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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의 미술 이야기] 변화하는 예술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시인 막스 쟈콥은 세상의 첫 번째 시인은 하늘은 푸르다라고 했고 그 후의 시인은 당신의 눈은 하늘처럼 푸르다라고 했을 것이다. 그 먼 훗날의 시인은 당신 눈에 하늘이 보인다고 말했을 것이고 오늘의 시인은 하늘과 같은 당신의 눈이라고 감탄했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이는 하늘=당신의 눈이라는 등식이 하늘은 푸르다는 기본 시각에서 비롯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며, 오늘을 알기 위해서는 어제를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에 대한 인식이 점차 변화되어 왔음을 상기시키는 의도이며, 예술적 표현은 오늘의 것만 보고 난해하다거나 이해를 포기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예술은 시대적 산물이고 현실의 거울이다. 밀레의 만종이 명화라고 해서 지금까지도 그 시각 그 기법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수공적인 재생산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역사 속의 전통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전통만 고집하는 것보다 전통에 의거하여 또 다른 전통을 만들어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는 어려운 그림을 그리는 대명사로 흔히 피카소를 떠올린다. 그러나 피카소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시절에 살았더라면 모나리자를 그렸을 것이고 반대로 다빈치가 20세기를 살았다면 게르니카의 학살과 같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그림을 그렸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지금 도회의 네거리를 갓을 쓰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분명히 우리의 것이었음에도 보기에 어색하여 뒤돌아보는 경우와 같다. 우리는 흔히 세대차이라는 말을 한다. 한 세대를 30년이라 한다면 그 짧은 세월에도 우리의 사고가 다름을 말하는 것인데 하물며 몇백년이 지나도 우리의 사고나 풍습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억지에 불과하다. 시대가 변하면 우리의 생각이나 풍습도 변한다. 그래서 예술에서는 발전이 아니라 변화라는 말을 사용해야 되는 것이다. 시대에 맞지 않는 눈으로 그림을 평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화가가 관객의 생소한 느낌을 책임지려고 해서도 안 될 말이다. 지나 온 세월을 인식하고 오늘을 봐야 비로소 하늘=당신의 눈이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1.01.11 17:14

[전라감사 100인 열전] 부자간에 전라감사를 지낸 함부림과 함우치

함부림과 함우치는 부자지간으로 아버지 함부림은 정종 2년에, 아들 함우치는 세조 7년에 전라감사로 부임하였다. 함부림은 신흥세력으로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여 개국공신 3등에 책봉되었으며, 8도 감사를 두루 역임하고 형조판서에 올랐다. 형조의랑으로 삼척에 파견되어 왕씨일족을 제거하였고, 1차 왕자의 난 때 방석을 세자로 옹위했다는 혐의를 받고 파직되었다. 함우치는 성종 즉위후 좌리공신 4등에 책봉되었으며 형조판서에 올랐다. △ 개국공신에 책봉, 왕씨 일족 제거 함부림(咸傅霖)은 고려말 공민왕 9년(1360)에 태어나 조선초 태종 10년(1410)]에 졸하였다. 그의 본관은 강릉이며, 자(字)는 윤물(潤物), 호는 난계(蘭溪), 시호는 정평(定平)이다. 그의 아버지는 검교중추원학사 승경(承慶)이다. 함부림의 동생 부열(傅說)은 조선건국에 반대하였으며 공양왕 묘소 아래에 묻혔다. 함부림 출생에 관해 개국 공신인 정도전, 조영규, 하륜 등과 함께 차씨 집안 서녀(庶女)의 자손들이고, 이런 출생을 감추기 위해 하륜 등이 차원부와 그 일족 70여명을 죽이고 해주 신광사에 보관되어 있는 차씨족보목판을 불태웠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이것이 차씨들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함부림은 고려말 우왕 11년(1385)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검열(藝文檢閱)에 등용되었다. 고려말 무신들이 궁내의 세력을 믿고 문신들을 멸시하였는데, 함부림은 조금도 굽히지 않고 무신들과 맞서다가 파직되었다. 공양왕 4년(1392) 태조를 추대하는 모의에 참여하여 예조의랑(議郞)에 발탁되고, 개성소윤으로서 개국 공신 3등에 책봉되었다. 태조 3년(1394) 4월 왕씨 일족을 제거하기 위해 관원들을 삼척, 강화, 거제도에 보낼 때 함부림은 형조의랑으로 삼척에 파견되어 이 일을 주도하였다.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은 삼척으로 배소를 옮겼다가 이 때 두 아들과 함께 죽임을 당했다. 공양왕의 묘소는 고양에 있지만 삼척에도 있다. △ 전라감사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품 함부림은 정종 2년(1400) 1월 24일에 전라감사로 부임하여 다음해 태종 1년 3월까지 재임하였다. 재임기간이 1년 2개월 정도 된다. 태종 1년 1월에 다시 안렴사제로 돌아가 조휴(趙休)가 전라도안렴사로 제수되었으나 부임은 3월에 하였다. 전라감사 재임 중에 그는 <석전의식(釋奠儀式)>간행을 추진하여 후임인 조휴와 전주판관 허조(許稠)에 의해 간행을 보게 되었다. 권근의 『양촌집』에 <석전의식>의 발문이 전한다. <용재총화>, <연려실기술> 등에 전라감사 때 기생과 얽혔던 일화가 전한다. 그가 젊었을 때에 화류계에서 방랑하였으나, 직무에 임해서는 신중하였고 일을 잘 처리하였으며, 전라감사로 선정을 베풀어 소문이 자자하였다. 전주기생을 사랑하여 한양으로 올라가면서 호패를 주고 몰래 따라오라고 하였다. 기생이 전주부윤 이언에게 이를 고하고 하직인사를 올리니 이언이 함부림을 절조 있는 선비로 여겼는데 하품의 인물이라고 욕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모두 함부림의 솔직함을 좋아하고 이언의 빡빡함을 비웃었다. <태종실록>에 실려 있는 그의 졸기에 전라감사로서 치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그의 성품을 논하면서, 함부림은 강직하여 지키는 바가 있고, 조정에 서서 과감하게 말하고 업무 처리에 민첩하여, 이르는 곳마다 직책을 잘 수행하였다. 경기, 충청, 전라, 황해 도관찰출척사와 동북면 도순문찰리사를 역임하였는데, 청렴결백한 것으로 자임하여 감사의 위엄을 떨치고, 일찍이 굽히거나 흔들리지 않으니, 부내(部內)가 두려워하고 복종하였다.라고 하였다. 18세기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 보면 8도의 감사를 모두 지낸 사람은 함부림과 반석평(潘碩枰) 두 사람뿐이라고 하였다. △ 방석을 세자로 옹립했다는 혐의로 파직 태종 2년(1402) 도관찰사제가 복구되면서 충청도 관찰사에 임명되었다. 태종 3년(1403) 예문관 제학에 임명되고, 이어 참지의정부사에 제수되어 명성군(溟城君)에서 동원군(東原君)으로 개봉(改封)되었다. 함부림은 태종 5년(1405) 대사헌으로 있을 때, 앞서 제1차 왕자의 난 때, 정도전과 더불어 왕자 방석을 옹립하였다는 혐의로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태종 10년 형조판서에 임용되었으나 곧바로 파직되어, 그해 51세로 죽었다. 그는 태종 10년에 정몽주의 행장을 지었다. △ 쓸쓸했던 말년 그의 말년은 쓸쓸했다. 함공이 만년에 병이 잦았다. 4남 1녀로 딸 하나가 있었는데 딸이 먼저 죽었다. 이때에 술과 여자를 멀리하여 첩도 두지 않았다. 아들들은 외방에 나가고 집안에 돌봐줄 사람이 없자 식사의 공궤를 거르는 일이 여러 번 있기에 이르렀다. 전에 친하였던 여의(女醫)가 이 소문을 듣고 찾아가 보니 공이 남루한 옷을 입고 초석(草席)에 길게 누워 있는데 다만 하인 한사람만이 곁에 모시고 있을 뿐이었다. 여의가 말하기를 어르신 같은 호걸이 어찌 이와 같이 곤궁하게 되었습니까하니 공이 한 마디 말도 없이 똑바로 쳐다보면서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용재총화>와 <연려실기술>에 전하는 일화이다. 그의 묘소는 서울시 강동구 고덕중학교 운동장 부근에 있다가 고덕지구 택지 조성사업으로 1982년 이천시 호법면 안평리 산 105번지로 옮겼다. 여기에는 그의 부조묘도 있다. 함부림은 김제시 진봉면 두곡서원에 정몽주, 강원기와 함께 배향되었는데, 1970년에 서원을 복설하면서 배향에서 빠졌다. △ 그의 아들 함우치 함우치(咸禹治, 1408~1479)의 자는 문명(文命), 호는 송담(松潭)이다. 문음으로 벼슬에 나와 고부군수, 나주목사, 동부승지, 함길도감사, 대사헌, 충청감사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세조 7년 7월 9일에 전라감사에 부임하였으며 이듬해 5월 15일 대사헌이 되어 상경하였다. 부자간에 전라감사를 지낸 사례 중의 하나이다. 전라감사 재임시 중국에서 귀환한 사람들을 전라도로 보내어 거주하게 하였는데, 이들 중국인들에게 생활의 방편을 마련해 주고, 혼인을 시켜 주는 등 잘 돌보아 주었다. 전라감사 역임후 대사헌, 경상감사, 형조참판을 지내고 성종 즉위후 형조판서에 올랐으며 좌리공신 4등에 책봉되어 참찬으로 전보되었다. 시호는 평양(平襄)이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1.01.11 16:45

