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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금호문화재단 지금, 여기에서...

열렬한 음악애호가였던 박성용 이사장은 열렬한 음악후원자였습니다. 그는 금호문화재단을 만들어 악단을 운영하고 콘서트홀을 지어 음악보급에 힘썼습니다. 한국의 음악신동들에게 명품 고악기를 빌려줘 국제무대에서 악기 때문에 고민하지 않게 했고, 한국 출신의 세계를 빛낸 몇몇 음악가들에게는 항공기 탑승권을 무료로 주기도 했습니다.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을 지낸 그는 음악감상 스타일에서도 다분히 귀족적이었습니다. 간혹 자신의 집에서 지인 몇 명만 초청한 하우스 콘서트를 개최했고, 자신이 좋아하는 악단이나 연주자들이 한국에서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줬습니다.장영주와 함께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을 제2회 통영국제음악제(2003년) 무대에 세운 이도 박성용 회장이었습니다. 하지만 통영처럼 현대적이고 실험적인 성격의 음악제에 빈 필은 썩 어울리는 악단은 아니었습니다. 이 악단의 규모나 음악적 색깔을 보더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빈 필이 8백여 석 규모의 통영시민문화회관 무대에 섰다는 사실은 국제음악계 토픽이었습니다. 통영은 음악제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세계 일류 음악가들이 선망하는 무대를 갖게 되었습니다. 국제적인 음악도시 통영의 토대을 마련해줬다는 의미에서 빈 필 초청의 가치를 인정해야겠습니다.반면에 그의 일류음악가 지원 편력은 상대적으로 그 대열에 끼지 못한 다수의 음악가들을 서운하게 만들어놓기도 했습니다. 몇 년 전에는 한 바이올리니스트의 독주회를 후원해주고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평했다가 감정적인 소송에 휘말리기까지 했습니다.그가 음악에 밝은 귀를 가졌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저는 연주회장에서 음악을 듣고 있는 그를 몇 차례 본 적 있습니다. 그의 모습은 언제나 둘 중 하나였습니다. 훌륭한 연주에 대하여 열광적으로 박수를 치며 경의를 표하는 광경과 어떤 때 시시한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 객석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입니다. 참 솔직한 감상 스타일 아닌가요? 두 달 전, 그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와 친분있던 음악인이나 음악단체 사람들은 아쉬움과 함께 금호문화재단의 앞날을 걱정했습니다. 아마 박성용 이사장 없는 금호문화재단을 상상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하지만 그런 염려는 금방 씻겨졌습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이 새 이사장직을 승계한 것입니다. 알고 보니 금호문화재단은 그들의 선대이자 창업주인 고(故) 박인천 회장의 유업이었습니다. 오늘날 기업이 있게 한 출발지와 그 지역주민들에게 이윤의 일부를 돌려주자는 창업주의 경영이념에서 설립되었더군요. 어쩌면 박삼구 이사장은 열렬한 음악애호가가 아닐지 모릅니다. 따라서 고인처럼 열렬한 음악후원자가 되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점을 환영합니다. 재단이 오너(?)의 취미 생활을 위한 조직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임 이사장은 지난 주 기자간담회에서 문화사업도 기업경영의 하나라고 얘기했습니다. 금호문화재단이 본연의 역할을 다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그는 몇몇 특정 음악가들만의 친구가 되지는 않을 테니까요./배석호(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예술사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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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7.26 23:02

[문화마주보기] 도청과 선화당(宣化堂)

조선시대의 전라 감영 선화당이 위치하였던 구 도청청사는 얼마 전까지 전라북도의 정치적 상징물이었다. 이 자리의 활용 여부를 둘러싸고 일각에서는 전통문화도시 추진의 일환으로 전주의 옛 모습을 복원하기 위하여 선화당 관아 건물군을 재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전통문화도시의 위상에 걸 맞는 상징적인 조형물을 세우기를 바라는 등 여러 의견이 분분한 듯 하다.그러나 선화당의 복원이 지니는 의미와 효과가 얼마나 큰지에 대해서는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전통문화도시를 표방하는 전주에는 아직 상징적인 조형물이 없다. 전주의 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경기전을 비롯하여 다수의 유적이 산재되어 있지만, 고도 전주의 랜드마크로 삼을만한 상징적인 건축물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의아할 정도이다.그 상징물은 순 목조로 된 극히 한국적인 건축물일수도 있고, 고도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양풍의 건물일수도 있다. 흔히 고도에는 순수한 전통건축물만이 어울릴 것 같지만, 설계의도와 역량에 따라 고전과 현대가 얼마든지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중국의 정치와 문화의 상징 천안문광장에 들어서는 프랑스 건축가 폴 앙드레 설계의 국가대극장이나, 프랑스 르네상스 건축의 걸작 루브르 궁전(박물관)의 마당에 들어선 I.M. 페이 설계의 피라밋 형 유리건축이 얼마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 예컨대 전통악기로만 우리의 정신세계를 표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안익태의 한국환상곡이나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은 서양의 그릇을 빌어서도 한국인의 심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전주의 문화를 총체적으로 조감할 수 있고 관광객들의 모든 요구에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한 방문 센터, 그리고 이와 관련된 부대시설들을 아우른 복합 문화컴플렉스를 세워 전주관광의 시발점으로 삼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객사, 경기전, 한옥마을 등으로 이어지는 방문 동선도 자연스럽게 확보할 수 있고 구 도심의 활성화라는 부수적인 효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옛것을 소중히 보존하여 이를 관광자원화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고도 전체의 분위기를 어떻게 형성해 나갈 것인지 그 큰 틀에 대해서도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주5일 근무제의 가족단위 중심의 관광시대를 맞이하여, 체험센터 등의 참여형 문화시설도 중요하지만 옛 건축물들과 오래된 돌담 등이 자아내는 고풍스럽고 차분한 분위기를 가꾸어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요즈음의 관람객은 부채 등을 제작하는 장인의 손재주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고풍스러운 작업장과 그 작업장이 위치한 마을의 고즈넉한 분위기에 취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문화도시 전주는 바로 이러한 점에서 민속촌 등의 인위적인 유사 시설들과 차별화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만일 구 도청청사 자리에 새로운 문화상징물을 세운다면 이러한 전체적인 도시미관의 틀 안에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민병훈(전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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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7.19 23:02

[문화마주보기] 그들은 왜 걷는가

현장음까지 쌩으로 담아서 잘 만든 광고 카피 하나. 당신이 산 영화표가 칸 영화제 수상작 <올드보이>를 만들었습니다. 당신이 산 음악 CD가 아시아의 별 보아를 만들었습니다. 문화에 투자하세요. 우리 모두에게 돌아옵니다. 공짜영화 밝히지 말고 음악 CD도 정품을 사라는 소리인 건 알겠는데, 그 소리를 되씹다가 잠깐 씁쓸해진 건 또 무슨 까닭인가. 얼마 전에 영화판에서 벌어졌던 해프닝 한 토막이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해프닝의 정점에 그 <올드보이>의 주인공이 있었다. 보기 민망하게도 그는 목에 핏줄을 세우고 마이크에 침을 튀기면서 말했다. 우리처럼 예술활동하는 사람이 삶을 지탱하는 이유는 돈이 아니다. 아니할 말로 영화 한 편 출연해서 감독이 요구하는 캐릭터 구현을 위해 혼신을 다해 연기한 대가로 돈 5억도 요구하지 못한단 말이냐. 압권이었다. 억 소리 다섯 개에 피식, 허탈한 웃음까지 나왔다. 문화는 각고의 정신적 산물이다. 인간이 자기정체성을 확립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거기에 투자하는 건 옳다. 경우에 따라서는 투기인들 못하랴. 문제는 즉물적이고 말초적인 시각과 청각 만족에 경도된 우리 모두의 문화 편식 현상이다. 편식은 만병의 근원이라고 배웠다. 문화에 아낌없이 투자하라고 했다. 그 대가는 우리 모두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면서. 확실히 돌아오긴 왔다. 편향된 투자 덕에 황금만능과 물신숭배에 따른 정신 공황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왔다. 공익이라는 이름의 그 광고 카피 속에 당신이 산 시집 한 권이 미래의 노벨 문학상을 만듭니다.라는 한 구절조차 끼워넣을 여유는, 우리에게, 정녕 없었던가. 문득, 밤을 꼬박 밝히면서 시 한 편 소설 한 대목하고 씨름하는 게 일인 몇몇 후배들의 얼굴이 여운처럼 떠올라서, 그래서 더 씁쓸했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바로 그들, 우리 지역의 젊은 시인과 소설가들이 <전북문학지도>라는 생소한 이름의 지도를 그리고 있다. 전라북도 전역을 망라하는 문학적 자산을 지역별로 샅샅이 뒤져서 해마다 한 권씩 책으로 펴낸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주말을 이용해서 정해진 행로를 따라 하루 수십 킬로미터씩 문학 유적지를 탐사하는 것이 요즘 그들의 일이다. 시인의 생가도 찾고, 그 후손들을 만나서 뒷이야기도 듣고, 작품의 배경이 된 자연환경이나 시설도 카메라에 꼼꼼하게 담아온다. 그 길에서 새로운 글감을 얻는 건 뒤범벅된 땀을 말끔하게 식혀주는 소나기 같은 덤이다. 작년에는 고창, 부안, 김제, 군산 등지의 지도를 품격높은 한산모시처럼 촘촘하게 잘 짜서 내놓았다. 이 여름에는 무주, 진안, 장수에 더하여 임실, 순창, 남원 지역을 이 잡듯이 뒤지고 있다. 내년에는 전주, 완주, 익산, 정읍의 문학 유산이 지도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그려지게 된다. 자신들이 쓴 시집이 영화표 한 장에 덤으로 얹혀지는 세태에 가슴이 아려도 그들은 떠난다. 우리 지역의 소중한 문학 자산이라면 풀 한 포기조차 놓치지 않겠다고 물팍 연골이 닳도록 걷는다. 지난 주말에도, 막걸리 한 사발에 목을 축이고 장맛비와 땀에 젖은 바짓가랑이를 철벅거리며 산과 들길을 걸었을 그들의 뒷모습만은, 아무쪼록, 쓸쓸하지 않았으면 한다./송준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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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7.12 23:02

