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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대한민국 땅 대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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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구 전라북지방법무사회장

일본의 수없는 역사왜곡에 현대사에도 우리는 통째로 휘둘려 있는 상태라고 보면 된다. 이 대마도 지도에 대한 일본의 저열하고 비열한 만행을 있는 사실대로 적시하여 보면, “오가사와라” 군도 분쟁 당시 활약했던 일본인 ‘다나베’는 1868년 프랑스 대사로 활동하면서 1868년 대마도의 일본귀속을 앞두고 대마도가 조선영토로 표시되어 배포했던 클라프로트의 “삼국접양지도(프랑스어판,1832년) 수집 폐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대마도가 일본 땅이라는 위조본을 만들었다. 국제정세에 열악한 조선은 이를 저지할  능력도 대항할 국력 자체마져도 없었다.

하나 더 보자. ‘다보하시 기요시’는 1945년 대한민국이 해방이 되는 해에 죽었다. 이 자는 ≪근대일본-조선관계의 연구≫를 발간한 일본 사학자인데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1923년 7월 일본인 사학자 ‘구로이타 가쓰미’와 함께 대마도 현지로 가서 한국관련 문서 66,469매, 고기록류 3,576권, 고지도 36매, 고서류 18점, 그림53점 등을 불에 태워 버렸다고 자국민 일본인 사학자 ‘하라다 사이에쿠’가 진실을 전하고 있다. 

 

1945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이 36년의 일제 치하를 벗어나는 해이이다. 우리는 이를 해방이라고 말한다. 청일전쟁 승리, 러일전쟁을 승리한 일본은 세계를 혼란에 빠트리고 국제평화질서를 파괴한 나라가 일본이다. 무법천지로 온 세계의 법질서를 송두리째 무시하고 약육강식의 금수만도 못한 행위를 더는 볼 수 없어 전위를 가다듬은 연합국 중 미국이 최후로 종전을 통고하였으나 이를 거절한 일본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의 피해를 감당할 수 없어 항복을 하고 패망을 한 해가 1945년이기도 하다.

이승만 대통령이 제일 잘한 일이 하나 있다. 1948년 8월 18일 대한민국 건국 3일 만에 익히 잘 알고 있는 기정사실을 바탕으로 일본에게 대마도 반환 촉구 성명을 하였다. 그 후 수차례 대마도 반환을 촉구한 이승만 대통령의 성명내용은 “일본은 대마도를 한국에 즉각 반환하라! 대마도는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가 관리한 우리 땅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이 무력 강점했지만 의병들이 격퇴한 전적비가 남아 있다. 구한말에 대마도를 강점한 일본은 포츠담 선언에서 불법 점령한 영토를 반환하겠다고 국제적으로 약속했다. 지체없이 한국에 돌려줄 것을 촉구한다.” 이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공식적으로 처음 제기한 것이다. 그 후 배우고 잘난 대한민국 위정자들 중에 어느 누구 하나 국토 수호 의지를 일본에 촉구한 것을 보지 못했다.

 

누구를 탓할 수는 없는 국운일 수도 있다. 불행하게 우리는 1950년 6월 25일 한 집안 식구간의 유혈사건과 같은 동족간의 비극중의 비극인 전쟁을 하게 되었고 제2차세계대전의 패전국인 일본은 1950년 대한민국 민족간의 유혈 전쟁으로 곧바로 경제회복을 넘어 부흥까지 하였고 더욱이 이승만 대통령의 대마도 반환 촉구를 전쟁하고 있는 연합군 사령관 맥아더에게 필사적 로비로 무산시켰다는 사실을 지금 대한민국 국민이 몇 명이나 알고 있을까?

세계 여러 국가의 역사가 극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은 스스로 일어서지 못하거나 자강하지 아니하면 지구상에서 소멸되는 것이다. 미국이 일본에게 대한민국에게 대마도를 반환하라고 할 때 일본이 못 넘겨주는 이유가 대한민국은 아직 힘이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한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힘이 없고 열악한 나라인가. 왜 대마도를 넘겨달라고 이승만 대통령이 한 두 번도 아닌 수 십번 촉구를 하였다는데 역대 정부는 단 한 번도 대마도를 반환하라고 말 못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24대 정부에게 주문한다. 즉시 일본에게 대마도 반환을 촉구하라.