전북 서원·사우 255곳 중 25곳 국립문화재 지정 가능

전북지역에 서원과 사우가 255 곳에 달하고 90여 곳은 시도, 국가 문화재로 등록가능한, 문화적 가치가 충분한 것으로 조사됐다. 11일 전북도가 지난해 도내 14시군에 존재하는 서원 및 사우를 전수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총 255곳의 서원사우가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중 서원은 전체 비중의 38%인 85곳 이었으며, 사우는 전체 62%를 차지하는 140곳이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도는 국가문화재로 등록가능한 서원 및 사우는 약 25곳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고, 70여 곳은 시도 문화재 등록이 가능할 것으로 봤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문화재청이 전국 20여곳의 서원향교문화재를 보물로 지정했는데, 전북지역에서는 단 한곳도 지정되지 않으면서 향후 도내지역 서원 등의 보물지정을 추진을 위한 기초자료 확보 차원에서 이뤄졌다. 서원은 조선시대 명현(明賢)을 제사하고 인재를 키우기 위해 전국 곳곳에 세운 사설기관이다. 성리학을 널리 알린 인물들을 기리고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도 담당했다. 사우는 조선 시대에 선현(先賢)을 제사하기 위해 건립된 제향처(祭享處)이다. 사우는 유현이나 충절인의 가향(家鄕), 거주지, 근무지, 유배지, 순절지(전승지), 타계지 등에 세워졌다. 사우의 건물 구조는 대개 제사를 지내는 사묘(祠廟)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서원과 사우의 차이는 교육기관(건물 강당)의 유무다. 지역별로는 고창이 32곳으로 가장 많은 서원사우가 존재했다. 이어 김제 28곳, 정읍 24곳, 남원 23곳, 진안 16곳, 무주장수익산이 각각 14곳, 완주 13곳, 전주임실 각각 11곳, 군산 10곳, 순창 9곳, 부안 6곳 순이었다. 서원사우의 건물배치는 학문의 공간이 앞쪽에 배치되고 제향공간이 뒤쪽에 위치하는 전학후묘형과 그 반대인 전묘후학형, 두 공간이 나란이 위차한 좌묘우학형, 좌학우묘형 등 다양한 건물배치를 보였다. 사당의 평면규모는 정면3칸, 측면 2칸 형태가 235건 중 140건(60%)이었고, 강당의 평면규모는 정면4칸, 측면 3칸 형태가 53건으로 나타났다. 사당의 지붕형식은 맞배지붕(건물 앞뒤에서만 지붕면이 보이고 추녀가 없으며 용마루와 내림마루만으로 구성된 지붕) 196건으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강당의 지붕형식은 팔작지붕(우진각지붕과 같이 사방으로 지붕면이 있으나 양측 지붕면 위에 삼각형의 합각(合閣)이 있어서, 우진각지붕 상부를 수평으로 잘라 그 위에 맞배지붕을 올려놓은 것 같은 복합형 지붕형식)이 138건으로 약80%를 차지했다. 도 관계자는 전체적으로 수리가 필요한 부분도 있지만 역사와 건축양식등을 볼 때 95곳에 달하는 서원사우가 문화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서원관리에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문화재·학술
  • 최정규
  • 2021.01.11 16:45

