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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의 진정한 의미

유네스코가 문화의 다양성을 보호하고 현대 문명에 밀려 사라지는 소중한 유산을 지켜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목표로 무형문화유산 목록을 등재하기 시작한 것은 2001년부터다. 우리나라는 그 첫 해인 2001년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의 등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판소리, 강릉단오제, 강강술래,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영산재, 남사당놀이, 처용무, 가곡, 대목장, 매사냥, 택견, 한산모시짜기, 줄타기, 아리랑에 이어 지난 5일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열린 제8차 유네스코무형유산위원회에서 김장문화가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됨으로서 총 16건에 이르는 인류무형유산을 보유하게 되었다. 보호받지 않으면 사라질 무형유산본인은 지난 7월부터 본 기고를 통해 짧고 부족한 지면이지만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되어 이제는 우리의 문화유산을 넘어 세계인들이 함께 보존하고 지켜 나아가야 할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통문화에 대해 알아보고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각각의 의미 등을 살펴보았다. 공교롭게도 지난 5일 새롭게 우리의‘김장문화’가 세계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는 경사를 맞게 되었고,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을 주제로 글을 쓰고 있던 나에게도 더욱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문득 ‘인류무형유산 등재가 마냥 좋기만 한 일일까?’‘왜 이렇게 많은 유산이 등재 되는 것인지?’에 대한 궁금함에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기준을 살펴보았다. 기준에는 다양한 조건과 요건이 있지만 그 중 눈에 띄는 한 가지 기준이 있었다. 그 하나는 바로 ‘사라져버릴 수 있는 문화유산의 보존과 보호’라는 기준이었다. 이는 바꾸어 이야기하면 이미 그 무형유산 자체가 보호 받지 않으면 사라질 수 있는, 동식물로 비유하면 멸종위기에 처해 있는 ‘멸종위기종’ 만큼이나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등재된 김장문화만 하더라도 겨울철 음식문화와 관련된 우리 민족의 독특한 생활양식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은 점이 대부분이기 하지만, 한국인들의 식생활문화와 주거양식 등이 바뀌면서 점차 대한민국의 가정에서 김장을 하는 가정이 줄어들면서 김장문화가 점차 퇴색되어 사라져 가고 있다는 점도 인류문화유산 등재 권고 이유 중 한 가지로 작용하였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멸종위기에 처해 있는 동식물종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그들이 스스로 자연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순응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인간의 자연파괴와 난개발, 무차별적 자연훼손 등 인위적 요인으로 인한 멸종위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인간은 사라져 가는 동식물에 대해 무감각하며 그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이고 가치 있는 것들인지 인식하지 못한 채 영원히 자연에서 사라져 버리는 돌이킬 수 없는 극한으로 그들을 내몰고 있다. 우리 문화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현대화·세계화라는 거대한 사회적 물결과 흐름 속에서 우리 전통문화가 가지고 있는 순수한 아름다움과 정신문화적 가치에 대한 깊이 있는 사고나 고민 없이 ‘남’의 생각과 ‘남’의 옷을 내 것처럼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입으며 우리의 소중한 전통문화는 소홀히 함으로써 ‘멸종위기’로 내 몰았던 것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세계인과 공유해야 할 우리문화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의 등재는 정말 자랑스럽고 우리가 꼭 보존해야 할 세계인의 인류문화유산임으로 이를 널리 알리고 자랑하며 보존해야 함은 당연지사다. 하지만 그에 앞서 반드시 우리가 깊이 생각하고 함께 공유해야할 것이 있다. 유네스코 등재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이 지니고 있는 진정한 의미! 우리가 그것들을 바라보며 가져야할 사회적 가치가 무엇인지! 우리가 후손들에게 물려 주어야하는 진정한 문화적 가치가 무엇인지! 깊은 고민과 성찰 후 정제(精製)되어 나온 결정(結晶)! 그것이 바로 우리가 세계인과 함께 공유해야 할 진정한 의미의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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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2.24 23:02

조금은 더 불편하게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엔 낯선 먼 곳에 자동차로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지도가 필수였다. 지도를 따라 가다가도 중간에 차에서 내려 길을 물어야만 하기도 했다. 여러 번 도상훈련을 했음에도 길을 잘못 들어 고생한 경험도 있다. 그 시절엔 어떻게 살았을까? 얼마나 비효율을 견디며 귀찮은 일들을 감내해야 했었을까? 지금은 얘기가 다르다. 우리에겐 친절하기 그지없는 내비게이션이 있다. 어떻게 인간이 이렇게 편리한 도구를 만들 수 있었을까, 지름길로 안내해 줄 뿐만 아니라 과속단속 장비가 있는 위치까지 알려주어 과속을 하다가도 단속 카메라 앞에서 속도를 줄이게도 해준다. 신기하기만 하다. 친절한 여자의 목소리를 따라 좌회전하라고 하면 좌회전하면 된다. 유턴하라 하면 유턴하면 된다. 어디를 가든지 길을 헤맬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능소능대하다. 내비게이션에게 빼앗긴 것은 없는가“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인용한 글은 헝가리의 철학자 게오르그 루카치가 쓴 〈소설의 이론〉 첫머리에 나오는 부분이다. 어쩌면 별빛에 지도를 읽으며 별빛을 따라 여행을 하던 시대가 행복했었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불편하고 비효율적이고 소모적이며 많은 시행착오를 각오해야만 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행복했었다고? 무슨 뜻일까?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도 별을 보고 가야 할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이 사람과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과 우주와의 총체적 연관성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이 되겠다. 여기서 말하는 행복의 의미는, 오늘날처럼 기계문명 속에서 그것이 제공하는 편리함 안에서만 살아가려는 대신에, 인간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 사회와 자연과 우주와 통섭하며 그것을 몸으로 읽어내며 살아가는 기쁨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자. 내비게이션에게 빼앗긴 것은 없는지. 오직 내비게이션이 일러주는 대로 꺾고 틀고 늦추고 돌고 멈추고 하다 보니 주객이 바뀌지는 않았는지. 길은 단순히 목적지를 향해서 뚫린 물리적 공간만이 아니다. 길은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일 수 있다. 그 안에 인간이 쌓아놓은 문화와 역사가 오고가고 길 밖으론 또 다른 세상이 길에 면하여 펼쳐져 있다. 길 위엔 나와 동시대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나간 시간의 인간들의 발자취도 새겨져 있는 것이다. 물론 자동차로 이동하면서 길 위에 펼쳐진 문화와 역사와 인간과 풍광을 모두 체험한다는 것 자체가 어렵긴 하지만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따라가서 목적지에 도착하기만 하는 여행이란 더욱더 이것들을 접하기는 난망하다. 실패·방황이 삶을 더 풍요롭게 한다그렇다고 오늘날 번잡한 삶 속에서 내비게이션의 역할이 무용하다는 말은 아니다. 내비게이션이나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 문명의 이기에 지나치게 의존해 살아가는, 그래야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사고와 그런 삶의 모습이 얼마나 비주체적인가, 나아가 인간 스스로를 소외하는 일인가 말하고자 예를 들었을 뿐이다. 기계 따위가 답을 다 알려주는 삶은 얼마나 재미 없을 것인가, 좀 느리고 좀 불편하고 좀 덜 효율적이면 어떤가? 인생에 지름길이 많으면 생이 짧다는 농담 아닌 농담도 있다.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는 어느 시인의 시 구절을 기억한다. 자신이 주체가 되어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수와 실패와 방황을 겪으며 삶은 더 풍요롭게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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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2.17 23:02

김장문화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축하하며

한국의 ‘김장문화’(Kimjang: Making and Sharing Kimchi in the Republic of Korea)가 지난 5일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열린 제8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에서 인류무형유산(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으로 등재됐다.UN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보건기구(WHO)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국제 식품규격 위원회(Codex·코덱스)에서는 주원료인 배추를 절임 하여 고춧가루, 마늘 등 양념류를 혼합하여 젖산 생성에 의한 적절한 숙성과 보존성이 확보되도록 포장되기 전후에 저온에서 발효된 제품으로 김치를 정의하고 있다.가족 중심 대량 김치 담그는 일 드물어하지만 김치가 한국의 전통 음식이라는 것조차 모르는 외국인들이 더 많다. 한식(韓食) 세계화를 위해 이곳저곳 뛰어다니면서 자주 들은 질문이 “도대체 한국 전통 음식이 무엇인가?”라는 것이었다.김치와 같이 채소를 절이거나 발효시키는 식품은 다른 나라 문화권에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가족 공동체를 중심으로 비슷한 시기에 대량으로 김치를 담그는 일은 드물다. 무형유산위원회에서도 이 점에 주목해 “한국인의 일상생활에서 세대를 거쳐 내려온 김장이 한국인들에게는 이웃 간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는 한편 그들 사이에 연대감과 정체성·소속감을 증대시켰다”면서 “김장의 등재는 비슷하게 자연재료를 창의적으로 이용하는 식습관을 가진 국내외 다양한 공동체들 간의 대화를 촉진할 것”이라는 평가와 함께 등재를 결정했다.이로써 우리나라는 종묘제례 및 종묘 제례악, 판소리, 강릉단오제, 강강술래, 남사당놀이, 영산재,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처용무, 가곡, 대목장, 매사냥, 줄타기, 택견, 한산 모시 짜기, 아리랑, 이번에 김장문화 등 총 16개의 인류무형유산 등재 목록을 가지게 되었다.한편 현재까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된 전 세계의 음식 문화를 살펴보면 프랑스의 미식술, 그리스와 스페인 등 4개국의 지중해 요리, 멕시코 전통 요리, 일본 전통음식문화인 와쇼쿠 등 5건이며 우리나라의 김장문화가 6번째 등재를 하였다.이와 반면에 “김치가 인류무형유산인 것처럼 알려지면 상업화에 이용될 수 있다”고 경고하며 특정 음식은 인류무형유산에 오를 수 없다는 유네스코 측의 발표는 음식문화의 독창성과 전통성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이런 세계적인 추세에 비춰 볼 때 전북지역 음식문화 자산의 발굴과 보존, 활성화는 어느 때보다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를 제시한다. 전북의 음식이야말로 어느 지방도 따라올 수 없는 맛의 풍류와 멋의 전통, 나눔의 공동체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음으로써 오랜 세월 대대로 이어온 인류무형유산으로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도내 음식문화자산 발굴 활성화 시급김장 문화에 이어 또 다른 우리의 전통 음식이 인류무형유산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전통 음식의 원형을 찾아 복원하는 일이 중요한 일이다.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로 지정된 전주는 그런 의미에서 특별하고 중요하다. 지역의 음식 문화를 보존, 발굴, 발전의 과정을 체계적으로 계획하고 준비해서 전북음식문화가 또 다른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는 토대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음식 관련 행정, 학계, 전문가들의 적극적인 활동과 역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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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2.10 23:02