/이형구 전라북지방법무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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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구 전라북지방법무사회장

일본의 수없는 역사왜곡에 현대사에도 우리는 통째로 휘둘려 있는 상태라고 보면 된다. 이 대마도 지도에 대한 일본의 저열하고 비열한 만행을 있는 사실대로 적시하여 보면, “오가사와라” 군도 분쟁 당시 활약했던 일본인 ‘다나베’는 1868년 프랑스 대사로 활동하면서 1868년 대마도의 일본귀속을 앞두고 대마도가 조선영토로 표시되어 배포했던 클라프로트의 “삼국접양지도(프랑스어판,1832년) 수집 폐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대마도가 일본 땅이라는 위조본을 만들었다. 국제정세에 열악한 조선은 이를 저지할  능력도 대항할 국력 자체마져도 없었다.

하나 더 보자. ‘다보하시 기요시’는 1945년 대한민국이 해방이 되는 해에 죽었다. 이 자는 ≪근대일본-조선관계의 연구≫를 발간한 일본 사학자인데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1923년 7월 일본인 사학자 ‘구로이타 가쓰미’와 함께 대마도 현지로 가서 한국관련 문서 66,469매, 고기록류 3,576권, 고지도 36매, 고서류 18점, 그림53점 등을 불에 태워 버렸다고 자국민 일본인 사학자 ‘하라다 사이에쿠’가 진실을 전하고 있다. 

 

1945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이 36년의 일제 치하를 벗어나는 해이이다. 우리는 이를 해방이라고 말한다. 청일전쟁 승리, 러일전쟁을 승리한 일본은 세계를 혼란에 빠트리고 국제평화질서를 파괴한 나라가 일본이다. 무법천지로 온 세계의 법질서를 송두리째 무시하고 약육강식의 금수만도 못한 행위를 더는 볼 수 없어 전위를 가다듬은 연합국 중 미국이 최후로 종전을 통고하였으나 이를 거절한 일본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의 피해를 감당할 수 없어 항복을 하고 패망을 한 해가 1945년이기도 하다.

이승만 대통령이 제일 잘한 일이 하나 있다. 1948년 8월 18일 대한민국 건국 3일 만에 익히 잘 알고 있는 기정사실을 바탕으로 일본에게 대마도 반환 촉구 성명을 하였다. 그 후 수차례 대마도 반환을 촉구한 이승만 대통령의 성명내용은 “일본은 대마도를 한국에 즉각 반환하라! 대마도는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가 관리한 우리 땅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이 무력 강점했지만 의병들이 격퇴한 전적비가 남아 있다. 구한말에 대마도를 강점한 일본은 포츠담 선언에서 불법 점령한 영토를 반환하겠다고 국제적으로 약속했다. 지체없이 한국에 돌려줄 것을 촉구한다.” 이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공식적으로 처음 제기한 것이다. 그 후 배우고 잘난 대한민국 위정자들 중에 어느 누구 하나 국토 수호 의지를 일본에 촉구한 것을 보지 못했다.

 

누구를 탓할 수는 없는 국운일 수도 있다. 불행하게 우리는 1950년 6월 25일 한 집안 식구간의 유혈사건과 같은 동족간의 비극중의 비극인 전쟁을 하게 되었고 제2차세계대전의 패전국인 일본은 1950년 대한민국 민족간의 유혈 전쟁으로 곧바로 경제회복을 넘어 부흥까지 하였고 더욱이 이승만 대통령의 대마도 반환 촉구를 전쟁하고 있는 연합군 사령관 맥아더에게 필사적 로비로 무산시켰다는 사실을 지금 대한민국 국민이 몇 명이나 알고 있을까?

세계 여러 국가의 역사가 극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은 스스로 일어서지 못하거나 자강하지 아니하면 지구상에서 소멸되는 것이다. 미국이 일본에게 대한민국에게 대마도를 반환하라고 할 때 일본이 못 넘겨주는 이유가 대한민국은 아직 힘이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한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힘이 없고 열악한 나라인가. 왜 대마도를 넘겨달라고 이승만 대통령이 한 두 번도 아닌 수 십번 촉구를 하였다는데 역대 정부는 단 한 번도 대마도를 반환하라고 말 못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24대 정부에게 주문한다. 즉시 일본에게 대마도 반환을 촉구하라.

/이형구 전라북지방법무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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