전북예총 창립 60주년, 소재호 회장 “무주·장수·순창예총 설립 추진”

소재호 한국예총 전북연합회장 한국예총 전북연합회(이하 전북예총)가 올해 창립 60주년을 맞은 가운데 소재호 회장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예술인이 살아남기 위해선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주체적인 능력 배양이 필요하다. 전북예총은 문화예술의 발현, 교육, 보존을 삼위일체로 예술의 지속가능성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소 회장은 지난해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감염병 위기 속에서 전북지역 예술계도 전반적으로 침체한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전북예총의 경우 전북민속예술축제, 전라예술제, 영호남 예술교류, 오지마을 문화투어 등 기존 사업들을 차질없이 추진한 데 만족하면서도 관객 호응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말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창립 60주년을 맞은 전북예총은 지역민들의 문화예술 향유를 위해 숙원사업인 무주장수순창예총 설립을 매듭지을 계획이다. 현재 전북예총은 10개 협회(건축국악무용문인미술사진연극연예영화음악)와 11개 시군지부(전주군산익산정읍남원김제진안고창부안완주임실)로 구성돼 있다. 소 회장은 무주, 장수, 순창예총 설립과 관련해 해당지역 예술인 중 대표성을 띤 인물로 추천위원장을 위촉할 예정이다. 지지부진했던 지부 설립을 이번엔 마무리 짓겠다는 선언적 의미라고 설명하며 도내 어떤 지역민들도 문화예술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조직을 만들어 문화예술 참여 기회를 넓히고 접근성을 높이고자 한다고 말했다. 예술의 의미 중 하나는 내면적 충일(充溢)로 예술이 없으면 삶이 단조로워진다고 그는 덧붙였다. 교사 출신 시인답게 소 회장은 배움의 자세도 강조했다. 대표적인 것이 국제 교류 확대, 회원 교육 강화이다. 그는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면 몽골, 캄보디아, 중국 등 3개국과 예술 교류를 추진할 계획이다. 나아가 광주-미술처럼 예술 장르별 선진 시도와 교류하는 것도 오랫동안 꿈꿔온 일이라며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나 강연 등 교육 기능도 강화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특히 소 회장은 전북예총이 60주년을 맞은 만큼 지역 문화예술의 산증인인 원로예술인들에 대한 사회적 예우도 찬찬히 챙겨볼 생각이다. 국제 교류나 교육 등으로 젊은 엘리트를 육성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부분이라고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일명 명인장으로 예술 장르별 원로예술인들이 예우받는 문화적 풍토를 조성하고 싶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전북예총은 1962년 창립했다. 제12대 김해강(문학), 제3대 오명순(국악), 제4대 박동화(연극), 제5대 신근(문학), 제6대 신석정(문학), 제7대 박상남(문학), 제8대 최승범(문학), 제9대 천길량(음악), 제10대 장명수(건축), 제11대 한소희(미술), 제121314대 임종술(국악), 제15대 이봉섭(영화), 제16대 이기반(문학), 제17대 배기봉(국악), 제1819대 김남곤(문학), 제20대 황병근(국악), 제212223대 선기현(미술), 제24대 소재호(문학) 씨가 연합회장을 맡아 이끌어왔다.

  • 문화일반
  • 문민주
  • 2021.01.10 17:44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정상 개최 예고… 4월 29일 개막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가 4월 29일부터 5월 8일까지 열흘간 정상 개최된다. 전주국제영화제는 개최 일정과 슬로건을 발표하며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정상 개최를 예고했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는 코로나19로 인해 영화제 기간을 한 달 연기하고, 심사 상영부터 폴링인전주까지 무려 114일간 최장기 개최를 시도했다. 올해는 개최 일정을 다시 열흘간으로 확정하며 정상화를 선언한 것이다. 전주국제영화제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속에서 온오프라인 결합 방식으로 치러진 결험을 발판 삼아 올해에도 코로나19 거리두기 단계별 기준과 방역 조치에 따른 세분화된 진행 방안을 마련했다. 이에 맞춰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행사와 영화 상영을 정상적으로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개최시기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진행방식이 변경될 여지는 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의 새로운 슬로건은 영화는 계속된다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위기에도 불구하고 우리 각자의 영화는 계속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더불어 팬데믹 후폭풍으로 격변기를 맞이하고 있는 영화 시장 속에서도 도전하는 영화, 새로운 영화를 발굴하고 소개하는 영화제의 본령에 충실하겠다는 다짐을 담아냈다. 이와 관련 영화는 계속된다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캠페인을 실시하고, 올해 정식 론칭하는 전주프로젝트 행사 J 컨퍼런스와 출판 프로젝트에서 담론을 모으는 등 구체적인 사업들을 진행해 나갈 예정이다. 전주국제영화제 이준동 집행위원장은 이번 슬로건에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영화에 대한 고민과 논의를 나누는 행사가 되고자 하는 영화제의 방향성을 담아냈다며 휘발성, 일회성 행사가 아닌 관객, 영화제가 다 함께 지속가능성을 고민할 수 있는 행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영화·연극
  • 문민주
  • 2021.01.10 17:44

