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문화판·행정이 자신들 경험 앞세워 청년들의 실험 꺾어
장면 하나. 10년 전쯤부터 전라북도 출신이 아닌 청년들이 문화기획자를 꿈꾸며 하나둘 전주로 내려왔다. 전주한옥마을이 뜨면서다. 외지에서 온 청년들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텃세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청년들은 연고도 없는 이곳에서 힘들고 배고팠지만, 즐겁게 실험했고 도전했다. 남부시장 청년몰은 이런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장면 둘. 몇 년 전 일이다. 문화기획자로 10년 넘게 일해 온 후배가 서울시 문화기관으로 ‘스카웃’됐다. 나는 후배가 일궈온 현장을 떠나는 것이 무척 안타까웠다. 그래도 가족이 서울에 있고, 문화시설 관장이지만 월급이 200만원을 넘지 않아 가장으로서 힘들었을 거라 생각하니 오히려 잘된 일이라 생각했다.
장면 셋. 연고도 없는 전라북도로 무작정 내려와 20대 청춘을 보낸 청년들, 이제 30대가 된 그들이 고민에 빠졌다. 건너들은 바로는, 전국으로 이름이 알려진 청년기획자가 서울시 문화기관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았단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얼마 전 일이 떠올랐다. 제주도에서 오랫동안 문화재생 사업을 이끌어오던 문화기획자가 자리를 옮겼다며 서울시 명함을 건넨 적이 있었다.
전라북도 출신도 아닌 20대 청년들이 문화기획자를 꿈꾸며 전라북도로 내려온 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문화기획의 꿈을 펼치던 청년들이 이곳을 떠날지를 고민하고 있다. 문화기획이라는 일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언제까지 무적의 신분으로 배고픔을 참아가며 일을 할 수는 없다. 좋은 대우를 약속하는 곳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나는 그들이 전라북도를 떠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세 번째 장면에 나오는 문화기획자를 잘 아는 후배와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우선 서울시 태도를 꼬집었다. 돈 많은 프로구단이 돈 없는 구단의 실력 좋은 선수를 천문학적인 돈으로 빼가는 것처럼, 서울시가 좋은 조건을 내세워 지역의 문화기획자를 데려가면 지역은 어떻게 되겠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좋은 조건으로 서울에서 일하는 것도 좋지만, 10년을 닦아놓은 현장을 떠나는 것이 아깝지 않을까?”라고 물었다. 나 역시 서울에서 받을 수 있는 조건을 전라북도에서는 보장받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청년기획자들이 청춘을 받친 현장을 들먹여 서울로 가는 것을 막아보자는 심산이었다.
후배는 예상하지 못한 답을 내놓았다. “청년기획자들이 고민하는 것은 돈이나 신분, 이런 것 때문은 아닐 거예요.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해서이지 않을까요? 꼰대문화, 이런 거 때문에…….”
인터넷을 뒤져보니, 꼰대는 자신이 겪은 경험을 일반화해서 남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기성세대를 말한단다. 변화에 둔감하고, 권위적이고, 이기적이라는 말이 많았다. 자신은 꼰대가 아니라 생각하지만 자기의 꼰대질이 주변사람에게 고통을 주는지도 모르고, 모르기 때문에 고치려는 생각도 없다는 게 꼰대의 속성이란다.
후배와 이야기하면서 ‘내가 욕했던 선배들처럼 나도 꼰대가 되었구나!’ 싶었다. 오죽했으면 자신이 일궈온 현장을 떠날까 고민하는 마음을 헤아리지 않은 채, 지역의 문화판과 문화행정이 청년의 실험을 경험이라는 이유를 앞세워 꺾어버린 것은 아닌지 뒤돌아볼 생각도 없이, 단순히 좋은 조건을 찾아 떠나는 개인의 문제로 결론을 내버리는, 말 그대로 꼰대스러웠다.
△장세길 연구위원은 전북대학교에서 문화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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