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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예찬] ‘빈틈엮읆이’ 예술가는 무엇을 할까?

한준 작가·독립큐레이터

왠지, ‘작가’ 란 어두운 아틀리에 안에서 홀로 고독을 씹으며 캔버스와 싸우고, 끝없는 고민과 내면 속에만 머무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실제 현장에서는, 이러한 이미지와 다른 일들이 훨씬 많았다.

 

지금은 예전엔 상상도 되지 않았을 만큼 여러 일들을 만나고 있다. 이렇게 칼럼을 기고하는 일, 전시의 해설, 지원 사업을 기반으로 전시를 기획하거나, 자체적인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일,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가 하면, 공연의 VJ 역할을 맡아 보기도 했고, 기관과 연계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도 있다. 학교를 다닐 때에 상상하던 ‘작가’ 와, 지금 마주하는 ‘예술가’ 사이에는 간극이 너무나 크다.

그러한 간극을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때, 팔복예술공장 A동 옥상 공동경작 프로젝트 ‘도시상조’(2024)에 참여했다. 벽에 그림을 거는 일도 낯설던 때에, 아무 설비도 없는 옥상에서, 의자를 제작하기도 하고, 예술가의 작업에 기반한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하고, 프레임을 사용해 제작한 작업들을 관람객들과 함께 옥상에서 1층으로 옮겨 자유롭게 배치하고, 다시 가지고 올라오는 형식의 퍼포먼스도 진행했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처음에 생각했었던 ‘작가’의 일과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작업은 단순히 ‘만들어진 것’을 공개하는 고립된 제작에만 머물지 않았다. 장소와 사람, 서로의 관계망을 재배치하는 실천에 더 가까웠다. ‘개인 작업’을 하는 일은 물론 기본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어떤 환경을 읽고, 그 환경이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지, 그 고민들을 어떤 감각으로 드러낼지 탐색하는 과정 자체가 예술인 것 같다. 일상적 감정과 삶들을 드러내고, 그 사이에 새롭게 끼워 넣을 감각을 상상하며, 익숙한 틈을 새로운 형태로, 다른 가능성으로 다시 조합하는 일. 그것이 현장에서 느낀 예술가의 역할이었다.

최근에는 익산예술의전당 기획전 ‘이리 꼬뮨’(2026)에 참여했다. 1980년대 이리 수출자유지역 사회운동을 기반으로 노동자들이 서로를 돕고 연대한 방식을 오늘날 지역 예술단체의 작업과 생태계에 연결하는 기획이었다. 이곳에 지난 4월 전자음악 씬 활성화를 목적으로 기획된 공연 ‘GOOD’(2026)에 협력한 설치 작업을 3배 규모로 확장하고 재구성하여, 시각예술가 세 명의 서로 다른 정체성과 작업 방식을 충돌시키고 하나의 공동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으로 출품했다. 이를 통해 ‘공동 작업’ 만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 공연과 연결된 연대의 서사, 하나의 주제를 해석하며 겹쳐진 대화와 노동 자체를 옮겨가고자 했다.

예술가는 무엇을 할까? 개미핥기를 일본어로 읽게 된다면 ‘개미먹음이’가 된다며, 이름이 너무하지 않냐는 농담처럼, 왠지 친숙하지는 않은 ‘예술가’ 라는 이름을 내려놓고 역할만 불러보면 어떨까. 삶섥기, 가상두들김이, 이상해서 즐거운 이름들처럼, 이제의 예술가의 일 또한 괴상하지만 왠지 이상해서 즐겁게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예술가는, 홀로 고독을 씹으며 캔버스와 싸워나가야도 하지만, 어쩌면 관계와 환경과 감각을 함께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할지 모른다. 이젠 어떤 예술가로서 무엇을 해야 할까? 지금은 우선, 일상 사이의 빈틈을 읽고, 빈틈을 다른 감각으로 다시 엮어내는 일을 먼저 하고자 한다. 당분간은, ‘빈틈엮읆이’ 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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