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2-03 19:14 (Wed)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스포츠 chevron_right 스포츠일반

[전북체육 종목단체 탐방] (16) 전북자치도승마협회

2016년 통합 출범…한국마사고·전주기전대학·동호회 왕성한 활동
전국대회 개최·유치 활발…“전북 승마, 한국 말산업 핵심축으로 전진”

Second alt text
제106회 전국체육대회 승마에 출전한 전북 선수가 장애물을 넘고 있다. 전북자치도승마협회 제공

인류가 말을 길들이며 시작된 승마의 역사는 곧 문명의 확장과 교류의 역사였다.

말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농경과 사냥의 동반자였으며, 사회적 지위와 문화적 상징의 핵심 요소였다.

승마는 이러한 변천 속에서 단순한 생활 기술을 넘어 스포츠, 예술, 산업으로 발전하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약 5000 년 전 카자흐스탄과 몽골 일대를 중심으로 한 유라시아 초원에서 말이 최초로 길들여지기 시작했다.

집단 이동과 가축 방목을 중심으로 살아가던 유목민들은 말을 통해 이동 능력을 극적으로 확장했고, 이는 생존 방식의 혁신을 가져왔다.

유목 사회에서 승마는 단지 기술이 아닌 문화 그 자체였다.

승마의 발전은 곧 국가의 확장이기도 했다.

기원전 2000년대 이후 말과 전차는 고대 중동과 이집트에서 전쟁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이후 이시리아와 페르시아 제국은 기병 부대를 전략적으로 운용해 군사력을 극대화했다.

특히 승마는 유라시아 전역의 역사적 혁명에 큰 영향을 미쳤다.

스키타이 기마민족은 말 위에서 자유롭게 활을 쏘는 전술을 발전시켜 전 세계 문명에 충격을 줬고, 이후 흉노, 돌궐, 몽골 제국 등의 기마민족은 광대한 영토를 단시간에 장악할 수 있었다.

칭기스칸의 몽골군은 고도로 훈련된 말과 기마술을 기반으로 ‘세계 최강의 기병’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승마가 스포츠로 공식적인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문명은 고대 그리스다.

기원전 680년 올림피아 제전에서 전차 경기와 경마가 정식 경기로 채택되었고, 이는 승마가 경쟁 스포츠로 발전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승마 경기의 속도, 기술, 관중 문화는 이후 로마 제국에 계승되며 더욱 대중화되었다.

로마의 원형 경기장에서 벌어진 전차 경주는 당시 가장 인기 있는 오락이었고, 유명한 마부는 현대 스포츠 스타 못지않은 명성을 얻었다.

중세 승마는 ‘기사도 문화’의 중심에 있었다.

기사는 말 훈련을 통해 무예뿐 아니라 신분적 위계를 형성했으며, 마상창시와 같은 경기 문화는 전투 기술을 예술적 퍼포먼스로 승화시켜 현대의 ‘마장마술’의 원형이 됐다.

18~19세기 승마는 스포츠로 본격 전환되는 시기였다.

영국은 승마 규정을 체계화하고 경마와 기승술을 표준화해 현대 승마 스포츠의 기반을 마련했다.

1760년부터 영국 경마 규칙이 통일되었고, 이는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근대 승마의 발전에는 군대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유럽 각국의 기병학교는 마장마술, 장애물, 종합마술의 기술을 학문화하고 훈련 체계를 정립했다.

승마는 1900년 제2회 파리올림픽에서 처음 등장했고, 1912년 제5회 스톡홀름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당시에는 군인만 출전이 가능했지만, 1952년 제15회 헬싱키올림픽부터 민간인도 참여할 수 있게 되면서 본격적인 국제 스포츠로 확장됐다.

대한민국 승마의 역사 또한 세계 승마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한국 승마의 원형은 기원전 삼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물, 벽화, 무던 마구류 발굴 등 고고학 자료는 한반도에서 이미 기원전부터 말 사용이 확산됐음을 증명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전국에 100여 개의 목장을 운영하며 국가 군사 전략과 조련기술, 기마술 등 군사 훈련의 필수 항목이었다.