문화 송년회 '일석삼조'

송년회가 앞당겨지고 짧아졌다고 한다. 예년에는 연말까지 이어지던 직장, 동호회, 각종 모임 등 술자리를 위주로 했던 송년 풍경이 많이 달라진 모습으로 12월 중순이면 거의 끝이 난다하니 합리적인 생활의 패턴이 생기나 보다. 몸을 망쳐가면서까지 한해를 요란하게 접었던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그 대신 문화예술과 레저, 스포츠로 화합을 다지는 기회로 활용하는 경우가 늘었다 하니 놀랍고 반가운 일이다. 우선은 어느 순간까지 망년회로 불리며 한 해의 안 좋은 기억들을 잊는 것에 치중해 오늘을 통해 과거를 부정하는 의미에만 집중했던 이 모임들이 이제는 오늘을 기해 내일을 기약하는 순기능을 더했다는 것이고, 거기에 더해 오직 술을 매개로 했던 것을 예술 감상, 공유하는 레저나 스포츠 영역으로까지 확대했다는 사실은 더욱 의미를 가진다 하겠다.술로 몸 망쳐가며 노는 모임은 그만원래 우리에게는 망년회라는 말이 다른 뜻으로 쓰였다. ‘망년(忘年)이란 ‘나이(歲)를 잊는다.’는 뜻으로 나이는 어리지만 그 사람의 재주나 인품을 보고 사람 사귀는 것을 ‘망년지교(忘年之交)’라 했다. 언제부턴가 정확한 시작인지 모를 이 망년회는 명백하게 일본 식민지 시대 산물이다. 일본에서는 천여 년 전부터 망년 또는 연망(年忘)이라 하여 섣달 그믐날 즈음에 친족, 친지들이 모여 술과 춤으로 흥청대는 세시 풍속이 있었으며 이것이 망년회의 뿌리가 됐다고 한다. 그들의 풍습이 자연히 우리에게까지 전해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고유의 풍습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 수세(守歲)라 하여 섣달 그믐날이면 온 집안에 불을 켜놓고 조상신의 하강을 경건하게 기다리는 성스러운 밤이었다. 조상신이 일 년 내내 집안사람들의 행실을 지켜보았다가 섣달 스무 나흗날 승천해 옥황상제에게 고하고 이날 밤에 하강하는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따라서 연말은 일 년 동안 자신의 처신에 대한 심판을 두려워하며 그 처분을 기다리는 엄숙한 시간였으며 경건한 가운데 한 해를 돌아보며 자기 반성을 하는 흥청거림과는 거리가 먼 시간였던 것이다. 힘겹게 이끌어왔던 한해를 같이 돌아보며 반성하고 새로운 출발점에 서서 다음해를 다짐하는 의미로 변화된 송년회는 그 이름의 변화로 인해 일제시대 잔물을 떨쳐내었고, 새로 부여되거나 우리 고유의식이 지녔던 의미를 되새기는 변화를 보여 이것만으로도 이미 많은 긍정요소를 품게 됐었다 하겠다. 하지만 여전히 술집에서 시작해 망년에만 치중하는 모임이 대부분인 것이 현실이다. 이에 새로운 송년회 모델을 제시하고 한다. 영화관이나 공연장, 전시장, 실내 골프장, 볼링장, 탁구장 등의 티켓을 끊고 그 시간 전·후로 주변의 음식점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고 문화나 레저 활동을 하고 나서 그 소감을 피력하는 자리로 이어가자. 그것이 술집이어도 좋고 찻집이어도 좋을 것이다. 이어서 지나간 한해를 돌아보고 새로운 해를 설계하고 다짐하는 귀한 자리를 이어간다면 충만한 감동과 자기만족을 얻고 오늘과 내일을 돌아보고 계획하는 일석삼조의 귀한 시간이 될 것이다.문화·레저 활동하며 송년·신년 맞이많은 사람들이 한숨을 쉬는 연말이다. 택시와 대리운전자는 손님이 없다 하고 음식점도, 심지어 술집마저 연말 대목과는 상관없는 오늘의 송년 분위기에 우울해 한다. 절제 속에 건전하게, 하지만 소비가 이루어지는 문화와 예술을 즐기며 치르는 송년모임으로 이들의 한숨이 바쁜 손님맞이에 가쁜 숨으로 바뀌게 하고, 본인들도 뿌듯한 새로운 송년 문화를 만들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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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2.03 23:02

유네스코 등재 강릉단오제·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어린 시절 학교를 마치고 우리 동네를 들어서려면 금방이라도 안아 줄 듯 거대한 팔을 벌리고 서있는 당산나무가 있었다. 평상시 당산나무 아래는 동네에서 가장 좋은 쉼터이자 놀이터였다. 어르신들은 한가로이 장기를 두다가 며느리가 내어온 두부김치 막걸리 한 사발에 맛깔 나는 노랫가락 한 자락과 너털웃음 얹으셨고, 아이들은 당산나무에 기대어 연신 말뚝박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그 당산나무는 이 모든 것들을 포근하고 지긋이 감싸주었다. 이렇게 우리들에게 유년시절 아름다운 그림으로 기억되는 당산나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들이 있었다. 바로 어떤 의미인지 오색의 천으로 그 몸을 휘감고 있었다는 것이다. 동해안에서 가장 규모 큰 마을축제도대체 무엇일까? 원인은 ‘굿’이다. 그 마을과 마을 사람들의 안녕과 기원을 담아 굿판에서 사용되거나 이에서 비롯된 형형색색의 천과 띠, 금줄 등이 한아름 당산나무를 휘감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굿판은 한 사람이 벌리는 그 사람만을 위한 위안의 자리가 아니었다. 굿판이 벌어지는 날이면 온 동네사람들은 당산나무 아래 함께 모여 굿판을 타인을 진정으로 위로하며 기원해주었고, 그 자리를 통해 마을 공동의 안녕과 평원을 기원하는 공동체의 정신이 녹아있는 공동체 행사였던 것이다. 특히, 우리민족의 공동체 의식을 가장 원형있게 간직하며 전승되어 오고 있는 강릉단오제(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 2005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와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이 바로 그 것이다. 강릉단오제는 음력 5월 5일 ‘높은 날’ 또는 ‘신 날’이란 뜻의 수릿날 개최되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축제로, 마을을 지켜주는 대관령 산신을 제사하고, 마을의 평안과 농사의 번영, 집안의 태평을 기원한다. 강릉단오제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매년 3, 4, 5월 중 무당들이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3일동안 굿을 벌였다는 남효온(南孝溫 1454~1492)의 문집 〈추강냉화(秋江冷話)〉 기록과, 조선 중기의 문신 허균(許筠)의 문집 〈성소부부고(惺所覆藁)〉에 강릉단오제를 구경했다는 기록이 있다. 강릉단오제는 제관의 의해 이루어지는 유교식 의례와 무당들의 굿이 함께 거행되는 동해안에서 가장 규모가 큰 마을축제로 수많은 군중이 모여들고 난장이 크게 벌어진다. 특히 관노가면극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무언극으로 대사 없이 몸짓으로 관객을 웃기고 즐겁게 한다. 민간신앙이 결합된 우리나라 고유의 향토축제이며, 지역주민이 화합하고 단결하는 협동정신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유일 해녀굿…공동체 강조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은 제주시 건입동의 본향당(本鄕堂)인 칠머리당에서 하는 굿으로, 건입동은 제주도의 작은 어촌으로 주민들은 물고기와 조개를 잡거나 해녀작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마을 수호신인 도원수감찰지방관(都元帥監察地方官)과 용왕해신부인(龍王海神夫人) 두 부부에게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비는 굿을 했다. 즉, 이 굿은 영등신에게 해녀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우리나라 유일의 해녀굿으로 특이함과 학술적 이유로 문화재로 인정을 받고 있지만, 해녀들 뿐 아니라 배의 주인, 어업관계자는 물론 제주시내 전체 해녀들이 함께 참여하는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 의식이라 할 수 있다. 하루하루 타인을 의식하며 경쟁속에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잠시라도 ‘함께’라는 행복감을 줄 수 있는 우리의 소중한 전통문화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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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1.26 23:02

좋은 하루 되세요?

