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루사가 남긴 폐허의 땅에서 수재민들은 지금 절망을 딛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고 있다.
6일 오후 사상 최대 규모의 ‘재앙’으로 태풍의 내습을 받은 무주군 설천면과 무풍면 일대. 수마는 닥치는대로 할퀴고 땅을 뒤집어 놓아 수해가 난지 1주일이 되도록 도로와 논밭은 곳곳에 허물어진 채 남아 있었다.
설천면 기곡리 무주∼ 설천간 국도는 3백m가량이 예리한 칼로 도래낸 듯 1차선이 유실돼 한때 남대천 상류지역의 주민들을 고립시켰던 산간의 길목. 분주하게 움직이는 덤프트럭과 불도저는 굉음을 내면서 외부와 차단된 마을에‘생명줄’과 같은 도로를 복구하고 있었다.
'루사' 태풍피해 상상초월
설천면 장덕리 수한마을앞 과수원과 논밭도 수마는 인정사정 없이 집어 삼켰다. 2만여평의 이곳은 많은 모래와 굵은 돌이 뒤섞여 갯벌이나 다름없었다. 논밭 형체는 온데간데 없고 타작뒤의 덤불같은 지푸라기들만 바람결에 목을 내밀고 있었다.
모래톱에서 불과 몇일만 있으면 수확할 수 있었던 벼이삭을 줍는 촌로의 모습은 하천제방에 갈기갈기 끊어져 내동댕이쳐진 콘크리트 농로를 연상케 했다.
설천면 소재지 소천교도 아름드리 화강석 난간이 하천바닥에 나뒹굴고 5개 가옥과 양계장도 수마의 희생물로 사라져 볼 수 없게 되었다.
무풍면 현내리 당곡교 부근 옥수수와 고추밭 8백여평은 물길에 떠내려온 나무등걸 등이 널브러져 말 그대로 난장판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리 난간위까지 덮친 수마는 하천 주변을 내리 훑으며 지나갔고, 허물어진 제방에서는 군인들이 비지땀으로 주민들을 지키내고 있었다.
특히 이날 오후 3시께 도착한 무풍면 철목마을은 전투기의 폭격을 맞은 듯 현장 접근부터 어려웠다. 수해발생후 나흘동안이나 고립상태였던 곳이기도 하다. 동구밖 길이 통째로 사라지고 뒷산인 사선암에서 떠밀려온 흙탕물로 마을이 벌겋게 황폐화 되버렸다.
동네 가운데를 흘러가는 냇가는 계곡에서 밀려온 토사가 집중적으로 쌓이면서 하상이 주변보다 높을 정도로 땅이 뒤집힌 꼴을 보였다. 그만큼 하천으로 흘러야할 물은 길바닥으로 쏟아지면서 가옥 정미소 창고 할 것 없이 모두 휘젓어 버렸다.
마당마다 1.5m가량 높이로 토사가 쌓여 도대체 좀처럼 엄두가 안나는 사태가 목전에서 벌어졌다.
주민 허영구씨는 “날벼락이 따로 있습니까. 하루밤사이에 자식같은 포도밭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참으로 꿈인가 생시인가 분간이 안 갈 정도입니다”라며 망연자실했다.
그러나 어데서부터 손을 써야할지 황당하기 이를데 없었던 ‘내고향’은 이제 서서히 절망을 딛고 일어서고 있다.
여기에는 생업을 접어두고 수해지구를 찾아온 수만명의 자원봉사자 행렬이 수재민들에게 더 없는 힘이 되고 있는 것이다.
희망을 싹 틔우는 이웃들
대학생들의 수활(水活)뿐 아니라 공무원 군인, 그리고 각급 봉사자들이 나눔의 삶을 마다하지 않고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급식차량을 동원하고 구호품을 메고 내리앉은 다리를 건너는 적십자요원들의 어깨가 든든하기만 하다.
비록 태풍 루사는 모진 시련을 가져다 줬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수재민곁의 ‘이웃들’의 모습이 자랑스러울 뿐이다.
끊어진 도로를 잇고 집을 고치고 쓰러진 벼를 세우듯 절망에서 희망을 세우는 수재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의 눈물겨운 복구작업은 참으로 가슴 뜨거운 동포애가 아닐 수 없다.
/최동성(본사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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