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경옥 동화작가-로이스 로리 '기억전달자'
 글을 쓰고 있는 오늘, 여름의 태양이 강렬하게 내리쬐고 있다. 빨간 태양은 불길처럼 타오르고 해가 질 때는 사위어가는 빛깔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나뭇잎들은 금방이라도 초록 물이 주르륵 흐를 것 같다. 아무리 바빠도 계절에 따른 변화를 민감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여름 한가운데에 놓인 여러 색깔과 형태의 다름은 다양한 감정을 불러온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에 색깔이 사라진다면, 계절이 사라진다면,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다면, 선택하지 않아도 먹는 것과 직업에 대한 고민이 없어지고, 아이를 낳지 않아도 배급받을 수 있다면, 나이가 들어도 질병이나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감정의 동요 없이 일상을 맞이하고 보낼 수 있다면 어떨까? 무채색의 사회, 변화가 없어서 ‘늘 같음 상태’를 유지하는 사회라면? 위와 같은 사회를 보여주는 작품이 ‘로이스 로리’의 ⟪기억 전달자⟫이다. 작품 속 사회는 모든 것이 규격화되어 있다. 아이를 낳는 산모가 따로 있고, 차이가 가져오는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 거울도 없는 사회,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나이도 정해져 있고, 주머니가 있는 재킷을 입는 것도 선택할 수 없다. 1년에 50명의 아이만 낳을 수 있는 사회, 배우자도 신청해야만 한다. 이곳은 공동체에 적합한 사람이 되도록 표준화된 교육을 받는다. 가정마다 스피커가 있어서 모든 것을 통제한다. 마치 ⟪1984⟫나 ⟪멋진 신세계⟫처럼 암울한 미래 세계를 보여준다. 살아가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일에 당혹스럽기도 하고, 위험한 일에 직면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인간의 나약함에 무기력해지기도 하지만 끝끝내 이겨내기도 하고, 반전이 펼쳐지기도 한다. ⟪기억 전달자⟫속의 규격화된 사회도 흔하지 않지만 우발적 상황을 맞닥뜨린다. 이에 대처하기 위한 최후의 처방은 ‘기억 전달자’이다. 기억은 과거로부터 모든 어려운 상황을 겪어낸 경험의 축적이다. 이곳에서는 누구도 기억을 가지지 못한다. 즉, 색깔, 계절, 사랑, 할머니, 할아버지, 죽음, 전쟁, 고통, 행복, 크리스마스의 저녁, 썰매, 언덕, 냇가, 초록의 나뭇잎 등을 기억 전달자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일상에서 너무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사라진 도시. 그러나 ‘늘 같음 상태’가 유지되어야 평온하다고 여기는 이곳도 우발적인 현상 앞에서 당혹스러워한다.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게 과거의 기억이다. 기억은 평안함을 위한 처방전인 셈이다. 과거 선조들이 경험했던 기억들. 그 사회에서 주인공 ‘조너선’이 12살이 되던 해 직업 직위를 받는데 ‘기억 전수자’가 되어 기억 전달자로부터 그동안 알지 못했던 감정들을 하나씩 전수받는다. 그러면서 자신이 속한 사회가 철저하게 비정상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아버지가 산모들이 낳은 아기들을 키우는 보육사이면서도 몸무게가 미달 된 아이들을 임무해제 시키는 것을 목격하고 절망한다. 임무해제는 이 사회에서 필요 없는 존재를 죽이는 것이다. 아무런 죄의식 없이 몸무게가 미달 되거나 밤에 우는 아기들은 임무해제 시킨다. 조너선은 기억 전달자로부터 사랑과 기쁨, 고통, 전쟁, 추위, 햇볕의 따스함, 가족의 일상, 하늘에서 내리는 눈에 대한 감촉들을 느끼며 용기라는 감정을 전수받고 자신이 사는 곳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꾼다. 조너선의 집에서 돌보던 가브리엘은 밤에 운다는 이유로 임무해제를 앞두고 있다. 조너선은 어두운 밤, 가브리엘을 자전거에 태우고 마을을 떠난다. 마을을 벗어나자 비를 맞기도 하고, 배가 고파 산딸기나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아 허기를 채우며, 눈보라 속에서 추위에 떤다. 평온하고 안락한 것을 버리고 오직 기억 전달자가 전해준 따스함과 사랑을 기억해내며 발길을 멈추지 않는다. 조너선이 선택한 삶은 평온을 깨뜨린 것이다. 평온 대신 인간의 희로애락을, 많은 감정을, 자연에 펼쳐진 색깔을, 계절을 얻었다. 이제 일상은 위험과 고통, 인내와 고난과 아픔과 상처, 슬픔, 우울, 연민, 증오, 체념 등을 안고 살아내야 한다. 그러나 조너선의 선택에 위로를 건네지 않으련다. 입체적인 일상 속에서 다양한 삶의 결을 느낄 수 있으니까. 다양한 기억을 소유하고, 자신의 기억까지 만들어가는 삶은 누군가의 길잡이가 될 것이라 믿는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힘겨운 시간도 미래의 등불이리라. 이경옥 동화작가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두번 째 짝>으로 등단했다. 이후 2019년 우수출판제작지원사업과 지난해 한국예술위원회 ‘문학나눔’에 선정됐으며, 2024년 안데르센상 창작동화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의 저서로는 <달려라, 달구!>, <집고양이 꼭지의 우연한 외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