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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이 말하는 ‘나의 문학’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셨습니다. 신춘문예 당선 소식을 전할 때 기자들은 산타가 된다. 환희 속 울음을 터트리는 분들을 마주할 때면 덩달아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한다. 이 한마디를 듣기 위해 마음 졸였을 수화기 건너편의 존재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2021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다며 아이처럼 좋아했다. 16년 동안 세 번의 도전 끝에 당선된 이도, 첫 작품 첫 도전으로 당선된 이도 있었다. 문학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들이 마침내 산타에게 선물을 받는다는 결말은 문청들 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울림을 준다. 2021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 유수진, 단편소설 부문 당선자 황지호, 수필 부문 당선자 이다온, 동화 부문 당선자 전소현 씨에게 당선 소감에 담지 못했던 뒷이야기를 들었다. △ 나의 삶 그리고 문학 유수진= 대학에서 독어독문을 전공했지만, 전공 관련 일은 하지 않았어요. 현재는 프리랜서로 출판사 교정 일을 보고 있어요. 5년 전 시 전문지로 등단하고, 3년 전 단편소설로 문학대전에서 상을 받기도 했어요. 그런데 제가 시를 쓰다가 힘들면 소설로 도망가고, 소설을 쓰다가 힘들면 시로 도망가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1년 반 넘게 시도 소설도 거의 쓰지 못하는 시간을 보내고, 지난해 신년 계획에 신춘문예 도전하기를 넣었어요. 황지호=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어요. 그날을 기억할 수 있어요. 도서관에서 하근찬 작가의 수난이대라는 소설을 읽고 창문 너머를 봤는데 노을이 정말 아름다웠어요. 이런 소설을 써서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그날 처음 했어요. 국어교육,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20년 가까이 논술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어요. 신춘문예에 도전한 건 2004년, 2014년 전북일보였어요. 심사평에 소설이 언급돼 감사했지만 당선되지 못한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어요. 올해도 당선이 되지 않으면 신춘문예 투고를 그만하려고 했어요. 이다온= 대학에서 유아교육학, 아동심리학을 전공하고 10여 년간 어린이집 교사로 근무하고 있어요. 십수 년 전부터 동리목월문학관, 시거리 동인에서 글쓰기 수업을 본격적으로 받았어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암은 이전까지의 저의 일상을 송두리째 뒤집어놓았어요. 그런 암을 받아들이며 투병 과정에서 느꼈던 상황을 글로 한번 써보자고 생각했어요. 병원 생활에서의 기록들을 다시 보면서 마음이 아프고 고통을 느꼈지만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새롭게 다지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전소현= 평소에 혼자 상상을 많이 하는 편인데, 이걸 글로 표현해내는 게 재밌어 글을 쓰자고 마음을 먹게 됐어요. 대학에서는 문예창작을 전공했어요. 신춘문예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아직은 제가 많이 부족한 것 같아 도전하지 않았어요. 그러던 중 대학 아동문학 수업에서 신춘문예 응모를 기말고사 대체과제로 내주셨어요. 그래서 전북일보에 첫 투고를 했는데 좋은 결과를 얻게 됐어요. △ 잊을 수 없는 당선의 순간 유수진= 전화가 오면 혹여 못 받을까봐 12월부터 벨소리를 최대로 해놓았는데, 그날 아침에 다시 벨소리를 원래대로 해 놓았어요. 아무래도 더 써야 전화가 올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책상 위를 정리하고 한글파일을 열고 앉아서 문장과 문장 사이를 무엇으로 채울까, 단어와 단어 사이를 어떻게 채울까 망연히 앉아 있다가 전화를 받았어요. 황지호= 소설의 배경이 되는 한옥을 청소하고 있었을 때였어요. 당선 소식을 받고서 저는 걸레를 내려놓지도 못하고 아내를 안아 주었어요. 아내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어요. 두 사람의 모습을 어린 딸아이가 신기한 듯 오래 바라봤어요. 이다온= 코로나19로 휴원 상태에서 긴급보육 기간 중 통보를 받았어요. 교사회의를 마치고 모두 코로나 사태를 걱정하며 조용히 앉아 있었는데 당선 소식에 갑자기 환호성을 지르니까 동료들이 깜짝 놀라기도 했어요. 전소현= 낮잠을 자고 있었어요. 벨소리에 깨서 봤더니 모르는 번호여서 안 받을까 하다가 받았어요. 당선됐다고 들었을 때도 너무 얼떨떨하고,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상태여서 더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 후에 온 당선 문자에 실감이 났어요. △ 앞으로 채워나갈 이야기들 유수진= 위로가 되는 시를 쓰고 싶어요. 저는 제 시의 첫 번째 독자에요. 저 자신을 위로하지 못하는 시가 제 안과 밖을 벗어나서 어떤 위로를 줄 수 있을까요. 시는 제 안에서 밖으로 시선을 넓혀가는 일 같아요. 또 음식을 담을 때 소재마다 그릇이 달라야 하듯, 시로는 담을 수 없는 이야기가 소설에는 어울리기도 해요. 소설로는 압박과 강요 등으로 기회를 보낸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황지호= 글로 감동을 주고 싶어요. 사라져가는 것들, 특히 전통문화를 소재로 한 서사 중심의 전통적인 소설에 관심이 많아요. 소설은 소재와 소재가 결합해 세상에 대한 하나의 비유를 만들어내는 게 큰 매력이에요. 긴 문장을 쓰는 즐거움도 있고요. 이다온= 읽으면 그림이 그려지는, 따뜻한 글을 쓰고 싶어요. 수필은 제 삶을 더욱더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장르라고 생각해요.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고, 그 삶을 기록할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껴요. 전소현= 신춘문예에 당선된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에 들뜨지 않고 꾸준히 저만의 속도로 글을 쓰고 싶어요. 원래는 소설을 전공했는데, 주변에서 겪었던 부당한 것에 대해 쓰고 싶었어요. 이번 기회에 아동문학과 동화에도 더 관심을 두고 제대로 글을 써 볼 생각이에요.

  • 문학·출판
  • 문민주
  • 2021.01.04 18:16

[이승우의 미술 이야기] 그림을 잘 그려야만 화가인가?

