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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새해, 부자들 되세요! - 김정수

남미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이 십년 전에 썼던 연금술사가 장기간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다. 참 대단한 작가다. 첨단과학 시대에 쌩뚱맞게도 연금술 이야기로 돈을 벌다니 게다가 어린왕자에 버금가는 몽환적이고 비현실적 언어로 말이다. 하지만 연금술사를 손에 들면 책에 집중하는 시간보다 내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훨씬 많아짐을 느낀다. 그런가? 이것마저도 신비로운 연금술이었던가?연금술은 고대로부터 납이나 구리 같은 천한 금속을 금과 같은 귀금속으로 변환시키고자하는 인간들의 열망을 반영해왔다. 시대마다 방법은 다양했지만, 내재된 인간의 욕망은 연금술을 발전시키는 변함없는 힘이 되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아무도 성공한 적 없는 비과학적인 금 만들기가 오히려 과학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어왔고,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사람들의 꿈이 되어주고 있다.코엘료는 연금술사를 통해 삶의 지혜를 말하고 있다. 우리들이 평생을 찾아 헤매는 황금은 바로 우리 삶 가장 가까운 곳에 있고, 위대한 연금술사는 다름 아닌 바로 나 자신일수 있다는 가정을 감미롭고 그윽한 상상력으로 설명하고 있다. 연금술을 전혀 알지 못해도 자신의 삶 속에서 철학자의 돌을 발견하는 사람들, 그들이 진짜 연금술사임을 웅변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치르치르 남매가 찾아가는 파랑새와도 같다.영화 왕의 남자가 제작비를 훨씬 많이 들인 영화들을 단주먹에 때려눕히며 연말연시 극장가를 평정했다. 몇 번씩 봤다는 사람들이 주변에 속출한다. 무엇이 이 영화를 다시 보게 했을까? 그 사람들은 이 왕의 남자에서 무엇을 찾아낸 것일까?역사가 주는 중후함에 궁중의 암투, 동성애가 주는 성적 호기심, 신분과 계급을 뛰어넘는 호쾌한 도발, 신성한 왕궁의 비밀스런 성 등은 이 영화를 끌어가는 몇 가지 코드다. 하지만 원작에 강하게 다가왔던 왕의 동성애에 관한 표현수위를 이 작품은 인간애로 우회한 듯 보인다. 그리고 더 깊은 곳에서 질문을 한다. 삶의 방식에 대해서, 진정한 행복에 대해서영화의 마지막 장면, 눈이 먼 채 줄 위로 올라선 장생과 울먹이며 대화하는 공길. 미친 놈 또 광대가 된다고? 그러는 너는? 나야 뭐 물어보나 마나 광대지그들은 알았던 것 같다. 그리고 영화를 통해 금을 만드는 방법을 넌지시 일러준다. 세상의 어떤 부귀와 영화로도 얻을 수 없는, 하지만 아무 것도 없어도 얻을 수 있는, 영원히 변하지 않으면서도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금을 어떻게 만들 수 있고 어디에 있는 지를 알려주고 있다. 구정 연휴가 끝났다. 떠들썩한 귀향길에서 벗어나 모두가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제 새해를 차분히 살아갈 때다. 때로는 권태롭게 느껴지는 우리네 일상이 사실은 우리 삶의 전부다. 그러니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새해 금 많이 만들어 다들 부자 되면 좋겠다. 우리 모두 연금술사가 되어서 말이다./김정수(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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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2.01 23:02