[문화마주보기] 쓰레기와 함께 살기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 나라는 온돌과 마루를 함께 만들어 이용하며 추위와 더위를 피했다. 지혜롭고 독특한 주거 문화를 옛사람들은 갖고 있었다. 잊혀져 가는 한옥의 장점은 또 있다. 옛집은 생명이 살아 숨쉬는 공간이었다. 흙과 나무가 숨을 쉬고, 쥐와 뱀과 제비도 사람과 더불어 사는 곳이었다. 같은 울안에 소, 돼지, 닭 따위의 가축도 함께 살았다. 그 밖의 작은 생물들은 말 할 것도 없지만 쓰레기까지도 함께 살았다. 논밭에서 나온 것으로 양식과 생활용품을 만들었으며 먹고 남은 것은 가축을 먹였다. 그래도 버려지는 것은 거름자리에서 발효되어 다시 먹거리를 키웠고, 배설물도 땅심을 돋우는 귀한 재료가 되었다. 생활용품은 기워 쓰고, 다시 쓰고, 돌려쓰다가 썩어서 자연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쓰레기가 거추장스런 존재가 아니었다. 사람과 어우러져 함께 살다가 흔적 없이 소멸되었다.사람들이 좀 더 편하고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며 열심히 노력한 결과, 함께 살 수 없는 쓰레기를 산더미처럼 남겨 놓았다. 그것들은 소각을 해도 공기 속에서 떠돌고 땅에 묻어도 썩지 않는다. 썩는다해도 심술을 부리며 물과 흙 속으로 스며든다. 그런 줄 알면서도 계속 쓴다는 사실에 마음이 켕긴다. 잘 썩는 비닐이나 플라스틱을 저 비용으로 만들어낼 수 없을까 생각한 것까지가 늘 나의 한계였다.얼마 전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가 차고 넘쳐서 밖에까지 즐비한 봉지들을 보며 당황했던 적이 있다. 음식물 쓰레기 대란이 멀지 않았다고 써놓은 글을 몇 달 전에 읽은 적이 있긴 하다. 알고 보니 전주 시내 음식물 쓰레기 수거량이 하루 200t으로 제한되었다고 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음식물 쓰레기를 집안에 두고 함께 산다는 건 견딜 수 없는 일이다. 음식물 쓰레기조차 갈 곳이 없어져 흉물스럽게 우리 곁을 맴돈다. 요즘은 쓰레기가 덜 나오는 음식을 찾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웰빙이란 말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주로 가공 식품 쪽으로 고개를 돌려야 한다. 제철 과일도 마음대로 사먹을 수 없는 고민을 누가 알아주랴. 쓰레기 문제가 문화인이라 자부하는 우리들의 우아한 삶을 위협하고 있는데 해결하려는 노력은 거북이 걸음이다. 누구의 문제도 아닌 우리의 문제를 서로 미루며 외면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물 걱정 없이 살던 나라에 집집마다 정수기가 들어앉은 것처럼 이미 시판되고 있는 가정용 쓰레기 처리 기계와 씨름할 날이 머지 않은 것 같다. 함께 살 수 없는 쓰레기를 만든 주체는 우리들이고, 그 때문에 고통받을 대상은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이다. 다시금 쓰레기와 함께 살기를 꿈꾸는 것은 무리겠지만 쓰레기 문제를 이대로 두고 맘놓고 살아도 되는 것인가. 눈앞에 닥친 문제 해결도 시급하지만 멀리 생각하며 심각하게 연구해야할 문제이다./한경선(글짓기 논술지도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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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7.05 23:02

[문화마주보기] 줄기세포와 여성

<365일 천국보다 아름다운 세상>은 지역민영방송이 공동으로 제작하는 난치병 환자 돕기 프로그램이다. 환자의 사연을 소개하고 ARS 성금을 모아서 치료비를 지원하고 있는데, 수년 동안 희귀난치병 환자를 돕고 있는 익산 만남의 교회 이해석 목사는 난치병을 일컬어 돈 잡아먹는 귀신이라고 표현한다. 집안에 난치병 환자가 생기면 있는 돈 다 까먹고 결국 목숨까지도 잃게 되는 경우를 드물지 않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얼마 전 촬영했던 한 아이는 뇌종양 발생 1년도 못되어 목숨을 잃었는데, 마지막에 희망을 걸었던 것이 줄기세포 유전자 이식이었다. 1주기 치료에 3천만 원이라는 비용이 들지만 완치 여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 일본의 한 의사를 소개받아 비행기를 타고 일본까지 날아갔지만 이식 후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다. 황우석 교수가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는 말을 듣고 프로그램 제작진은 무척 기뻐했다. 그토록 힘들어하는 난치병 환자와 가족들에게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수많은 환자들이 건강한 세포와 장기를 이식 받지 못해서 생목숨을 잃고 있는데, 줄기세포를 이용해서 본인의 유전자와 똑같은 건강한 장기를 복제해서 이식한다면, 대부분의 난치병이 완치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그런데 이런 획기적인 치료를 가능케 하는 줄기세포의 근원이 난자에 있다는 것을 알고 나는 좀 께름칙해졌다. 황우석 교수는 총 185개의 난자에서 핵을 제거한 후 환자의 체세포에서 추출한 세포핵을 난자에 삽입, 체세포의 핵이 다시 분열을 시작할 수 있도록 전기 자극을 주어서, 185개의 난자 중 간신히 31개의 배반포기 배양에 성공했다. 그 중에서 11개의 줄기세포를 얻어낸 것이다.그렇다면 줄기세포 배양에 필수적인 난자는 어떻게 추출해낼까? 황교수는 국내 의사와 간호사들이 일부 난자를 제공했다고 밝혔지만, 하지만 앞으로 난자기증 문제는 중대한 문제로 떠오를 것 같다. <사이언스>지가 황교수의 연구 결과를 전하면서 '줄기세포 연구를 위한 난자 기증의 윤리 문제'를 다룬 글을 함께 실은 것도 그런 맥락인 것으로 생각된다.「믹스언매치」 연작을 통해 인간복제와 물질문명의 모순을 고발해온 소설가 원종국 씨는 이번 황교수의 연구결과에 대해 신체적 봉건주의라는 표현을 썼다. 여성들이 난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과배란 호르몬제를 투여해야 하는데, 이 과배란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난소 비대, 복수(腹水), 난소 과자극 증후군, 골반농양, 조기 폐경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돈에 의해 난자의 가격과 가치가 좌우되는 현상이 도래할 수 있으며, 난자 제공자와 대리모 역할을 하게 될 여성들의 인권과 건강문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생명을 살리자는 의도는 좋지만 또 다른 생명을 곤경에 처하게 하면서 생명을 살린다면 그만큼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줄기세포 연구가 언제 실용화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지나친 우려도 섣부른 낙관도 금물이겠지만, 줄기세포 문제를 여성의 관점에서 새롭게 바라봐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김선경(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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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6.01 23:02