전북도, 공립문학관 등록하면 끝? 활성화 방안 손 놔

문학진흥법에 따라 공립사립문학관 등록제가 도입되면서 전북지역 문학관 10곳 중 7곳이 공립문학관으로 등록을 완료했다. 그러나 공립문학관으로 등록만 했을 뿐, 전북도 차원의 공립문학관 관련 예산 지원이나 네트워크 활성화 방안은 미흡하다는 지적이 문학계에서 나오고 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처럼 법적인 지위를 얻었지만, 이에 상응하는 조치가 뒷받침되지 않은 것이다. 문학관은 특정 작가의 문학세계를 조명하는 문학관과 지역별장르별 문학관이 있다. 대부분 작가의 이름을 붙인 문학관으로 작가의 작품과 유품 등을 수집보관해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이를 활용한 전시교육연구 기능을 수행한다. 공립문학관 등록은 2016년 제정된 문학진흥법과 2019년 제정된 전라북도 문학진흥 조례에 따라 추진된 것이다. 공립문학관으로 등록하려면 관장 1명, 등록자료 100점 이상, 전문인력 1명 이상, 전시실 100㎡ 이상이라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문학관의 소재지를 관할하는 시도지사에게 등록하면 된다. 전북도에 따르면 현재 전북지역 문학관은 총 10곳이다. 전북문학관, 최명희문학관, 채만식문학관, 가람문학관, 혼불문학관, 남원고전소설문학관, 아리랑문학관, 김환태문학관, 미당시문학관, 석정문학관 등이다. 이 가운데 채만식문학관, 미당시문학관, 혼불문학관을 제외한 7곳이 공립문학관으로 등록을 마쳤다. 채만식문학관과 미당시문학관은 친일 논란 영향, 혼불문학관은 전문인력 미확보 등으로 등록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 위탁으로 운영되는 전북문학관과 최명희문학관을 제외하면 자치단체에서 문학관을 직접 운영한다. 전북문학관은 전북문인협회, 최명희문학관은 혼불기념사업회에서 민간 위탁을 맡고 있다. 부안 석정문학관도 민간 위탁에서 자치단체 직영으로 전환됐다. 이밖에 현재 문학관이 없는 정읍시와 진안군에서도 문학관 건립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와 관련 최근 정읍에서는 정읍문학관건립 민간추진위원회가 발족하기도 했다. 이처럼 지역별로 공립문학관을 건립해 운영하고 있지만, 도내 공립문학관 전체를 아우르는 최소한의 협의체조차 없는 실정이다. 이에 문학계 안팎에서는 전북박물관미술관협의회처럼 도내 공립문학관도 가칭 전북문학관협회를 구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북문학관협회가 구심점을 맡아 지역별 연계 방안, 콘텐츠 개발 등을 함께 논의해 문학관의 내실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공립문학관 관계자는 공립문학관에 대한 예산 지원까진 아니더라도, 전북도가 문학관 전체를 포괄하는 조직체를 만드는 것은 최소한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며 공립문학관과 관련된 어떤 예산도 수립하지 않았다는 것은 문학관 활성화 의지가 없다는 것으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관광이나 문화시설로써 가치도 내팽개쳐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문학인은 지역별로 문학관을 만든다고 문학이 진흥되는 것은 아니다. 도내 각 자치단체가 문학관을 소유하고 있다는 데 만족해선 안 된다며 전북문학관협회와 같은 조직체 구성과 함께 기존 문학관들의 역할 제고도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21.01.07 18:25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일제강점기 농촌수탈의 기억 화호리’ 보고서 발간

일제강점기 일본은 조선으로 이주하는 일본인들을 위한 농업 이민정책을 폈다. 조선을 영구적으로 식민지화하기 위해서였다. 일제는 정읍시 신태인읍 화호리를 이주지로 선정하고 대규모 농장을 개설했다. 개간된 농지와 대지의 소유권은 구마모토 리헤이(熊本利平), 다우에 타로(田植太郞), 오사와 신조(大澤新藏) 등 일본인들에게 넘어갔다. 자영농이었던 토착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했고 해방 전까지 궁핍한 삶을 살았다. 이 중 구마모토 리헤이는 46세대 92명이 거주하는 용서마을을 거점으로 신태인 지역의 드넓은 평야를 착취했다. 현재 이곳에는 일제강점기 화호병원과 화호우체국, 일본인 대농장주(구마모토) 사택 등 일본 근대식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특히 농민들을 착취한 구마모토 리헤이는 전북도 옥구군 박면 내사리와 신태인읍 화호리 두 지역에 농장을 개설했다. 그 범위는 3500정보(町步1050만평)에 달했다. 국책회사인 동양척식회사를 제외하고 개인으로는 전북 최대 지주였다. 그는 소작농을 부려먹어 생산한 쌀을 일본에 보냈다. 소작농들의 반발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런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보고서가 발간됐다.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는 일제강점기 농촌수탈의 기억 화호리Ⅰ 보고서를 발간했다고 7일 밝혔다. 이번 보고서는 일제강점기 농촌수탈과 해방 후 농촌 보건의 역사가 남아있는 정읍시 화호리에서 실시한 학술조사 결과를 담았다. 해방 후 정읍시는 구마모토 리헤이 농장 소속 의사였던 쌍천 이영춘 박사가 열악한 농촌 보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이곳을 떠나지 않고 농장 시설물을 활용해 입원실과 내과 등 5과 진료과목을 갖춘 화호중앙병원을 설립했으며 현재도 이 흔적이 남아있다. 쌍천 이영춘(1903~1980)은 일제의 수탈로 고통당하는 한국 소작농의 치료에 일생을 바친 농촌 보건위생의 선구자로 전해진다. 보고서는 △ 식민지 화호리의 일본인 지주들, 정읍 화호리의 식민지 기억과 경관 △ 신문기사와 지도, 사진, 공문서 등을 통해 당시 화호리 역사와 인문지리 △ 건축물 현황과 부재 수종조사, 식생조사, 석재 산지조사, 디지털 기록을 수록했다. 연구소는 화호리에 남아있는 적산가옥 6동과 해방 이후 공간변화 등을 디지털 영상자료로도 제작했다. 이 영상을 보고서내 QR코드로 삽입해 스마트폰 등 휴대기기로 재생해 볼 수 있게 했다. 이번에 발간한 보고서는 국공립 도서관과 지방자치단체 등에 배포된다. 문화재청과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홈페이지에도 공개될 예정이다.

  • 문화재·학술
  • 최정규
  • 2021.01.07 17:49

[김용호 전북도립국악원 학예실장의 전통문화 바라보기] 도드리와 골동반(骨董飯)