[문화마주보기] 참 쓸쓸한 우리 - 김유석

며칠 후면 다시 설이다.요즘은 양력을 쇠는 집안도 있고 좀 귀찮게 여기는 이들도 있다시피, 큰 명절인 설을 맞는 예전의 마음과 모습들을 떠올린다는 것은 아무래도 객쩍은 노릇일 것이다. 흩어진 핏줄들이 큰집에 모여 차례를 지내고 덕담을 주고받는 정겨움의 이면에는 귀성으로 주어진 연휴를 공일삼아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여피족들이 점점 늘고 있다 하니 말이다. 교통난을 구실로 역귀성 하는 가족도 부쩍 눈에 띄는 걸로 봐선 명절도 이미 여러모로 시류에 점염되어 가고 있음을 굳이 역설할 순 없음이다.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그맘때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철새들처럼 삶의 어딘가에 쌀자루마냥 놓여 있던 고향을 떠올리며 잠간 생업을 놓는다. 이미 익숙해지긴 했지만, 이쯤 저쯤 막히는 길쯤은 넉넉히 돌 줄도 알며 빠듯한 가계 한 귀 나마 쪼개어 들고 찾아온다. 오래 겨웠던 그 어떤 허물도 잘름잘름 앞세울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을 포용할 만큼 모성적인 명절을 지키려는 우리네 삶의 흔적들이 서로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갈수록 설은 객지에 터를 잡은 사람들이기 보다 아직 거기 남아있는 이들에게서 한결 소담한 모습을 지닐지도 모른다. 섣달그믐, 헛간에 까지 구석구석 내걸던 등불은 꺼진지 이미 오랬다. 여럿이 돼지를 짜 잡고 따로 설빔을 마련하는 예는 눈동냥하기 여간하지 않게 됐지만 대목장을 받으러 가는 품이나 대문 밖까지 비질자국을 놓는 모습은 여전히 눈에 익다. 으레 그래왔듯 떡시루를 얹고 산적을 꿰는 정성이 어디 조상들만을 위한 것이겠는가. 아직은 흔한 그런 모습에 고물처럼 묻어있는 건 필경 기다림과 같은 것일 것이다. 자식형제들도 과객일 수밖에 없는 이만한 세월에 모처럼 모여 장만한 것들을 나누고 남은 건 딸려 보내기도 하는 마음이 기다리는 자의 설이다. 밤새 컴퓨터에 매달리는 아이들이야 격세지탄이라 치고, 타분한 윷가락 대신 화투장을 두드린들 뭐 어떤가. 모든 것이 바랜다하더라도 기다림이 남아있는 한 마당 쓰는 소리가 들리고 까치는 날아와 울 것이다.꼭이 그렇게 받은 날이 아니어도 가끔은 일부러 시간을 훔치고 싶은 곳들도 있다.일전에 정읍 어딘가에 있는 산외라는 곳엘 간 적이 있다. 높고 낮은 산들을 비집은 길, 한꺼번에 내린 눈을 치우기엔 햇발이 좀 짧은 산길 깊은 곳에 엎딘 여느 마을이었다. 입소문에 의하면 질 좋은 한우고기를 싼 값에 떼 주고 즉석에서 요리도 해주는 곳이었는데 벽지임에도 찾는 이들이 의외였다. 집어보니 그만한 육질은 도심에서도 얼마든지 씹을 수 있는 것이어서 가격논리 만으로 그 곳까지 찾아든 사람들을 돌려세우기엔 뭔가 서먹한 구석이 있었다. 살점만이 아니라 숲가에 묻은 잔설과 퀭한 산바람을 함께 집어보고 싶었거나 어릴 적 침침한 불빛을 얹혀 달아주던 동네 푸줏간을 떠올리며 길을 물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자치제가 시행된 후, 여타의 지역들이 앞 다투는 일 가운데 하나가 <축제>라 불리는 놀이문화 짓기이다. 다분히 인위적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애쓴 흔적이 엿보이기도 하는 그것들에게나마 한 순간 위안받을 수 있다는 건 다행이자 씁쓸함 일 것이다. 다만 일과성의 것이 아닌 시골장터 같은 모습으로 오래 남았으면 하는 바람, 그것은 착각일까?기다림과 돌아옴이 속속들이 버물려 맛 들리던 명절처럼 나날이 낯설어가는 우리네 기억들이 잠시나마 이물 없이 들러오고픈 그런 것들이 점점 더 그리워진다. /김유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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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1.25 23:02

[문화마주보기] 문화적 소통의 원리 - 전효관

얼마 전 청계천에 나가 보았다. 청계천 복원에 뒤이어 광화문과 청계천은 휘황찬란한 조명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연말부터 루미나리에(luminarie: 조명으로 만드는 축제) 서울 행사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도시를 밝히는 불빛 아래서 사람들은 해맑은 모습으로 몰려다니고 사진을 찍으면서 즐거워한다. 도시의 공간을 자기표현의 욕망을 드러냈던 월드컵 이후 사람들은 공간을 주체적으로 즐기는 데 더 이상 부자연스럽지 않다.서울이라는 대도시에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이 탄생했다는 데 굳이 이의를 달기는 싫으나, 나에게 청계천은 하나의 단순한 이미지로만 인식되었다. 그 화려한 조형물이 전달하는 이미지는 지난 겨울 일본의 센다이 시에서 보았던 소박한 루미나리에 불빛과 내 의식 속에서 명확하게 구분되었다. 시민들이 1년 동안의 자치적인 모임을 통해 행사를 준비해서 만드는 소박함과 기업의 협찬과 서울시의 전시 행정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화려함 사이의 명확한 차이가 의식되었다. 아마도 그 차이는 행정적 효율성과 문화적 소통 원리와의 대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사실 도시는 많은 문제들로 넘쳐난다. 가판을 운영하는 사람에게는 잡지 판매가 저조해지는 것이 문제일 것이고, 방음이 잘 안 된 건물에 사는 사람은 이웃집에서 뿜어대는 소음이 괴로울 것이다. 저녁에 자기 집 앞에 쓰레기가 무단으로 버려지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부모는 아이의 등굣길이 걱정일 것이다. 이처럼 지역의 도시는 풀어가야 하는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하지만 문제를 풀어가는 데서 행정적으로 효율적인 방식만을 고집하거나 이른바 전문가의 기술합리적인 방식으로는 문화적 해결에 항상 미달한다. 종종 문제는 더 확대되고 의견 차이는 시민들 사이에 심한 대립을 낳기조차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역 내에서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문화적 소통의 매개자들이 있어야 한다. 이 매개자들은 도시의 구성원들이 가지는 이해관계, 의견들을 조율하면서 공공 영역의 과제로 문제를 해결해간다.이런 의미에서 지역의 문화 역량이란 문화적 소통의 매개자들이 얼마나 있느냐와 거의 같은 의미라고 나는 항상 생각하고 있다. 문화적 전통과 문화도시의 지향을 꿈꾸는 전주에서 새로운 문화적 소통의 매개자들이 많아진다면, 전주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풀어가면서 창조적인 공동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신년에 해보게 된다.△전교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과 문화연대 문화교육센터 소장, 대통령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전효관(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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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1.18 23:02

