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초 어느 날이었다. 외출했다가 돌아왔을 때 아내는 전날 밤새도록 달이고 짜낸 닭발목과 쇠물팍을 큰 용기에 넣고 물을 채우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런 모습을 본 일이 없어서 웬일이냐고 물었더니 버리기가 아까워 재탕을 해본단다. 그러면서 우족을 재탕할 때처럼 불 위에 올려놓고 달이고 있었다.
예부터 전라도 지역에서는 쇠무릎지기를 쇠물팍이라 부르고, 쇠물팍감주는 여인들이 무릎이 아플 때 특효가 있다고 전해져 왔다. 그래서 아내도 내가 가을에 캐다가 말린 쇠물팍으로 가끔 감주를 해 복용했다. 그러나 뇌졸중증세로 한번 의식을 잃은 후로는 항상 입맛이 없다면서 먹는 것이 시원치 않아, 감주를 끌일 때 닭발목을 넣으면 부족한 영양보충이 될 거라는 생각에 닭발목을 사용했다.
벼멸구 모양과 비슷한 쇠물팍의 익은 이삭은 사람 옷에 더덕더덕 붙으면 잘 떨어지지 않아, 서서 일일이 손으로 떼어내야 한다. 쇠물팍이 사람 왕래가 잦은 곳에서만 집단으로 발견되는 이유다. 나는 늦가을 김장이 끝나면 길가나 텅 빈 밭둑에서 쇠물팍을 캔다. 채소가 심겨져 있는 밭둑에서 캐려면 사람의 눈치를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김장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다가 실기했다. 갑자기 몰려오는 폭설과 한파 때문에 땅이 얼고 추워서 캘 수 없었다. 그래서 올 가을에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잔득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3년 전 봄부터 나는 풀을 만지면 온몸에 이상이 생겼다. 두릅과 고사리를 꺾으러 다녀온 뒤부터 생긴 일이었는데 몸에 두드러기가 일어났다. 노쇠 현상으로 피부가 약해진데다 풀독 때문이라는 진단을 받고, 주사를 맞으며 처방해준 약을 발라야 했다. 5월만 되면 풀독 알레르기 때문에 연중행사처럼 피부과에 다녔다. 그때부터 아내는 내가 쇠물팍을 캐러 다니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아내가 물리치료를 위해 외출한 틈을 타, 나는 배낭 속에 호미와 전정가위만을 집어넣고 길을 나섰다.
가을에 쇠물팍의 대는 갈색으로 변하고, 마디는 상처로 피가 난 소의 무릎처럼 굵고 붉었다. 그런데 이상기후로 늦게까지 파란 잎을 달고 버티던 쇠물팍이 갑자기 쏟아진 첫눈에 그냥 고꾸라져버렸다. 주위에 넘어져 있는 쪽이나 도깨비바늘의 대와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평소 산책을 하면서 쇠물팍을 눈여겨 두었기에 망정이지, 이상 기후 때문에 찾아내는데 어려움을 겪을 번했다.
쇠물팍은 다년생이기 때문에 줄기가 큰 것을 캐면 뿌리도 굵어 캐기가 힘들었지만, 큰 뿌리를 캐낼 때의 재미도 쏠쏠했다. 큰 뿌리일수록 뿌리 사이에 낀 이물질을 제거하기가 수월치 않았지만, 아내가 돌아오기 전에 손질을 해서 물이 빠지도록 소쿠리에 담아놓았다. 늦게 돌아온 아내는 상상도 못한 쇠물팍을 보고 놀라워했지만 속으로는 좋아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밤이 되자 내 몸에는 이상증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군데군데가 가려웠다. 손가락으로 긁어서 여기저기가 울긋불긋해졌다. 나는 일체 내색을 하지 않고 비치한 피부약을 아내 몰래 복용하고 참으며 가만히 자리에 누웠다. 약의 효과 때문인지 어려움 없이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어제 밤에 복용한 것이 피부약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확인한 결과 내가 복용한 것은 기침 때문에 사다 놓은 감기약이었다. 피부약과 감기약을 같은 장소에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깜박하고, 눈에 뜨이는 대로 복용해서 생긴 어이없는 해프닝이었지만, 여하튼 감기약을 복용하고 피부질환이 깨끗해졌으니 분명히 위약효과(placebo effect)라는 생각이 들어 혼자 배꼽을 쥐었다.
다음날 나는 재래시장으로 가서 닭발목 5kg을 사왔다. 아내는 대추와 생강 등 몇 가지 첨가제를 넣고 밤새껏 고운 뒤 짜내더니 다시 물을 붓고 재탕을 했다. 그 재탕한 추출물을 나에게 보여주면서 싱글벙글했다. 내 눈으로 보기에도 원탕과 다름이 없었다. 원탕은 냉장고에 보관하고 재탕부터 복용하겠다고 말하는 아내의 태도가 넉넉해 보였다. 날씨관계도 있었지만 풀독 알레르기를 무릅쓰고 캐온 쇠물팍을 소중히 여기려는 아내의 정성어린 마음이었다.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과거의 추억을 되새기고 아쉬워하며 살 수도 없는 일이지만, 자기의 과거를 망각하며 살아갈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아내는 나의 지난날의 소중한 추억을 뒤적거리고 불을 지피며 재탕하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었다.
* 수필가 이희근씨는 2009년 계간 '문학사랑' 수필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 수필집〈산에 올라가 봐야〉 〈사랑의 유통기한〉〈아름다운 만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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