"짜장면 값 얼마예요?" "예, 5천원이세요." 좋다. '자장면'이 표준어이던 것이 현실발음을 인정하여 '짜장면'도 표준어로 인정했으니 그건 그렇다 치자. 그러나 그 짜장면을 높여야 이유가 아무 것도 없다. '짜장면' 자리에 높여야 할 사람이 온다면 모르되 "-이에요." 라고 하면 그만이다. 이 경우 문장의 주체를 높여주는 '-시'가 들어가면 상대를 높이는 게 아니라 짜장면을 높이는 잘못된 높임 표현이 되고 만다. 요즘 물건을 사러 매장에 들어가면 너무도 흔히 접하는 표현이다. "짜장면 언제 나와요?"라고 물으면 "지금 곧 나오세요." 하는 게 예사다. 짜장면을 높이는 꼴이어서 겸손도 지나친 겸손이다. 사람이 아닌 이상 이 표현은 옳지 않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정도가 옳아"좋은 하루 되세요." 흔히 듣는 인사다. "행복한 쇼핑 되세요." 이 문장 표현에서 "되세요."의 주체는 '당신'이다. 높임말을 사용했을 뿐이지 명령형이다. '당신'에게 '좋은 하루', '행복한 쇼핑'이 되라고 명령하는 것이다. 어떻게 사람이 '좋은 하루'가 될 수 있으며 어떻게 '행복한 쇼핑'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너는 착한 사람이 되어라."라고 한다면 '너' = '착한 사람'의 등식이 성립된다. '당신' = '좋은 하루', 이런 등식은 성립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좋은 하루 보내세요.', '행복하게 쇼핑하세요.' 정도가 옳겠다. 이처럼 잘못된 표현을 우리 생활 주변에서 찾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서 오세요."는 옳은 표현이다. 그러나 "어서 오십시요."는 '어서 오십시오.' 로 바꿔야 한다. 우리말 '되다'도 흔히 잘못 쓰는 예 가운데 하나다. "됐다"라고 해야 할 것을 "됫다"라고 쓰는 경우가 참 많다. "돼었다." 로 쓰는 경우도 없지 않다. '되었다'의 줄임꼴인 '됐다'와 헷갈리는 것이다. 공문서는 물론이고 TV 자막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예들이다. "먹으세요." "죽으셨어요." 라는 잘못된 표현도 가끔 본다. 우리말 '먹다'와 '죽다' 같은 경우는 높임말이 따로 있어서 '-(으)시'를 넣는다고 말이 되는 것이 아니다. '드세요.' 혹은 '잡수세요.', '돌아가셨어요.' 해야 옳다. 한 강장제 음료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 말, "피로회복"은 어떤가? '회복'이란 말은 본래의 상태로 돌아간다는 뜻 아닌가? '건강회복'은 그래서 건강한 상태로 돌아간다는 뜻이므로 조어가 자연스럽다. 그러나 피로했던 상태로 돌아가게 하기 위하여 강장제를 마시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피로해소'나 '피로제거'가 옳은 표현이 아닐까? 흔히들 젊은 아내들이 남편을 두고 "오빠"라는 호칭을 쓰는 것을 자주 본다. 오빠와 여동생처럼 만나 사귀었을지라도 결혼을 해서 부부 사이가 되었으면 근친을 이르는 '오빠'라는 표현은 아무래도 잘못된 것 아닌가?잘못된 언어 습관 고치는 노력을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은 언어 표현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잘못된 표현이 빠른 속도로 일반화 되고 있다. 한번은 가게에 들러 잘못된 표현을 접하고 바로잡아주려고 점잖게 지적했다가 오히려 간섭하지 말라는 말을 듣기까지 했다.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의 글쓰기와 말하기 습관을 지켜보자면 어른들의 잘못된 언어습관이 그대로 옮겨온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잘못된 언어 표현 몇 가지로 예를 들어보았다. 언어는 사회구성원들 간의 약속임을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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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1.19 23:02

'열공'한 당신, 즐겨라!

지난 7일은 2014 대학수학능력시험이었다. 올해 수학능력시험이 이제 모두 끝이 나고 지금 이시간이면 수험생들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이 세상 가장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참 수고했고, 고생했다"는 말로 그동안의 노고에 대한 격려를 대신해 주고 싶다. 몇 년 동안 착실하게 준비해온 수험생들은 다소 아쉬운 점도 있을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홀가분한 여운도 남게 되었을 것이다. '만능티켓'으로 돌아온 수능 수험표하지만 축제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수험생을 대상으로 한 각종 할인 혜택과 이벤트가 올해도 어김없이 펼쳐질 예정이기 때문이다.수능이 끝나면 족쇄 같았던 수험표가 '만능 티켓'이 돼 돌아온다. 각종 공연과 테마파크에서 수험표를 지참한 학생은 물론, 동반인까지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곳이 적지 않다. 공연을 볼 생각이 없더라도 일단 수험표를 주머니에 넣고 밖으로 나서자. 뜻하지 않은 극장, 소극장 등에서 티켓 창구에 붙어있는 '수험생 할인'이란 반가운 문구를 발견할 수도 있다.하지만 최근엔 공연장·놀이동산· 영화관 등 수험생을 대상으로 다양한 수험표 할인 이벤트가 쏟아지자, 인터넷 유명 중고거래 카페에 수험표 매매가 거래되고 있다는 보도를 접했다.인터넷 중고거래 카페를 통해 수능 하루 전날부터 '수험표 팔아요', '다양한 할인받을 수 있는 수험표 사세요', '수험표 파실 분 없나요' 등 제목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는 것이다. 금액은 보통 3만원부터 10만원까지 다양하단다. 수험표 구매는 즉시 이뤄진다. 패밀리레스토랑, 롯데월드, 에버랜드는 물론 미용실, 성형외과, 안과(라식수술) 등에서 할인은 물론 경품까지 다양하게 주기 때문에 구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 대학생들조차 몇 만원을 벌기 위해 수능 응시원서를 접수하고 이를 되파는 일을 하고 있다고도 한다. 정부와 자치단체는 수험생 자신의 심신을 제어함으로서 몸과 마음을 풍성하게 살찌우는 좋은 충전의 시간으로 채워 줄 수 있는 문화향유의 기회를 제공하는 문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적극 지원하는 정책을 시행하되 이와 같은 불법적인 일을 예방하는 고민도 해야 할 것이다. '문화 향유권'은 행복 추구권에서 파생하는 기본권으로 인정되는, 말 그대로 자유롭게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권리다. 행복추구권은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중 하나로 안락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 고통이 없는 상태나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상태를 실현하는 권리로 정의된다. 헌법은 제10조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관한 규정에서 행복추구권을 같이 보장하고 있다. 행복추구권은 법적 성격이 자연권이며, 포괄적 권리의 성격을 지닌다.수험생에게 문화향유 기회 제공을행복을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장 으뜸가는 가치라고 한다면, 행복의 한 요소인 문화 향유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가치일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직업을 가지는 것 외에 창조적이고 여유로운 삶의 질을 누리고자하는 인간만의 독특한 욕구라고 할 수 있으며 문화를 향유한다는 것은 직접적인 참여와 간접적인 참여가 모두 보장된다는 것을 뜻한다. 학교에서는 지역 문화단체와 행정에서 제공하는 각종 문화 프로그램 정보를 취합해 수험생들에게 적절한 안내와 지도가 필요하며. 필요에 따라 단체로 신청해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가끔은 미술관도 가고 영화도 보고 연극도 한 편 보자. 귀중하고 보석과도 같은 수험생들의 인생 터닝 포인트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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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1.12 23:02