전통음악에서 나오는 도드리란 되도는 것 즉 돌아든다는 말로 반복이 있는 음악을 말한다. 궁중음악 정악인 연례악이나 궁 밖의 민속악에서도 고루 찾아볼 수 있었던 장단인 도드리는 3소박의 보통 빠르기로 6박으로 되어있다. 보통 전통음악을 공부한 사람은 도드리를 칭할 때 미환입. 아명으론 수연장지곡이라 많이 부른다. 국악곡 중에는 도드리란 말이 곡명에 많이 사용되고 있다. 즉 미환입의 밑도드리, 세환입의 웃도드리라는 곡의 명칭으로 정악 보허자(步虛子)를 변주시켜 연주하는 음악이 있으며 영산회상의 여러 곡 중 상현도드리하현도드리염불도드리처럼 부분을 반복하여 연주하는 곡들도 있다. 그러한 곡은 연주된 악장을 마치고 다시금 되풀이하여 돌아간다는 의미로 반복을 상용했는데 이러한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지나온 선율을 잊지 말고 새로운 가락을 맞이하자는 뜻이 내포되어있지 않았을까? 자, 그러면 새해이니 우리의 전통음식을 한번 살펴보자. 신년의 새로움을 준비하고 지난해의 기억을 돌이키며 특별히 선조들이 즐겨 먹던 전통음식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골동반(骨董飯)이다. 민간에서 비빔밥이라 알려진 궁중의 골동반은 섣달그믐날에 즐겨 먹었던 음식이었다. 우리 선조들은 그러한 비빔밥을 묵은해의 마지막 식사로 하여 지난 나쁜 액을 없애고 새해 첫날의 첫 음식을 떡국으로 먹으며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풍습이 있었다. 묵은해의 마지막 날 먹었던 비빔밥은 밥에 갖은 나물과 쇠고기, 고명을 올려 약고추장에 비벼 먹는 섞어 비빈 밥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비빔밥은 1800년대 말 조리서인 시의전서(是議全書)에 부ㅤ븸밥으로 처음 표기되었는데 여기서 골동(汨董)이란 여러가지 것을 한곳에 섞는다는 의미로 재료만큼이나 이름도 다양했다. 이러한 비빔밥에 들어가는 재료들은 특별한 새로운 맛과 특성을 가지고 있었고 전승되는 과정에서 고추장을 밥과 다양한 재료에 넣고 비벼 먹는 방식이 널리 알려져 오늘날의 비빔밥을 만들게 된다. 전주의 비빔밥은 17세기 무렵 전주의 남부시장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상인들이 몰려들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만들어 팔던 콩나물 비빔밥이 오늘날의 전주비빔밥으로 발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주비빔밥에 들어가는 재료는 30여 가지나 되는데 계절에 따라 들어가는 재료들이 조금씩 다르다. 전주비빔밥의 맛을 내는 데 가장 중요한 재료는 콩나물로 예로부터 전주콩나물은 인근의 임실에서 생산되는 질 좋은 콩을 전주의 맑은 물로 길러 맛이 좋기로 유명했다 한다. 2021년 1월. 새롭게 맞이한 신년. 도드리와 골동반처럼 지나온 시간을 뒤돌아보며 지난 액을 잊고 새로움을 준비해 보자. 코로나19로 많은 어려움과 고뇌를 겪고 있지만 그러한 과거를 간직하되 새로운 날을 기대하며 섣달그믐날 골동반처럼 묵은 것은 지워버리자. 우리의 선조가 도드리란 의미를 안고 돌아봄과 맞이함으로 역사의 음악 속에 알렸듯이 우리도 그렇게 새로움을 준비하고 기대하며 노력하자. 옛것을 보내고 새로운 것을 맞이하는, 그러나 그 새로운 것 또한 과거에 존재했던 것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이치를 잊지 말고 대비하고 또 준비하자.

