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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치 전적지의 국가사적 승격과 숨은 영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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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영 의원

전라북도 기념물 제25호인 ‘임진왜란 웅치 전적지’가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승격을 앞두고 있다. 전적지의 역사적 가치뿐만 아니라 국가사적 중 유일하게 완주와 진안 두 개 지자체에 걸쳐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개인적으로는 20대 국회에 등원하면서 힘을 보탰기에 더욱 보람을 느낀다. 이번 낭보가 전해지기까지 각계각층에서 땀 흘린 숨은 일꾼들도 기억하면 좋겠다.

‘웅치 전투’는 1592년 7월 진안과 완주의 경계가 되는 웅치 일원에서 1,000여 명의 관군과 의병이 두 배 이상 많은 왜군에 맞서 싸우며 왜군의 전주성 진입을 저지해 호남을 지킨 싸움이다. 결국은 조선이 임란을 극복하는 계기가 되면서 이순신 장군은 ‘약무호남시무국가(若無湖南是無國家)’라고 언급했다. 영화 ‘한산’에서도 ‘웅치 전투’는 매우 비중 있게 다뤄 졌다.

웅치·이치 전적지는 높은 역사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홀대를 받았다. 1976년 4월 웅치전적지가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됐지만, 완주군에 한정됐고 지역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계기가 없어 선양사업도 큰 변화 없이 반세기의 세월이 흘렀다.

새로운 변화는 2016년 박재완 전북도의원이 웅치 전투의 역사적 의미와 허술한 전적지 관리 전반에 대해 도정질의를 하면서 시작됐다. 2017년 학술대회가 열렸고 2018년과 2019년 두 차례의 정밀발굴조사가 이뤄졌다.

오래전부터 웅치·이치 전투에 깊은 관심이 있던 전북일보 윤석정 사장은 2016년 국회에 등원한 내게 “웅치 전투는 나라를 구한 전투로 완주나 진안만의 역사가 아니다”라며 “나라와 전북의 역사로 선양하기 위해 전북도민 차원에서 접근하자”라고 제안했다. 지역구 국회의원으로서 흔쾌히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펼쳤다. 2020년 전북일보가 창간 70주년 ‘웅치전적지 국가지정문화재 승격을 위한 재조명 학술대회’를 개최하면서 지역의 여론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윤 사장이 없었다면 웅치전적지의 국가사적 지정은 요원한 일이었을 것이다.

지자체의 노력도 있었다. 완주와 진안은 국가사적 지정을 각기 추진하면서 갈등도 빚었다. 그래서 접근법을 바꿔 전북도를 주체로 추진했다. 학술적 평가를 맡기기로 합의하고 주민 갈등을 해소하면서 우수한 협력의 사례로 평가받았다. 민선 6기부터 사업을 추진한 박성일 완주군수와 진안까지 사적지에 포함 시킨 전춘성 진안군수의 노력도 빛을 발했다. 특히 올 6월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유명한 유희태 완주군수가 당선된 뒤 사업추진에 가속도가 붙었다.

황병주 상임대표를 비롯해 많은 주민이 헌신해온 (사)웅치·이치전투기념사업회, 완주군민 500여 명이 참여한 ‘완주군웅치전투성역화추진위원회’, 진안군민과 후손들이 만든 (사)임란웅치전적지보존회 등 민간단체의 활동이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정치권과 전문가들도 힘을 보탰다. 필자도 앞장을 섰고 전북지역 국회의원과 동료 의원들의 협력도 이어졌다. 문화재 위원인 전주대 이재운 교수, 신정일 선생 등 전문가와 전략을 협의하면서 계획도 꼼꼼히 수립했다. 문화재청장을 국회에서 만나 협의한 후 청장, 윤 사장 등과 함께 직접 웅치전적지 현장을 둘러봤고 그 결과 청신호가 켜졌다.

돌아보면 정치권과 행정기관 그리고 민간의 협력이 긴밀하게 이뤄졌다. 관심을 가지고 성원하며 마음을 모아주신 도민 덕분이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웅치 전적지가 국가사적으로 지정되면 그에 걸맞게 종합정비 계획을 세우고 유적 발굴과 보존 관리를 통해 성역화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선열의 숭고한 정신을 앙양해 나라 사랑의 뜻을 이어가도록 다시 한번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안호영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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