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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 비오톱

▲ 이금영
녹음이 짙어지고 있다. 어디선가 진한 향기가 스멀스멀 코를 간질인다. 그 향기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나도 모르게 습지에 다다른다. 굳이 향기가 아니더라도 싱그러운 숲이 보고 싶으면 나는 아무 때나 찾아가는 곳이 있다. 저리도 푸를까? 멀리서 가까이서 유월의 녹음을 보면 마음마저 풍성해진다.

 

오늘은 다행히도 오전에 오게 되어 그 청초하고 단아한 수련(睡蓮)을 만날 수 있었다. 백의 수련은 기다렸다는 듯이 벙긋하니 미소 짓고 있었다. 순백의 꽃잎 속에 노란 꽃술의 자태는 녹색 연잎에 살짝 가려져 수즙은 모습이다. 아침에 갓 세수한 열여섯 싱싱한 처녀의 얼굴이 이런 것일까.

 

습지를 찾아갔을 때 수련이 피어 있으면 참으로 반갑다. 물 위에서 다소곳이 해를 바라보며 꽃잎이 열려 노란 속살까지 드러냄이 청순하며 고요하다. 로마 신화에서는 수련을 '물의 여신' 이라한다. 수련은 연못 한 가운데에 있어 더 이상 가까이 접근 할 수도 없고 그의 생이 사흘이라는데, 눈부신 여름에 찬란한 청춘의 한 생이다. 6~7월에 흰 꽃이 꽃대 끝에 한 송이씩 피는데, 오후부터 서서히 꽃잎이 접히면서 어두워질 무렵이면 입을 꼭 다문다. 그 주변에 노랑어리연꽃은 꽃도 잎도 작지만 작으면 작은 대로 그도 역시 수련과 어울리며 더불어 살아가는 매력이 있다.

 

작년 이맘때는 가만가만 연못으로 다가가는데 푸드덕 소리가 나더니 웬 청둥오리가 날아오르고 그의 짝인 듯한 놈이 뒤따라 저 멀리 함께 날아갔었다. 청둥오리가 이 숲 속에 먹이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을까? 연못을 헤집고 개구리며 올챙이들을 먹어치우고, 수련마저도 훼손시켜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었다. 그 후에도 여러 번 목격하였는데 청둥오리를 못 오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자연 생태계는 먹이사슬로도 훼손되고 있었다. 오늘도 오리가 다녀가지 않았는지 두리번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수련이 깨끗한 옷을 입은 것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완산칠봉 생태습지는 다섯 개의 연못이 층층으로 구성돼있어 참개구리, 청개구리, 무당개구리, 두꺼비, 맹꽁이, 도룡뇽의 양서류가 서식하고, 올챙이가 떼 지어 고물거리고 뒷다리를 쑥 내민다. 지지난 해는 태풍의 피해를 비켜가지 못했다. 시민의 봉사로 잘 가꾸어진 연못이 토사로 뒤덮이고 연못의 둑이 무너져 내려 연못 속에 생태계가 망가지기도 했다. 자연이 심하게 훼손 되면 원상태로 복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지 습지를 찾는 이로 하여금 안타깝기 그지없다. 예전의 질서 있던 습지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연못에 물이 가득 고이면 맹꽁이와 청개구리가 연못가에서 서사시를 읊조리는 곳이었다.

 

이곳 습지에 유치원 아이들이 현장학습을 나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연못을 가리키며 들여다보는 모습은 꽃보다도 더 예쁜 모습이다. 저만치 벤치에서는 젊은 남자가 않아 책을 보고, 운동기구도 있으니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혼자라도 좋고 둘이라도 좋다. 여럿이면 어떠랴. 넉넉한 자연이 누군들 반기지 않겠는가. 이는 용머리고개의 명소이며 자연이 사람을 품어주고, 사람이 자연을 품으며 더불어 숨 쉬는 쉼터이다.

 

녹음이 짙은 숲 사이의 완산칠봉 습지 비오톱, 청명한 하늘가에 조각구름 한 점이 연못으로 내려 오는듯하다. 연못을 하나 둘 세며 계단을 밟는다. 봄이면 올챙이와 개구리가 물장구치며 뻐꾸기가 노래를 한다. 여름밤이면 풋풋한 신록의 향기와 서늘한 습지기운이 어우러지는 곳, 그곳에서 뜨거운 여름을 보내며, 청순한 수련과의 재회를 꿈꾸리라.

 

-수필가 이금영씨는 2010년'수필과비평' 으로 등단. 전북문인협회·전북수필·영호남수필·행촌수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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