  • 문화일반
  • 기고
  • 2021.01.07 17:49

[신간] “엄마·아빠 같이 읽어요!” 온 가족이 함께 읽는 동시집

엄마, 아빠 온 가족이 함께 읽을 수 있는 선물 같은 동시집이 잇따라 나왔다. 화단마다 피는 꽃이 다르듯, 비슷한 시기에 나왔지만 동시집 세 권이 각기 다른 향과 색깔을 뽐낸다. 어린이와 어른 모두의 화단에 동심의 씨앗을 심어주는 책들을 소개한다. 유재복 작가의 동시집 <아가에게>는 아가라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아가의 경이로움과 부모의 시선에 집중한 책이다. 작가는 오롯이 시적인 감상과 내용에 중점을 두기 위해 삽화나 그림을 곁들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 한 편마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 같은 장면을 각자의 경험과 생각에 비춰 마음껏 상상하고, 또렷이 연상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뒀다고 덧붙였다. 아가야,/ 온 세상 고운 꿈/ 눈 속에 가득 담고,/ 방글방글 웃음 짓는/ 네 눈빛은 햇살이다. (세상 하나뿐인 모습으로 부분) 아가는 엄마 뱃속에서 열달 쑥쑥 커 가고, 우렁찬 울음소리로 세상에 태어났음을 알리고, 어어엄마, 아아아빠 소리를 내고, 수없이 넘어지며 일어서는 연습을 한다. 동시집을 읽어나가면 아가의 탄생부터 자라나는 모습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유 작가는 서툴지만 아가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그 모습을 담아 보고 싶었다며 아가 그 자체가 하나의 시, 하나의 우주가 되는 그런 경이로움을 조금이라도 표현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저자는 남원 출신으로 전주교대, 전북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전북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 당선으로 등단했다. 저서로 <세종대왕>, <꿈꾸는 허수아비>, <국어과 교수법>, <새국어수업연구> 등이 있다. 전북교육청 장학사와 장학관, 전주효림초 교장을 거쳐 현재 익산궁동초 교장을 맡고 있다. 이길남 작가는 동시집 <아기 반딧불이>를 펴냈다. 첫 동시집을 낸 지 4년 만이다. 이번 동시집은 초등학교 교장으로 있는 작가가 아이들과 동시 동아리를 만들어 운영하면서 틈틈이 써둔 동시 100여 편을 모아 묶었다. 동시들은 아름답고 순박한 아이들 본래 마음인 동심을 추구한다. 톡톡 튀는 시어는 감칠맛이 나면서 교훈적이기도 하다. 은하수 건너 저편으로 간/ 엄마가/ 보고 싶어서// 아기 반딧불이는/ 밤이 새도록/ 밤하늘에서 반짝거린다 (아기 반딧불이 부분) 이 작가는 이번 동시집 역시 자연의 아름다움, 가족의 소중함, 살아가면서 느끼는 행복에 대한 글이 많이 실렸다며 동시를 읽는 독자들이 새로운 자연 속에서 생명, 가족, 친구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밖에 학교 현장에서 건져 올린 시편들도 많다. 연규석 시인은 동시집에는 어린이들과 생활하는 학교 현장을 비롯해 길을 걷다 문득 부딪치는 자연 현상, 생활에서 보고 느낀 것들이 주를 이룬다며 작가는 동심을 느끼게 하는 것들을 시심으로 건져 올려 소박하게 노래하고 있다고 밝혔다. 2009년 월간 아동문학 동시로 등단한 이길남 작가는 전주여고와 전주교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아동미술을 전공했다. 동시집 <띵까띵까>, 실용서 <글 잘 쓰는 법> 등을 발간했다. 현재 전북교단문학 회장을 맡고 있다. 조오복 작가는 두 번째 동시집 <페인트칠하는 담쟁이>를 내놨다. 이번 동시집은 이 세상 모든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동생 배에다 입 대고/ 부르릉! 부르릉!/ 입방귀 뀌어주면// 까르르! 까르르!/ 웃는 동생 (방귀놀이 부분) 아기 배에 입을 대고 입방귀를 뀌어주는 것, 할머니에게 예쁜 코를 보여주는 것, 지렁이를 위해 도망간 소나기를 부르는 것. 작가는 이것들이 사랑의 몸짓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사랑을 느끼고, 알고, 실천하면서 살아가자고 넌지시 말한다. 조 작가는 동시 하나하나 정성을 담아 썼지만, 친구들이 어떻게 봐줄지 걱정이 앞선다며 몇 편의 동시라도 마음에 가닿아 맞아 맞아, 나도 그래!하고 손뼉을 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고 밝혔다. 광주에서 활동하는 조오복 작가는 아동문예 신인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동시집 <행복한 튀밥>을 발간했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21.01.06 17:43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장은영 작가 - 신여랑 소설 ‘범수 가라사대’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상의 지겨움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건 보석처럼 빛나는 열정, 사랑, 추억들이다. 그런데 허세로 무장한 사색이야말로 삶을 버티게 하는 요소라고 말하는 소설이 있다. 『범수 가라사대』의 주인공 범수는 엄마 친구 결혼식에서 결혼은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이다. 어느 날, 군중 속의 고독보다 더 강한 고독을 만나게 될 때 칸트처럼 사색하라는 축사를 하는 중2 남학생이다. 운동화를 전족처럼 느껴서 쓰레빠를 신고, 선생님 책상에서 외출증을 훔쳐 점심시간에 집을 오가며 사색과 고독을 즐긴다. 하지만 친구들한테 외출증을 뺏긴 뒤 범수의 산책은 막을 내린다. 허세 없는 사색이 있을까요? 세상 모든 범수의 사색을 지지합니다.라는 작가의 말을 읽노라니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게 떠올랐다. 학창시절, 내 꿈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무엇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때는 꽤나 심각한 고민이었다. 그 당시 내 곁에는 팝송을 즐기고 춤을 잘 추는 친구가 있었는데 내 말을 듣더니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야. 니가 예수냐? 난 내 꿈을 지지하지 않는 친구에게 서운해서 한동안 거리를 두었었다. 이제 와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허세였고 생각이었지만 그것이 내 삶의 태도를 만드는데 영향을 준건 분명하다. 아니, 그 덕분에 그나마 이 만큼이라도 살 수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지금도 내 마음 속에, 내가 하는 말 속에 스며있는 허세 덕분에 하루하루 버텨나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허세로 무장한 사색은 내가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 일의 다른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취준생의 그것은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술 취한 가장의 그것은 가족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그런 허세를 받아주고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이 책을 쓴 신여랑 작가가 얼마 전에 전주에 둥지를 틀었다.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의 차분한 성품 속에 숨겨진 유쾌함과 재기발랄함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에 만날 때는 지금보다 훨씬 마음을 터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젠 내 마음 속에 감춰둔 허세로 무장한 사색을 꺼내도 되겠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1.01.06 17:43

[신간] 이재웅 4번째 시조집 <철인(鐵人)에서 철인(哲人)으로>

이재웅 시조시인이 네 번째 시조집 <철인(鐵人)에서 철인(哲人)으로>(북매니저)를 펴냈다. 이번 시조집은 총 5부로 구성돼 124편의 시조가 실렸다. 이 시조시인은 전북 철인3종 경기 협회장 답게 이번 시조십에서도 철인으로 활동하면서 느끼고 경험한 것을 토대로 시를 담았다. 한 조각 잎새 되어/파도에 출렁이며/ 힘차게 팔을 저어/ 숨 한번 몰아쉬고/창공의 갈매기와도/눈빛을 마주친다/(중략)일렁이는 파도 위에/하늘 한 번 쳐다보며/천심을 읽어간다/ 오로지 혹독한 훈련/세계정상 꿈꾸며. (철인3종경기 5 中) 이 밖에도 전국체전100주년과 정상, 꿈꾸는 세계 정상등의 시조에는 그가 철인3종 경기를 펼치고 유치하며 느낀 감정선이 그대로 담겼다. 그는 서예가, 문학가, 사업가, 스포츠 선수 등 1인 4역의 인생을 살아가는 인물로 널리 알려졌다. 부친의 주물 공장에서 익힌 주물 기술로 간판을 제작하다가 서체 디자인의 질적 향상을 위해 10년간 서예를 배웠고, 그 과정에서 접한 시조에 매료되어 시조시인의 길을 걷게 됐다. <시조문학>신인상으로 당선돼며 등단했으며, 한국문인협회, 전북문인협회, 한국시조시인협회, 시조문학문우회 이사, 전북미협 서예초대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 문학·출판
  • 최정규
  • 2021.01.06 17:27

[신간] 이정숙 수필가 <계단에서 만난 시간>

이정숙 수필가가 몽골여행을 주제로 쓴 수필집 <계단에서 만난 시간>(인간과 문학사)을 발간했다. 이 책은 총 3부로 몽골의 경이로운 대자연의 풍경을 아름다운 글과 사진으로 담았다. 몽골 여행은 스밈의 시간이라고 작가는 고백한다, 주어진 생의 시간이 길든 짧든 누구나 살면서 힘들고 지칠 때 이 책을 보면서 몸과 마음의 치유를 위해 여행을 꿈꾸는 동기부여가 되는 책이다. 이 수필가는 계단은 수직상승, 수직하강으로 오르내리며 두 공간을 잇는다. 나이가 수직상승 욕망과는 반대로 가는 터라 꿈의 계시로 떠오른 계단은 분명 내려가는 계단일 것이라며 두 해에 걸쳐 떠난 몽골여행은 계단참에서 나를 돌아보는 계기였다. 어떤 변화가 필요했으며 비우고 다시 시작하라는 메시지가 발길을 몽고로 옮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여행은 박제화된 일상의 탈출이다면서 여행 기간에는 내 몸에 침잠된 과거나 미래를 끌어내 현재의 시간에 데려다 놓는다. 아무리 복잡한 것도 아무것도 아닌 듯 매듭이 풀리고 단순화되어 즐길 수 있다고 여행 철학을 밝히고 있다. 그는 2001년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해 <지금은 노란 신호등>, <내 안의 어처구니 꽃잎에 데다> 등 수필집을 펴냈고 한국펜문학 전북지회장을 맡고 있다.