조르주 루오, '그리스도의 얼굴' 우선 잘 그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잘 그린다? 잘 만든다? 잘 꾸민다?에서 잘이라는 것은 기능인가 개념인가? 이런 것들을 수학 문제처럼 확실하게 갈라서 말할 순 없다. 그림을 딱 잘라 정의할 수 있을까? 미술은 인문학의 기초이며 자름 길이다. 그리고 인문학이란 자신의 삶과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키우고 그에 기초하여 인식의 전환과 새로운 실천적 행위를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하는 것이기에 다들 인문학적 소양을 쌓으려는 것이리라. 그림이 무엇이더냐는 김홍도의 질문에 신윤복이 답한다. 그림은 그리움입니다. 그리워서 그리고, 그리고 나니 또다시 그리워지는 것입니다라 답하지만, 이것 또한 그의 의견일 뿐이다. 마음을 그린다는 말도, 마음에 그린다는 말도 모두 개인의 의견일 뿐이다. 반공승공멸공의 시대에 북한을 다녀왔다는 이유로 간첩으로 몰렸던 윤이상 재독 음악가의 회상에 의하면 북한 교향악단을 지휘하려는데 연주가들의 기계처럼 정확한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교정하는 데 많은 시간이 들었다 한다. 기원전 이집트 미술처럼 획일적인 양식만을 요구한다면, 감상자들에게도 보고 느끼는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통제한다면 미술이 인본주의라거나 인문학의 지름길이라 말할 수는 없다. 추(醜)함이 미술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도 벌써 오래되었지만 본래 아름다움이 미술의 본질이었다 하자. 아름다움은 아름이 앎이라 하여 한문 지(知)로 환원시켜 많이 알고 깨달은 것이라고도 하고 아름을 한 아름, 두 아름으로 해석하여 아름을 내 것으로 풀이하여 아름을 내 것다움을 개성(個性)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화가가 그림만 잘 그리면 되지 어떤 이론? 책은 왜 읽어?에서 잘은 기능이다. 즉 닮게 그리는 기능, 그 많은 기능 중에 오직 하나일 뿐이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화가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이 전에 없던 새로움을 창조하고 발전시키고 융성하게 만든 사람이다.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을 감각하고, 감동하고 밖으로 표출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 새해부터 이승우 화백의 미술이야기가 연재됩니다. 이 화백은 중국 청도서울전주익산군산고흥에서 개인전 32회를 했고, 저서는 <미술을 찾아서>, <현대미술의 감상과 이해>, <아동미술>, <색채학>이 있습니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1.01.04 18:16

21년간 연말의 정을 나눴던 ‘얼굴없는 천사’ 영화 개봉

전주 얼굴없는 천사를 소재로 한 영화가 개봉된다. 종합콘텐츠 매니저먼트 융합기업 ㈜씨엠닉스는 오는 6일 천사는 바이러스를 개봉한다고 4일 밝혔다. 영화는 지난 2018년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처음 소개됐다. 이번 영화는 롯데시네마와 CGV, 메가박스 그리고 독립영화관 등에서 개봉한다. 영화 천사는 바이러스는 전주 얼굴 없는 천사를 소재로 만들어졌으며, 2011년 오하이오 삿포로, 2012년 길 위에서 등을 만든 김성준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다. 여기에 배우 박성일이영아문숙전무송 김희창김정영길정우권오진이용이홍부향 등이 출연한다. 영화의 제작은 전주영상위원회가, 배급은 종합콘텐츠 매니저먼트 융합기업인 ㈜씨엠닉스가 맡았다. 영화는 매년 12월이면 전주 노송동에 기부 상자를 두고 가는 얼굴 없는 천사가 있는데 이 천사를 취재하겠다며 찾아온 기자 지훈은 우여곡절 끝에 마을에 잠입해 조사를 시작한다. 하지만 지훈이 사실 기자가 아니라 사기꾼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내용이다. 가짜 기자인 지훈역에는 박성일, 순수한 마을 사람인 천지 역은 이영아가 맡았다. 특히 이영아는 영화 촬영 후에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잘라서 기부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주 얼굴 없는 천사는 매년 12월 남몰래 기부금을 놓고 간다. 얼굴도, 이름도, 직업 등 그 어느 것도 알려진 것이 없다. 얼굴 없는 천사는 지난달 29일 노송동주민센터에 두고 간 기부금을 포함해 21년간 총 22차례에 걸쳐 7억3863만원을 기부했다. 영화는 이를 소재로 전주 노송동의 마을 사람들과 외부인과의 소통, 사랑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담았다. 노송동 주민들은 매년 10월 4일을 천사의 날로 지정해 홀몸노인과 소년소녀 가장 등 어려운 이웃을 돕는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천사가 놓고 간 성금을 도둑맞았지만 성금을 되찾았다. 전주시는 얼굴 없는 천사를 위해 노송동 주민센터 주변에 1500만 원을 들여 방범 CCTV를 설치하기도 했다. 영화 제작사와 배급사는 얼굴 없는 천사 의 선행에 동참하기 위해 영화 수익의 일부를 기부하기로 했다.

  • 영화·연극
  • 최정규
  • 2021.01.04 17:47

신축년 새해 ‘잘되지 않겠소!’… 소, 미술로 풀어내다

2021년 신축년(辛丑年) 하얀 소의 해를 맞아 다양한 소의 모습을 미술로 풀어내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우진청년작가회의 띠전 잘되지 않겠소!. 우진청년작가회는 2017년부터 매년 십이지간 띠를 주제로 한 전시를 선보였다. 올해도 신축년 하얀 소를 주제로 띠전을 준비했다. 전시 부제 잘되지 않겠소!는 새해에는 모든 일이 잘되기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정했다고 한다. 소는 오래전부터 부지런하고 성실한 동물로 불리며 우직한 이미지를 대표해왔다. 실제로 소는 인내심이 큰 동물로 참을성이 좋고 독립심도 강하다고 한다. 특히 농경사회에서 인간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로 오랜 시간 역할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소를 주제로 한 개성적인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작품은 한국화, 서양화, 조각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다. 이처럼 동일한 주제를 자신만의 표현법, 상상력으로 해석해내는 작가들의 작품을 비교감상하는 것도 특별한 즐거움이다. 김성민 작가는 직선적이고 거친 붓질로 강렬한 인상의 소를 그려냈다. 조현동 작가는 작품 자연-경계 안에 상징물 중 하나로 소를 등장시켰다. 이외에도 전시에는 김동헌, 김성석, 김성수, 김수진, 김중수, 김판묵, 박지은, 송지호, 이은경, 이정웅, 이주리, 이철규, 이호철, 이효문, 임택준, 장영애, 조병철, 조헌, 최정환, 홍경준, 홍경태, 홍남기, 황나영 작가 등 우진청년작가회원 총 25명이 함께한다. 조현동 우진청년작가회장은 코로나19로 인해 지구촌이 몸살을 앓고, 전반적으로 모든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경자년이 저물었다며 신축년 새해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부분에서 우직하고 부지런한 소처럼 많은 어려움을 슬기롭게 잘 이겨내고 힘차게 재도약하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오는 27일까지 전주 우진문화공간 전시실에서 이어진다.