[문화마주보기] 전주 유감

나는 이때가 좋다. 모내기를 하기위해 물을 잡아 놓은 너른 들녘을 보노라면 나 자신이 그 만큼 넉넉해진다. 또 그런 하루 중에서도 해질녘이면 황홀경이다. 모를 맞이한 무논이 석양의 노을빛까지 담아내니 그야말로 완전한 세상이다.우리가 만개한 봄꽃들을 보며 호들갑을 떨고 있을 때 들녘은 우리의 일상을 위해 소리 없이 가을까지의 긴 여정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이 모든 것은 잠깐이다. 해는 어김없이 지고 어둠이 깔린다. 지는 해를 길게 보니 마침 전주 쪽이다. 어디 전주로 간 것이 해 뿐일까. 사실 전라북도 안에서는 거의 모든 것이 전주로 간다. 전주는 도청소재지이기도하지만 사회 각 분야의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주는 서울을 향해 상대적 빈곤을 이야기한다. 소외되었다며 분개하면서 결국 배려를 호소하는 대상은 전주 뿐이다. 서울 집중의 상황을 타박하면서도 다시 전주 집중화를 꾀하는 것은 자신이 비판해온 권위와 권력으로 군림하고자하는 자기모순에 다름 아니다. 게다가 전라북도의 근간인 도내 시군의 주 산업인 농업을 부끄러워한다. 농촌인 것을, 농도(農道)인 것을 불편해하고 농업이 전주의 발목을 붙들고 있다고 불평한다. 화려했던 전주의 문화축제가 끝이 났다. 전주의 문화축제가 열리는 기간은 농부들이 들에서 허리 굽혀 일하고 있는 때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전주문화는 이 노동 위에 형성되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주 문화축제는 오로지 전주를 위한 축제일 뿐 이다. 이같은 환경은 전라북도의 맏형격인 전주의 도리가 아니다. 전주는 홀로 이루어진 도시가 아니다. 전주는 스스로 전주일 수는 없다는 말이다. 전주문화가 주변문화의 유입과 재정립과정을 통해 형성 되었듯이 혼자 갈 수 없는 것이다. 주변 지역문화의 오랜 전통을 파악하지 않고 당장의 전주만의 문화로 나아갈 때 그 한계는 분명해진다. 더구나 다른 시군의 삶이 농업의 위기로 총체적으로 무너져가고 있는 것을 외면한다면 전주문화는 그 바탕을 잃게 될 것이 틀림없다. 근래 열정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전통문화중심도시만들기의 과정만해도 지나치게 전주만을 위한, 전주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지는 해를 따라가 보면 해가 전주에서는 계란 노른자위 형상을 하고 있음을 자주 보게 된다. 계란이 노른자만으로 온전할 수 없듯이 전주 또한 전주만으로 이름값을 하기 어렵다. 전주의 존재는 이제 서울과 전주의 구도 속에서만 찾아서는 안된다. 전주와 기타 시군들과의 수평적 연계와 연대를 구축할때 비로소 전주는 가장 전주다워질 수 있다. 함께 사는 아름다운 도시가 되는 일은 전주의 선택이다. 전주는 이제 그 고민을 해야 한다. /이현배(옹기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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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5.25 23:02

[문화마주보기] 전주국제영화제를 마치며

5월 6일 금요일 폐막식 리셉션을 끝으로 영화제를 마치고, 휴일 내내 긴 단잠에 빠져들었다. 오랜 단잠끝에 눈을 뜨고 나니 어느새 일요일 저녁, 무언가 허전하고 공허함이 필자의 머리 속을 짓누르며 비로소 영화제가 끝났구나하는 생각이 스친다. 아쉬움도 많았고, 소소한 문제들도 많이 부각되었던 우리의 영화제. 영화제 밖의 제 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다가 직접 영화제 운영을 맡고 보니 여러 가지 일들을 피부로 직접 느낀 계기였던 영화제. 지역시민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이벤트행사 확대와 타지에서 오신 영화매니아를 위한 섹션별 영화프로그램의 정체성 추구 속에서 고민하며 만든 영화제. 너나할 것 없이 전 스탭과 자원봉사자 여러분들의 발품과 땀방울로 얼룩진 영화제. 이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우리 영화제는 이제 내년을 기약하며 또 다른 준비를 해야 한다. 우선 이번 영화제의 성과는 이원화되었던 행사공간을 영화의 거리로 일원화함으로써 관객 집적의 효과를 가져다 주었으며, 구도심활성화 차원에도 일조를 하였다고 자부한다. 또한 전주라는 로컬 이미지를 어떻게 하면 국내외적으로 브랜드화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공격적인 홍보마케팅을 추진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 결과 22대학에서 1,300명이라는 타지 대학생들이 직접 우리영화제를 체험하는 기회를 가졌으며, 국내외 프레스 기자들의 급증 등은 고무적인 일이라고 사료된다. 덧붙여서 지역신문과 방송의 애정어린 시선도 큰 몫을 담당했다. 물론 영화제의 잘못이 크지만, 매년 영화제 시작도 하기 전에 기획 및 홍보 미숙이라는 멍에는 영화제에 큰 짐이었다. 물론 지금도 개선해야 되고 고쳐야 할 부분이 많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문제점을 영화제 이후로 미루고, 영화제 기간중 지면을 통해 깊이 있는 영화토론의 장으로 이끌어 주는 역할을 담당해 주어 감사할 따름이다. 그렇지만 한적하고 조용한 전주국제영화제를 기억하는 영화매니아들은 올해 부쩍 늘어난 야외공연이나 음악 콘서트가 그다지 반갑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여전히 불안한 티켓팅 시스템이나 미숙한 행사진행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남는다. 항상 예산이 걸림돌이 되지만, 영화제의 안정적인 행사진행을 위해서는 타 영화제처럼 상근직원의 확충이 필수적이다. 매년 새로운 인력충원으로 행사진행의 노하우가 소멸되고 새출발하게 되는 영화제 사무국체제의 불안은 앞으로 우리가 풀어 나아가야 할 숙제이다. 지역영화인력을 키워내는 것도 급선무이다.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영화제를 이끌어 갈 수 있도록 과감한 인센티브, 그에 합당한 보수체계와 근무여건 조성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바로 그들이 향후 제10회 우리영화제를 이끌어 갈 주역이며, 전북영상산업의 주춧돌 역할을 담당할 재목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점은 현재 우리 영화산업의 인프라를 통합하는 일이다. 전주국제영화제, 전주영상위원회, 전주독립영화협회 등 영화관련단체 간의 통합추진기구를 두어 영화산업정책이 일관되고 강력하게 추진되며, 영상중심도시 전주을 구축하는 것도 논의되어야 한다. 오늘도 필자는 영화의 거리내 시네마테크를 갖춘 시네 콤플렉스를 꿈꾸어 본다. /김건(전주국제영화제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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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5.18 23:02

[문화마주보기] 축제는 즐기기 나름

방송 일을 하는 관계로 지역의 큰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미리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더러 있다. 이번에도 전주문화축제를 준비하는 관계자들을 미리 만났다. 그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하나같이 너무나 열심히 준비한다는 것이다. 밤잠 못 이뤄가며 행사준비에 전념하는 그들의 소원은 단 하나, 많은 사람들이 축제에 참여해주길 바란다는 것이다.축제는 봄꽃처럼 단 며칠만에 끝나버리지만, 그것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1년 전부터 씨뿌리고 물주고 거름주고 가꿔가며 노심초사 준비한 것들이다. 어떻게 하면 한 사람이라도 더 유인(?)할 수 있을까, 밤낮으로 그 묘책을 궁리하면서.이번 전주4대 문화축제의 특징은, 축제들끼리 벽을 넘어서 하나가 됐다는 것이다. 예년에도 4대축제를 묶어서 하나의 문화축전으로 일컫기는 했지만, 각각의 축제 관계자들은 자기축제 알리는 데만 관심을 쏟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올해는 4대 문화축제 패키지 상품을 만들어낼 만큼 서로 개방적이고 호의적이었다. 내 것이 빛나기 위해 다른 것은 조금 흠집을 내도 상관없었던 옛날의 분위기와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과연 그런 노력이 성과가 있었는지 연일 축제장소에 인파가 북적거린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사람이 많이 몰리다 보면 불편함을 호소하는 민원들도 생기기 마련. 그러나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축제는 있을 수 없고, 모든 사람이 만족하는 축제도 있을 수 없다. 축제에 참여한 사람이 어느 정도 만족하는 축제라면, 그 축제는 충분히 성공했고, 앞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 축제다.밖에서 팔짱 끼고 지켜보면 지적할 것도 많고 눈에 거슬리는 것들도 많지만, 안에 들어가서 참여하고 즐기다 보면 그런 것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난장은 그야말로 축제의 장이었다. 대학초년생이었던 나는 장구를 메고 당시 공설운동장을 빙 둘러 들어선 난장을 돌아다니며 걸립굿을 했다. 당시로서는 꽤 큰돈이었던 10여 만 원이 모아졌고, 걸지게 막걸리 판을 벌였던 기억이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아 난장은 폐지됐지만, 축제란 모름지기 모든 일상사를 잊고 겁없이 빠져들게 만드는 마력 같은 흡인력이 있어야 한다.하드웨어상의 흠이나 모자람은 축제에 참여한 사람들이 메워주면 된다. 그래야 축제에서 사람냄새가 난다. 하비 콕스의 말처럼 축제는 억압되고 간과되었던 감정 표현이 사회적으로 허용된 기회인 것이다. 축제 속에는 고의적 과잉성과 축의적 긍정성이 존재한다. 약간의 과잉과 긍정. 그것이 바로 축제가 갖는 힘이 아닐까. 약간은 과장을 떨어도 용인 받을 수 있고, 조금은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라봐도 괜찮다. 나라안팎으로 어려운 지금, 지역마다 앞다투어 축제를 벌이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축제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좀더 여유롭게 넓혀보면 어떨까?/김선경(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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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5.04 23:02