  • 문학·출판
  • 최정규
  • 2021.01.06 17:27

어린이부터 현역작가까지 ‘소 그림’ 보러오소~

농경 생활에 기반을 둔 우리나라에서는 농가의 밑천이자 재산 목록 1호로 소를 식구처럼 친근하게 여겨왔다. 소는 유순하고 근면성실해 여유와 평화를 상징하기도 한다. 특히 흰 소는 신성한 기운을 가진 소로 여겨왔다. 신축년 흰 소의 해를 맞아 완주 연석산미술관이 신년 기획으로 소 그림전을 마련했다. 이번 기획전은 현역작가뿐만 아니라 어린이, 지역민, 미술학도, 레지던시 입주작가들이 참여해 소에 대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총 43명이 설치작품 3점과 평면작품 40점을 선보인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박채언 어린이는 크레파스로 알록달록한 소를 표현했고, 연석산미술관 레지던스 3기 입주작가인 강철, 김상덕 작가는 각각 종이에 과슈와 먹, 캔버스에 유채로 어여쁜 흰 소를 그려냈다. 이밖에 용소초동상초 학생, 전북대 예술대학 학생과 강사 등도 새해 소망을 담아 소 그림을 전시한다. 박인현 연석산미술관장은 길고 길었던 장마와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19 팬데믹을 뒤로하고 2021년 새해가 밝았다며 성스러운 소 그림을 통해 새해에는 만수무강의 기운을 듬뿍 받아 어려운 현실을 훌훌 털어버리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전시는 오는 29일까지 연석산미술관 제1전시실과 제2전시실에서 이어진다.

  • 전시·공연
  • 문민주
  • 2021.01.05 19:04

전주전통술박물관 사실상 박물관 기능 상실

5일 오전 한옥마을내 전주시 완산구 한지길(풍남동 3가) 전주전통술박물관. 한옥마을 공영주차장 인근에 위치한 이 박물관은 기와를 얹은 한옥풍의 박물관이다. 입구를 지나 전시실을 둘러봤다. 술의 역사부터 술을 담그는 기구가 몇 개 전시되어 있었다. 술을 만드는 재료인 누룩모형도 전시돼 있었다. 이뿐 이었다. 전시장을 둘러보는데 단 5분도 소요되지 않았다. 이 전시장 면적은 44㎡. 박물관이라 하기엔 협소하기 그지없었다. 전시장을 나와 또 다른 입구로 들어가보니 비슷한 크기의 공간에서는 전통술을 판매하고 있었다. 개관 20년이 다 되가는 전주시 설립 전주전통술박물관이 사실상 박물관의 기능을 상실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주전통술박물관은 전통가양주(집에서 빚어내던 술)의 맥을 이어가기 위한 목적으로 전주시가 2002년 현재의 자리에 개관했다. 개관 당시 전통술을 내세운 박물관으로는 전국 최초였다. 개관 초기부터 10여 년까지는 맷돌, 소줏돌, 용수, 체 등 전통술을 빚는 기구를 포함해 212점의 유물을 소장했지만 이후 10년 가까이 추가 유물을 확보하지 못했다. 상설전시 된 유물수도 48점으로 소장 유물의 4분의 1 정도만 공개하고 있는 수준이다. 기획전시할 공간도 부족한 실정이다. 전주전통술박물관 측은 전시공간이 부족해 많은 유물을 전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박물관에는 전문학예사도 없다. 박물관장을 포함한 2명의 직원이 전부로 전문학예사가 없다보니 유물관리와 전시유물 교체와 신규유물확보가 안되고 새로운 연구를 통한 기획전시도 이뤄지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그나마 전통술 빚기부터 시음행사 등 다양한 교육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 마저도 농림수산식품부에서 국비를 따와 근근이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문제로 술 박물관은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실시한 공립박물관 평가인증에서 낙제점을 받아, 평가인증을 받지 못했다. 전주전통술박물관은 2017년부터 전라슬로푸드문화원이 전주시로부터 위탁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 전라슬로푸드문화원은 시의 지원금을 박물관 유지 비용의 약 80%를 차지하는 운영비와 인건비로 쓰고 있다. 그리고 20%는 자체 수익을 통해 메꾸고 있는 실정이다. 박물관 측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 어떻게든 박물관은 운영해보고자 직원들이 학예공부를 하고, 관장이 퇴직금 등 사비를 투입해 버티고 있지만 힘든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시는 해당 박물관이 사실상 박물관 기능을 상실한 점에 대해서 인정하면서, 술 박물관에 대한 변화를 고심하고 있다. 지난해 박물관의 기능보다 교육, 전시를 극대화할 수 있는 문화관 전환을 검토했지만, 전국 최초의 술 박물관이란 이유로 철회했다. 올해 전시공간 확대를 위한 리모델링 예산을 책정하고, 개편에 나설 예정이다. 전문학예사도 추후 배치해 추가 유물구입 및 연구도 진행 할 방침이다. 시 관계자는 전주전통술박물관에 대한 지적에 충분히 공감한다면서 여러 방면으로 활성화를 위해서 많은 고심을 하고 있다. 거점관광도시에 걸맞게 술박물관을 변화시킬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 문화재·학술
  • 최정규
  • 2021.01.05 18:20