  • 전시·공연
  • 문민주
  • 2021.01.03 18:23

군산 최초의 성당 둔율동 성당 신축기록 국가문화재 지정

군산 최초의 성당인 둔율동 성당의 건립당시 기록이 국가문화재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군산 둔율동 성당신축기 및 건축허가신청서를 국가등록문화재 제677-2호로 지정했다고 3일 밝혔다. 군산 둔율동 성당이 국가문화재(제677호)로 지정 된지 3년 만이다. 이번에 등록된 성당신축기 및 건축허가신청서는 기존 국가등록문화재 군산 둔율동 성당의 건축공사와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는 자료다. 성당신축기는 성당의 계획 수립착공완공건축기금 등 건축 전반의 과정을, 건축허가신청서는 당시의 허가신청서청사진 도면시방서 등이 적혀 있다. 군산 둔율동 성당이 지난 2017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이유도 성당신축기와 건축허가신청서가 잘 보존돼, 성당 신축과 관련한 성도들의 헌물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사례가 건설지 등에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매우 드문 사례덕이었다. 군산 둔율동 성당은 일제강점기 공소(본당보다 작은 교회)로 시작해 1955년~1957년에 신축됐다. 이번에 등록된 유물은 한국전쟁 직후 신축한 성당의 건축과정을 비교적 상세히 기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성당과 상호 연계된 통합적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고 문화재청은 판단했다. 군산 둔율동 성당은 1929년 5월 나바위 본당에서 분리되어 군산 본당으로 설립됐다. 1961년 11월 둔율동 본당으로 개명됐다. 초대 신부로 김영구 베드로 신부가 부임했다. 1925년 김 마리아 사택에 공소를 개설하고 나바위 본당 신부들이 들러 판공 성사를 봤다. 군산 본당으로 설정된 후 옥구 군청 관사 대성원을 임시성당으로 사용하고 부속 건물을 사제관으로 개수해 사용했다. 이후 50년 간 만주에서의 사목을 마치고 군산 본당 2대 주임신부로 부임한 임인교 신부는 일제강점기 시대였던 1938년에 본당 주보를 설정하고 목조 성당을 신축했다. 하지만 이후 소실되고 1955년에 현재의 건물로 신축됐다. 신축 후에는 한국 전쟁 후에는 성심 유치원과 보육원을 설립해 전쟁고아와 환자들을 돌보는 일에 주력했다.

  • 문화재·학술
  • 최정규
  • 2021.01.03 17:53

재전진안읍향우회 하광호 사무국장, 문학 동인지 ‘표현’ 수필부문 신인문학상

재전진안읍향우회 하광호 사무국장이 지난 12월 30일 문학동인지 <표현(계간)>의 신인문학상을 수상해 정식 수필가가 됐다. 하 사무국장은 <표현>지 2020년 제77호 겨울호에 두 편의 수필을 제출해 두 작품이 모두 실렸다. 지난 2016년 6월 말 진안군청 공무원에서 정년퇴직한 하 사무국장은 전주 신아 문예 대학 수필 창작반에 등록해 수필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글쓰기 시작 불과 2년 만에 이 같은 성과를 거뒀다. <표현>에 실린 두 편의 작품은 지주대 사랑과 물거품이다. 지주대 사랑에서 하 작가는 어머니 사랑을 그렸다.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게 고추를 지탱해 주는 지주대처럼 자신의 인생살이에서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 준 어머니를 떠올리며 그 느낌을 풀어냈다. 물거품에서는 높은 산에 오른 뒤에서야 비로소 삶이 단풍처럼 아름답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인생에서 파도처럼 밀려오는 시련과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는 평소 자신의 철학을 녹여냈다. 하 수필가는 심사위원들로부터 문장이 물 흐르듯 막힘이 없고 자연스럽게 전개된다. 소설에서 여러 이야기를 함께 묶는 기법인 피카레스크식 구성을 사용해 입체적으로 스토리를 전개한 보기 드문 우수작이라는 심사평을 받았다. 하 작가는 수필에 관심은 많았지만 문외한이었다. 그런데 퇴직 후 어느 날 미뤄놓았던 숙제처럼 수필에 손이 갔다. 2년 가량 부담 없이 즐기는 자세로 썼을 뿐인데 뜻하지 않게 등단이라는 값진 결실까지 거둬 정말 기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앞으로 불광불급(不狂不及)이란 말을 가슴에 새기고 사람 향기 물씬 풍기는 글을 열심히 쓰겠다고 덧붙였다. 진안문인협회 회원인 하 작가는 현재 진안군수 공약사항 이행 배심원, 군정소식지 소통위원, 군선거관리위원회 위원, 재전진안읍향우회 사무국장, 진안신문 독자위원회 위원 등을 맡고 있다.

  • 문학·출판
  • 국승호
  • 2021.01.03 17:04

제1회 전주 인디뮤직 어워드 올해의 음원, 음반상에 노야, 고니아

제1회 전주 인디뮤직 어워드 7개 분야 수상자가 결정됐다. 어워드 주최 측인 포풀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올해의 음원상에 노야의 넌 보란 듯이 예쁜 꽃 되니까를 선정했다고 지난달 31일 밝혔다. 또 고니아의 A Tension은 올해의 음반상과 재즈트랙상으로 2관왕을 차지하는 영광을 누렸다. 올해의 힙합트랙상은 권도경과 콜유마인의 Higher Self, 올해의 포크&블루스 트랙은 마인드바디앤소울의 귀향, 올해의 락&메탈 트랙은 슬로우진의 아무르가 각각 선정됐다. 코로나 19로 인해 이번 시상식은 비대면으로 개최됐다. 심사대상은 2018년 12월 1일부터 지난해 11월 30일까지 전주에서 발표된 대중음악 작품이며, 시상은 종합부문(음원상, 음반상), 장르부문(힙합, 재즈, 발라드/R&B, 포크/블루스, 락/메탈)으로 총 7개 부문으로 진행됐다. 이번 어워드 심사는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인 박희아 기자, 한국대중음악상, 한국힙합어워즈 선정위원이자 EBS 스페이스 공감과 네이버 온스테이지 기획위원인 김학선 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한동윤 평론가가 함께하며, 더불어 전주MBC 콘텐츠 제작부장이자 JUMF 책임PD인 이태동 PD, 안태상 밴드와 오감도의 리더 안태상 기타리스트, 한국소리문화의전당 홍보마케팅 김형주 과장이 참여했다. 포풀라 박석영 대표는 제1회 전주 인디뮤직어워드가 마무리됐다. 인디뮤직어워드 개최를 위해 힘써주신 모든 분들과 로컬뮤지션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며 인디뮤직어워드는 전국의 로컬뮤지션과 로컬음악이 조명 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로컬 뮤지션들과 함께하며, 로컬음악의 가치와 위상을 높이는 어워드를 개최하기 위하여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최정규
  • 2020.12.31 11:59