[문화마주보기] 부패의 문화, 발효의 문화

땅속에서 썩을 때까지 묵힌 배추와 생마늘로 범벅된 김치나 먹는 나라로부터 우리가 뭐 달리 기대할 것이 있겠는가? (미국 시사주간지 뉴욕옵저버 3월 28일자에 평론가 렉스 리드가 기고한 우리나라 영화 올드보이 리뷰)참으로 민망한 말씀이다. 거기에다 대고 옹기 팔아먹자고(?) 옹기에다 담으면 땅속 1미터에 담는 효과가 있다고 했으니 말이다. 변명을 해야겠다. 김치와 된장 등으로 이야기 되는 우리 음식문화의 대표적 특징인 발효는 그 과정이 매우 독특하다. 배추김치를 담근다 하자, 유산균을 따로 배양을 해서 넣는 게 아니라 배추를 소금에 절였다가 이런 저런 양념을 넣는 조건만 만들어 놓고 자연에서 부른다는 것이다. 이런 행위를 사사건건 간섭하는, 심지어는 남의 나라 주권까지 빼앗는 제국주의 속성으로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비교해서 그네들의 발효음식을 먹어보면 이 사람들은 음식을 기절시켜서 먹는 형상이다. 간섭하기 좋아하고, 의심이 많은 그 조심성이 조마조마한 마음에 차마 갈 때까지 못가보고 잠시 기절시켜 놓구서 그걸 자꾸 발효라고 우기는 걸고 보인다. 발효의 본질과 참맛은 그 즈음에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갈 때까지 가봐야, 그러니까 죽어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일단 죽어서 지 본성으로 안 될 놈은 죽어 그이의 말대로 그냥 부패고, 될 놈은 살아 부활, 즉 발효다. 이때의 죽음(부패)은 죽음(부패)이 아닌 것이다. 죽음(부패)위에 우뚝 선 부활(발효)의 과정을 거친 음식이라야 살아있는 사람을 다시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이게 영생이니 이러한 우리의 발효음식에는 생명존중, 자연합일의 하늘의 이치가 담긴 것이다. 이 엄청난 차이를 모르고 자기 무식으로 우리더러 썩은 음식을 먹는다 하니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음식이 먹이이상의 그 무엇인 것은 먹는다는 것이 그 자체의 목적을 넘어서서 많은 것을 함축하며 기호화하기 때문이다. 또 영양 말고도 의례화 되기에 정신의 영역과 함께하는 것이다. 그네들이 말위에서 한 손으로 총을 쏘며 햄버거와 코카콜라, 핫도그와 오렌지소다를 먹으며 힘과 속도로 제국화 시킨 과시문화에서 우리 인류의 행복한 공존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반성할 일도 있다. 어려웠던 시절 그걸 폼나게 여겨 이제 따라하는 요즘의 음식소비문화가 그렇고,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되었다 하면서 그동안 문화적으로는 매우 소홀했던 점이 그렇다. 렉스 리드가 트집 잡은 김치는 이미 세계 속에 우리나라의 문화적으로 규정된 그 무엇인 것인데 김치의 본질을 몰라준다고만 할 일도 아닌 것이다.한반도라는 땅에는 모든 게 담긴다. 공존한다. 발효천국이다. 이 땅에서 그 오랜 삶의 축적위에 아주 훌륭한 발효문화가 형성되었고 우리는 물려받았다. 우리는 이 발효문화를 세계만방에 자부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농업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우리 지역사회와 지역문화가 그 중심에 우뚝 서기를 기대한다. /이현배(옹기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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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4.27 23:02

[문화마주보기] 전주 4대 문화축제 속으로

완연한 봄기운을 느낄 정도로 포근한 4월을 맞이하여 전주는 대표적인 4대 문화축제로 전주의 거리를 구석구석 수놓는다. 4월 28일에 개최되는 전주국제영화제를 필두로, 30일에 전주풍남제, 5월 1일에 종이문화축제, 2일에 대사습전국대회가 열리게 됨으로써 축제의 효율성과 연계 시너지효과를 높이며, 지역시민의 관심을 유도하여 명실상부한 전주 4대 문화축제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우선 전주국제영화제는 시민과 함께하는 영화제라는 모토하에 시민들이 주체가 되는 국제영화제의 성격을 확립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전주라는 로컬이미지를 국제적으로 브랜드화하며, 작품상영과 홍보이벤트를 고사동 영화의 거리로 집중함으로써 관객의 집적화를 꾀하고 있다. 또한 기존의 어려운 영화제라는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서 가족단위 참여가 높은 영화들을 확대하며, 영화 및 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타 시?군민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오랜 전통을 지닌 풍남제는 태조로의 한옥마을에서 온고을의 풍요로운 멋?맛?인심이 넘치는 축제마당을 열어, 방문객들에게 먹거리?볼거리?놀거리의 즐거움을 통해 풍류가 넘치는 흥겨운 축제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한다. 또한 관광객들에게 천년고도 전주의 전통문화를 다양하게 접할 수 있게 함으로써 살아있는 전통문화체험, 다시 찾고 싶은 전주 이미지를 제고시키려고 한다.2005 전주종이문화축제는 천년의 빛 그리고 새로움이라는 주제로 천년의 수명을 지닌 한지와 밝은 미래를 상징하는 빛의 조화를 통해 우리 삶 속에 깊이 자리 잡은 한지문화를 실생활에 다시 새롭게 꽃 피우고자 한다. 더불어 한지패션대전은 한지패션연극과 한지의상체험을 통해 한지패션경진대회의 질적 향상과 전국 의상관련대학의 참여를 적극 독려하고 있다.전국적으로 권위 있는 제 31회 전주대사습놀이는 우리나라 민속음악의 고장인 전주에서 전승되고 있는 전주대사습놀이를 효율적으로 전승?보존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전통국악예술인의 화합을 꾀하고, 민속 문화인 국악을 전국적으로 확산하고자 한다. 올해 전주 4대 문화축제의 특징은 시민들에게 한걸음 다가서는 축제로 또한 축제의 산업화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노력한다. 전주시도 적극적으로 통합홍보 및 원활한 행사지원체계를 만들기 위해 분주하며, 전주시청버스를 4대축제 홍보물로 랩핑하여 전국투어를 실시함으로써 발로 뛰는 홍보를 하고 있다. 또한 주 5일제 근무로 가족중심적 여가생활패턴의 변화에 부응하는 행사들을 구성하고 있으며, 온 가족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적극 배치하여 지역시민의 참여와 만족도를 최대로 끌어 올리고자 한다. 다시 말해 지역 시민들이 다양한 축제 프로그램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제공하여 지역민의 자긍심을 고취시켜 축제 분위기를 고양시키고자 한다. 4월말에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는 우리의 문화축제, 이러한 축제행사에 적극 참여하여 우리 고장을 국내외적으로 알리며 문화를 즐기는 지역시민의 진면목을 보여주자. 자 4대 문화축제에 푹 빠~져 봅~시다. /김건(전주국제영화제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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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4.20 23:02