[최완규 교수의 '마한이야기'] 마한의 상징 새모양 토기

고대 국가의 궁전이나 종교 건축에서 기둥이나 기와 등 각종 부재에 다양한 동물 모양으로 장식하여 권위나 신앙적 측면을 장엄하게 보이도록 한 예들을 살필 수 있다. 고고학적인 발굴조사를 통해서도 분묘나 생활유적에서 동물 모양의 유물들이 출토되는데 이를 통해서 당시 사람들의 사상이나 신앙적인 면을 엿 볼수 있게 한다. 대표적으로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러진 삼족오(三足烏)는 고구려인들의 세계관을, 가야 고분에서 출토된 오리모양 토기는 그들의 내세관을 알 수 있게 하는 귀중한 자료들이다. 마한의 분묘나 집자리에서도 새를 모티브로 만든 새모양 토기(鳥形土器)가 기원전후에서 5세기의 유적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출토되고 있다. 이 토기는 분묘나 집자리에서 출토되는 예에서 보면 형태상에서 별다른 차이를 보이고 있지 않아 일상용과 매장용으로 구분해서 특별히 제작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마한 전시기를 통해 새모양 토기가 상징적인 의례용으로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어서 마한을 상징하는 유물로 평가되고 있다. 새모양 토기의 형태를 보면 새의 부리에 해당하는 곳은 물을 따르는 주구(注口)로 새의 등위에는 물을 채우는 주입구(注入口)로서 작게 돌출되었다. 주구의 반대편에는 약간 치켜세워 올려 좌우 대칭처럼 보이나 실제적으로는 손잡이 기능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내부에는 빈 공간을 마련하여 물이나 술 같은 유체를 채울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이른 시기의 것들은 새의 모양에 충실하고 있으나 점차 오늘날 주전자 형태로 변화되는 것을 살필 수 있다. 보물 1823호로 지정된 「농경문청동기」는 따비와 같은 농기구를 이용하여 땅을 일구는 청동기 시대의 농경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중요한 유물이다. 이 유물의 뒷면에는 좌우에 나뭇가지 위에 새가 앉아 있는 모습을 새기고 있다. 고대사회에서 새는 하늘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매개자로서 신성한 의미를 담고 있으며, 또한 새는 씨앗을 가져다주는 곡령으로서 의미뿐만 아니라 농사의 풍요까지도 지켜주는 신성한 존재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마한의 솟대위에는 새 장식을 올려놓아 하늘과 인간세계를 매개하는 존재로 새를 인식하고 있었다. 마한 사람들은 한반도 서해안 일대에 자리잡고 농경을 생업경제 기반으로 생활을 영위해 오면서 수확의 풍요로움을 내려준 하늘에 감사하는 소박함을 새모양 토기에서 읽을 수 있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1.01.05 18:20

도내 최초 한옥도서관 ‘익산 금마도서관’ 13일부터 시범운영 돌입

도내 최초 한옥도서관인 익산 금마도서관이 건립 공사를 마무리하고 오는 13일부터 시범 운영에 본격 돌입한다. 금마도서관은 지역에서 6번째로 건립된 시립도서관으로 고도보존육성지구 한옥이주단지 내 위치하고 있다. 총사업비 19억원 투입을 통해 연면적 543㎡, 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로 조성됐다. 지하 1층에 종합자료실, 다목적실, 연속간행물 코너 등이, 지상 1층에는 어린이 자료실, 대청마루, 야외마당 등이 들어섰으며 1만여 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금마도서관만의 특색을 살린 열린 공간으로 대청마루와 야외마당 등 한옥이 가진 고즈넉하고 멋스러운 정취를 느낄수 있도록 조성됐으며, 별도 코너로 마한백제 특화자료를 구비한 종합자료실도 구비돼 있다. 아울러 시범운영 기간에는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열람과 착석은 불가능하나 도서대출과 반납, 회원가입, 상호대차 서비스등은 이용이 가능하다. 정헌율 익산시장은 그동안 북동부 지역에 도서관이 없어 인근 지역 주민들이 불편을 겪었던 만큼 이번 금마도서관 조성을 계기로 소외 지역의 지식문화 격차를 해소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독서문화 공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시는 이밖에도 독서문화 기반시설 확충을 위해 영등도서관 증축, 리모델링 공사와 유천도서관 건립 공사(동산동행정복지센터 부지 내)를 추진하고 있으며 각각 내년 2월과 11월 준공 예정이다.

  • 문화일반
  • 엄철호
  • 2021.01.05 17:38

진안군 동향면 대량리 제동유적 시굴조사서 제동로와 제련폐기장 추가 발견

동광석을 1차 제련해 구리를 추출하는 제동로(구리 생산에 사용되는 노시설의 통칭)와 구리 제련 불순물 폐기장이 진안군 동향면 대량리 제동유적(구리 생산 관련 유적의 통칭) 시굴조사에서 추가 확인됐다고 5일 진안군이 밝혔다. 이번 시굴조사는 전북도와 진안군, 군산대 가야문화연구소가 함께했으며 전북 가야사 발굴조사 및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실시됐다. 신라 말 고려 초 시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량리 제동유적은 동향면 대량리 창촌마을 내에 위치한다. 이 유적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등의 문헌에 기록된 동향소의 실체를 보여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조사에 앞서 지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창촌마을에서 진행된 시발굴조사에서는 동 생산에 활용된 제동로 2기와 대형 폐기장(구리 생산 폐기물 버리는 곳) 1개소가 발견된 바 있다. 군에 따르면 이번 시굴조사는 기존 시발굴 조사된 지역을 중심으로 주변 유적의 존재범위와 제동로 등 유구의 추가 존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실시됐다. 시굴 결과 기존조사와 비슷한 형태의 제동로와 폐기장을 추가로 확인하는 수확을 얻었다. 이번에 발견된 것 중 제동로는 석재와 점토로 축조돼 있으며 강한 화기 탓에 붉은 색을 띠고 있다. 주변엔 슬래그와 노벽편이 다수 산재하고 있다. 해당 부분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이뤄지기 전에는 정확한 구조와 성격을 아직 알 수 없지만, 기존의 발굴조사에서 드러난 제련로의 현황과 매우 유사한 양상을 띨 것으로 군은 추정하고 있다. 또 이번에 발견된 폐기장은 그 부근이 오랜 경작활동으로 대부분 훼손된 상태며 높이 0.4m 가량만 남아있다. 이곳에서는 숯, 슬래그, 노벽편 등이 발견됐다. 이들 제동로와 폐기장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뤄진다면 유적의 가치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 당시 국내 구리 생산체계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제동로 구조 복원을 위한 핵심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1980년대까지 동광석을 채광하기 위해 운영됐던 동향광산과 연계시켜 보존활용 방안이 모색된다면 유적의 가치는 매우 높아질 수 있다는 게 군 관계자의 판단이다.

  • 문화재·학술
  • 국승호
  • 2021.01.05 17:04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