국 화장품의 비밀'

필자가 처음에 제로웨이스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화장품 때문이었다. 2011년, 여드름 피부로 고생해서 어떤 화장품을 써야 할지 난감하였다. 뭘 발라도 불안하고, 얼굴은 뒤집어지기 십상이고, 여드름은 도통 해결되지 않았다. 화려한 광고 속 제품을 바르고 싶은데, 돈은 별로 없고 스킨, 로션, 수분크림, 에센스의 차이도 모르겠고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었다. 마침 ‘대한민국 화장품의 비밀-많이 바를수록 노화를 부르는’이라는 책을 접할 수 있었다. 국내 굴지의 화장품 회사에 다녔던 저자들이 화장품 회사의 화려한 마케팅 뒤에 존재하는 진실과 화장품의 정체에 대해 꼼꼼히 탐구한 책이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후 내 삶은 달라졌다. 화려한 브랜드, 광고, 주변인의 추천을 뒤로하고 화장품 전성분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지금은 백색 바셀린과 썬크림으로 모든 화장품을 대체한다.

 

아, 간편해. 무엇보다 피부에 좋은 걸. 화학적 제품보다 천연 성분이 피부에 좋은 것처럼 우리 몸에는 되도록 가공하지 않는 것들이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여성에게 화장품은 몸 치장을 해야 하는 성차별적 관습과 맞물린 ‘코르셋’으로서 평등권, 건강권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다. 직접 체감하자 화장품에 대한 의심으로부터 시작된 연쇄적 변화는 삶에서 천천히 몰려왔다. 그다음 수순으로 먹을 것에 관심이 옮겨갔다. 내가 먹고 있는 것들은 어떻지? 어떤 성분으로 이뤄졌지? 건강한 것들인가? 마찬가지로 제품 뒷면에 표기된 전성분을 살펴봤다. 미국산, 아스파탐, 보존료 등 화학성분으로 버무려져 있었다. 더 이상 안심하고 먹을 수 없었다. 국내에서 좋은 재료로 만든 생활협동조합(자연드림, 한 살림)에 조합원비를 내고 가입하였다. 이 당시 나에게 ‘윤리적 소비’에 대한 의미는 ‘내 몸에 좋은 것’과 대기업에 후려치기 당하지 않고 공정한 거래를 통해 농부들이 잘 살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일이었다.

 

한동안 호구 아닌 현명한 소비자로 살아가는 일에 만족하였다. 주변 지인들 중 몇몇은 동물권을 생각하며, 채식을 하였는데 커다란 울림은 없었다. 돈까스는 너무 맛있고, 치킨은 소울 푸드였다. 아니 이런 걸 왜 포기한단 말이야! 그러다가 뭔가 삶의 위기를 느끼기 시작한 건 최근의 일이다. 미세먼지 없이 마음껏 창문을 열거나 공기를 마시는 일은 점점 어려워졌고, 꽃은 때도 모르고 피고 지고, 지구 반대편에서 산불이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고, 코로나19는 일상이 되었다. 이러다 지구 망하는 거 아닌가. 유년 시절에 뛰어놀던 맑은 하늘과 물, 흙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인간이 먹고 마시고 사는 일이 이렇게 지구를 더럽히고 오염시키는 일인가. 그레타 툰베리와 같은 다음 세대는 ‘어른들이 만든 난장판을 책임지고 끝까지 치울 겁니다.’라고 일침 했다.

 

2015년 '파리 기후변화협약' 로고
2015년 '파리 기후변화협약' 로고

불행히도, 그 어른들이 나를 가리키는 건가. 되돌아보니, 이 난장판을 만드는 데 기꺼이 기여해왔다. 나름 쓰레기 분리배출에 열심이었지만, 쓰레기의 양은 크게 줄지 않았으며 근본적으로 자연 분해되지 않는 각종 플라스틱을 포함한 물건들을 소비-폐기하고 있다. 어른들의 범주에는 개개인의 시민뿐만 아니라 기업과 각국 정부도 포함된다. 개별 시민으로서 환경 문제를 자각하여 텀블러를 휴대하고, 샴푸바를 사용하는 건 매우 고무적인 일지만 이런 행동만으로 시스템 자체가 변화하지 않는다. 한국의 경우 기업에서 사용하는 플라스틱의 종류가 10여 가지가 넘어, 재활용되기 어려운 현실이라 정부 차원에서의 관련 법규와 정책적 변화가 절실하다. 또한 2018년 폐비닐 대란 사건으로 알 수 있듯이, 환경 문제는 주변국으로 떠넘길 수 없는 전 지구적인 협력이 필요한 일이다. 2015년 파리 기후변화협약은 195개국 당사국의 참여로 산업화 이전 수준 대비 지구 평균온도가 2℃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온실가스 배출량을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협약에 가입한 한국은 2020년에 ‘2050년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을 수립 · 제출했다. 정부는 2050년까지 그린 뉴딜 정책 선언했지만 서울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현재 건설 중인 7기의 신규 석탄발전이 포함돼 있어 2034년까지 석탄발전이 최대 발전원이 되며 2050년대 중반까지도 석탄발전을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전주 친환경 가게 '소우주'

더 이상 환경 이슈는 보호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인간 중심의 오만한 발상이다. 보건, 식량, 생태, 기후, 동물에 대한 문제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단 하나뿐인 지구별 아래에서 생태계 한 종에 불과하다. 산업화 이후의 자연과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한 전환이 필요하다. 개별 시민과 기업은 소비-회수-재활용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100년 후의 미래 세대와 자연에게 무엇을 남겨줄 것인가? 남겨주는 것은 고사하고, 우리가 싼 똥은 치우고 가야 하지 않을까. 썩지 않는 똥은 거름도 못되니까 말이다.

/소해진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협동조합 조합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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