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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을 품다

최정아

▲ * 시인 겸 수필가 최정아씨는 '시선'과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시 부문)로 등단했다. 시집 '밤에도 강물은 흐른다''봄날의 한 호흡'이 있다.
어느새 봄이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계절이다. 내 손에 쥐어진 봉투를 뜯자 상추씨앗이 나왔다. 낱개로 본다면 보이지도 않을 만큼 조그맣다. 저 작은 눈에 푸른 이파리를 품고 있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후~욱 하고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작은 씨앗들, 땅에 묻히면 죽을 힘을 다해 흙을 밀어 올릴 것이다.

 

그리고 한 잎, 두 잎, 햇빛과 바람, 가끔은 비를 불러 숨죽이고 있던 저 만의 삶을 펼쳐 보이리라. 살아 있다는 것은 저 씨앗들처럼 잎을 피우고 꽃도 피우는 일, 한 편의 시가 탄생되는 것도 그럴 것 같다. 시는 말의 씨앗이 고뇌의 시간에 묻혀 싹이 나고 꽃이 핀 것인지도 모른다.

 

일생을 펼쳐놓고 본다면 태어났을 때가 발아의 시점일 것이고, 하루하루가 싹이고 꽃일 것이다. 자만하거나 본연의 걸음을 늦춘다면 꽃이 피기도 전에 고사할지도 모르는 일, 상추밭에는 상추만 있는 것이 아니 듯 잡풀들이 위협적으로 뻗어오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오로지 어두운 밤을 혼자 견디며 햇볕 따스한 하늘만을 꿈꾸었을 때, 파릇한 이파리로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사람살이도 흡사하지 않을까싶다. 묵묵히 잎을 내밀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동안 잡풀처럼 방해하고 유혹하는 것이 어찌 없으랴.

 

애벌레가 죽을힘을 다해 가지 끝까지 기어올라 끝이라고 생각했을 때, 번데기가 되고 깜깜해진 그 속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견디고서야 날아오르지 않던가. 날고 싶다는 꿈이 있어 애벌레는 가지 끝까지 배밀이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 쉬운 길 만을 찾아 씨앗이 될 만한 것들을 묵과한 적은 없었는지. 정말 내가 배워야할 것은 거대하고 큰 것이 아니라 씨앗처럼 작은 것에 있는 것 같다.

 

기대승선생의 「고봉집」에 '적우침주(積羽沈舟)' 라는 말이 있다. 가벼운 깃털이라도 많이 실으면 배가 침몰할 수 있다는 말, 작은 일이라도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뜻일 게다. 늘 접하면서도 지나쳐버린 씨앗들. 진정으로 새로운 발견과 도전을 하고 싶다면, 누군가 흘리고 간 단어 하나라도 귀히 여겨볼 일이다.

 

영화 '시'에서 구민관으로 시를 배우겠다고 모인 할머니들이 나온다. 시를 지도하는 선생님은 사과를 들고 나와 이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이때 하나같이 사과라고 대답하는데 사과를 본적이 있느냐고 되묻는다. 누군가 천만번도 더 보았다고 대답했을 때, 선생님은 여러 분은 한 번도 사과를 본적이 없다고 일침 한다. 시는 보고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관심으로 그와 함께 뒹굴어 보는 것이라고 했다. 사과는 작은 씨앗에 불과할 뿐이니 싹이 트기를 기다리며 물도 주고, 사랑도 주고, 창을 열어 햇빛을 비춰주었을 때 비로소 한 편의 시로 탄생되는 것이라고 했다.

 

새들도 움을 틔우는지 짹짹짹, 계곡물도 막 발아를 시작했는지 졸졸 거리는 봄이다. 오늘이라는 씨앗에 물도 주고 따스한 햇살로 품어준다면 내일이라는 잎이 곱게 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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