[김용호 전북도립국악원 학예실장의 전통문화 바라보기] 연등회의 포용적 가치

지난달 16일 우리나라 국가무형문화재 122호인 연등회가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린 무형유산보호 정부 간 위원회 협의를 통해 유네스코 세계 무형문화유산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부처님 태어나신 음력 사월초파일이 되면 전국 사찰과 거리에는 형형색색의 등이 걸린다. 연등의 작은 소박함과 불빛의 수려함 그리고 등을 올리는 한분 한분의 사랑과 소망, 정성을 담은 기도가 연등과 함께 작은 불빛의 아름다움으로 올려진다. 석가모니의 탄생을 축하하는 이러한 연등회는 천 년이 넘는 세월 속에 우리 민족과 함께했으며 현재까지 이어져 세계 무형문화유산으로 큰 의미를 부여받게 되었다. 자, 그러면 우리의 소중하고 궁금한 연등회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자. 연등회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에 서술되어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신라의 48대 왕인 경문왕이 정월대보름을 맞이해 황룡사로 행차해 등불을 구경하고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삼국사기> 중 연등회의 유래와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삼국사기의 기록처럼 삼국시대 연등회는 매년 정월대보름에 열렸고 불교적인 행사라기보다는 고대로부터 전해온 기원제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연등회를 통해 국가의 덕목과 의례로 도를 다하려 노력하였으며 삭막한 사회의 정화를 끌어내기도 했다. 연등회는 한때 권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1245년 무인 집권기의 최고 권력가였던 최우는 막강한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왕이 주체가 되는 정월 연등회와는 별개로 사월초파일에 자신의 집에서 연등회를 열어 백성의 환심을 사기도 했으며 공민왕 때의 막강한 권력자 신돈은 자신의 집에서 연등회를 열어 백만을 헤아릴 만큼 많은 등을 걸고 왕을 맞이했다고 한다. 유교가 정치이념이었던 조선시대에는 사찰 정월 연등회를 찾아보기 힘들지만, 풍속으로 자리 잡은 사월초파일 연등회는 지속해서 민가에서 이어져 내려왔다. 사월초파일 밤이 되면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석류등, 수박등, 마늘등을 달았고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거북등과 학등을, 입신과 출세를 위해서 잉어등을 달아 소원과 희망을 담고 기원했다. 이제 국가 종교행사로 시작된 우리의 연등회는 세계인이 함께 보존하고 전승하는 무형문화유산이 되었다. 연등회는 혼돈의 시기에 단합과 함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국적과 인종, 종교, 장애를 넘어 포용성의 가치를 널리 알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코로나19 펜데믹pandemic 시기에 진정 필요한 한국의 전통문화유산 이념이며 세계인이 함께 공유해야 할 극복과 포용적 회복의 가치인 것이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0.12.31 11:59

동물민속학자에게 듣는 소 이야기

2021 신축년(辛丑年)은 흰 소띠의 해이다. 신축의 신(辛)이 오방에서 흰색에 해당한다. △ 근면(勤勉)우직(愚直)충직(忠直)의 소 소의 성격은 순박하고 근면하고 우직하고 충직하다. 소같이 일한다, 소같이 벌어서, 드문드문 걸어도 황소걸음이라는 말은 꾸준히 일하는 소의 근면성을 칭찬한 말로서 근면함을 들어 인간에게 성실함을 일깨워 주는 속담이다. 소는 비록 느리지만 인내력과 성실성이 돋보이는 근면한 동물이다. 소에게 한 말은 안 나도 아내에게 한 말은 난다는 소의 신중함을 들어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말을 조심하라는 뜻이다. 우리 민족은 소를 한 가족처럼 여겼기에 그 배려 또한 각별했다. 날씨가 추워지면 짚으로 짠 덕석을 입혀 주고, 봄이 오면 외양간을 먼저 깨끗이 치웠으며, 겨울이 올 때까지 보름마다 청소를 해 주었다. 이슬 묻은 풀은 먹이지 않고 늘 솔로 빗겨 신진대사를 도왔으며, 먼 길을 갈 때에는 짚으로 짠 소신을 신겨 발굽이 닳는 것을 방지하였다. 소를 생구(生口)라고 할 만큼 소중히 여겼던 우리 조상들은 소를 인격시했던 이야기가 많이 전해 오고 있다. 황희 정승이 젊은 시절에 길을 가다가 어떤 농부가 2마리 소로 밭을 가는 것을 보고 어느 소가 더 잘 가느냐?고 물었더니 농부가 귀엣말로 대답했고 그 이유는 비록 짐승일지라도 사람의 마음과 다를 바가 없어 질투하지 않겠느냐?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황희, 김시습, 맹사성 등은 소와 관련된 많은 일화를 남긴 현인들이다. 특히 조선 초기의 맹사성이 소를 타고 고향인 온양을 오르내린 이야기는 유명하다. 평화스럽게 누워 있는 소의 모습, 어미 소가 어린 송아지에게 젖을 빨리는 광경은 한국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던 풍경이다. 소가 창출해 내는 분위기는 유유자적의 여유한가함평화로움의 정서이다. 우직하고 순박하여 성급하지 않는 소의 천성은 은근과 끈기, 여유로움을 지닌 우리 민족의 기질과 잘 융화되어 선조들은 특히 소를 아끼고 사랑해 왔다. △ 유교의 의(義), 불교의 진면목, 도교의 유유자적(悠悠自適)의 상징, 소 소는 유교에서 의로움[義]를 상징한다. 주인의 생명을 구하고자 호랑이와 격투 끝에 죽은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의 의우도(義牛圖), 의우총(義牛塚) 이야기나 눈먼 고아에게 꼬리를 잡혀 이끌고 다니면서 구걸을 시켜 살린 우답동 이야기에서 소의 우직하고 충직하고 의로운 성품을 잘 나타내고 있다. 불교에서는 사람의 진면목을 소에 비유한다. <십우도(十牛圖)>, <심우도(尋牛圖)>는 선을 닦아 마음을 수련하는 순서를 표현한 것이다. 이는 소를 찾고 얻는 순서와 이를 얻은 뒤에 주의할 점과 회향할 것을 이르고 있다. 고려 때의 보조국사 지눌은 호(號)가 목우자(牧牛子)이다. 소를 기르는 이, 즉 참다운 마음을 장양(長養)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만해 한용운도 만년에 그의 자택을 심우장(尋牛莊)라고 하여 스스로의 진면목을 찾기에 전념하였다. 소가 그려진 아리랑 담배 소를 타면 소의 성질이 급하지 않아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아 좋고, 진창이라도 가리지 않고 잘 가고 무엇보다도 걸음이 느리기 때문에 길가의 풍경을 천천히 구경할 수 있다. 때로는 졸아도 떨어질 염려가 없어서 좋다. 소를 탄다는 것은 옛 선조들은 세사(世事)나 권력에 민감하게 굴거나 졸속하지 않는다는 정신적인 의미이다. 옛 그림 속에서 선비 목동 은자가 소를 타고 언덕을 돌아 나오는 모습은 주변을 흐르는 잔잔한 물결과 함께 어울려, 도가적인 은일의 세계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소의 성품이 창출해 내는 도가적 분위기를 통하여 이상적인 삶에 대한 정신세계의 한 단면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소를 타고 유유자적하는 모습은 바로 이러한 도교적인 영향이다. 도교에서 소는 유유자적이다. 소꿈은 조상산소자식재물협조자사업체부동산을 상징한다. 꿈에 황소가 자기 집으로 들어오면 부자가 된다라는 속신어나 소의 형국에 묏자리를 쓰면 자손이 부자가 된다는 풍수지리설 등을 통해서 볼 때 분명 소는 풍요를 가져다주는 부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황소 주식장세란 말이 있다. 증권가에서 영어로 장세가 좋은 강장세(强場勢)를 불 마켓(Bull Market)ㅡ황소 장세라 한다. 황소의 맹렬한 돌진력과 밑에서 위로 떠받치는 뿔의 힘이 증권가의 오름 장세에 비유된다. 어진 눈, 엄숙한 뿔, 슬기롭고 부지런한 힘, 유순, 성실, 근면, 인내 등 소의 덕성으로 신축년 소띠 새해는 새로운 시작과 힘찬 출발의 한 해가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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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31 11:59