예술문화 정치에 고함

바야흐로 정치(政治)의 계절이 돌아왔다. 정치의 사전적 의미는 '통치자나 정치가가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거나 통제하고 국가의 정책과 목적을 실현 시키는 일을 하다' 또는 '개인이나 집단이 이익과 권력을 얻거나 늘이기 위하여 사회적으로 교섭하고 정략적으로 활동하는 일이다'고 규정한다. 올 겨울과 내년 봄은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을 뺀 모든 정치인과 지망생들의 입지를 가름 하는 시기다. 당연히 주변의 일꾼들도 분주하고 복잡하긴 마찬가지인 시기다.수동적으로 받기만해선 안 돼예로부터 예술문화는 집권자의 의지와 관심의 정도에 의해 그 투자의 질·양과 우선 순위가 결정되어 왔다. 원래 재화를 다루는 일에 약하고 직접적인 사회 참여를 염려하는 시선이 엄격해 대놓고 문화정치를 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의 문화 판도를 보라. 보다 일찍 이러한 편견이나 고립으로부터 벗어나 정치를 잘 활용한 개인이나 단체는 이미 두어 걸음 앞서고 있고 뒤늦게 깨달은 층은 잰 걸음으로 좇아가려해도 그 격차가 오히려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로인해 순수기초예술이라 자부하는 예술문화는 대학으로부터 도태되어가고 사회로부터도 소외되어만 가고 있다. 물론 속을 들여다보면 그것의 중요성은 더 필요한 것이 되었지만 분업화와 전문화가 수반이 안 된다면 성과위주의 사회에서 그나마 버텨내기 힘들어질 뿐이다. 문화정치를 하자. 하지만 준비된 자에게만 기회가 소용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결국 정치도 노하우가 쌓여야만 성공하듯이 각자의 분야에서 어느 정도의 경험과 애정을 가진 자 중에서 기획과 행정에 관심과 흥미를 느끼는 자를 자체적으로 선별한 뒤 예술문화 정치인으로 육성하자. 정치인들이 내미는 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시대는 지나갔다. 언제까지 겸연쩍은 표정으로 지원금을 받고, 기껏 만취해서야 메아리 없는 고성으로 '세상과 타협하지 않겠노라'하며 곤궁한 예술가의 삶을 유지하려 하는가? 물론 모두가 정치를 할 필요는 없다. 예술가는 그렇게 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객관적 위치에서 주관을 발휘할 권리가 있다. 그것이 예술 본연의 성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내부 장악쯤을 최상으로 여기는 해당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속해 있는 분야의 구성원들을 위해 그 갇힌 사고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를 반드시 키워내라고. 다만 그들이 정치(情致 : 여러 가지 감정을 자아내는 흥치)를 가진 자이어야 하며, 정치(精緻 : 정교하고 촘촘함)한 자이어야 하며, 그의 뜻이 초심처럼 본연의 장르를 위한 숭고한 희생정신으로 뭉쳐 마음을 원래의 자리에 두는 정치(定置 : 물건을 일정한 장소에 놓아둠)한 심성을 가진 자이어야 하며, 정치(政治)의 세상에 나가서 정치(鼎峙 : 세 사람 또는 세 세력이 솥의 세 발처럼 대립함)하는 강인함과 능력을 갖춘 자로 성장할 재목이어야 할 것이다. 정치할 예술문화 인력 양성을그런 임무를 받은 자는 자기가 속한 분야에만 충실할 일이 아니라 제안하고 기획하는 예술문화가 지역에 얼마나 큰 파급 효과를 가져 올지 친절히 설명하여 투자를 유도하여야 할 것이고 그 결과마저 책임지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다가오는 정치의 계절에 정치인들은 모든 분야에서 집단 이기적인 요구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준비가 안 된 분야에는 선도적인 입장에서 생색을 내는 일에 그치고 말 것이다. 그런 수동적인 단순 수혜자의 신분을 벗어나려면 지금부터라도 각성하여 예술문화 인력을 선별하고 양성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곧 순수예술을 더욱 더 순수하게 지켜내는 일이 될 것이고 전위병으로 나서는 예술 정치인들의 수고와 희생에 보람으로 답을 하는 유일한 방법이 될 것이다. 이제 예술문화정치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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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1.05 23:02

유네스코 등재 남사당놀이와 처용무

우리나라는 전쟁의 폐허를 헤쳐내고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며 1970~1980년대는 가발과 신발, 1990년대 조선과 자동차, 2000년대 휴대전화와 몇몇 대기업 등 피눈물 나는 땀과 노력으로 이제는 어느덧 IT강국으로서 선진국의 문턱을 넘어서려 하고 있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도 외국인들에게 "KOREA"하면 떠오르는 국가이미지를 물었을 때, 대부분 김치와 자동차 외엔 더 이상 알지도 못할뿐더러 '관심'도 없었다. 옛날 대표적 대중문화 남사당놀이그런데 10여년 전부터 이런 상황이 대역전되어 세계인들이 우리의 문화와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바로 한류가 전 세계 문화의 중심에 우뚝 서서 유행을 선도했고 지금은 그 중심에 아이돌 그룹으로 대표되는 대중문화가 있다. 아이돌들의 춤 솜씨는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현란하고 완성도가 높은 동작들을 구사하는데, 그들은 이러한 춤동작과 노래를 구사하기 위해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10년에 이르는 준비 기간을 거쳐 대중들 앞에 나선다. 바로 이렇게 눈물겨운 기다림 속에서 피나는 노력과 열정으로 준비했기에 세계인들이 그들의 춤과 노래에 반하는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과거에도 대중문화가 있었을까? 당연히 있었다. 지금과는 좀 방식이 달랐을 뿐, 과거에도 엄연히 대중문화는 존재하고 있었다. 멀리 동네 어귀에 꽹과리 소리가 다다르면 그 뒤를 따르는 각 종 악기들과 악사, 광대와 재주꾼, 소릿꾼 등 수 많은 볼거리들이 동네마당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바로 남사당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3호,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이다.남사당놀이는 서민사회에서 자연 발생한 민중놀이로, 꼭두쇠를 정점으로 공연을 기획하는 화주, 놀이를 관장하는 뜬쇠, 연희자인 가열, 새내기인 삐리, 나이든 저승패와 등짐꾼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울러 풍물, 버나, 살판, 어름, 덧뵈기, 덜미 등으로 이루어져 당시에는 볼 수 없었던 수 많은 볼거리로 대중들의 혼을 쏙 빼놓으며 사로 잡았고, 이들이 들려주는 소리판에서 삶의 애환과 지난한 삶을 위로 받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 받았다. 남사당놀이에는 다양한 볼거리가 있었는데 그중에서 덧뵈기는 탈을 쓰고 하는 일종의 탈놀이다. 그런데 궁중정재(무용)중에서 덧뵈기처럼 탈을 쓰고 춤을 추는 유일한 궁중정재가 딱 하나 있다. 바로 사람형상의 가면을 쓰고 추는 처용무(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가 그것이다. 처용무는 통일신라 헌강왕(재위 875∼886)때 살았던 처용이 아내를 범하려던 역신(疫神 : 전염병을 옮기는 신) 앞에서 자신이 지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춰서 귀신을 물리쳤다는 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처용무는 5명이 동서남북과 중앙의 5방향을 상징하는 옷을 입고 추는데 동은 청색, 서는 흰색, 남은 붉은색, 북은 검은색, 중앙은 황색이며, 춤의 내용은 음양오행설의 기본정신을 기초로 하여 악운을 쫓는 의미가 담겨 있다. 1000년 역사 자랑하는 처용무처용무는 그 춤이 기원으로부터 1000년을 넘어 우리민족의 역사를 관통하며 현재까지 전승되어 오고 있는데, 이는 말 그대로 문화민족으로서 긍지를 갖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한류와 아이돌, 남사당과 처용무를 생각하며 천년 후의 우리 문화는 어떻게 그려질지 참으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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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0.29 23:02

문학과 놀자

시는 문학을 말할 때 가장 앞자리에 놓인다. 소설과 수필 등 타 장르와의 우열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의 연원을 더듬자면 소설과는 그 나이를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아득한 옛날부터 가락에 얹어 시를 향유해 왔다. 시는 서, 화와 더불어 학문을 하는 사람이 익혀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영역이었다. 교양을 쌓는 데서 나아가 인격수양의 차원에서도 필수적인 항목이었던 것이다. 무인들도 시를 쓰고 읊었다. 그런데 오늘날은 사람들이 시를 찾지 않는다. 시집은 팔리지 않고 시인들끼리나 시집을 나눠본다고 한다.지식으로 배운 시, 재미없고 어려워사람들이 시를 읽지 않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시 교육에 문제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입시에서 시를 평가하는 방식에 잘못이 있다고 해야 옳겠다. 입시에서 어떻게 문제를 내느냐에 따라 현장에서 가르치는 방법도 내용도 결정되니 결국 같은 얘기일 것이다. 시는 인간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일종의 언어예술이다. 이 감정과 생각이란 매우 주관적이어서 이것을 객관적인 방식으로 가르치고 평가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도 안 가르치고 평가를 안 할 수 없으니 교육 현장에서는 매우 분석적인 방법으로 시를 분해하여 가르치게 된다. 소재가 무엇이고, 시인의 시적 경향은 어떻고, 수사법은, 주제는 어떻고 이런 식이다. 중요한 것은 시에 대한 독자의 심리적이고 정서적인 반응일 텐데 과학지식을 배우듯이 시를 지식으로서 배우게 된다는 뜻이다. 시에는 정답이 없다. 한 편의 시가 독자 각자의 마음에 일으키는 정서적인 반응은 다 다르다. 그러니 정해진 답을 고르게 만드는 평가방식으로는 분명 시를 풍요롭게 받아들이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시를 분석적인 방법으로, 지식으로서 배운 아이들에게 시가 재미있을 리가 없다. 마지못해 배웠던 시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어렵고 재미없다는 이유로 멀리하게 되는 것이다. 전라북도교육청(교육감 김승환),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여 '2013 전국청소년문학축제'가 열린다. 우여곡절이 있었다. 두 해 동안 전북작가회의가 주관하여 '청소년 시낭송 축제'라는 이름으로 열어왔는데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다른 문학단체로 예산을 넘겨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북작가회의는 이름도 바꾸고 장르를 확대하여 다시 축제를 연 것이다. 주최 측에 따르면 문학마저도 시험점수를 잘 얻기 위하여 접해야 하는 현실과 마주한 우리 청소년들이 입시나 성적에 대한 부담을 갖지 않고 '멋대로, 맛대로, 맘대로' 문학을 읽고, 즐기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장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학을 놀이처럼 취미처럼 즐기고, 맘껏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하여 갈수록 위축되어 가는 문학 저변을 확대하고 문학과 향유자간의 거리를 좁히고자 하는 데에 축제의 취지가 있다고 한다.멋대로, 맛대로, 맘대로 문학 즐겨야각박한 입시 위주의 교육 현장에, 그리고 지식으로써 시를 배워야 하는 문학교육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 넣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하는 데 모자람이 없다. 대중문화와 천박한 성인문화에 대책 없이 노출된 우리 아이들의 건강한 정서함양에 기여하는 바도 크리라는 기대를 해본다. 전북도교육청의 적극적인 지원도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을 것이다. 아울러 가시적이고 성급한 결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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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0.22 23:02

