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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록원을 다녀와서

장효근

 

죽취일(竹醉日)에 마술을 걸었다. 음력 5월 13일. 이날은 대나무가 정신을 잃을 만큼 취하는 날이란다. 이날에 옮겨 심으면 뿌리를 잘 내린다는데, 이날이 아니어도 옮겨 심고서 종이에 '음력 5월 13일 죽취일' 이라고 써 붙이면 효과가 있다.

 

대나무를 옮겨 심기에 두 번이나 실패했다. 두번 째까지 실패하겠다 싶어 처방을 써 붙였다. 처음과 두 번째는 일반 대나무였고, 세 번째가 오죽이었다. 오히려 잘되었다 싶었다. 신선한 곳에서만 뿌리를 내린다는 말처럼 몸살이 심했다. 병이 들어 약물 신세를 지기도 했지만, 새순이 벌어졌다. 성급한 마음처럼 순죽(筍竹)이 나와 마디기 쑥쑥 커졌지만, 내 키 정도에서 그치고 말았다. 연둣빛 잎이나 줄기가 같은 색이어서 마음을 졸이기도 했다. 까마귀처럼 검은색을 띈다 해서 오죽이라는데 처음부터 검은색을 띄는 게 아니라 몇 개월이 지나면서 서서히 검은색으로 변해있었다.

 

사군자 그림이 안방에 있었다. 오랫동안 자게 장롱의 그림을 보면서 또는 사군자의 매화, 국화, 난은 쳐봤는데 대나무를 칠 때부터 붓을 놓았던 옛 생각 때문인지 대나무에 애착이 갔다. 베란다에 매화, 난, 대나무가 있음에 괜히 들떴고, 가을이 되어 국화꽃 화분이라도 들여 놓으면 사군자의 구색을 갖춘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어쩌면 애써 구색을 갖추었는지도 모른다.

 

사시사철 대나무, 읊조리던 것처럼 청정한 댓잎을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을이 지나 겨울이 되면서 흡사 대나무가 죽은 것처럼 마른 잎이 되어갔다. 베란다에서 자라는 환경 탓에 짙푸른 댓잎 숲을 이루지도 못한다. 온상속의 화초처럼 대나무의 기질을 맛볼 수가 없다. 촉촉이 비를 맞은 우죽(雨竹)일 때의 모습도 볼 수 없다. 대나무 바람소리도 들리지 않고, 바람에 흔들리지도 않아 풍죽(風竹)도 없고 대나무의 속성을 잃어버리진 않았을까 염려되었다. 마음 속에서 우는 바람 소리의 여운은 아직도 가슴 한 곳에 여전하고, 눈에는 바람에 흔들리고 가슴엔 스산한 바람 한자락 자리하고 있는데 묵은 댓잎 뿐이다.

 

달빛이 스미는 밤이면 희부연 '亞' 모양의 창문에 비친 댓잎 그림자는 그럴싸하니 마음을 일렁이게 했다. 한 줄기씩 훑기도 하고 한 잎씩 뜯어내자니 한움큼이 되었다. 상서로운 기운이 맴돌았던 나무를 기른다는 것은 하찮은 졸부로서는 흉내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정성을 기울일 따름이다.

 

죽록원을 몇 차례 다녀왔다. 대나무숲은 바라만 보아도 기운이 서린다. 대숲으로 난 길을 걷노라면 하늘빛이 새어 들 수 없어서인지 한 여름에도 싸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겨울 눈이 내린 대숲은 한기로 등줄기가 오싹하면서도 때 묻지 않은 사람들만 발자국을 내야 할 것 같은 세계에 온 듯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졌다. 하얀색과 녹색의 어울림은 신비의 세계를 열어준다.

 

5월의 대숲은 죽순의 속삭임으로 수런거린다. 여기저기에서 고깔모자 쓰고 고개를 내밀고 대숲의 빈 자리를 채우고 있다. 이제 막 겹겹이 두른 테가 벗겨지고 이슬 걷힌 맑은 순록의 표면에 생채기를 내고 낙서를 한 사람들 참 못할 짓이다. 갓난아기 속살에 문신을 하라지.

 

허공을 찌르듯이 솟은 키에 비해 깊이 뿌리내리지 않아도 바람에 넘어지지 않는 것은 비움 때문이란다. 사람들 마음을 비우는 법을 알려주려고 마디마다 비움으로 채웠는데, 대통밥을 앞에 두고서는 빈 마음을 배울 수가 없었다. 대나무가 지닌 속성과 사람이 지닌 속성이 다르니, 대나무의 속성을 담기 원하는 마음으로 온갖 생활도구를 만들어 쓰고, 대통 속에 밥을 지어먹나 보다. 밥 한 끼로는 인간의 속성이 아랑곳하지 않을 터. 속됨만 키울 뿐이다. 오히려 속살이 쪄서 비움의 의미가 무색해지지는 않을까.

 

'어떤 시인은 백초는 다 심어도 대는 심지않겠단다. 구슬픈 가락을 내는 피리를 만들기에, 화살을 만들어 쏘면 돌아오지 않기에, 여읜 임을 그리느라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는 붓대를 만들기에….'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많은 손길을 담아 분죽(盆竹)을 키운 지 몇 해. 다음 해엔 더 푸른 댓잎을 보기 위해 두루두루 거름을 묻는다.

 

※ 수필가 장효근씨는 1998년 '수필과비평'으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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