[2021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 수필] 이다온

이다온 작가 잠시, 공중부양 하듯 중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어느 때 만져지던 허방처럼, 그리곤 내게 온 이 반가운 기별이 현실이란 걸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상실은 늘 내 곁을 맴돌았습니다. 유년시절, 매일 같이 놀아주던 언니가 전염병으로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린 일. 대학에서 함께 공부했던 친구가 채 피어보지도 못한 채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난 일. 지난 해, 중환자실에서 눈 맞춤도 하지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지까지. 어느 해, 갑자기 찾아온 암은 나의 모든 것을 앗아갔습니다. 몸과 마음의 자유는 물론, 사소한 일상까지 잃어버린 채 매일 죽음과의 사투를 벌여야했습니다. 천 길 낭떠러지 같은 캄캄한 벼랑 끝에 서 있을 때, 병상에 놓인 노트와 연필은 나의 유일한 위로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뭔가를 끼적거리지 않으면 불안했던 나는 언젠가부터 상처를 제 안으로 치유하는 달항아리처럼 상실의 아픔을 글로 치유하려 했습니다. 갑자기 떠난 언니와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가버린 친구며, 더 이상 울리지 않는 아버지의 휴대폰, 어느 날 잃어버린 한쪽 가슴까지. 어쩌면 그 기록들이 삶의 고비마다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달무리처럼 떠오르는 얼굴들이 많습니다. 늘 부족한 나를 격려해주던 시어머님과 친정어머니, 지칠 때마다 용기를 준 남편과 두 아이, 다정다감한 직장 동료들과 서로 이끌어주며 오랫동안 함께 공부한 시거리 문우들. 그리고 나를 지켜본 모든 사람들과 함께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제 글이 달항아리가 되게끔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과 귀한 상을 주신 전북일보사에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두고두고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이다온(본명 이수정) 작가는 경주 출생으로 2018년 머니투데이 직장인 신춘문예 수필 부문에 당선됐다. 울산문인협회 회원, 물푸레 복지재단 국공립 베니 어린이집 교사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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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31 11:48