[문화마주보기] 다양한 주체를 배려하는 지역문화

지역문화는 다양한 주체를 고민하고 배려해야 한다. 중앙에 몰리지 않는 지역간 균형과 다양성을 주장하면서 그 지역 내부에서 다양성을 잃는 것은 건강한 지역문화인의 모습이 아니다.전주를 문화도시로 만들고, 전주의 한 거리를 문화의 거리로 만들 때도 이는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도시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천하는 사람들은, 한정된 대상집단을 중심으로 문화지대를 만들어나가게 되어있다. 하지만 한 지역이나 도시 문화정책을 최초에 세우는 사람들은 그 지역의 모든 구성원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을 해나가야 옳다. 마찬가지로 행정적으로 문화지구를 설정하는 사람들은 중심에 설 집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 지역에서 문화운동을 꿈꾸고 일궈나가는 사람들은 지역주민을 비롯한 모든 구성원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야 한다. 서울의 신촌 홍대앞은 지난 십 년간 그에 관한 교훈을 던져주었다. 대학 캠퍼스는 신촌의 상인이 그곳을 흐려놓았다고 비판하지만, 신촌문화를 연구하고 문화운동을 지속하는 학자와 대학인은 많지 않다. 홍대앞의 예술가들은 홍대앞의 유흥가와 상인을 비판하면서 자신들의 땅임을 주장하지만, 그 지역주민이나 보행자를 위한 고민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한편, 주민이라는 개념이 꼭 주민등록상의 정주자는 아니며 그 지역을 사랑하고 일구는 이들이 모두 주민의 자격과 권리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마다 신촌이나 홍대앞의 주인이라고 외치는 예술가나 카페주인, 상인, 그리고 대학인 등을 바라보면 늘 그런 생각이 떠오른다.또, 누가 홍대앞의 주인인가를 말할 때 간과하면 안 되는 것은 보행자들이다. 부도심의 명소거리를 걷고 이 문화환경을 향유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외부에서 몰려오는 보행자들에게 꿈틀거리는 문화적 힘을 의존해온 그 거리는 의미가 없다. 손님과 관광객을 생각하는 것 역시 그 지역의 수입거리라는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관광객은 그 무대의 주인이기도 하니까.서울의 신촌문화와 홍대앞 문화가 특히 주장하는 것은 정서적 거주자다. 이떤 이들에게는 지역문화 활동가 같은 말 대신 주민의 개념과 지위가 필요하다. 자신들의 정체성이 지역을 운동의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진짜 애착을 갖고 살아가는 곳으로 보는 이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상인 역시 그 지역의 문화예술인과 마찬가지로 대접해주는 게 옳다. 무엇으로 어떻게 그 지역의 문화성장에 기여하는가 하는 문제만 남을 뿐이다.서울의 이 지역에서 가장 제외되는 주인공은 불행히도 지역주민이었다. 홍대앞의 한 주민이 화려한 앞거리가 아니라 동네로 들어오는 뒷골목은 모두 지역주민의 몫이라고 말했다. 예술가나 상인이 아니라 주민들 잘 살도록 하는 조성책, 즉 후경을 잘 가꾸는 사업 중요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전주는 전통문화중심도시이며, 올해 문화의 날 행사 개최지가 되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행사를 열기 전에, 문화적인 땅이 먼저 되어야 한다. 비록 전통문화가 풍부하며, 이름 있고 개성 있는 지역축제도 많지만, 우선 사람들이 모여드는 터가 되어야 한다. 문화가 모이고 그래서 사람들이 모이는 지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문화가 생성하는 지역 말이다. 이것은 예술가나 전통문화인 뿐 아니라, 노인과 청소년, 동네주민을 위한 공간들이 다 숨쉴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전주나 전북의 작은 도시 안에서 이런 문화지역을 그릴 수 있을 때, 자꾸 늙어만 가는 신촌이나 홍대앞이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배울 수 있을 것이다./안이영노(문화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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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4.14 23:02

[문화마주보기] 4월의 시인 신동엽

『창작과 비평』 봄호에 실린 고은 선생의 시가 사람들 입에 올랐다. 「껍데기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시는 '껍데기는 가라//저 60년대 후반 이래/아직껏/껍데기는 가라/껍데기는 가라/입 열면/마구 나와버리는/이 뜨거운 것//허나 어찌 껍데기 없이/내 알맹이 온전히 살아 있으리오/어찌 껍데기 내칠수록/내 엄하고 가련한 알맹이 함부로 내치는 일 아니리오'하다가 결국 '껍데기는 오라 어서'로 마무리짓고 있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신동엽의 시 「껍데기를 가라」를 염두에 두고 쓴 시로, 그 시절의 껍데기와 이 시절의 껍데기가 어떻게 달리 인식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38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를 '껍데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한 시인 신동엽. 요즘 젊은 세대들은 동명이인의 개그맨은 잘 알아도 민족시인 신동엽에 대해서는 잘 모를 것이다. 충남 부여 태생이지만 전주사범학교를 나온 신동엽은 1959년에 등단하여 10년 남짓 작품활동을 하다가 시집 한 권 변변히 펴내지 못한 채 짧은 생애를 마쳤지만, 오히려 사후에 더 큰 관심을 받고 민족시인의 반열에 올랐다.특히 80년대 이후 민족, 민중, 민주 운동과 함께 그의 시는 민족의 현실을 일깨워주는 굳은 결기와 감수성으로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하지만 그의 삶은 그의 결기대로 쉽게 흘러가지만은 않았다. 6.25 이후 부여에 인공이 선포되자 신동엽은 민주청년동맹 선전부장으로 이른바 공산당에 협력했다. 부여가 수복된 후에는 처형을 피해 산으로 올라갔고, 나중에는 그러한 삶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국민방위군으로 들어가지만 이른바 '국민방위군 사건'(국민방위군 고급장교들이 국고금과 군수물자를 착복, 9만여 명에 이르는 방위군이 굶어죽거나 얼어죽은 사건)이 터져 집으로 귀환하는 도중, 극도의 굶주림과 고통 속에서 날로 먹은 참게 때문에 간디스토마균에 감염, 몇 년 후 간암으로 타계한다. 민족이 양편으로 나뉘어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형태의 삶을 견디지 못했던 신동엽은 어느 한편에 가담하는 것 자체를 야만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서사시 「금강」을 집필한 것도 민족사의 큰 물줄기로 과거와 미래를 온전히 기억하고, 또한 그것을 바람직한 모습의 하나로 통합하고 말겠다는 굳은 의지의 천명이었던 것이다. 그가 타계한 지 36년. 문화관광부에서 정하는 이달의 문화인물로 신동엽 시인이 선정됐다. 부여군에서는 4월 9일부터 15일까지 신동엽 시인을 기념하는 다양한 문화행사를 펼치고 문인으로는 최초로 『신동엽 문학도록』을 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시인의 크기와 무게에 비하면 다소 늦은 감도 없잖아 있지만, 문화인물 선정을 계기로 신동엽의 시 정신이 더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 그가 남기고 간 시와 사랑과 혁명에 대한 고백은 아직도 깊은 울림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내 일생을 시로 장식해 봤으면. 내 일생을 사랑으로 채워 봤으면. 내 일생을 혁명으로 불질러 봤으면. 세월은 흐른다. 그렇다고 서둘고 싶진 않다.'/김선경(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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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4.06 23:02

