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주보기] 그날 그랬더라면
2002년 월드컵은 참 절묘했다. 4강에 들었대서가 아니다. 스토리가 완벽한 시나리오 같아서다. 돌이켜 보자. 민주화의 발상지 부산에서 월드컵 첫 승을 올렸다. 그게시작이었다. 꿈의 16강은 인천에서 결정했다. 영호남을 아우르는 대전에서 8강까지 손에 넣었다. 그리고 민주화의 성지 광주로 단숨에 달려갔다. 5월의 함성을 되살려 기적 같은 4강마저 해,냈,다. 영호남 편 가르기 따위는, 없었다. 붉은 함성으로 온 나라가 하나였다. 그게 6월이었다. 순국선혈의 달 6월의 일이었다. 뼈마디 쑤시는 그 6월에 우리는 역사상 최고로 가슴이 벅찼다. 모두 하나가 되라는 선혈들의 준엄한 당부라고 생각했다. 지난 8월 5일 전주 월드컵 경기장에서는 큰 축제가 열렸다. 그런데 정작 경기 장면은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반 넘게 텅 빈 스탠드를 바라보다가, 마음 한 구석이 아려와서, 다른 상상을 줄곧 했다.12년만에 남북의 젊은이들이 축구라는 이름으로 전주 월드컵 경기장에서 만났다. 그건 축구 경기도, 대결도 아니었다. 축구 화합이고, 축제였다. 입장료는 3,000원이었다. 국민 점심 짜장면 한 그릇 값이다. 입장료 손실분은 축구협회장이 아버지와 형의 유지를 받들어 사재를 덜어내 보전한다고 했다. 입장권은 30분만에 완전히 동이 났다. 간신히 한 장 구했다. 경기 시작 두 시간 전에 경기장으로 갔다. 벌써 장사진이었다. 경기장 입구에서는 흰 티셔츠 하나씩을 나누어주었다. 물론 공짜였다. 한반도가 푸르게 그려진 흰 티셔츠를 즉석에서 갈아입고 경기장에 들어섰다. 그리고 아, 나는 보았다. 온통 흰색 물결인 사만 삼천 석의 스탠드를. 백두산 천지에 처음 올랐을 때처럼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렇지. 우리는 한 민족이었지, 백의민족이었지. 북쪽 스탠드는 남쪽 응원, 남쪽 스탠드는 북쪽 선수들 편이었다. 붉은색과 흰색, 남과 북, 자랑스러운 한 겨레 젊은이들이 녹색 그라운드를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북쪽 스탠드에서 아리랑이 울려퍼졌다. 세상에, 이토록 우렁찬 아리랑을 들어 본 적이 있었던가. 아리랑이 끝나기 무섭게 남쪽 스탠드는 옹헤야로 신명이 났다. 하여튼 전주 사람들, 못 말리겄데이. 누군가 옆에서 너털,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문화 도시, 전통 도시, 맛과 멋의 도시라 카더니, 여그 사람들, 당최 못 말리겄다, 아이가.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가만 보니 축구경기에는 관심들이 없었다. 한 편에서 골을 성공시킨 순간에도 경기 중계를 하는 아나운서는 엉뚱한 소리를 내며 감격하고 있었다. 지금 우리 모두는 남북통일의 역사적 현장을 미리 체험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나운서의 직무유기조차 가슴 벅차게 했다. 어느새 경기가 끝났다. 2:2였다. 환상의 한민족 스코어였다. 그라운드의 선수들은 땀에 전 유니폼을 바꿔 입고 운동장을 한 바퀴 달렸다. 스탠드의 박수소리가 천둥소리였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선수들은 중앙 원에 둘러서서 어깨동무를 했다. 스탠드의 관중들도 모두 일어나 어깨동무를 했다. 온 겨레가 어깨동무를 했다. 천지와 백록담의 수면이 서서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해서 통일 통일이여 오라.이건 올림픽 동시입장에 비할 바가 아니야. 벽안의 외신기자도 감격하고 있었다. 그의 손길이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감동적인 기적을 보았다고 그는 즉석에서 이메일로 전송하고 있었다. 이런 민족을, 이런 겨레를, 누가 어떻게 감히, 까지 쓰다 잠시 멈춘 그의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멍한 눈으로 TV를 보면서, 나는 줄곧 그런 상상을 했다. 그랬더라면, 그날 그랬더라면./송준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