[2021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수필] 달항아리 - 이다온

진열대 위로 둥실 달이 떠오른다. 은은한 불빛이 바닥에 고인다. 조명을 받은 항아리는 방금 목욕하고 나온 아낙네 같다. 천의무봉의 살결이 백옥처럼 희다. 아무런 무늬가 없는 데도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해진다. 자세히 보면 달항아리는 좌우균형이 맞지 않는 비대칭이다. 보름달이 약간의 기울기를 가진 것처럼. 가슴이 사라졌다. 마취에서 깨어나자마자 왼쪽 가슴을 확인했다. 불룩하게 솟아있던 자리가 분화구처럼 푹 꺼져 있다. 움푹 팬 곳에 낯선 어둠이 만져졌다. 두꺼운 밴드가 선홍색 칼자국을 애써 가렸다. 와락, 울음이 밀려왔다. 재빨리 환자복을 내려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을 덮었다. 이태 전이었다. 부산스럽게 외출준비를 하고 있을 때 왼쪽 가슴에서 심하게 통증이 느껴졌다. 급하게 달려간 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릴 들었다. 의사는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지만 내 귀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았다. 벚꽃이 만발했던 어느 봄 날, 그렇게 암은 내게로 왔다. 아무 예고도 없이. 임파선으로 퍼진 암 덩어리 크기를 작게 하고 나서야 수술을 할 수 있었다. 크기를 줄이기 위해선 먼저 여덟 차례의 항암치료를 해야 했다. 일차 항암치료를 받기위해 수술실 안쪽의 긴 복도를 따라갔다. 암 환자를 위해 마련된 별도의 공간은 미로처럼 복잡했다. 일반인의 출입이 철저하게 통제되는 곳이었다. 민둥산처럼 머리를 깎은 환자들이 침대마다 누워 있었다. 선뜻 들어가지 못했다. 내가 왜 이 자리에 서 있어야하는지 실감나지 않았다. 이건 꿈이라고, 잠시 꿈속으로 들어온 것이라고 애써 위로했지만 현실은 결코 꿈이 되지 않았다. 시부모를 모시는 맏며느리였지만 고부간에 큰 갈등은 없었다. 남편은 자상했고 어머님은 집안일에 서툰 나를 딸처럼 대해 주었다. 결혼한 지 이십년이 다 되어가도록 가끔씩 동서들과의 갈등이나 속상한 일이 더러 있었지만 크게 상심하거나 어려운 일은 겪지 않았다. 아이 둘도 잘 자라주어 행복한 나날이었다. 그런 내게 신은 암이라는 시련을 툭! 던져주었다. 단 한마디 말도 없이. 돌멩이 던지듯 무심하게. 생년월일을 확인하고 이름이 불리어졌다. 간호사는 친절하게 몇 개의 액체가 들어 있는 비닐봉지를 보여주면서 의례적인 설명을 했다. 숨소리가 거칠어졌고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이렇게 세상이 끝나는 건 아닐까? 다시 병실 밖으로 나갈 수는 있을까? 도대체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임종을 맞았던 것일까? 항암제가 잘 스며들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준다는 조형제가 몸속으로 들어오자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전율이 흘렀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자줏빛 종이상자 안에 있던 항암제가 천천히 내 안으로 들어왔다. 까무룩 잠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열흘 정도가 지나갔다. 머리카락을 쓸어 올릴 때마다 한 움큼 검은 시체들이 손아귀에 쥐어졌다. 숭덩숭덩 빠지는 머리카락은 책상 위며 화장대, 거실탁자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는 삶의 의지마저도 한 움큼씩 빠져나갔다. 항암치료는 마흔 살 나이에 생리를 멈추게 했고, 모든 일상의 시간들을 정지시켰으며, 까마득한 벼랑 끝에 나를 세워놓았다. 항암치료를 시작한 지 반년이 지날 즈음 왼쪽 유방절개수술을 했다. 임파선을 제거한 팔은 조금만 무리해도 붓고 아팠다. 나이가 젊을수록 예후가 좋지 않을 수 있다고 의사가 말했다. 삶의 의지와 죽음의 두려움이 씨줄과 날줄처럼 교차했다. 때론 침대 난간에 머리를 쥐어박으며 죽고 싶다며 야단을 피웠고 어떤 날엔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져 시체처럼 누워 있었다. 다섯 개가 넘는 피 주머니가 흔들릴 때마다 통증은 시시때때로 찾아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정신을 놓아 버렸다. 불행은 먼 나라의 것이라 생각했다. 이따금 들려오는 남의 고난은 그냥 타인의 일일 뿐이었다. 어느 나라에선 지진이 일어났다하고 또 다른 곳에서는 기아가 넘쳐난다고 해도 관심 밖의 일들이었다. 쇼핑을 하고 몸매를 가꾸고 먼 곳으로 여행을 하고, 그런 순간이 언제까지나 지속될 거라 믿었다. 가끔씩 현기증 같은 게 찾아왔지만 그건 내가 너무 행복해서 느껴지는 감정 같은 거라고 가볍게 넘겨버렸다. 불행의 씨앗이 조금씩 내 몸에 똬리를 틀기 시작하는 것도 모르고. 아마조네스는 여자들만으로 이루어진 군대이다.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트로이를 구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강력한 특수부대였다. 아마조네스의 아는 없다는 뜻이며 조네스는 유방이라는 뜻이다. 즉, 유방이 없다는 것이다. 여자들로 구성된 이들 부족은 활을 쏘는데 오른쪽 유방이 불편했기 때문에 그것을 미련 없이 제거했다. 조국이라는 더 큰 가치를 위해 여자로서의 아름다움을 당당하게 버린 것이다. 어쩌면 나의 전생은 아마조네스인지 모르겠다. 가슴에 활시위를 대고 적의 심장을 바라보던. 그래서 한 쪽 가슴을 도려내야했는지도. 행복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기 마련인걸까. 암은 무의미한 일상에 함몰된 내게 삶을 향해 제대로 활시위를 당기라며 가슴을 도려내게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파르르 떨리는 그 활이 너무 무겁고 감당하기 벅차긴 했지만. 달항아리는 조선후기에 유행했던 도자기다. 둥글고 커다란 모습이 달덩어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높이가 사오십 센티미터에 달하는 커다란 항아리를 제작하려면 흙으로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따로 만든 뒤에 서로 이어 붙여야 했다. 그래서 접합 부위가 약간 뒤틀린 모양이 되었다. 하지만 조선 시대 도공들은 이것을 칼로 깎아 내거나 매끈하게 다듬지 않았다. 인위적인 힘을 가해서 정교하고 둥글게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비대칭인 상태 그대로 둔 것이다. 수술결과는 좋았다. 더 이상 항암치료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몇 번의 작은 수술과 치료가 있었지만 처음의 두려움은 조금씩 사라졌다. 벼랑 끝에서 아스라하게 버텼던 지난날의 흔적은 가족들의 관심으로 조금씩 치유되어져 갔다. 전시대 위로 떠오른 달을 쳐다본다. 어린 시절 초가지붕 위의 박처럼 푸근하다. 문득 항아리 속의 달이 내 안으로 파고든다. 가슴이 사라진 자리에 밀물처럼 고요하게 달이 들어찬다. 보름달이면서 비대칭인, 한 쪽이 약간 기울어져 슬픈 달, 그러나 어떤 대칭의 사물보다도 완벽한 구형이다. 달을 품은 내가 어느새 달항아리가 된다. 따뜻한 달무리가 빈 가슴에 둥글게 번진다. /이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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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31 11:48

[2021 전북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 수필]

송준호 수필가 붓 가는 대로만 써서는 안 된다는 것. 수필 쓰기의 이중성 내지는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그거야 어쨌든 짧지 않은 세월을 두고 삶의 애환을 웬만큼은 축적해야 비로소 수필스러운 성찰이 가능한 건 아닐지. 예심을 거친 열네 분 응모자의 작품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는데, 성찰의 깊이가 상대적으로 옅어 아직 덜 여물었거나 붓끝의 농담이 들쭉날쭉인 글을 하나씩 내려놓다 보니 <산골 변사>, <점선, 여백을 품다>, <희생에 대한 회상>, <달항아리> 네 편이 남았다. 시골 마을로 계절을 바꿔가며 무시로 찾아오는 트럭장수들의 찰진 목소리를 해학적으로 풀어낸 <산골 변사>는 에피소드의 전개 과정이 좀 어수선하긴 했어도 읽는 맛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점선, 여백을 품다>는 붓끝이 정갈해서 선뜻 내려놓기가 아까웠다. 그런데 수사적 성찰이 전체 분위기를 이끌고 있어서일까. 독서의 속도감이 떨어지는 문제점까지는 덮고 갈 수 없었다. <희생에 대한 회상>은 읽을거리가 풍부하다는 게 장점이었다. 어미 우렁이와 어머니의 삶을 희생 모티브로 연계시킨 구성도 크게 나무랄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는 정돈되지 않은 문체였다. 거친 붓끝을 정갈하게 다듬어 썼더라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으리라는 조언을 사족으로 덧붙인다. <달항아리>를 끝까지 손에 붙든 까닭은 앞선 세 편의 글이 갖고 있는 단점이 두드러지지 않아서였다. 안정감 있고 세련된 문체가 읽는 맛을 더해준 까닭도 있었다. 글의 문패로 내건 달항아리의 둥글지만 비대칭인 이미지를 가슴이 사라진 자리에 채움으로써 사라진 가슴 때문에 겪어야 했던 아픔을 따뜻하고 담담하게 어루만질 줄 아는 구성력도 만만치 않은 수준이었다. 최종심에 올랐으면 그다음은 운수소관이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그 속뜻이야 글을 쓰는 이들에게는 불문가지일 터. 명실상부(名實相符)라는 말이 있는데, 명(名)은 어떨지 몰라도 실(實)에 있어서만은 네 분 응모자 모두 훌륭한 수필가에 상부(相符)하고도 남는다. /송준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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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31 11:48

