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는 전통의 멋과 맛을 지닌 고장이다. 전주하면 떠오르는 것이 꽤 많은데 전주한옥마을에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전주전통술박물관에 들렀을 때 대부분 찾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모주’이다. 전주에 오면 한 번쯤은 먹어보는 콩나물국밥과 함께 등장하는 것이 모주이다. 모주는 어미 ‘母’자에 술 ‘酒’자를 쓴다. 한글로 풀어보자면 ‘어머니의 술’이 된다. ‘모주’가 ‘어머니의 술’이 된 유래에 대해서 통상적으로 인목대비의 어머니인 노씨부인 이야기가 수록되었다는 <대동야승>의 기록이 인용된다. 그런데 전주전통술박물관은 지난 몇 개월간 다양한 사료를 분석한 결과 노씨 부인의 이야기가 <대동야승>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렇다면 ‘모주’의 유래와 노씨 부인의 이야기는 어느 문헌을 통해 어떻게 전해져오고 있는 걸까?
1946년에 간행된 <조선문화총화>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혹자 말하기를 인목대비의 어머니요 연흥부원군 김제남의 부인인 노씨가 광해 때 인목대비가 폐위됨에 따라 제주로 귀양을 갔을 때 귀양 간 사람에게 주는 식료만으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으므로 술지게미를 얻어서 모주를 만들어 내고 다시 그것을 팔아서 생활을 해 간 것으로 처음에는 ‘대비모주’라 부르다가 후에 ‘대비’ 두 글자를 빼버리고 그냥 ‘모주’라 부른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모주의 유래가 <대동야승>이 아니라 <조선문화총화>에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송시열의 시문집과 편지, 저술 등을 모아놓은 <송자대전>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겨져 있다. “... 1616년에 다시 탐라도(현 제주도)에 유배보내져 외출을 못하는 형벌을 받고 있을 때 대비도 서궁에 유폐되는 욕을 당하였거나 혹은 이미 죽었다고 전해지니 부인이 매일 밤마다 향기로운 술로 하늘에 원통함을 호소했다. 시중드는 계집종은 그 술을 팔아 부인을 봉양했는데, 탐라도 백성들은 다투어 재물을 주고 그 술을 사며 말하기를 대비 어머니의 술이 참 맛있다고 했다...” 이 사료는 송시열이 직접 작성한 노씨 부인의 묘지명이다. 이는 기존에 모주와 관련해서 한번도 밝혀진 적이 없는 사료로 송시열이 노씨 부인의 묘지명을 작성했다는 사실도 놀랍거니와 대비 어머니의 술이 언급되어 있는 사실이 무척 흥미롭다. <연려실기술>에도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연흥부인, 즉 노씨 부인이 술을 팔아 목숨을 연명하였는데 제주 목사 양확이 부인을 심히 학대하였고 술에 취하면 대비어미의 술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처마 끝에 까치가 날아와 계속 울자 노씨 부인은 “집안이 망하고 사람이 죽었는데 무슨 기쁜 일이 있을까?”하며 탄식을 한다. 그런데 그날 승지가 부인을 영접하기 위해 제주도에 왔다는 기쁜 소식을 듣게 된다. 제주도에서 모주를 팔며 힘겹게 유배 생활을 하던 노씨 부인은 8년 만에 드디어 딸인 인목대비와 재회하게 된다.
전주전통술박물관은 ‘모주’라는 단어의 유래에 중점을 두어 사료들을 발굴하고 조사한 결과 위와 같은 스토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새롭게 발견한 사료들을 기반으로 스토리를 구성하고 자애로운 노씨 부인과 기쁜 소식을 전한 전령사이자 전주시의 시조인 까치의 모습을 라벨에 담아 ‘대비모주’를 새롭게 출시했다. 음식이든 장소든 그것의 시작은 언제나 궁금하고 흥미롭다. 사람들은 그 ‘이야기’에 매료된다. 음식창의도시 전주시에 걸맞는 이야기들이 지속적으로 발굴되고 창작되어 전주를 찾는 많은 이들이 전주의 이야기에 매료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박소영 전주전통술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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