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항상 열차가 떠나는 쪽에 서 있는 걸까? 궁금증의 시작은 여섯살 적부터였다. 아버지가 서울로 떠났다. 돈 벌러 간 것이다. 나는 엄마와 함께 플랫폼에 서서 아버지를 향해 또 열차를 향해 한없이 손을 흔들었다. 아버지는 얼마 되지 않아 돌아왔지만, 그때 떠난 열차는 지금도 내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계속 떠나가고 있다.
많은 세월이 흐른 뒤 내가 떠나게 되었다. 입영열차를 탄 것이다. 열차는 겁먹은 나를 연무대역에 내려놓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어찌나 야속하던지 휑한 역사를 바라보며 숨죽여 울었다. 다시는 열차를 타지 못할 것 같아 더 그랬다.
취직한 딸아이를 떠나보낸 곳도 바로 그 플랫폼이었다.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한다."
등을 다독여 주고 돌아서려는데 가슴이 저려왔다. 딸아이의 체온이 채 가시지 않은 벤치에 멍하니 앉아 여운을 챙기자니 더 서러웠다. 우연하게도 우리집 삼대는 이렇게 각각 열차를 타고 떠났다.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아버지를 먼 데로 장사 보내고, 아들 군대 보낸 마음이 이랬을까? 떠난 사람은 말이 없기에, 이별의 아쉬움은 고스란히 보내는 자의 몫이 된다는 사실을 딸을 떠나보내고 나서야 알았다.
나는 영화에서도 열차의 출발과 심심치 않게 조우했다. 등장인물에 동일시돼서 흠뻑 취해있다 보면 난데없이 기적이 울렸다. 화들짝 놀라 허리를 세우면 연인의 서러운 이별이 수은등처럼 서 있는 것이다. 어느 한 쪽이 열차를 타고 떠나는 장면에서는 배경음악이 커지고 영사막이 요동쳤다.
아이러니하게도 세계 최초의 영화인 <시오라 역에 도착하는 기차> 는 그 움직이는 방향이 다르다. 열차가 사람들 앞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관객은 열차의 움직임을 순환하는 삶의 모습에 견주었고, 죽음이라는 불멸의 적을 물리친 양 개선장군을 맞이하듯 열광하며 계속해서 보았다고 한다. 그때의 관심은 온통 살아 움직이는 활동사진이었을 테니까. 꿈틀거리는 물체가 자신들 속으로 돌진하는 것을 보면서 혼비백산 했으리라. 시오라>
나는 사십여 년 전에 봤던 <콰이강의 다리> 에 등장하는 그 육중한 열차의 역동을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하고 산다. <닥터 지바고> 에서는 주인공 유리가 우랄산맥을 넘을 때 철길에 쌓였던 눈【雪】에서 눈【眼】을 떼지 못했다. 그 감동은 꺼내기 쉬운 기억으로 남아 언제고 내 여린 감성을 자극해왔다. 일본영화 <철도원> 은 주인공의 시린 삶의 역정이 하얀 눈밭을 달리는 열차의 모습에 투영되기에 그 장면을 생각할 때마다 눈시울이 젖는다. 우리 영화 <박하사탕> 에서 다리 위로 늘어진 철로는 삶의 질곡을 뚫는다. 주인공 영호의 절규는 기적소리마저 관통하고 잘 나가던 시절과 만나기에, 관객은 자신이 열차에 오르는 것 같은 환영에 사로잡혀 플래시백에 빠지는 것이다. 박하사탕> 철도원> 닥터> 콰이강의>
"나 다시 돌아갈래!"
영화 속 열차와 철로는 우리의 감성에 깊이 파고들어 온갖 은유로 삶의 여러 장면을 요모조모 간섭하고 지나간다.
오늘도 열차는 수많은 사람들을 싣고 떠난다. 애달픈 기억의 편린으로 가득찬 역사(驛舍)는 아는 듯 모르는 듯 구내방송만 쏟아내고 있다. '안녕히 가시고 다음에 또 가십시오.'라며.
열차는 레일을 돌고, 사람은 자신이 설정한 행동반경을 돈다. 그 속에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었고, 어느 날은 내 딸아이가 있었다. 여기서 슬픔은 열차의 순환과 특별한 인과관계가 없다. 사람의 순간 감정의 발로일 뿐. 영화 또한 여러 사람의 삶을 열차에 실어 보내면 그뿐이다.
내일도, 모레도 나는 계속해서 플랫폼에 설 것이다. 순환이라는 굴레 속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는 동반자이기에 언제고 나는 열차와 함께 울고 웃을 것이다.
수필가 이승수씨는 2009년 <수필과 비평> 으로 등단. 현재 진안우체국장에 재직하고 있다. 수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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