[2021 전북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 동화] 뛰어난 상징과 심리묘사, 흡입력 강해

박예분 아동문학가 예심을 거쳐 5편의 작품이 본심에 올랐다. 매일매일 만 천 원은 무럭무럭 꿈 카드로 생활하는 아이의 이야기다. 상징으로 끌어들인 모래바람이 주인공의 삶을 대변해서 좋았으나 작품에 제대로 녹이지 못해 서걱거렸다. 다시 쓴 일기는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들며 쌍둥이 동생을 구하는 이야기로 판타지의 통로가 선명하지 못했다. 사건이 심적인 변화를 일으킬 만한 게 아니어서 설득력이 떨어졌다. 늑대의 담력 테스트는 겁 많은 두 아이가 엄마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문장의 비유적 표현은 새로웠으나 이야기의 소재와 내용이 평이해서 기대치에 못 미쳤다. 나는 빛은 뱀을 의인화한 동화로 뱀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꿈을 실현해가는 과정을 특별한 갈등이나 긴장감 없이 반복적으로 그려서 흥미를 반감시켰다. 괴물 아이는 뛰어난 상징과 심리묘사로 흡입력이 강해서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현재 아이들이 겪고 있는 차별과 따돌림을 괴물이라는 상징을 통해 이야기를 실감 나게 이끌어간 점이 돋보여 당선작으로 뽑았다. 팔에 검은 점이 가득한 캐릭터가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모습을 멋지게 표현한 부분 또한 인상적이었다. 현실적으로 주인공과 비슷한 고통을 겪는 어린이들이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동화의 따뜻한 결말도 좋았다. 다만 사건보다 심리묘사에 치중하다 보니 전개가 단조로운 점이 아쉬웠다. 당선을 축하하며, 응모해 주신 예비작가들에게 격려와 응원을 보낸다. /박예분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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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31 11:39

[2021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 동화] 전소현

전소현 작가 병아리는 삐약삐약 우는 게 맞아. 근데 모두가 삐약삐약 같은 색으로 우는 건 아니야. 어떤 친구는 연한 파스텔색의 노란색처럼 약하게 우는 친구도 있고, 몇 번을 덧댄 샛노란 색처럼 힘차게 우는 친구도 있어. 닭은 꼬끼오하고 우는데 여름날 올챙이들이 보이는 시냇물처럼 소리가 맑아. 근데 간혹가다 흙탕물같이 지저분한 소리가 나는 닭이 있긴 해.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입학한 대학에서 처음으로 쓴 글의 한 부분이다. 주인공이 청각 장애인에게 소리를 표현해주는 장면이었다. 겪어보지 못한 것들을 표현하는 건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이날도 좀처럼 써지지 않는 글을 부여잡고 답답해하던 것이 기억난다. 그래도 답답한 순간의 연속인, 글 쓰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더니 당선이라는 좋은 순간도 찾아왔다. 앞으로도 조금 느릴 수도 있지만 꾸준하게 걸어가면서 이런 좋은 기회들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항상 따뜻한 이야기를 하고 싶고, 그 전에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남들보다 먼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들, 친구들에게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좋은 순간을 맞이할 수 있게 기회를 주신 최형미 교수님, 여러 방면에서 도움이 되어주시는 양연주 교수님 감사합니다. 또 누구보다 기뻐해 준 엄마를 비롯한 가족들, 친구들, 동기들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 따뜻한 말 전해주신 모든 분께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전소현 작가는 대구 출생으로 경기도 정왕고를 졸업했다. 현재 한양여대 문예창작과에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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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31 11:39

