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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이 아니라 광개토‘태왕’으로 칭해야 할 때

김병기(전북대 명예교수)

김병기(전북대 명예교수)
김병기(전북대 명예교수)

지금 서울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서예단체인 ‘한국서예단체총연합회(서총)’가 기획한 「광개토대왕비-필혼을 깨우다」전이 열리고 있다(10월 30일까지). 우리 민족 최고(最古)이자 최고(最高)의 금석문인 광개토대왕비에 담긴 서예의 혼을 이 시대에 다시 느껴보자는 취지를 담은 전시이다. 한국의 대표서예가 160여명이 광개토대왕비를 주제로 쓴 가로100×세로240(㎝)의 대형작품을 전시한다. 서예의 고장 전북의 도민으로서 관람해 봐야 할 전시이다.

광개토대왕은 18세에 등극하여 39세에 서세할 때까지 21년 동안 ‘영락(永樂)’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며 우리 역사상 가장 넓게 영토를 확장하여 고구려를 동아시아의 중심세력이 되게 한 왕이다. 이러한 부왕의 훈적을 기리기 위해 아들 장수왕은 거대한 훈적비를 세웠는데 비석에는 ‘대왕(大王)’이 아니라 ‘태왕(太王)’이라고 새겨져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대왕’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일까? ‘대왕’과 ‘태왕’은 같은 말일까?

비석에 새겨진 바에 의하면 광개토대왕의 정식 시호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다. 처음의 ‘국강상’은 ‘나라의 언덕 위’라는 뜻으로서 왕의 묘가 자리한 곳을 밝혔다. 다음의 ‘광개토경’은 ‘국토의 경계를 널리 넓히신’이라는 뜻이고, ‘평안호태왕’은 ‘나라를 평안하게 하신 좋고 크신 왕’이라는 뜻이다. 전체를 연결시켜보면, “나라의 언덕 위에 묻히셨으며 국토의 경계를 널리 넓히셨고 나라를 평안하게 다스린 좋고 큰 왕’이라는 뜻이다. 이 시호를 줄여서 우리는 ‘광개토대왕’이라고 불러왔는데 비문에는 분명이 ‘태왕’이라고 새겨져 있는 것이다. ‘太’는 ‘大’보다 훨씬 크고 강한 개념이다. ‘대왕’은 제후국의 왕을 높여 부르는 칭호이고, ‘태왕’은 황제의 지위에 비견되는 칭호이다. 중국의 연호를 사용하지 않고 ‘영락’이라는 연호를 독자적으로 사용한 고구려의 광개토태왕은 당시 국제적으로 황제에 비견할 만한 지위를 가진 왕이었기 때문에 비문에 ‘태왕’이라고 새긴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당연히 민족적 자긍심을 가지고 ‘광개토태왕’이라고 불러야 한다.

중국이나 일본은 결코 ‘광개토태왕’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광개토’ 즉 ‘나라의 경계를 널리 넓혔다’는 뜻은 곧 고구려의 영토가 현재의 중국 땅 깊숙이까지 들어왔었다는 뜻이니 중국은 물론 일본도 ‘광개토’라는 말을 사용할 리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시호의 끝 세 글자를 따서 ‘호태왕(好太王)’이라고 부른다.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광개토왕’이라고 기록한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줄곧 ‘왕’이라는 칭호로 불러왔다. 1880년대 초, 광개토태왕비가 발견되었을 때 비문에 분명히 ‘태왕’이라고 새겨진 것을 확인한 후에도 일제는 ‘광개토태왕’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고, 우리 또한 ‘태왕’으로 고쳐 부르지 않았다, 이번에 광개토태왕비 서예전을 기획한 서총도 관습에 따라 자연스럽게 ‘광개토대왕’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런 관습은 이제 버려야 한다. 비문에 황제와 동격인 ‘태왕’으로 새겨져 있는데도 ‘대왕’이라고 부르는 것을 우리 스스로에게 미안한 일이다.

한국서예의 중흥을 꿈꾸며 기획한 서총의 이번 전시를 관람하면서 우리 함께 ‘광개토대왕’이 아닌 ‘광개토태왕’의 필혼을 느껴보도록 하자! /김병기(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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