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례
 
   창문을 열고 밖을 본다. 축 늘어진 모과나무 가지마다 불꽃이 피었다. 도저히 나갈 자신이 없어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이달은 쉴까?” “그래? 덥다고 밥도 안 먹냐? 오늘 만난 친구가 진짜 친구니 알아서 해라.” 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친구들의 모습을 그리며 가마솥 더위를 무릅쓰고 길을 나섰다. 시내버스에 올라 창밖을 보니 38도를 오르내리는 땡별이다. 모든 농작물과 닭, 오리, 바다의 물고 기도 몸살을 하며 죽어간다.
그런데 위풍당당하게 하늘을 올려다보며 붉게 꽃이 핀 전주풍남초등학교 울타리의 배롱나무를 보았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한여름 햇살을 즐기며 꽃송이를 피우고 있는 배롱나무를 보면서 무념과 인내를 배운다.
약속장소에 들어서니 목덜미까지 흐르던 땀이 사라졌다. 비록 추름진 얼굴에 흰머리를 위징하고 갈색머리를 날리는 고희가 넘은 우리지만 오늘만은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서로의 얼굴이 거울이 되어준다. 갈낙전골로 몸보신을 하고 팥빙수로 몸을 식히니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다.
요즘 연꽃이 한창인 덕진 연못을 찾았다. 덕진 연꽃은 한결같이 우리를 반겨 맞아주었다. 호수와 출렁다리를 지날때 곱게 화장한 여인같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연꽃의 매력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바람이 이마의 땀을 씻겨준다. 연꽃 향기가 콧속을 자극하여 몸속으로 들어온다.
연꽃향에 젖다 보니 왕성하고 패기에 넘치던 젊은 날의 사연들이 꿈결처럼 떠오른다. 타임머신을 타고 훌쩍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을 모아 노래를 불렀다.
모닥불 피워놓고/마주 앉아서/우리들의 이야기는/끝이 없어라
인생은 연기속에/재를 남기고/말없이 말 없이 사라지는/모닥불 같은것
잊어버리지 않고 끝까지 불렀다고 자찬하니 “아직은 괜찮지!” 하며 깔깔대고 웃었다. 막힌 가슴이 툭 터지며 상쾌했다. 세월은 우리릍 노인으로 만들었지만 마음만은 아직도 학생이다 그래서 만나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뜨거운 햇볕을 피해 잠시 연지정에서 신발을 벗고 걸터앉 이· 연꽃을 본다.
진흙 속에서 피어난 연꽃은 우리의 삶이다. 쏭살 같이 가버린 세월을 더듬으며 시작도 끝도 없는 노래가 시작 된다. 얼마 전 한 친구가 세상을 떠나 인생무상을 안겨주었다. 그 친구는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이름을 잘 모르자 내 귀에다 대고 거시기를 거꾸로 부르면 내 이름 ‘지자’야. ‘민지자’라고 했던 친구다.
그동안 많은 친구가 우리 곁을 떠났다. 친구득을 회상하며 덕진 숲을 거닐었다. 우리는 일제강점기, 6·25, 4·19, 5·16, 민주화를 거치면서 자녀를 교육 시키며 노년의 준비 없이 앞만 보고 걸어왔다. 이제 인생은 70부터라고 욕심을 부리고 싶다. 못다한 일을 챙기며 남은 생명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수필공부, 노래교실, 푸른 합창단에서 노래봉사를 하며 노년을 즐겁게 보내고 있다.
지난 일은 생각말자, 후회도 하지 말자, ‘더도 덜도 아닌 지금이 딱 좋아’무릎을 치며 노래를 부르자. 한여름 무더위가 물러가며 석양 노을이 붉게 타 오르고 있다.
김금례는...
수필시대로 등단하여 한국문인협회, 전북문인협회, 전북수필문학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행촌수필문학상을 수상했다. 수필집 <꿈의 날개를 달고> 등이 있다. 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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