개항 이후 서구식 경마와 승마 기술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본격적인 변화가 시작되었다.

1898년 한성 경마구락부가 설립되며 근대적 경마가 시작됐고, 일제강점기에는 조선마사회가 조직되어 마주와 기수 제도 등 서구식 제도가 도입됐다.

한국 승마가 본격적 시스템을 갖춘 시기는 1970년대였다.

대한승마협회가 국제승마연맹(FEI) 가입을 추진하며 국제 규정이 도입되었고, 전국승마대회와 학생승마대회가 정례화되며 선수층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 들어 승마장은 서울과 대전, 부산, 전북, 경북 등 전국 곳곳으로 확산 되었으며, 대학 승마 인구와 실업팀 선수도 크게 증가했다.

1986년 제10회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은 한국 승마가 국제 기준을 학습하고 대규모 경기장을 구축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 시기 한국 승마의 1세대 간판 스타인 서정균이 있었다.

서정균은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부터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까지 4차례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금메달만 6개를 안겼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마장마술 개인전에서 10위에 오르며 우리나라 승마 개인전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이후 한국 승마는 아시아 경기대회에서 꾸준히 강세를 보여왔다.

특히 마장마술 부문에서 한국 선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과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김균섭이 마장마술 팀 금메달을 획득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송상욱이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우승하며 2관왕에 올랐다.

황영식도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마장마술 개인전 금메달을 획득했다.

Second alt text
제106회 전국체육대회 승마에 출전한 전북 선수가 장애물을 넘고 있다. 전북자치도승마협회 제공

전북자치도승마협회는 2016년 통합 출범했다.

2022년부터 회장을 맡고 있는 박영재 회장과 부회장, 이사 등 25명의 임원이 전북자치도 승마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박영재 회장은 승마 발전은 물론 전북체육 발전에도 앞장서며 2036 하계 올림픽 유치를 위해 몽골 등 해외 체육회 관계자들과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육성 팀으로는 한국마사고등학교 등 2팀 30명의 선수와 전주기전대학 등 2팀 50명의 선수가 활동하고 있다.

동호회 클럽도 호남승마클럽 등 34개 클럽이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전북자치도승마협회는 대회 개최 및 유치도 활발히 하고 있다.

2022년부터 새만금 전국지구력승마대회, 전북자치도지사배 전국승마대회, 장수 사과랑 한우랑 전국지구력승마대회를 개최하고 있고, 2023년부터는 완주군수배 승마대회를 신설했다.

2024년에는 국제대회로 제1회 한일국제교류전 승마대회를 개최하며 전북 승마의 위상을 되살리고 있다.

Second alt text
전북자치도승마협회 박영재 회장

전북자치도승마협회 박영재 회장은 “전북 승마는 대한민국 승마의 주축으로 다수의 국가대표 선수들을 배출하며 승마계의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며 “우수 선수 영입 등으로 전북 승마가 새롭게 도약할 수 있도록 노력하며 2036 하계 올림픽이 전북에서 꼭 열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전북 승마는 지금 새로운 변곡점에 서 있다.

경기력 향상뿐 아니라 말산업, 관광, 재활, 교육을 결합한 종합 승마 산업의 중심지로 거듭날 가능성이 크다.

스마트 마필 관리 기술, 재활 승마 전문센터, 국제대회 유치 등 미래 성장 동력이 명확하다.

전북 승마의 역사는 단순히 말과 함께한 지역의 기록이 아니다.

전북이 가진 지리적, 문화적 자산 위에 구축된 산업과 스포츠, 그리고 미래를 향한 비전이 응집된 길이다.

말과 사람, 지역이 함께 만들어온 전북 승마의 역사는 앞으로도 한국 말산업의 핵심축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오세림 기자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승마 #전북승마협회 #전북체육회 #박영재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스포츠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