[2021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동화] 괴물 아이 - 전소현

나는 괴물이다. 괴물이 되어버린 건 열두 살 무렵이었다. 밤마다 왼쪽 가슴 언저리가 웃음이 날 정도로 간지러웠다. 어느 날부터, 왼쪽 가슴엔 초록색 털이 자랐다. 그리고 그 털은 점점 자랐고, 학교 운동장에 있는 잔디와 같아졌다. 엄지손가락 마디의 길이였는데, 가위로 잘라도 잘라도 계속 자라났다. 엄마는 나를 데리고 피부과부터 시작해 온갖 병원을 다 데리고 다녔다. 선생님, 우리 아이가 이상해요. 알 수 없지만, 건강엔 이상이 없습니다. 한숨만 푹푹 내쉬는 엄마와 달리 열두 살의 나는 기뻤다. 만화에서 보던 영웅이 변신했을 때의 모습처럼 나도 변신을 하는 것 같았다. 이 영웅의 증표를 친구들에게 가서 보여줄 생각에 신이나 설레하던 전날 밤을 기억한다. 다음 날 입고 있던 티셔츠를 짠하며 벗었다. 친구들의 표정은 제각기였다. 감탄이 섞인 소리도 들렸고 만져보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괴물이야 라고 외쳤다. 이건 괴물이 아니라 영웅의 증표였는데, 괴물 소리가 점점 커졌다. 괴물이다. 괴물. 몸에서 이상한 게 자라는 괴물이 나타났다. 아이들은 잔뜩 신이 난 듯 복도를 뛰어다니며 괴물이라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이곳저곳에 끌려다녀야 했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 내 옷을 멋대로 벗겨내려고 했고, 모르는 사이 내 사진이 찍혀 돌아다녔다. 엄마는 내 팔을 붙잡고 울면서 나를 때렸다. 뭐가 자랑이냐고, 그걸 왜 보여주냐며 나를 혼냈다. 집 앞에는 카메라를 든 어른들이 나를 찍으려고 애썼다. 학부모들은 나를 전염병이 걸린 사람처럼 학교 밖으로 쫓아내자고 회의를 했다. 텔레비전에선 나를 괴물 아이라고 소개했다. 아, 나는 영웅이 아니라 괴물이었구나. 방에서 나와 거실로 향했다. 거실에 있는 가위를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 세면대에 올라가 옷을 벗고 그 괴물의 증표를 잘라냈다. 아무리 잘라도 끝에 남아있는 것까지는 자르기가 힘들었다. 가위를 던지고 손으로 벅벅 긁었다. 긁어도, 잡아 당겨봐도 사라지지 않았다. 너는 절대 괴물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듯이. 피가 새어 나왔다. 피가 초록색의 잎을 빨갛게 적셔갔다. 엄마가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화장실 안에 엄마의 울음소리와 나의 고함이 한 데 섞여 울려지고 있다. 전교생이 30명도 채 되지 않는 곳에 전학을 갔다. 만화방, 오락실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 시골 동네였다. 6학년은 나까지 총 다섯 명이었다. 전학 첫날 선생님 손을 잡고 반으로 걸어갔다. 바닥만 보고 걷다 보니, 어느새 반 앞에 도착해있었다. 교실에 들어서도 나는 바닥만 보았다. 서울에서 전학 온 아이라고 말한 뒤 선생님은 자기소개를 시켰다. 그냥 대충 고개를 숙이고 이름을 말했다. 잠깐의 정적 뒤 박수 소리가 들렸다. 창가 빈자리에 앉았다. 종례시간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앞으론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다음 날, 운동장에서 얼핏 어제 반에서 봤던 애 중 하나와 마주쳤다.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가던 발걸음을 반대편으로 돌렸다. 심장 소리가 귓가에 쿵쿵 울렸다. 뛰면 뛸수록 심장 소리가 더 커졌다. 숨이 차올라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숨을 크게 들이쉬니 특유의 짠 향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보니 바다가 있었다. 심장 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파도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실내화 가방을 대충 모래사장에 던지고 그 위에 앉았다. 불안함에 요동치는 내 마음과 달리 파도는 점점 고요를 되찾았다. 엄마한테 지금쯤이면 전화가 갔으려나. 내가 없어진 건 아무도 모르겠지. 이제 어떡해야 하지. 왜 나는 괴물이 되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불안한 생각들이 이어졌다. 머리를 잔뜩 굴리고 있을 때 뒤에서 누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내가 있는 쪽과 점점 가까워져 고개를 들었다. 왜 나보고 도망쳐? 아까 운동장에서 봤던 그 애였다. 나도 모르게 몸이 뒤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런 나를 보고도 그 애는 평화로운 표정으로 내 옆에 앉았다. 왜 나를 뒤 따라온 건지 궁금한 것보다 그냥 무서운 감정이 들었다. 옆을 힐끔 봤는데 그 애는 바다에만 시선을 두었다. 아무 말도 오가지 않는 그 애와 나 사이엔 기러기 소리, 파도 소리가 전부였다. 나 너 알아. TV에서 봤어. 그 애가 정적을 뚫고 말을 했다. 갑자기 들려온 말에 나도 모르게 어쩌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 애가 그제야 나에게 시선을 두었다. 그 애의 눈엔 벌겋게 변해버린 내가 담겨 있을 것 같았다. 몇 겹을 껴있음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괴물의 증표가 옷을 뚫고 튀어나올까 무서워 손으로 가렸다. 잔뜩 웅크린 나와 달리 그 애는 갑자기 옷을 벗기 시작했다. 소매를 걷더니 이내 눈앞으로 그 애의 팔이 다가왔다. 이것 봐. 멋지지 않아? 그 애의 팔엔 검은색의 반점이 가득했다. 누가 봐도 눈이 찌푸려질 모습이었는데 그 애는 자랑이라도 된다는 듯이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만져보지 않겠냐고 그 애가 제안했다. 뭐에 홀린 듯이 손을 그 애의 팔에 갖다 댔다. 보기와 달리 피부가 훨씬 매끈거렸다. 그 애가 나를 보고 싱긋 웃었다. 이건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거야. 엄마가 그랬어. 내가 사랑해줄수록 더 예뻐질 거라고. 너한테 생긴 것도 마찬가지일 거야. 지금도 예쁘겠지만 네가 사랑해주면 사랑해줄수록 더 빛날 거야. 처음으로 누군가가 가슴에 생긴 것을 예쁘다고 말해 주었다. 왼쪽 가슴이 뜨겁고 간질거렸다. 마치 처음 잔디가 폈을 때처럼. 금방이라도 그 속에서 해바라기가, 장미가 예쁘게 피어날 것 같았다. 그 애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학교에 가자고. 아마 다들 기다릴 거라고 말해 주었다. 내민 손을 붙잡았다. 우리의 손 사이에 있는 모래가 서걱거렸다. /전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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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31 11:39

[2021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 시] 유수진

유수진 작가 수변길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잔잔한 물결 위로 불빛들이 도착하고 있습니다. 어룽어룽 빛들이 물결 따라 흔들렸습니다. 징검다리로 올라서니 수변길에서 보던 빛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빛들은 조금 옆으로 자리를 옮겨 제 몸을 다해 점멸하고 있습니다. 징검다리를 하나씩 건널 때마다 빛들이 자리를 옮깁니다. 이쪽과 저쪽을 다니며 수면 위에서 반짝이는 빛들을 오래 봤습니다. 집 쪽으로 고개를 돌려 전등을 환하게 켜둔 방을 헤아렸습니다. 아파트엔 불 켜진 방이 많았습니다. 저기 어디 내 방에도 불이 켜졌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따스해졌습니다. 밤 기온이 영하라는데 콧속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달았습니다. 불이 환한 창문들 사이로 듬성듬성 아직 빛이 귀가하지 않은 방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수변길을 오래 걸었습니다. 가끔 질문을 받습니다. 글을 왜 쓰냐고, 시를 왜 쓰냐고. 그럴 때마다 막막하고 난감합니다. 왜 쓰는지 아무리 머릿속을 뒤져도 답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쪽엔 흰 종이를 펼쳐 둔 채 다른 쪽에 한글파일 화면을 열어 두었습니다. 답을 찾아가는 일을 계속하겠습니다. 귀가를 기다리는 창문들에 관심을 두겠습니다. 수면 위에서 점멸하는 별의 끝을 잡고 풀어가겠습니다. 여정의 길목마다에서 스위치를 찾겠습니다. 스위치를 딸깍, 올리는 일을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어수룩한 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전북일보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내 고향, 엄마 보고 싶어요. 아버지, 당신의 등을 존경합니다. 아들아, 딸아, 사랑한다. 남편에게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유수진 작가는 대전 출생으로 이화여대 독어독문과, 동 대학원 독어독문과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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