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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기념일

▲ 정석곤
영국 시인 T. S 엘리엇은 그의 시 '황무지'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는데 나는 4월이 가장 좋은 달이다. 4월은 결혼기념일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진안 홍삼축제가 열린다고 하니까 벚꽃이 절정일 거라는 기대를 걸고 서둘러 마이산으로 향했다. 마이산 남부주차장에 들어서니 벚꽃이 활짝 피어 나무 전체가 하얗게 보였다. 마음이 열리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이산 벚꽃은 자주 봐도 나무에 하얀 작은 나비 같은 꽃들이 매달려서 구경꾼들과 눈을 맞추고 활짝 웃어주니 귀엽고 아름다웠다. 아내와 마이산의 벚꽃 길을 걷는 것은 처음이라 더 눈이 부시며 운치가 있었다. 바람이 벚꽃 터널을 스치면 꽃잎은 나비가 되어 길 위로 사뿐사뿐 내려앉았다.

 

벚꽃은 달 밝은 밤에 만개된 꽃을 보아야 한다. 전주에서 근무하며 원광대 교육대학원에 다닐 때였다. 공부를 마치고 집에 올 때 버스 차창으로 보이는 벚꽃이 대낮 같은 보름달과 어우러진 아름다움은 명품 중 명품이었다. 마이산 벚꽃 길은 그 때만 못하지만 명품이라고 말 할 수 있었다.

 

탑사와 은수사를 거처 암마이봉과 숫마이봉 사이인 천황문까지 가서 쉬었다. 북부주차장 쪽 매표소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연인만이 걷는 길도 걸으며 야생화도 보았다. 등에 땀이 촉촉이 났다. 탑사로 내려와 벚꽃 길을 걸어 내려오는데 오른 쪽 마이산 둘레길 표지판이 마음을 끌었다.

 

너무 걸어서 무리라는 아내의 말을 다독여주면서 둘레길로 올랐다. 멀리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에서 온 산악회원들이 내려오고 있어 힘이 솟구쳤다. 암마이봉의 바로 뒤쪽을 보면서 산을 올라갔다. 봉두봉에서 내려다보는 벚꽃 길은 산골짜기의 나무가 하얀 눈을 수북이 이고 있어 눈길 같았다. 다른 곳보다 늦게 핀 진달래꽃들은 우리를 격려해주었다. 마이봉을 보고 자라서 꽃모양이 또렷하고 색깔도 분홍색인데 여러 가지였다.

 

전망대에 도착했다. 이름이 비룡대이고 나봉암 바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마령초등학교에 근무할 때 함께 올라왔던 직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그려보았다. 처음 진안에 근무할 때 눈 내리는 길을 운전하다 사고가 난 지점을 아내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멀리 국도변의 원연장 마을 산자락에 넓게 수놓은 꽃 잔디가 빨간색과 분홍색으로 물들여져 봄의 풍경을 자랑하였다.

 

남부주차장에 내려오니 오후 4시가 가까웠다. 관광객들은 계속 줄을 이어 꾸역꾸역 몰려오고 있었다. 길가의 음식점에서 먹음직스럽게 만들어 팔고 있는 수삼 튀김을 한 뿌리씩 사먹었다. 많이 걸었다는 아내의 볼멘소리가 사르르 풀린 것 같았다. 곧바로 진안읍 수삼직판장으로 갔다. 7년 전 아내의 큰 수술 회복에 인삼이 한 몫을 했었다. 값 비싼 '홍삼액제조기'를 구입해서 수삼으로 홍삼액을 만들어 작년 여름까지 복용했었다. 6년 근 수삼 다섯 채를 샀다.

 

마이산 벚꽃이 활짝 피어 꽃터널을 만들고 전국에서 모인 관광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39돌 결혼기념일 행진을 멋지게 했다. 날씨도 그렇다. 아침 한때 흐리고 싸늘한 날씨가 우리의 과거를 가리킨다면, 화창하고 따뜻한 오후의 봄날은 우리의 미래를 예시해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내가 홍삼액을 꾸준히 먹는다면 전망대에서 보았던 마을 언덕의 꽃 잔디처럼 건강을 되찾아 화사한 웃음꽃을 피울 것이다.

 

마이산 둘레길을 헐떡거리며 오르내렸듯, 앞으로 가야할 길에 힘들 때도 있겠지만, 아내와 동행하는 길이니 웃는 날이 많을 것이다. 이 세상 마지막 날 전망대에 올라간다면 살아온 날이 후회 없는 날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수필가 정석곤씨는 '대한문학' 수필부문 신인문학상 수상으로 등단. 수필집'풋밤송이의 기지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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