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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선이고 싶다

▲ 수필가 이연희씨는 1993년 전주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수필집'풀꽃들과 만나다'등이 있다.
날마다 여행을 떠난다. 하루 중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적지 않음에도 대문을 나설 때 마다 매번 설레는 걸 보면 타고난 역마살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반듯한 직선보다는 휘어진 곡선의 길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해서 나는 고속도로보다는 국도나 지방도를 선호하는 편이다. 산 넘고 강을 건너 안개 낀 호수와 맞닥뜨리는 꼬불꼬불한 길 위에서 한가로운 마음으로 드라이브를 즐긴다. 그럴 적마다 가재미눈으로 힐끗힐끗 엿보는 창밖의 풍경에 전율한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고 한다. 어쩌면 지금 내가 달려가고 있는 이 길이 곧 우리의 인생길은 아닐까하는 생각에 머물 때 머릿속은 마치, 가느다란 전기 회로 수만 가닥이 꼬여있는 것처럼 헝클어진다. 그것들로 인해 갈 지 자(之) 운전을 하게 되어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굳은살처럼 박혀있는 소소하고 부질없는 생각들을 흔적도 없이 파낼 수 있을까 끙끙댄다.

 

21세기 사람들은 기다리는 일에 점점 더 익숙하지 못한 것 같다. 휴대전화 하나만 있으면 서로의 안부를 묻거나 세상 돌아가는 일쯤이야 금방 해결할 수 있음에도 조급증을 털어내지 못한다. 오히려 소유하고 있는 것들로 인해 정신적인 장애를 껴안게 되어 초조하거나 불안해한다. 우리의 생활은 더 없이 편리하고 풍요로워지는데 사람들의 마음은 너그러운 수평보다는 수직으로 뾰족해져 가는 것만 같다. 그것에 닿기만 하면 터져버릴 것 같은 위험들이 처처에 도사리고 있어 나날의 안위가 결코 평탄치 않다.

 

혹자는 인생의 속도를 달리는 자동차의 속도와 나이에 빗대 말하기도 한다. 시간과 더불어 가는 속도 경쟁에서 하루하루를 위태롭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가 때로는 염려스럽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겠으나 느리고 더디 갈 수 있는 길에서 나는 삶을 노래하고 싶다. 서둘러 오라거나 빨리 가라고 그들은 재촉하지 않는다. 가다가 힘들면 쉬어가라며 손 내밀어준다. 펄펄 끓는 라면냄비처럼 보글보글 뜨거운 내 속을 감싸줌은 물론 철학까지 깨닫게 해준다. 아직도 성숙되지 못한 정서성이 밉고 원망스러워 안절부절 못하는 내게 따스한 손길을 건네는 그와의 깊은 애정은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젊은 날의 한 때는 거침없는 직선의 삶을 동경했었다. 속전속결로 잘 나가는 사람들을 곁눈질하며 부러워한 적도 없지 않았다. 세상에는 가난하거나 운 없는 사람이 있게 마련인데 내가 그 당사자가 아닐까 치부한 적도 있었다. 세상에 고통은 있게 마련이고 나라고 해서 그 고통을 피해갈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직선이기보다는 곡선이고 싶다. 그래서일까? 웬만한 급한 일이 아니면 곡선의 길과 소통한다. 그 길에서 지나온 날을 더듬어보고 앞으로의 날들을 그려보기도 한다. 한 구비 돌아 한숨 한 번 몰아쉬고 산모롱이 두 번 휘돌아 껄껄껄 웃음 짓는 여유로움 또한 갖고 싶기 때문이다. 그동안 속도경쟁으로 황폐해진 영혼에 그렇게나마 자양분을 얻어 보려는 속셈이다.

 

내 삶의 터전에는 언제나 직선과 곡선이 공유한다. 그들은 아직도 내게 배울 것이 많다고 말한다. 햇볕 속으로 나서는 순간 끈질긴 생명력이 다시 부풀어 오른다. 창밖 풍경에 젖을수록 내 몸은 굼뜨게 마련이지만 느린 걸음으로 만나는 세상 속에서 무조건 나는 곡선이 된다. 평화로움이 넘실대는 특별할 것 없는 길모퉁이에서 어떤 선율이 울려나올지 기대가 크다. 가슴 밑바닥에서 은밀한 기쁨이 요동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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