가을의 맛, 멋, 흥…전주 음식은 맛있다

맛은 멋에서 온다. 최고의 멋을 자랑하는 전북은 예향인 동시에 맛의 고장이다. 산과 바다, 평야를 둘러싼 전북은 육해공 진귀한 산물들이 공수돼 종류면 종류, 맛이면 맛으로 상다리가 부러지는 푸짐한 상차림을 자랑해왔다. 더불어 예와 전통을 중심으로 변화를 싫어하는 여인들의 솜씨가 비교적 잘, 대대로 전수 돼 까다롭기로 유명한 양반들의 음식이 꽃을 피웠다. 특히 전주의 전통음식은 보편적인 동시에 특별하다. 주위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를 바탕으로 각양각색의 세심한 조리와 정성까지 더해져 어디서나 먹을 수 있으나 맛은 따라올 수 없는 특별한 음식이 되는 것이다. 먹는 사람의 건강을 배려한 음식이기도 해서 웰빙음식, 슬로시티의 맥을 이어 슬로푸드 등으로 이어진 것이다. 보편적인 동시에 특별한 전주 음식이는 음식에 관한 세계 트렌드와도 잘 맞다. 건강 혹은 자연식품에 대한 관심의 증가, 간편한 외식부터 최고급 음식까지 등 다양화되는 소비자의 기호 등 이른바 한식 세계화라는 거대한 변화 앞에서 더디게 적응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전주는 한식의 세계화라는 국내외 큰 흐름 속에서 전라도 음식의 자긍심을 되찾아 외부인들이 서로 찾는 식문화로 재창조가 필요한 때다.여기서의 전주 음식이란 내림음식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음식에 현대인들의 입맛과 구미에 맞는 식재료와 조리 기술을 접목시켜 독창적인 예술품 수준으로 승화시키는 것을 말한다.일단 전주에 사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음식 솜씨가 뛰어나다. 이는 전주가 가지고 있는 좋은 식재료, 음식에 관한 관심과 자부심 등이 작용하고 있다.안타까운 것은 전주에서 전통음식을 보존하고 개발하는 지역의 전문가들의 역할이 미미하다는 것이다. 양보가 미덕인 전주 사람들의 심성이 전주음식에 대한 열정이 가려진 듯하다. 지역의 음식전문가들은 다양한 각도에서 전주음식의 대중화를 위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또 어려운 여건 속에서 그들의 기량을 펼칠 수 있는 장이 다채롭게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전통이란 것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고 나날이 창조되어 진화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을 의미한다. 특히 전주 전통음식에 대해 우리식문화의 가치를 알고 누려야 하므로 지역전문가 뿐만 아니라 업계 종사자, 지역민 모두가 전주 전통음식의 품격을 높이고 즐겨야 한다.맛의 계절, 가을에 전주에서는 '2013 전주비빔밥축제'(24~27일 전주 한옥마을)와 '2013 국제발효식품엑스포'(24~28일 월드컵경기장)가 열린다.비빔밥축제·발효식품엑스포 기대전주비빔밥축제의 메인 프로그램은 '전국요리경연대회'와 '비빔 퍼포먼스'다. 제3회 조리장원선발대회 '나는 쉐프다'에서는 현직 조리주방장들의 요리솜씨 자랑이 한껏 펼쳐지고 전주시 33개동 주민들이 직접 비빔밥을 만들어서 관광객들과 함께하는 우리동네맛자랑 비빔 퍼포먼스 등도 선보인다. '생명을 살리는 발효'라는 주제로 열리는 국제발효식품엑스포에는 된장, 고추장, 김치, 젓갈 등 한국 전통발효식품과 터키의 대표 절임식품인 툴슈를 비롯해 맥주, 치즈, 와인, 사케, 살라미 등 각 대륙의 발효식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두 축제를 통해 거창한 한식의 세계화 보다는 정서적 문화적으로 모두가 즐거움을 음미하는 전주전통음식 체험의 장을 만나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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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0.15 23:02

이제는 군산이고 익산이다

조용하던 천년고도 전주가 주말이면 북새통이다. 한옥마을이 수많은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고, 그 열기가 동문거리로 넘쳐나고 구 도심권에는 숙박시설이 속속 신장개업 중이다. 슬로 시티(Slow-City) 지정을 무색하게 만드는 퀵 시티(Quick-City)의 모습이 걱정스러울 지경이지만 한옥상설공연은 매진기록 중이고 음식점도 제과점도 성업 중이다. 거리에는 각종 공연이 수시로 펼쳐지는 그야말로 문화적 자산과 도시경영이 접목되어 이룬 진풍경이다.전주는 문화적 자산이 많은 도시다. 전통문화 뿐 아니라 각종 장르의 예술이 빠짐없이 갖춰져 있고 그 층도 제법 두툼하여 시행착오 없이 받쳐줄 대안 계층도 즐비하다. 이 유·무형의 문화자원들이 한옥마을의 활황과 더불어 날개를 단 듯 도시에 활력을 안겨주고 있다. 같은 전라북도 안의 다른 도시들과 비교해보면 그 현상은 단연 독보적이다. 남원과 정읍의 경우 시를 구성하는 최소 인구도 이미 무너져 있고, 김제는 마치 서울의 문화예속지인 경기, 인천 지역을 연상시킨다. 익산과 군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 격차가 더 벌어지기 전에 관심과 투자가 가해져야할 시점에 와있는 것이다. 익산은 고도 르네상스라는 좋은 동력을 가지고 있고, 군산은 새만금과 근대문화유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군산근대문화유적지를 제외하고는 실체가 없다. 새만금은 내해 쪽은 허허벌판이고 바다를 사이로 개설한 방조제만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을 뿐이고, 익산의 경우 미륵사지는 동탑만이 절 마당에서 외로움을 키우고 있고, 왕궁 또한 5층 석탑 이외는 왕궁터의 표식만 남아있고, 서동의 생가도, 마룡지도 방치되어 있다시피 하다. 백제문화단지를 신축하고 궁남지 주변에 대단위 연꽃단지를 조성하여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는 부여와 대비되고 있는 것이다. 대선 공약에 익산의 고도 르네상스 사업과 새만금 사업이 포함되어 밝은 전망을 안겨주었지만 시작년도부터 애초의 약속대로 진행이 되고 있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로 미래를 담보할 이 거대 사업들에 민·관이 얼마나 열의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관철하고자 애를 썼는지 돌아볼 일이다. 군산의 경우 근대문화유적이 정비를 통해 조성이 되어 이제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광주와 인천 등 앞서 근대문화유산을 관광자원화 했던 도시들에 비해 투자의 규모도 관리 조직도 아쉬운 상태다. 부여 궁남지가 그랬듯이 아직은 텅 빈 새만금과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군산 근대문화유적의 활성화를 꾀하려면 흡인동력이 필요하다. 전국에서 사람이 모여들고 체류하게 하는 장치로 전국대회 이상의 위상을 갖춘 축제나 예술제가 필요한 이유다. 마침 내년에 전국연극제가 군산에서 개최되어 새로 지은 군산예술의 전당과 근대문화유적 공간 전체를 활용하는 대회로 치러진다. 군산예술의전당에서는 전국의 대표극단들이 경선을 펼치고 진포해양공원에서는 세계 유수의 공연단체들이 정박한 선상에서 화려한 면모를 드러낼 것이다. 기회로 삼자. 군산시민들에게는 고급공연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관광객들이 국제연극제를 보러 몰려들어 근대문화유적을 접하게 하고 새만금에 가서 시원한 호흡 한번하고 군산의 맛깔난 음식을 먹게 하자. 일회성 방문에 그치게 하지 않게 매년 새롭고 놀라운 공연들이 펼쳐지는 특별한 공연예술제를 만들고 상시로 볼거리 가득한 근대문화유적지를 만들어 가자. 이것은 꿈도 아니고 투자대비 이윤을 물씬 안겨줄 군산문화의 키로 작용할 것이다. 이제 한옥마을의 성공으로 문화에 대한 투자가 얼마나 값어치가 있는지 예를 제시한 전주 이외의 도시에 투자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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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0.08 23:02