[문화마주보기] B급 문화일꾼

무모한 일을 하나 붙들었다. 나무를 도끼로 눕혀 다듬고 있다. 그 나무는 아카시아나무다. 자주 산보가는 골짜기의 길목에 서 있던 두 번 굽은 나무다. 산보하며 그 나무를 볼 때마다 너는 어찌 굽었니? 하다가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을 실감하기도 했더랬다. 엔진톱도 함께 있었지만 눈 깜박 할 사이에 베어 눕히기가 참 그랬다. 그래 도끼로 도끼로만 눕혔던 것이다. 지금 그 나무로 손니어커를 도모하고 있다.읍내를 갔더니 사람이 없다한다. 전주문화판에서도 많이 들었던 소리다. 가만보면 이게 학생 때 성적순이다. 성적을 A급, B급, C급으로 나눠 A급이 없다는 소리다. 거의 대도시로 갔다. 그러고 보면 B급, C급만 남아 있다. 이걸 보고 사람이 없다(?)한다. 이런 소리도 있다. A급이 머무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다. 그럴 일이 아니다. 나갈 사람, 나가고 싶어 하는 사람, 나갈 수 있는 사람은 나가게 하자. 결국 그게 우리 지역의 외연을 넓히는 일이 되니 말이다. 남은 B급과 C급에서 C급은 자기 자신의 생활에 충실한, 또 그만큼 뿐이니 이제 우리 B급에 주목하자.그동안 시험성적을 가지고 일자로 줄을 세워 매겨진 등급으로 B급은 그 어느 경계, 그러니까 진학이나 입사, 결혼 따위에서 커트라인에 걸쳐져 왔다. 그러다 보니 아슬아슬한 상황으로 인하여 오히려 섬세함과 담백함을 갖게 된다. 그 뒤로 골방의 제한된 공간을 이리저리 뒹굴며 체득한 공간인지력, 뭘 어째야 겠다는 것을 초월한 강박 없는 자유로움은 문화일꾼으로 매우 긍정적인 자질이다. 이기적이고 획일적이며 자기목적적인 A급은 분명 문화일꾼으로 적합하지가 않다. 이제 우리 사회가 군사독재정권 덕(?)에 먹고 살만 해졌고, 문민 국민 참여정권 덕에 민주화가 되었으니 일상의 미학을 완성시키는 문화사회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이러한 때에 우리 지역사회가 근대 산업화 과정에서의 소외로 인하여 상대적빈곤이 있다하나 문화의 세기에는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할 것인 만큼 불평과 불만의 에너지를 지역사회의 문화화로 돌려야겠다.먼저 우리의 여건을, 우리 자신을 긍정하자. 모든 문화적 창조행위는 바로 이러한 믿음위에 가능할 것이다. 메시야를 기다리던 유대민족이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았던 오류처럼 A급이 돌아오시기(?)를 기대하기보다 이미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 또 우리 자신이기도 한 B급 문화일꾼에 주목하자./이현배(옹기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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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3.30 23:02

[문화마주보기] 문화콘텐츠로서의 바둑

전국적으로 온-오프라인이 떠들썩하다. 3월초에 있었던 농심배 상하이대첩으로 한국을 기사회생시킨 이창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로써 한국의 대회 6연패는 물론 이창호 9단의 단체전 14연승 불패기록이란 대기록도 작성되었다. 우리나라 기사가 모두 탈락하고 5명이 남아 있는 중일의 고수들을 차례로 이겨내는 신화 앞에서 마음고생이 심한 고구려사 왜곡 및 독도문제의 갈증을 해소시켜준 장본인이다. 그 덕택에 한류열풍의 최고의 스타로 현재 급상중이다. 이미 중국에서는 천하제일인 혹은 천상인 등 무수한 칭호로 이창호 사범을 존경하며, 그의 사고의 깊이에 감탄을 자아낸다. 하물며, 마지막 대국인 중국 왕시와의 대국에서 중국인들조차 70%가 이창호가 이기기를 바랬다고 하니 과연 명불허전 이창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혹자들은 이번 사건을 한편의 영화같은 역전드라마라고 치켜세우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창호를 상대한 모든 기사들은 한결같이 이창호의 강대함은 이창호와 맞서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다고 한다고 술회한다. 이와 같은 강대함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 이창호는 14세때 이미 세계대회를 제패하며, 꾸준히 한길을 걸어온 바둑인이다. 오직 바둑만이 그의 인생이었고 반려자였다. 아무리 파 들어가도 끝없이 이어지는 미로속을 헤매는 진정한 바둑인이다. 바로 이러한 철저한 자기관리는 돌부처라는 수식어처럼 한 분야의 장인으로서의 완성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둑이 스포츠로 분류되기 보다는 문화로 인식되는 우리나라의 경우 이창호 덕택에 최고의 상한가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바둑붐이 엄청나게 일고 있으며, 어린이 바둑교실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중?일에 비해 오랫동안 묵묵히 인내하며 참아온 세월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문화의 힘이다. 따라서 문화란 오랜시간 동안 숙성되고 가공되어져 차후에 상품으로 환원될 수 있는게 바로 문화콘텐츠인 것이다. 단기간에 투자하여 수익을 바라보는 근시안적인 접근이야말로 문화의 힘을 쇠퇴시키는 길이다. 최근 들어 얼마나 많은 젊은 감독들이 영화계에 감독으로 입봉하여 우리 뇌리 속에서 그렇게 쉽사리 사라졌는가 ! 모든 문화축제를 산업화하겠다는 미시적인 접근은 누구의 발상인가 ! 세계바둑챔피언이 되고 싶다던 컴퓨터의 천재인 빌 게이츠도 바둑을 배우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고 할 정도이고, 질 들뢰즈도 그의 저서인 『천개의 고원』에서 닫힌 세계인 체스보다는 열린 세계인 바둑이 더욱 심오하다고 표현하면서 사유의 이미지를 강조한다.영화도 마찬가지이다. 오랜 시간동안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들이 남아 우리자신을 사유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사유이미지인 영화이다. 물론 대중적이고 오락적인 측면을 무시할 수 없지만, 브레히트의 말처럼 '지식의 습득에서 오는 희열을 느껴봄이 어떨까?라고 필자는 자문해본다. 또한 바둑 인구 천만이 넘는 시대에 전주가 낳은 세계적인 국보급 자랑인 이창호를 기념할 수 있는 바둑영상체험관을 지어 보면 어떨까? 필자 혼자 뇌깔여 본다. /김건(전주국제영화제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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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3.23 23:02

[문화마주보기] 홍대앞에서 지역문화를 생각하다

서울시가 홍대앞을 문화지구로 설정하려고 하자, 지역상인들 뿐 아니라 그간 자생적으로 예술활동을 해온 기획자들과 청년에술가들 역시 자신의 몫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홍대앞 문화의 수혜자는 둘째 치고, 홍대앞 문화를 만드는 주인공은 누구인가. 많은 이들이 홍대앞의 청년문화인, 예비예술가 등을 지목하지만, 상인들 역시 지역문화의 경관과 이야기거기를 만드는 존재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배타적인 목소리만으로, 지역문화적 소재를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문화적 지역공동체가 성장하거나 고유한 지역문화적 삶이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곽 같은 생각을 해본다. 만일 홍대앞 예술가들이 사라지면 홍대앞 문화가 존속할까. 이들이 모두 제주도 서귀포시의 이중섭거리로 집단이주한다면? 당연히 더 이상 홍대앞 문화의 특질은 남을 수 없고 홍대앞이라는 딱딱한 울타리와 간판만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서귀포시 이중섭거리에서는 이떤 일이 일어날까. 그곳이 홍대앞문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정체성을 갖고 그 지역주민과 새로운 방식으로 만나야 하는 홍대앞 문화출신의 예술가에게는 새로운사건들이 기다릴 것이다. 그들은 이전의 이중섭거리 문화가 아니라, 존재하지 았던 새로운 이중섭거리 문화를 만들어낼 것이다. 지역문화의 이러한 원리는 어디에도 적용된다. 자치단체가 지역문화 예술인의 가치를 충분히 존중해주지 못 할 때, 만일 홍대앞 문화인들을 지원해주고자 하는 다른 지역으로 모두 이주한다면? 홍대앞 예술가들이 전국적인 공모를 통해 자신들이 이주할 자치단체를 모집한다면? 있을 법한 미래의 시나리오다. 물론 이 경우 이들이 찾아간 곳에서는 홍대앞 문화가 아니라, 그 지역과 교호를 통해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임도 알아야 한다. 새로운 곳으로 갈 때 홍대앞의 간판을 갖고 갈 수는 있을지언정, 그 내용을 갖고 갈 수는 없다. 홍대앞의 내용물을 갖고 가 이중섭거리에 펼친다 해도, 그것은 더 이상 홍대앞답지 않다. 이중섭거리에 가서는 이중섭거리의 법을 따르고, 제주에서는 제주문화의 관습에 영향받아라. 예술가들 혼자 만든다고 착각했던 것은 모두 그 지역의 주민공동체와 함께 만드는 산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결국은 홍대앞 예술인만으로도, 홍대앞이라는 공간만으로도, 지금 낳은 이들이 매력적으로 여겨온 고유한 홍대앞문화가 만들어질 수는 없다는 결론이다. 청년문화를 본질로 하는 홍대앞 사람들은 35세가 넘으면 활동가들을 고려장 시키자는 농담도 한다. 그 정도로, 참신했던 젊은 지역활동가들이 나이들고, 고집을 세우고, 또 기득권이 되어간다. 하지만 한편으로 어느 지역에서나 늘 그러하듯, 청년문화를 만들어가던 그 사람들이 함께 늙어가며 성장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홍대앞문화가 독보적으로 지속되어야 할 청년문화라고 보는 뾰족한 생각보다는, 어느 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삶의 공동체가 되려는 꿈을 꿀 수도 있다. 홍대앞이 인디문화의 메카로 성장할 수도 있겠으나, 홍대앞 지역세서 한 세대의 언더문화 활동가들이 성장한 후 그 지역을 탈출한다면 10년 후 이곳은 현대적 문화사조를 벗어난 전통문화의 거리가 될 것이다. 이처럼 지역문화를 기획하고 창출하기 위해 우리가 고민하고 선택할 요소는 참으로 많으니, 지역문화의 앞날을 모색하는 일은 도전할 만한 멋진 일이다./안이영노(문화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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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3.16 23:02

