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 몇 개 남은 감나무에서 까치 서 너 마리가 푸른 하늘도 함께 쪼아 먹고 있는 오후. 가까이 있는 초등학교에서 학예회 행사가 있어 집을 나섰다.
교문을 들어서기가 바쁘게 행사를 위해 분장을 한 아이들의 얼굴이 온통 함박웃음이다.
시골 학교 대부분의 현실이 그러하듯 전교생 수가 우리들이 다녔던 초등학교 시절 한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적은 숫자다. 그럼에도 일 년간 배운 교과 과정들로 잘 짜진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함께 흥얼거리기도 하고 맞장구를 치기도 하면서 아이들과 하나 되는 시간이었다.
행사를 마치고 다과회에서 마주한 학부형들은 제각기 자신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듯 추억여행을 떠나느라 여념이 없다.
그 시절 운동회와 빠지지 않는 고급 음식 자장면의 기억이며, 한나절씩 걸어가던 소풍이며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참 많이 달라진 현실에 감탄을 금할 수 없어 한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난 오후의 교정에서 공기놀이며 고무줄 놀이를 하던 우리들의 시대와는 달리 아이들은 학원 가기가 바쁘다.
하지만 여긴 시골 학교라는 지역 여건 탓에 학원으로 향하는 발걸음 보다 방과 후 수업으로 이어진다. 바이올린이며 태권도, 아이들이 즐겨 부르는 오카리나, 교정 한쪽에 마련된 나비골프장엔 열심히 골프채를 휘두르는 아이들 모습도 쉽게 눈에 뛴다.
그뿐이랴 맞벌이며 농촌 실정에 맞춰 저녁 늦게까지 엄마품 온종일 돌봄 교실도 있어 학부형들이 한결 수월하다. 그 때문인지 한때 도시로 떠났던 아이들이 돌아오기도 하고, 더러는 가끔 도시에 거주하는 지인들에게서 부러움을 사기도 하지만 학교를 방문할 때 마다 교문을 들어서면 참 넓은 운동장이 쓸쓸해 보이긴 여전하다.
면 소재지를 다 돌아다녀도 초등학교 하나 가득 채우지 못하는 아이들.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리는 마을도 몇 없는 요즘이다. 그래서인지 이미 도시로 나가 생활하는 아들에게도 초등학교는 고향으로 느껴지나 보다.
일주일마다 내려오는 아이에게서 그래도 '우리학교'라는 애칭이 스스럼없이 나오고 이미 많은 친구를 사귀었음에도 여전히 초등학교를 함께 다닌 열 명남짓의 제 동갑내기와는 더 살뜰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운동장에서 마주한 학예회를 마친 아이들의 표정이 한껏 부풀어 있다. 서로 자신들이 잘 했노라 으스대기도 하고, 무대 위에선 쑥스러워 내 눈길을 피하던 녀석은 여전히 제 엄마 꽁무니에 숨어 미소만 짓는다.
수고했다고, 정말 잘했다는 내 칭찬 한마디에 한 녀석이 대꾸를 한다. 작아도 더 많은 혜택을 보고 있으니 스스로가 행복하단다. 어디에 나가서도 지지 않을 것이며, 얼마만큼의 세월이 흘러도 제 친구를 잊지 않을 것이며 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도 한다. 아이의 당찬 대답에 가슴이 뿌듯해진다.
오랜 세월이 지나 각자의 위치에서 되돌아 볼 수 있는 오늘 하루가 이들에겐 얼마나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선생님들의 열정에 시골에선 쉽게 접할 수 없는 여러 교육들을 받은 이 아이들은 분명 스스로가 받은 만큼 또 누군가에게 베풀지 않겠는가. 올바른 삶을 살아가려는 이 아이들의 찬란한 도전 정신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가끔씩 그들과 부대낄 수 있어 즐겁다. 잃어버려서는 안 될 많은 것들을 일깨워 주는 아이들이 고맙기 그지없다.
아이들의 말처럼 '행복 만땅'이 된 하루다.
* 수필가 서애옥 씨는 1992년 '표현'으로 등단. 현재 '표현'동인과 사단법인 한국 편지가족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