유네스코 등재 종묘제례악과 영산재

근래 TV드라마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장르가 사극이지 않나 싶다. 아마 우리의 역사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그 속에서 보여 지는 현재 우리의 모습, 또한 옛이야기를 통해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는 점 등이 사극이 지속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사극은 고유의 억양을 사용하며 현대에는 쓰이지 않는 단어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그중에서 왕과 신하들이 극명하게 대치하거나 국정이 위태로울 때 신하들이 왕을 향하여 자주 외치는 대사가 있다. "전하, 종묘사직이 위태롭습니다!" 이렇게 울부 짖으며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한다. '종묘사직'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중요시 여기는 것일까? 종묘사직은 종묘와 사직을 일컫는 말로써, 종묘(宗廟)는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며, 사직(社稷)은 토지의 신 '사(社)'와 곡신의 신 '직(稷)'에게 제사를 지내던 재단을 이름이다. 즉, 종묘사직이 위태롭다는 말은 국가의 정통과 권위, 근간이 흔들리며 위태롭다는 말인 것이다. 종묘는 국가권력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공간으로서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며, 이 곳에서 거행되었던 제례를 '종묘제례(宗廟祭禮)'라고 하며, 제사를 드릴 때 의식을 장엄하게 치르기 위하여 연주하는 기악과 노래, 춤을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이라한다.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은 중요무형문화재 제56호와 제1호로 지정되어 보존·전승되고 있으며,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걸작으로 등재되어 우리 뿐 아니라 세계인이 함께 보존하고 공유하고 있는 소중한 우리 문화이다. 종묘제례악은 조선 세종때 궁중희례연에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보태평(保太平)과 정대업(定大業)에 연원을 두고 있으며, 세조10년(1464) 제례에 필요한 악곡이 첨가되면서 종묘제례악으로 정식 채택되었다. 종묘제례악은 이후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일시적으로 약화되었으나 광해군때 점차 복구되어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다.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이 역대 국가 통치자들의 국가의 안녕과 통치기반의 정신적 근간을 제공하는 국가적 행사였다면, 불교를 중심으로 일반인들이 극락왕생을 꿈꾸며 행하였던 의식이 있었으니 바로 '영산재(靈山齋,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 등재)'다. 영산재는 49재(사람이 죽은지 49일째 되는 날에 지내는 제사)의 한 형태로, 영혼이 불교를 믿고 의지함으로써 극락왕생하게 하는 의식이다. 석가가 영취산에서 행한 설법회상인 영산회상을 오늘날에 재현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불교 천도의례 중 대표적인 제사로 일명 '영산작법'이라고도 한다. 영산재는 제단이 만들어지는 곳을 상징화하기 위해 야외에 영산회상도를 내다 거는 것을 시작으로 행렬의식과 악기들의 연주, 그리고 바라춤·나비춤·법고춤 등을 추며 예를 갖추어 개인의 소망과 영혼의 안식,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린다. 이렇게 종묘제례악과 영산재는 각각 그 대상과 양식은 다르지만 조상과 선대를 공경하는 지극한 존경의 마음을 제례(制禮)라는 경건하고 엄중한 형식과 과정을 통해 후대와 후손들을 정신적으로 결집시키면서 정신문화의 전통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살아 숨 쉬는 '현재 진행형 무형문화유산'이라는 것이 더욱 그 가치를 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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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0.01 23:02

드래그하세요?

컴퓨터의 보급과 인터넷의 발달로 수많은 카페와 블로그가 가상공간에 생겨나고 문학을 하든 그렇지 않든 자신이 활동하는 그 가상공간에 좋은 글이나 시 작품을 옮겨다가 싣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어느 한 사이트에 글이 올라가면 순식간에 그 글이 곳곳에 퍼지는 경우가 참 많다. '복사'하여 '붙이기' 기능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좋은 일이다. 저작권이니 전송권이니 따지기 앞서 좋은 글이 여기저기 퍼져서 많은 사람이 좋은 생각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나쁘게 생각할 이유가 없을 듯도 하다.그러나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다. 필자도 포털사이트에 블로그를 개설하고 글들을 올려놓는다. 이미 발표한 작품들 말고도 미발표작을 저장하여 놓는데 더러 필자의 블로그를 찾는 이들이 미발표작을 복사하여다가 여기저기 올려놓는 일이 종종 있다. 미발표작은 정식으로 문예지에 발표할 때까지 여러 번 퇴고를 거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되면 애초 블로그에 올려놓을 때와는 사뭇 다른 작품이 될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러나 한번 인터넷에 떠돌게 되면 좀처럼 정본과는 다른 모습으로 남아있게 된다는 점이 문제다. 더러 지면에 발표된 정본 작품을 원형 그대로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나 블로그에 옮겨 놓는 경우를 본다. 원작을 훼손 없이 그것도 출처를 밝히고 더러는 시집 소개와 아울러 읽은 소감까지 밝혀놓은 것을 보면 찾아가 절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옮겨가는 글에 오자나 탈자가 있거나 행 나눔이나 연 구분이 잘못되었을 때가 문제가 된다. 이러한 오류를 품고 있는 글을 누군가 그대로 복사해가면 그대로 여기저기 수많은 가상공간에 그대로 떠돌게 된다. 실수로 원작을 잘못 옮길 수도 있겠으나 아예 새로이 가공을 한 경우를 종종 본다. 행도 마음대로 나누고 연 구분도 임의로 다시 하는 것이다. 시를 쓸 때 행을 나누는 것도 연을 구분하는 것도 매우 신중한 선택의 결과이기 때문에 다른 이가 임의로 변형시킬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많은 시인 지망생들이 시집을 사서 읽는 대신 인터넷에 떠도는 시를 가지고 습작의 전범으로 삼아 공부하는 것으로 안다. 가만히 앉아 (원작과 다른 모습일 수도 있는) 좋은 시를 만나고 검지로 마우스 왼쪽으로 드래그하여 마우스 오른쪽 까닥하여 내 공간에 옮기면 끝이다. 얼마나 편리한가? 거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시인 작가 지망생뿐이 아니라 평론을 하는 사람까지도 그런다고 했을 때는 문제의 심각성이 예사롭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연 전에 한 평론가가 친필 서명하여 자신의 평론집을 보내주었는데 깜짝 놀랐다. 맨 첫 페이지에 필자의 졸작이 실린 것이 아닌가? 더 놀라운 것은 원작은 분명 행구분이 되어 있는 시인데도 불구하고 인용된 작품은 산문형태로 되어있는 것이었다. 인터넷에 잘못 가공된 모습으로 떠도는 작품이 그렇게 그 평론집에 옮겨가 있는 것이다. 세상에, 평론가마저 원전을 확인하지도 않고 글을 평하다니!그 이후에도 어느 유명 평론가가 일간지에 아침마다 좋은 시를 소개하고 그것을 다시 앤솔러지로 묶은 적이 있는데 연 구분이 되어있는 필자의 시를 연 구분 없이 소개했다. 그 시는 그 앤솔러지에는 물론이고 지금도 연 구분이 되어있지 않은 채로 인터넷 여기저기에 떠돌고 있다. 그저 무명시인의 작품을 좋이 읽어줘서 고맙게만 생각해야 할까? 유명 시인의 경우엔 이런 경우가 더하지 싶다. '드래그' 참 편리하지만 생각하면 씁쓸할 때가 더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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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9.24 23:02

이제는 상설공연 시대

영국을 여행하는 관광객들은 한 번쯤은 웨스트앤드 100여 개의 극장에서 공연되는 세계적인 뮤지컬을 관람한다. 미국 뉴욕의 브로드웨이 명작 뮤지컬을 보러 전 세계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뉴욕을 방문하기도 한다. 한국의 난타는 1997년 초연 이래 현재까지 800만 관객 관람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이처럼 상설공연을 통한 마케팅이 급부상하는 추세다.다른 각도로 보면 상설공연을 통해 관광객 유치와 관광산업의 발전을 견인하기도 한다. 결국 관광산업과 상설공연은 이제 한 세트로 이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현재 전북에서는 전북도가 지원하는 '한옥자원활용 상설공연'이 전주를 비롯한 전북도 4개 시·군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새만금상설공연 '아리울 쿡'과 브랜드 상설공연도 10월에 선보일 예정이다. 이 중에서 전주문화재단이 주관하는 '한옥자원활용 상설공연'인 마당창극 '천하 맹인이 눈을 뜬다'가 매진 사례를 이루고 있을 만큼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익산, 남원, 고창 등에서 이루어지는 상설공연도 나름대로 선전하고 있다. 남원시는 6년 연속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상설문화 관광상품으로 선정된 '신관사또 부임행차'를 매년 봄, 가을 상설공연을 실시하면서 타 지역 축제나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남원의 문화예술 우수성을 알리고 있다.이와 관련해 최근에 의미 있는 설문조사 결과가 있었다. 한국을 방문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가장 보고 싶은 한국 전통문화 Top 3'는 무용, 풍물, 판소리이며 '가장 좋아하는 한국음식 Top3'는 불고기, 비빔밥, 김치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이 결과는 관광객들의 선호하는 콘텐츠가 전북이 보유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주 한옥마을과 어우러지는 기획력과 마케팅을 강화한 상설공연이 그 주춧돌이다.공연의 상설화가 실현되기 위해 미진한 점도 있다. 상설공연장의 건립, 출연진의 안정적 확보 및 보수, 초기 투자 재원 등이 있지만 현재 가진 조건 속에서 점차 개선해 나갈 수 있는 방안 마련에 행정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초기 투자 재원 확보는 후원사 모집과 기업들과의 메세나 사업 등 여러 가지 노력이 동반된다 하더라도 행정의 재정지원이 꼭 필요한 사항이다.많은 지자체들이 상설공연에 관심을 돌린다는 것은 그만큼 관광산업의 비중이 커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제는 많은 공연 예술단체들도 소모성 1회 공연이 아닌 지속 가능한 상설공연으로 눈을 돌릴 때가 됐다. 상설공연의 성패는 새로운 관광수요를 창출해 지역 경제 활성화는 물론 음식업, 숙박업, 운수사업 등 연계 산업을 활성화하고 양질의 문화 일자리를 만들면서 지역사회의 동반 성장에 기여하는 새로운 모델로 안착될 때 가능해 보인다. 문화콘텐츠, 즉 상설공연으로 먹고 사는 시대도 이제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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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9.17 23:02

