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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봉사로 법무부장관 표창 받은 송병주 전주시의사회장 "서로의 마음 알아줄 때 가장 행복해"

“봉사라는 게 뭐 별거 있나요? 나눔의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살기좋은 사회가 되는 밑거름이 되는 거죠.”20여년 넘게 남모를 선행과 봉사를 베풀어 온 의료인이 있어 주변의 귀감이 되고 있다. 운동, 산행, 의술 등 전방위 분야의 팔방미인으로 불리는 주인공은 바로 전주시의사회 송병주 회장(55·한솔비뇨기과)이다.전북대 의과대학을 나온 송 회장은 남원의료원에서 6년 여간 재직해오다 지난 1997년 개업했고 그때부터 현재까지 꾸준한 봉사활동을 벌여오고 있다.개업 당시 전주 중화산동 병원 인근에 사는 어려운 학생들에 대한 장학금 지원을 시작으로 불우이웃돕기, 자율방범 활동, 사랑의 인술 나눔, 교정위원 활동 등의 다양한 개인적인 봉사활동을 진행해 오고 있다.또 전주시의사회 회장으로서 저소득층 청소년들에 대한 무료 진료, 수감자 처우 개선과 원활한 사회복귀를 위한 교정 의료 봉사 등의 단체활동도 병행하고 있다.송 회장은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12월 31일 법무부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송 회장은 개인적 취미로 매주 빼놓지 않고 전북은 물론 전국의 유명산 등을 오르는 등산가로 활동하고 있는데 산을 오를때 마다 진귀한 버섯이나 약초, 나물 등을 캐와 어르신들에게 나눠주곤 해 주변 어르신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송 회장은 “오는 3월에 전주시의사회 회장직 임기가 끝나는 데 그간 회장직을 맡으며 미처 소홀했던 부분의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찾아 볼 생각”이라며 “봉사활동은 그냥 봉사로 끝낼때가 아름다운 것으로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고 이해해줄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이어 “의사인 만큼 죽는 그날까지 환자를 열심히 돌보며, 양심진료하는 정직한 의료인으로 남고 싶다”며 “시간이 허락한다면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으면 그곳을 방문해 마음과 정을 함께 나누며 살아갈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 사람들
  • 이강모
  • 2018.01.22 23:02

어려운 고인 상주 되어주는 '천도장례식장' 안기 대표 "다목적 장례실 만들어 지역사회 기여 계획"

제 인생의 좌표를 정해주신 스승님께서 언제나 하시는 말씀은 너는 정성만 다해라, 내가 기도해주마!이었습니다.천도장례식장(원광대학병원 장례식장) 안기 대표(법명 안훈)는 최고가 아닌 최선을 다하는 삶을 인생의 좌표로 삼고 있다.원광대 원불교학과를 졸업한 1986년 출가한 안 대표가 장례식장과 인연을 맺은 건 어머니의 오랜 투병생활 때문이었다.원불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호스피스병원인 원병원에 입원한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무보수로 이곳 사무장으로 입사해 3년간 일하며 세상과 작별을 하시는 많은 분들을 소중히 모셨다.재단은 원광대 산본병원 장례식장을 운영할 적임자를 찾던 중 그를 적임자로 낙점했다.안 대표는 산본병원 장례식장을 건립했는데 경험을 가진 운영할 분이 없었다며 호스피스병원에서 돌아가신 분과 달리 교통사고나 자살하신 분을 보면 3개월 이상 잠들지 못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그는 장례식장을 운영하며 신원미상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 사정이 딱한 사람들도 편히 장례를 모실 수 있도록 배려한다.특히 안 대표는 가족이 없는 고인의 상주가 되어 줬고, 형편이 딱한 고인은 무료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해주는 등 경영인답지 않은 성직자의 본모습을 보여줬다.산본병원 장례식장은 금세 입소문이 나며 북새통을 이루면서 흑자를 올리게 됐다.그는 산본에서 인연 없는 영가의 상주가 되어 주고, 형편이 어려운 영가를 위해 장례비용을 보태주고, 무료 장례를 몇 건 했을 때에 엄청난 보은으로 돌아 온 것을 기억한다며 그때 경험은 지침이 되어 지금도 정직과 신뢰를 가장 먼저 떠오르게 한다고 말했다.이후 원광대병원 장례식장인 천도장례식장과 전주 온고을 장례식장, 광주 신세계 장례식장 등 원불교 산하 장례식장 전문 경영인으로 인정받게 됐다.익산에 천도장례식장을 새 단장하고 있는 안 대표는 지역사회기여를 위해 다목적실 조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곳은 신원을 알 수 없거나 노숙자, 돈이 없어 어려운 사람 등이 편히 장례를 치를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다.장례식장을 운영하며 잘 살고 못 살고는 남은 사람들이 어떤 모습을 보여 주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안 대표는 열반은 슬픈 것이 아니라 미안한 것이다. 조금이라도 덜 미안하려면 있을 때 잘해야 한다면서 평소 욕심 비우는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한다.특히 그는 고인을 아쉽다고 슬퍼하면 천당엘 갔고, 잘 갔다고 혀를 차면 지옥에 갔다는 말이 있다. 참으로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면서 평소 삶의 순간순간을 놓치지 말고 최고는 아니어도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익산=김진만 기자