[문화마주보기] 명창과 청량음료

방송 프로그램에서 꼭지 타이틀을 정할 때 자주 사용하는 몇 가지 관용구가 있다. 대개 광고카피를 패러디한 것들인데 그만큼 전달력이 빠르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라는 타이틀은 전통문화 관련 꼭지에서 단골로 쓰는 것인데, 거기에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이 고 박동진 명창이다. 당시 한 제약회사의 청심환 광고에 출연한 박명창은 제비 몰러 나간다~제비 후리러 나간다~는 한 대목으로 전 국민을 제비잡이꾼으로 만들어버렸다. 가히 임방울이 쑥대머리를 유행시킨 것에 비견할 정도의 대단한 파급력이었다. 그런데 최근 방송 광고에서 다시 판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애원성에 가까운 소리로 아이고 아버지이~를 내지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안숙선 명창. 그 모습을 가슴 졸이며 지켜보던 한 꼬마가 무대 앞으로 다가가서 뭔가를 올려놓자 안명창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진다. 소년이 올려놓은 것은 C'자로 시작하는 청량음료. 나는 이 광고를 보면서 몇 가지 의문점을 떨칠 수 없었다. 왜 안숙선 명창을 내세웠을까? 문화 제국주의의 상징물인 C음료와, 전통문화유산인 판소리의 극적인 결합을 통해 색다른 이미지 업을 노렸을까? 그럴 수 있겠다. 그렇다면 박동진 명창이 C음료를 광고했었어도 그렇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그 광고의 백미는 마지막 멘트,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 아니었던들, 박명창이 청심환 광고에 나올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안명창은 왜 이 음료 광고에 나온 것일까? 안명창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명창이고, 국립창극단 단장이자 예술감독이며, 가까이는 전주세계소리축제 위원장을 맡고 있는 사람이다. 새삼스럽게 나는 C음료가 문화제국주의의 상징이니, 반미의 관점에서 C음료를 마시지 말자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몇 가지 사실은 짚고 넘어갔으면 한다. 지난 1월 31일 세계사회포럼에 모인 좌파 활동가들은 미제국주의의 전쟁비용을 막기 위해 대표적인 미국기업인 C음료 사먹지 말기를 6대 행동강령에 포함시킨 바 있다. 좌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C음료회사와 물전쟁을 벌이고 있는 인도의 예는 어떨까? 인도에 진출한 C음료회사의 음료수에서는 살충제와 발암물질이 발견됐으며, 인도의 지하수를 1센트도 안 되는 싼값에 사들여 몇 배의 폭리를 취하고 있어서 지금까지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고 있다. 물론 다 남의 나라 이야기다. 갈수록 정교해지는 다국적기업은 음료의 원액만 공급할 뿐 나라마다 독립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하루에 10억 잔이 팔린다는 C음료, 10초마다 세계 각지에서 12만 6천명이 마신다는 C음료, 20세기 미국문화의 상징인 C음료 광고에 굳이 우리 전통판소리가 동원되어야 할까? 그 광고를 보고자란 아이들이 혹여 C음료를 우리 전통음료로 착각하지나 않을지 걱정이다./김선경(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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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3.09 23:02

[문화마주보기] 옹구그릇 좀 팔아먹자

내가 이런 소리를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옹기그릇을 만들어 먹고 살자니 팔아야 하는데 우리 지역에다 팔아먹기가 참 어렵다. 어떻게 하면 팔아먹을 수 있을까 여러 해 궁리를 하다가 갖게 된 의견은 무서운 소비자가 있어야겠다는 것이다.사실 물건이란 게 손으로 만들지만 이 손을 작용케 하는 것은 의식이다. 그런데 우리같이 손과 의식을 한 몸에 지닌 장인들은 자기 손에 너그럽게 된다. 그래 높은 의식에 손이 따라주지 못해도 한 몸이다 보니 제 식구 감싸듯이 너그럽게 넘어가는 수가 많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결국 제 손이 미의식의 고양을 더디게 하는 것이다.나는 옛 물건들 중에 사랑방에서 쓰이던 물건들을 좋아한다. 그것은 높은 정신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자신도 그런 물건을 만들고 싶다. 그런데 그게 장인의 솜씨만은 아닌 듯싶다. 소비자인 선비가 당신의 의식으로, 안목으로 간섭을 했으리라 짐작된다. 여기에서 자신의 의식만을 뽐내며 장인의 솜씨를 업신여겼을리 없고, 안목있는 선비의 간섭을 성가시게 여겼을 장인이 아니었을 것이다. 각자의 역할로 아름다운 관계가 형성되면서 아름다운 물건이 가능했을 것이다.우리 지역문화에서 공예문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쾌 커 보인다. 또 그만큼 지역경제와 비례함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공예문화, 공예산업 즉 전통산업이 정체되어 있다. 이제 무서운 소비자가 나서야겠다. 오늘날 무서운 소비자한 높은 미의식과 경제적 실천력을 가진 사람이다. 막말로 자기 돈 내고 물건을 사는 당당한 소비자를 말하는 것이다. 제 돈 아까운 줄 아니까 물건을 고르는 눈을 갖게 되고 기꺼이 간섭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공예문화의 현실은 어떠한가? 선물용이 많다. 그렇다보니 자기 용도가 없고 받은 사람도 간섭할 여지가 없다. 또 다른 병폐는 공예문화가 문화적 행세가 되어 안목도 있고 경제적 실천력이 있는 좋은 소비자가 아예 공예인으로 건너 뛴 다는 것이다. 그 어떤 행위로 남에게 보이기 위함은 결코 질 좋은 삶일 수 없는 것이기에 각자의 역할로 아름다운 관계를 소망한다./이현배(옹기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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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3.02 23:02

[문화마주보기] 부천국제영화제 '타산지석'

2004년 12월말에 논란의 종지부를 짓고, 결국 김홍준 집행위원장이 부천을 떠났다. 반박할 일고의 가치를 못 느낀다는 짧은 답변으로 해촉의 변을 남긴 채... 그리고 새로운 집행위원장의 위촉, 이어서 한달도 채 못되어 사퇴라는 수순을 밟은 부천국제영화제. 석연치 않은 해촉과 이어지는 사무국의 공황상태는 부천국제영화제를 깊은 수렁 속으로 빠트리고 있다. 이제 우리는 변두리 공업도시이며 성고문 사건으로 인식되던 부천시를 새로운 문화이미지로 탈바꿈시킨 부천국제영화제를 놔주어야만 한다. 이대로 영화제를 놓아야만 하는 것인가 ? 요즘 충무로 영화제작에는 정치가 화두이다. 1970년대의 일련의 사건들이 공개되면서 실화에 근거한 <그때 그사람들>과 같은 영화들이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 과거반성이라는 정치권 논리와 맥을 같이하는 영화계의 흐름은 부천국제영화제도 피해가지 못했다. 소위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정치적 논리로 인해 실타래가 엉망으로 뒤엉켜버린 부천국제영화제. 이에 반발한 각종 영화단체와 영화인들은 앞으로 부천영화제를 보이코트할 것이라고 천명하고 있으며, 또한 (사)한국영화인회의는 영화제 독립성 확보를 위한 국내 국제영화제 심포지움 개최 및 국제영화제 협의체 구성을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 영화인 없는 영화제가 과연 제대로 운영될지 자못 궁금하다. 당연히 관객 없이 영화는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그 관객들과 소통하려는 의지를 지닌 영화인들이 있어야 커뮤니케이션의 수로가 열리는 것이다. 이처럼 해촉위촉사퇴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바라보며, 같은 영화인으로서 마음 한 구석이 그리 편하지 않다. 전주국제영화제의 살림을 맡고 있는 처지에 이러한 민감한 사안을 글로 쓰기에는 더욱 더 어렵다. 하지만 이번 부천국제영화제의 해프닝은 우리에게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중요한 사항들을 재검토하게 해준다. 이미 전주국제영화제도 이러한 내홍을 겪으면서 5회를 거쳐 왔다. 매번 프로그래머와 사무국 직원이 바뀌면서, 영화제의 정체성 논란, 대중적 참여의 미흡 등등 문제점을 노출시키며, 한계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이런 문제는 근본적으로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주지하다시피, 영화제는 단기 스탭들과 자원봉사자들의 힘으로 이루어진다. 그 이외의 상근직원들은 1년 계약으로 사무국을 운영한다. 그렇다. 문화 인력에 대한 그릇된 인식에서 비롯된다. 1년 단위로 계약을 하다보니 비정규직과 다름없다. 최소 사무국 상근직원들에게 내 영화제라는 주인의식과 책임의식을 고취시키고, 장기적인 플랜을 가지고 영화제에 임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임기는 보장해 주어야 한다. 비단 우리영화제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 지역에 산재한 모든 문화 인력에 해당될 것이다. 영화제는 영화인들의 전유물도, 지자체의 홍보수단도 아니다. 지역시민에게 주어지는 유무형의 문화적 자산이며 향유할 수 있는 권리이다. 지역시민, 그들 스스로 영화제를 즐기고 누릴때 지자체의 국제적 홍보이미지가 각인될 것이며, 전주영화산업에도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국제영화제도 이점을 잊지 않고 거듭 노력할 것이다. 지역시민들의 질책과 애정 어린 시선을 겸허히 수용하며, 제 6회 전주국제영화제를(4.28-5.6) 준비해본다. /김 건(전주국제영화제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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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2.23 23:02