문화예술 진작은 순수한 의도에서만 가능

얼마 전 문화융성위원회가 주최한 토론회가 전북도청회의실에서 열렸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안착에 공이 컸던 김동호 위원장이 직접 참석해 나름 기대를 가졌는지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상당수 참석해 위원회의 출발에 대한 기대를 보여줬다. 지역 문화예술계의 고충과 의견을 직접 듣고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목적을 가진 자리였기에 발제자와 토론자를 통해 많은 의견이 쏟아져 나왔고 방청객의 목소리는 제도개선과 인식의 변화를 촉구하는 소리가 줄을 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회의 끝에 이어진 위원장의 결어 부분이었다. 위원회가 실행기관이 아닌 자문기구임을 실토했고 토론과 건의의 내용이 즉각적이고 적극적으로 반영이 되긴 힘들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그 자리에서 조정자의 역에 그친다고 했고 위원장은 인정했다. 왠지 헛힘을 쓴 것 같은 느낌이었다. 16년 전에 김대중 대통령 후보는 문화예산 1% 공약을 내세우며 예술인들을 설레게 했고 그동안 혜택의 뒷전에 있던 단체나 개인에게까지 기회가 제공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다방면에서 인재들이 양성이 되고 고착된 예술관련 기관들과 별개의 단체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각 지역에는 문화 예술관련 대학들이 생겨나거나 관련과 신설이 속출됐고 양산된 문화인재들은 시나브로 관련 기관에 자리를 잡거나 영향력 있는 인사로 자리를 매기기도 했다. 그 후로 오랫동안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던 문화관련 예산이 모처럼 대통령 공약에 포착이 되면서 문화융성에 대한 기대가 다시 부풀어 올랐다. 1%의 효과가 그랬었는데 정부예산의 2%를 문화예산으로 집행하겠다는 것은 문화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훨씬 다양해진 국민들의 문화향유욕구를 채우고도 제공자나 수용자 모두에게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가히 파격적인 배정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무언가 허전한 것이 있다. 그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 인가'가 정해지지 않은 듯이 보인다. 당장 예산확보를 하는 것은 어렵고 '재임기간 안에 실현 하겠다'고도 했다. 물론 이번 토론회가 정부에서 현장의 실상을 외면한 채 이상적인 실행계획을 들이미는 것보다 나은 행보일 수는 있겠다. 다른 예산 수요가 더 긴급하니 문화예산은 조금 더 참을 수는 있겠다. 하지만 기껏 확보한 예산이 개인 기업의 형태를 띠며 이윤추구의 선상에 서있는 대중가수 위주의 '한류'에 더욱 힘을 보태거나 정치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유사 단체들에게 돌아가게 하는 양상은 참기 힘들게 만든다. 누군가 말했다. '한류는 문화가 아니라 바람이다'라고. 순간에 흥했다가 망하는 '바람'에 투자하는 것보다는 인류의 태동과 더불어 삶속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예술문화에 투자해야한다. 제대로 된 편성과 집행으로 더욱 질 높은 공급자와 수요자를 낳고 그로인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게 하는 것이 문화융성의 올바른 결과이지 않겠는가?고대로부터 문화예술은 국가나 귀족이나 기업인 등 기득권층으로부터의 장려책에 기대어 명맥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지원 주체의 의지에 의해서 다른 모습의 결과가 도출되어 왔다. 왕과 귀족은 개인의 신분과시나 국가정책의 도구로 활용한 예가 보이고, 기업들은 절세와 이미지 개선의 이유로 마지못한 투자를 해온 것이다. 그러나 전체 국민을 상대하는 정부는 달라야 한다. 정략에 의한 투자가 아니라 국민 전체의 문화수준을 향상시키고 그것으로 위안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국민들이 늘어나는 결과만을 열매로 받아들여야 제대로 된 문화융성이 꾀해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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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9.10 23:02

유네스코 등재 강강술래와 아리랑

임진왜란이라는 민족적 고난을 이겨내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던 조선의 대표적인 명장이자 민족의 영웅인 이순신장군! 이순신장군과 강강술래가 정유재란(1597년) 당시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끄는데 깊은 관계가 있다는 설이 있다. 즉, 중과부적(衆寡不敵)이었던 우리 수군의 수를 많게 보이기 위해 부녀자들에게 군복을 만들어 입히고 강강술래를 하며 계속 돌게함으로써 왜군에게 혼선을 일으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기여했다는 이야기이다. 강강술래는 노래와 무용, 음악이 삼위일체의 형태로 이루어진 원시종합예술로서, 설소리에 따라 뒷소리를 받고 이에 맞춰 손을 잡고 둥글게 원을 그리며 추는 민속예술이다. 강강술래는 빠르기에 따라서는 긴강강술래, 중강강술래, 자진강강술래로 구분되며, 남생이놀이, 고사리꺽기, 청어엮기, 기와밟기, 덕석말기, 쥔쥐새끼놀이, 대문놀이, 가마등 밟기, 수건 찾기, 봉사놀이 등 다양한 부대적 놀이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밤을 새워가며 가사를 바꾸어 부르는 노랫말 속에는 서민, 그중에서도 억눌려있던 여성들의 삶과 애환을 노래한 구비문학으로써의 가치도 뛰어나다. 강강술래는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도에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얼마전 언론과 인터넷상에서 중국이 우리민족의 '아리랑'을 중국무형유산으로 등록하려 한다는 것이 알려지고, 이것이 우리 민족의 역사적 뿌리까지 통째로 흔들 수 있는 '동북공정(東北工程)-중국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만들기 위해 2002년부터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국가적 연구 사업'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발심이 겹쳐지며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아리랑은 한국인과 한민족을 대표하는 음악으로 당연시 여겼던 우리들에게 중국의 문화유산 등록 추진은 매우 큰 충격을 던졌으며, 이로 인하여 아리랑을 전국민적 관심속에 2012년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 등재하는데 원인유발의 계기로 작용하였다. 아리랑은 한국의 대표적인 민요로 '아리랑', 또는 그와 유사한 발음의 어휘가 들어 있는 후렴을 규칙적으로, 또는 간헐적으로 띄엄띄엄 부르는 한 무리의 노래를 말한다. 아리랑은 한국을 비롯하여 한반도와 해외 한민족 사회에서 널리 애창되는 대표적인 노래이며, 가사가 정해져 있지 않고 주제 또한 개방되어 있어 누구든지 자유롭게 노래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일찍이 강원도 정선을 중심으로 점차 확산되며 활성화되었고, 19세기 중반 서울의 소리꾼이 부르는 대중민요 아리랑이 널리 인기를 끌며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아리랑은 20세기초 일제강점기에는 나라를 잃은 설움과 울분을 담아내며 입에서 입을 통해 세대를 넘어 이어졌고 현재는 한민족을 대표하는 민요로 한민족의 감성을 한 묶음 해주는 씨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강강술래와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감성 속에 깊이 자리매김한 문화적 자산으로써, 민족의 고난과 역경, 민족의 역사를 함께 하며 이를 그 속에 투영해낸 우리 민족의 진정한 문화유산이자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정재하여 녹여낸 정수(精髓)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 우리가 우리의 후세는 물론, 세계인들과 함께 보존하며 그 문화적 가치를 공유해야 할 보편타당한 한국인의 문화이자 세계인류문화유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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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9.03 23:02

