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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종합경기장 개발, 반대 이유가 무엇인가

윤석 (주)삼부종합건설 대표
윤석 (주)삼부종합건설 대표

1967년 가을. 남미 볼리비아의 한 폐교에서 5발 총성이 들린다. 한 혁명군 지도자의 식은 몸이 들 것에 실려 나온다. 오랜 게릴라 활동으로 야위었지만 얼굴은 평온하다. 원했던 순간이었다는 듯. 체 게바라의 마지막 순간이다. 쿠바의 혁명영웅이 된 후 그가 택한 건 부나 권력이 아니었다. 또 다른 전장이었다. 왜 그랬을까. 볼리비아를 독재로부터 해방시키는 게 목적이었다면 그의 정치적 영향력이 더 유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직접 싸우길 그는 바랐다. 무언가에 직접 맞서 싸우는 행위가 주는 희열을 그는 잊을 수 없었던 건 아닐까. 볼리비아에서 살아남았더라도 그는 또 다른 사지를 찾아 떠났을 가능성이 높다. 그의 죽음을 자살이라고 해석하는 심리학자들도 여럿이다. 그에게 영웅이라는 찬사와 함께 전쟁광이라는 오명이 따라붙는 이유다.

같은 해 일본. 대학교 곳곳에는 바리케이트가 쳐져있고 캠퍼스에는 매캐한 연기가 자욱하다. 대부분 수업은 휴강이다. 상고머리를 한 학생들은 전공투(전국학생공통투쟁회의)라는 말에 도취돼 벌건 얼굴로 교정을 누빈다. 의기양양한 그들의 모습을 한 청년이 걱정스레 바라본다. 그 청년은 기숙사로 돌아가 고전을 읽다 잠든다. 훗날 그 청년은 노벨 문학상 후보 작가이자, 일본 군국주의를 비판하는 강단 있는 지성인이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다. 작품에서 그는 끊임없이 얘기한다. 자신이 대학시절 전국을 휩쓸었던 학생시위에 동참하지 않았던 이유를. 무의미했기 때문이란다. 안보투쟁이라는 대의는 사라지고 남는 건 ‘투쟁이미지’ 뿐이었다는 것. 본래 의미는 상실한 채 싸움행위 그 자체에 도취되는 걸 그는 여전히 혐오한다.

사람은 누구나 불합리에 맞선다. 잘못된 것에 대한 반대는 자연스럽다. 그러나 세상엔 부자연스러운 일도 많다. 예를들어 불합리에 맞선다고 나서는 사람 중에는, 그저 반(反)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하는 사람들이 있다. 잘잘못을 명징하게 따지기보다, 반대라는 행위 자체에 도취된다. 이들은 적을 찾아 헤맨다. 적 앞에서 살아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당초의 대의는 중요치 않다. 적의 실존과 거기 맞서는 자신에 대한 나르시시즘이 중요하다. 이런 사람들은, 반대할 대상이 사라지면 삶의 목적을 잃는다. 자존이 불가능 하다. 어쩔 수 없이 반대할 건수를 찾아 나선다. 자기파괴적이다.

대한민국 곳곳에서 ‘반대를위한 반대’가 바이러스처럼 떠돈다. 자기만 파괴하면 괜찮겠다만, 논리없는 반대는 우리의 삶에도 피로감을 준다. 전주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전주 종합경기장 부지개발 발표는 전주시민으로서 놀랄만한 일이다. 그간의 사업추진 맥락을 아는 시민들과 원로급 지역 인사들은 입을 모은다. 괜찮은 협상이었다고. 이제 남겨진 과제는 이 사업을 어떻게 구체화하고, 얼마나 빨리 현실화 시킬것인가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했던 반대여론이 등장했다. 벌어지지도 않은 일에 대한 과장스러운 걱정과 신경질이 주를 이룬다. 반대자 중에는 종합경기장을 언제까지 그냥 놔둘 거냐고 목소리를 높이던 인물, 단체, 조직도 보인다. 물론 우리 헌법은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보장한다. 그렇다고 모든 의사표현을 존중할 의무는 우리에게 없다. 싸움광이 내뱉는 말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윤석 (주)삼부종합건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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