  • 사람들
  • 김진만
  • 2018.01.19 23:02

전주시 첫 여성 구청장 지낸 박선이 국장 "40여년 동안 미룬 배움·봉사 시작 할 것"

42년동안 입었던 옷을 내려놓는 일이 실감나지 않는다. 전주시 여성공무원으로는 처음으로 ‘구청장’을 지낸 박선이 국장. 오는 6월 퇴임을 앞두고 공로연수에 들어간 박 국장은 “마치 휴가를 얻은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박 국장은 전주시에서 여성공무원 영역을 확장해온 개척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77년 남원 대산면사무소에서 공직을 시작했다. 양 구청이 신설되는 등 행정조직 개편이 있던 1988년 전주시로 옮겨와 8년 여 동안 효자동의 발전을 지켜봤다. 강한 추진력과 책임감, 소통능력을 인정받아 여성으로는 처음 자치행정과장에 발탁됐고, 2014년 김승수 시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첫 여성 국장이 됐다. 그는 “ ‘첫 여성’이라는 의미부여가 부담스러웠지만 후배들을 생각하면서 사명감으로 더욱 분발했다”고 돌아봤다. 박 국장이 잇따라 인사에서 주목받은 것은 눈에 띄는 업무성과 때문이었다. 5년 여 동안 교육지원계장을 맡아 전주시가 평생교육도시로 지정받을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했다. 교육지원조례를 제정하고 평생교육원을 만들었으며, 연수프로그램도 기획하는 등 현재까지 운용되고 있는 평생교육의 틀을 만들었다. 전국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선미촌 재생사업도 박 국장이 주춧돌을 놓았다. 2016년 사회적경제지원단장으로 부임하자마자 선미촌 재생사업에 착수했다. 한터전국연합회가 알몸시위를 하겠다고 협박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지만 여성인권단체와 경찰의 도움을 받으며 선미촌 재생을 위한 거점을 마련했고, 사업 추진에 동력이 될 국비도 확보했다. 권삼득로에 조성되는 ‘여행길(여성들이 행복한 길)’은 그가 지은 이름이다. 자치행정과장때 추진됐던 전주완주 통합 무산은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박 국장은 “전주와 여건이 유사했던 지역이 인근 지자체와 통합으로 눈에 띄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통합이 반드시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공직 초창기에 대민 부서에서 일을 배웠던 그는 소통과 협상에서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잘못이 있을 때 인정하고, 바로잡으려는 진실한 자세가 상대에게 전달돼 어려운 일도 쉽게 풀 수 있었다고 했다. 권위를 내려놓고 현장을 찾는 것도 공직자가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덕진구청장 재직시에는 ‘현장 구청장’으로 유명했다. 박 국장은 지난 5일 공직 마무리 자리인 덕진구청장을 떠나며, 전주시청 전 직원에게 메일로 미리 퇴임인사를 전했다. “공직을 천직으로 여겼다”면서 “직장맘으로 걸림돌이 많았지만 동료와 후배의 격려와 응원 덕에 유리천장을 깰 수 있었다”면서 고맙다고 했다.박 국장은 6개월의 공로연수동안 조직을 떠나 혼자가 되는 준비를 하고, 이후에는 40여년 동안 미뤄놓은 배움과 봉사에 본격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 사람들
  • 은수정
  • 2018.01.17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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