예루살렘의 닭

시골생활의 불편함을 각오하고 들어온 터라 어지간하면 참고 살아가는데 특별히 참기 어려운 게 하나 있다. 앞집 닭 울음소리다. 닭 중에 수탉이 한 마리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집 수탉은 자정에도 울고 새벽 두 시에도 울고, 때가 없다. 가뜩이나 잠귀가 밝은 나는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 창문을 다 열어놓고 생활하는 여름날이면 수시로 잠을 깨곤 한다. 이웃 간이라 그저 아무 말 못하고 산다. 인근에 있는 가로등 때문에 새벽이 온 줄 알고 울어대는 것이겠지 생각도 했다. 아무러면 주인이 닭에게 아무 때나 울어라 하고 가르치기야 했겠느냐고 생각하기도 했다. 어느 봄날은 이 인내심이 요구되는 상황을 시로써 극복해보고자 시를 써보기도 하였다. 그 시를 여기에 옮겨본다. 앞집 장닭은 시도 때도 없이 울어서/ 날이 밝았겠거니 하고 일어나면/ 새벽 세 시도 되고/ 네 시가 되기도 했지요/ 유정란 먹겠다고 기르는 그 닭을/ 그러나 나는 모가지 비틀어/ 소주 안줏감으로나 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요/ 밤꽃내 진동하는 6월 어느 날엔가는/ 동네가 떠나가도록/ 유난히도 울어쌓는 웬수 같은 그 놈 때문에/ 웬일이랴 깨어서/ 우리 내외/ 뒤척이다 궁시렁대다 그만/ 갑자기 뜨거워졌겠지요/ 가끔은 아닌 밤에 꼬끼오/ 닭이 울어도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밤꽃내는 왜 스멀스멀/ 온 동네에 기어댕기던지요그런데 올 여름 더위가 얼마나 사납던지 이 시골마을에도 잠을 이루기 어려운 날이 많아졌다. 이 수탉은 예절교육을 전혀 받은 적이 없나보다. 아니면 저도 너무 더워 짜증이라도 난다는 듯 새벽이 오기도 전에 1분에 두 번씩은 우는 것 같다. 농사를 짓는 집 주인에게야 살아있는 알람 소리로 들릴지 모르나 나에게는 꽃잠을 이룰 시간에 잠이 깨면 치오르는 짜증을 재울 수가 없다.닭 울음소리도 나라마다 사람마다에게 달리 들리는 모양이다. 영어로는 'cock-a-doodle-doo' 로 표기한다 한다. 우리는 수탉 울음소리를 보통 "꼬끼오"로 적는다. 그런데 이 수탉은 어떻게 내 이름을 알았는지 '보쿄그~은' 하고 운다. 매번 들어도 그렇다. 아무리 '김철수'로 들으려 해도 그건 아니다. 나에게 무엇인지 채근하는 소리인 것 같다. 무언가 다그치고 나무라는 듯하다. 유치환은 1953년 『예루살렘의 닭』이라는 수상록을 펴냈다. 거기에 표제작으로 실린 글을 옮겨본다. 오늘도 너는 조소와 모멸로써 침 뱉고 뺨치며 위선이 선을 능욕하는 그 부정 앞에 오히려 외면하며 회피함으로써 악에 가담하지 않았는가.// 새벽이면 새벽마다 먼 예루살렘성의 닭은 제 울음을 길게 홰쳐 울고 내 또한 무력한 그와 나의 비굴에 대하여 죽을상히 사무치는 분함과 죄스럼과 그 자책에 눈물로써 베개 적시우노니.시국이 어지럽다. 위선이 선을 능욕하고 악을 저지른 자들은 악을 덮으려 온갖 거짓을 둘러대고 있다. 거리엔 촛불이 늘어나고 있다. 나는 그 앞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 악과 부정을 외면하고 회피함으로써 오히려 악에 가담하고 있지는 않은가? 베드로는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정하고 닭 울음소리를 듣고야 크나큰 죄를 지었음을 깨달아 회개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 새벽에도 닭이 내 이름을 부르며 운다. 닭울음소리에 소소한 짜증에 몸을 바치는 대신 내가 외면한 정의와 나의 비굴에 대하여 참회의 눈물이라도 흘려야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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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27 23:02

지역문화진흥법 제정 대비하자

지난해 4월 유엔이 발간한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를 보면 OECD 국가 중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156개국 중 56위에 머물렀으며, 1인당 GDP가 2만달러를 넘어서는 외형적 고속성장과정에서 보건·복지·문화 등 기대 수요가 상승됐다. 특히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각 지역마다 지역문화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문화정책의 직접적 수혜는 수도권에 기반한 프로그램 및 인력 쏠림 현상으로 지역의 자생적인 문화 프로그램과 성장 동력이 부족하다.여전히 지역 간 문화 환경 격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으며 지역문화를 창조하는 문화예술가들은 열악한 환경과 처우 속에서도 묵묵히 창작 활동을 수행해오고 있다. 이에 따라 이러한 격차를 해소하고 지역의 문화 환경을 개선하기 위하여 국회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지역 문화 진흥을 위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에 지역문화 진흥을 위한 법률 제정 필요성과 공감대가 폭넓게 확산되고 있으며 중앙 정부 차원에서도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가 지난 7월18일 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지역발전 6개 분야 17대 세부 과제엔 지방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도시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외돼 있는 교육·문화·복지 분야 등에서 삶의 질을 끌어올리겠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정부의 17개 세부과제 중 '지역문화 융성 및 생태 복원사업'에서는 지역의 문화재단 육성, 지역문화진흥법 제정 등을 통해 문화자치 분위기를 조성하고 문화자원을 활용하며 도시와 마을이 특화된 지역 브랜드로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지역문화진흥법은 지역문화공동체의 '활동 공간'과 '문화 프로그램' 의 지원, 그 '법적 기반' 마련을 골자로 한다. 또한, 정부가 지역 문화재단을 거점으로 지역문화 인력·프로그램을 육성하고 '문화여가사','문화예술교육사' 등 전문인력을 양성해 배치하는 것도 제도화할 예정이다.그러나 정부의 정책 흐름을 전북이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광역 단위 문화재단은 언제 만들어질지 하세월이 거니와 기초 단위의 재단도 전주와 익산만 설립 돼 있다. 나머지 기초단체는 설립 계획마저 감감 무소식이다.재단 설립뿐만 아니라 지역문화 전반적 실상은 시설·인력·재원 전 분야에서 수도권에 비해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어 지역의 구체적인 모태가 되는 군 단위로 내려 가보면 정말이지 황당한 시민 문화 부재 현상을 목도하게 된다. 시·군 문화를 부양하기 위한 구체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도 않다.수원 지역은 의회에서 활발한 토론과 논의·용역수행 등과 같은 과정을 거쳐 법 제정 이후를 대비하고 있고 또 다른 지역은 지역문화 선언 등과 같은 발빠른 대응을 하고 있는 것에 반해 우리 지역은 관심이 부족하고 심지어 무지하기까지 하다.이제라도 정부의 정책 흐름에 예의 주시하고 법 제정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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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20 23:02

시대의 병을 치유하는 특효약은 예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어단어는 무엇일까라는 앙케트의 결과는 'mother'란다. 유감스럽게도 'father'는 70위 안에도 없다. 1945년 해방둥이 故 황수관 박사가 엄마 뱃속에서 있을 때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 되었다. 그 순간 아버지는 재빨리 혼자 피하면서 '빨리 따라와!' 했는데, 어머니는 임신 9개월째인 몸으로 두 딸을 안고 나오려고 기를 쓰고 있었단다. 그게 바로 어머니다. 품고, 안고, 자신이 망가져도 자식을 끝까지 지고 가는 게 어머니의 사랑 방식이다.5.16 이후, 군사문화는 절대복종을 충효로 절묘하게 포장하여 한 시대를 관통하는 사고의 근간이 되게 하였고 엄격한 위계질서가 집단 유지의 유력한 계율이 되게 하였다. 이제 그것은 자유와 자율을 갈망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 퇴색된 듯 보이지만 해당자들은 받은 교육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갈피를 못 잡고 거기에 더해 이전 시대에는 없던 고통을 감수하고 있는 자신의 아이들을 보며 당황해하고 있다.지금의 아이들은 성장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시행착오의 권리를 빼앗기고 있다. 흥미나 호기심의 발현기회는 주어지지 않고 입시지옥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겨우 주어지는 학교와 학원의 틈새시간에 가능한 것이라곤 인스턴트식품으로 배를 채우며 감시와 보호수단으로 주어진 스마트폰으로 하는 게임이고, 제어 불가능한 인터넷이고,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고 분풀이 하듯이 달아대는 악성댓글 뿐인 것이다. 일상의 규제와 불만을 해소하는 그들의 유일한 배설구가 어른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은 큰 문제이다. 이제 진정 무엇이 시대에 필요한 기준인지, 올바른 가치인지 스스로 따져 물어야할 시기가 되었다.얼마 전, 현지공장 설립과 판매증가 등으로 미국에 연착륙한 듯 보이는 현대자동차가 상하관계의 경직성, 강요하는 회식 등으로 현지직원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는 뉴스를 접했다. 지나친 교육열과 부모들의 한풀이식 교육 방법이 더해져 성과지상주의자들로 만든 것이다. 다르고, 튀면 문제라는 기성세대의 나쁜 학습효과가 더해져 미래의 한국 역시 몰개성의 사회가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때이다. 한 배를 탔다고 같은 방식을 강요하지 말고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길을 찾게 해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효약인 예술문화를 접할 시간을 주어야한다. 장르를 제한하지 않고 문화 접촉의 기회를 정기적으로 주면 자살과 폭력, 왕따 문제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물론 예전처럼 일률적인 단체 동원이 어렵다면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긴장을 이완시키고 쉬어갈 수 있는 시공을 확보해줘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여전히 '유익하고 유용한 결정을 내렸으니 따라와!' 하는 아버지 방식의 사랑이 아니라 조금은 번거롭고 인내가 필요하더라도 이 불운한 흐름을 끊을 유일한 방법은 자기희생을 동반한 어머니의 사랑이고 그의 다른 이름이 바로 예술이기 때문이다. 우습게도 나의 공연예술의 창구는 반강제성을 띤 단체관람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신선한 문화충격으로 이어졌다. 지금은 이런 건전한 일탈을 깨어있는 부모들의 자녀나 전공 희망자 등 극소수만 누리고 있는데 모든 것을 강제했던 과거는 문화예술 감상을 장려했는데 상당한 자유를 획득한 오늘은 오히려 그 기회마저 박탈하고 있으니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감동은 따로 발생하지 않는다. 현상을 제대로 진단하고 기성세대의 희생이 전제되어야 진정성이 담보 되고 그 후로 사회적 동의가 가능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기회와 선택권을 넘기는 용기를 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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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13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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