[문화마주보기] 청소년에게 문화예술교육이란

청소년문화교육은 청소년이 문화예술을 충분히 향유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왔다. 지난 몇 년간, 일반적인 수용자교육과 취미창작 동아리를 위한 과정이 함께 부상했다. 하지만 이는 지금까지 학교교육에 숨가쁜 일정과 목표에 가리어져, 충분히 빛을 보지 못 했다. 입시위주의 학교교육에서는 문화향수라든지 문화체험이 충분히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주5일제가 시작되면 청소년의 문화적 여가기회가 많아진다기보다, 음악, 미술, 체육수업이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된다는 진단이 있다.어디를 가도 청소년이 수학과 어학만큼 예술의 수용자로서 인류의 지능적 창조행위를 즐기는 훈련을 받을 수 없다. 어느 곳을 가든 예술감상이나 문화창작의 습작을 통해 자신의 취미를 개발하고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면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 사색의 시간으로서의 문화교육 활동은 홀대된다.최근에 만들어진 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우리에게 문화예술교육이 하나의 권리이며, 자신을 개발할 기회라는 점, 그리고 문화예술교육이 문화창조나 감상행위 못지 않게 중요한 문화향유 과정이라는 점을 되새겨준다. 나아가 문화예술교육은 교육의 수행자나 수혜자 모두에게 세상을 더욱 인간적으로 만들기 위한 문화적 실천이다. 이는 세상을 더욱 예술적으로 만들기 위한 실천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다.예술교육만 해도 그렇다. 이는 사람들이 예술의 고강한 차원을 통해 사색하고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고양되고자 하는 목적만을 가질 수 없다. 시민을 대상으로 한 예술교육은, 우선적으로 시민들에게 실용적이어야 한다. 감상이나 체험을 통해 자신의 삶이 자신감을 얻거나 상처가 치유되는 예술치료 효과, 사회생활이나 공공성을 취득하는 문화교육 효과, 역사와 수학 같은 다른 교육활동이 좀더 원활해지는 교육예술 등, 교육을 통해 예술은 인간적인 수단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문화예술교육은 예술사회를 창조하기 이전에, 인간적이라고 부르는 바,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청소년교육도, 청소년을 예술창조자로 기르거나 전문적인 기량을 배우는 수준에서 봐서는 안 된다. 텔레비전과 대입참고서에 휘감겨 있는 청소년에게 고급한 예술의 이해와 감상을 강요하는 현재의 모습도 탈피해야 한다. 청소년이 문화예술을 접하는 귀한 기회를 통해, 여유를 찾고 휴식을 취하면서 숨통을 트는 것만도 족하다. 이러한 위락과 함께, 즐거운 오락이 되기 위해서 청소년에게 친숙한 대중문화와 첨단미디어, 놀이문화를 예술행위로서 다룰 수 있는 표용력 있고 창의적인 교육과정이 준비되어야 한다.청소년이 삶 속에서 문화예술을 자연스럽게 즐기는 감상자로 만드는 계기에 다름 아니므로, 청소년이 좋아하거나 편안하게 여기는 것을 체험하는 시간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러다보면 즐거운 수용자들이 먼저 생기고, 조금씩 창조적인 수용자도 나올 것이다. 문화예술활동을 교과목이나 기능수업, 직업적 활동으로 인식하지 않고, 누구나 취미활동을 통해 문화창작 체험을 하려는 자유로운 향유자들의 세상이 바로, 우리가 지향하는 미래의 모습이다. 이럴 때, 청소년에게 당연히 문화예술은 아픈 마음을 치유하고, 자기를 개발하고, 사회를 이해하고 공동체를 받아들이고, 심지어는 공부를 잘 하는 도구가 된다./안이영노(문화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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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2.16 23:02

[문화마주보기] '중심'을 묻는다

‘마주보기 싫은’ 것들을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할 때가 있다. 생명과 관련된 것들이 가차없이 버려지고 무시당하고 학대당할 때 그걸 두 눈뜨고 바라봐야 하는 것이 너무나 괴롭다.월셋방 장롱에서 빼빼 말라비틀어진 네 살짜리 아이가 숨져서 발견됐다. 그 아이의 체중은 5킬로그램. 기아사였다. 아버지는 막노동, 어머니는 정신지체 3급. 엄마는 아이가 죽자 이불에 싸서 장롱에 넣어두었다. 이웃이 방문하지 않았다면 그 아이는 언제까지고 장롱 속에 묻혀있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정신도 멀쩡하지는 않았다. 아이에 대한 죄책감이나 이웃에 대한 수치심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가치판단이 배제된 멍한 상태. 어떤 이는 그걸 일컬어 ‘현실감 제로’라고 표현했다. 현실감 제로. 사회적 규범이고 인간의 도리고 뭐고 극심한 고통과 한계상황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심부름센터 직원에게 돈을 주고 영아를 훔쳐오라고 시킨 여자도 있다. 아기의 엄마는 목졸라 죽이고 아이만 데려다가 제 자식처럼(!) 키웠단다. 제 자식을 배곯려 죽인 아비는 극심한 가난 때문에 현실감을 잃었다지만, 돈도 있고 가족도 있는 이 여자는 무엇 때문에 ‘현실감 제로’ 상태에 빠진 것일까? 따지고 보면 돈의 문제가 아니라 그 돈을 움직이는 사람과 사회의 문제다. 돈에게 무슨 죄가 있을 것인가? 돈을 움직이는 사람에게 중심이 없기 때문에, 중심이 있어도 전도된 가치에 휘둘려 있기 때문에 이렇듯 ‘마주보기 괴로운’ 사건들이 발생하는 것 아닐까. 지난 1월 초, 사회원로 165명이 경제?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하고 ‘사람 중심의 공동체 건설을 위한 사회협약’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일자리 창출과 사람 중심 사회를 위한 2005 희망포럼’이라는 이름의 이 모임에서는 ‘뉴 패러다임’ 운동을 역설하며 “지금의 양극화, 사회적 고통의 핵심은 고용에 있다”고 주장한다. 고용과 성장이 함께 가는 공동체, 사회적 일자리 창출, 상생의 사회협약 등을 뼈대로 삼고, 과로 해소를 통한 건강사회, 평생학습을 통한 지식사회, 새로운 여가문화 창출을 통한 문화사회를 만들자는 것이 이들 주장의 핵심이다. 이제 운동 초창기라 다소 비현실적인 계몽운동처럼 보이는 측면도 있지만, 어쨌든 끝을 모르는 사회적 양극화에 지식인들과 사회원로들이 나섰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수출입국’이 아닌 ‘사람입국’을 만들자는 그들의 주장은 사람을 소외시키는 성장발전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우리에게 깨우치고 있다. 행정중심도시네, 문화중심도시네, 온통 중심을 부르짖고 살면서도, 정작 우리 삶의 중심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하지 않고 사는 것 같다. 나라 정책의 중심이 사람이어야 한다면, 사람의 중심은 무엇이어야 할까? 사람의 중심을 찾는 철학적 패러다임 운동도 범사회적으로 펼쳐지길 기대해 본다./김선경(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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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2.0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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