[문화마주보기] 미래 위한 문화산업의 구상 - 나종우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지방화 시대가 열리고 각 지방마다 지방문화와 그 지방의 전통문화를 되살리려는 운동이 일어나면서부터 문화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또한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문화의 시대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21세기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정치적인 이념이나 경제적인 여러 가지의 제약들도 무너져 세계화, 국제화라는 어떻게 보면 지구촌 공동체 같은 모습으로 변해 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독특한 자신의 문화만이 자신을 지켜 낼 수 있는 무기가 되고, 따라서 문화경쟁의 시대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문화라는 개념은 문화경쟁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단순히 삶의 질을 높이는 역할이외에 산업의 영역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문화산업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게 나올 수 있지만 문화경제학적 측면에서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문화와 예술을 소재로 상품화하여 유통하는 산업부문을 문화산업으로 보는 시각에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편이다.문제는 문화산업 중에서 가능성 있는 어느 분야를 집중 육성하는 것은 좋으나 그것이 지역실정과 맞는 것인지, 다른 지역과 경쟁력이 있는 것인지를 심도 있게 분석해야 될 것이다. 예컨대 전북의 경우 2004년을 영상수도의 원년으로 삼아 향후10년 후에는 세계적인 영상도시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계획안을 살펴보면 국 ? 내외영상산업의 동향과 정책이 설정되어 있으나 분야별 동향정도만 나와 있지, 구체적인 검토가 미흡하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다른 지역의 성공한 영상산업의 경우 성공 할 수 있었던 요인과, 전북의 성공 할 수 있는 요인은 무엇으로 보며, 어떻게 차별화 할 것이며, 무엇을 특성화 할 것인가도 분명하게 설정되어있지 않다. 물론 올해의 예산에 국가지원이 어느 정도 확보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구체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방안들이 하드웨어라고 보기에는 너무 평이하고 소포트웨어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솔직한 견해다. 문제는 문화산업의 특성이라 할 수 있는 상품적 특성, 산업적 특성, 입지적 특성, 문화산업과 네트워킹의 검토가 정확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과 문화산업의 기능과 역할이라 할 수 있는 고용창출, 지역개발 등에 대한 검토가 미흡하다는 점이다. 얼마 전 주한 프랑스 대사는 전통과 미래를 결합하는 능력, 바로 오늘날 유럽인에게 부족한 것이 한국에 있는 것 같다고 하였다. 과거와 현재만이 아니라 미래까지도 내다보는 안목을 지녔다는 이야기다. 전북의 영상산업으로 전북의 모습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이러한 안목이 전북의 문화산업 구상에 있는 것일까.△나교수는 문화관광부 한일문화교류정책자문위원과 전라북도문화재위원, 전북역사문화학회회장으로 활동하며, 향토사에 관심을 갖고 전북의역사와인물등 7권의 저서가 있다. /나종우(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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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1.11 23:02

[문화마주보기] 자본과 예술, 그리고 행복 - 김정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같은 영화가 달리 보이는 경우는 종종 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은 분명 서른 번 이상 봤지만, 신기하게도 처음 본 듯한 장면들이 아직도 있어 깜짝 놀라곤 한다. 기억의 문제를 떠나서, 사춘기 적 보았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전쟁과 평화>, <닥터 지바고> 등의 명화도 처음엔 그저 사랑이야기였다가, 한참 후 비로소 역사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 영화들이었다. 경우는 다르지만 그런 의미에서 <아마데우스>도 새로운 느낌을 제공했던 영화다.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짤트의 생애를 담은 이 영화는 영화화되기 이전 연극무대에서 짜릿한 감동을 주었던 작품이다. 영화에 비해 모짤트의 라이벌이었던 살리에르의 인간적 고뇌와 갈등이 훨씬 강하게 부각된 연극이었다. 젊은 시절, 국내 초연 무대를 보면서 모짤트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테리와 살리에르의 인간적 번민에 흠뻑 빠졌었던 기억이 있다. 그 나이에 볼 수 있던 만큼의 <아마데우스>였다. 돌이켜보면 차라리 행복한 시간이었다. 최근 이 <아마데우스>를 다시 보게 되었을 때, 가슴에 파고드는 느낌은 자본과 예술의 지배와 종속 관계에 관한 것들이었다. 한 예술가를 옥죄이는 현실적 문제와 더불어 그를 둘러싼 암투가 죽음이라는 그림자로 이미지화되어 다가왔다. 중년이 되어 느끼는 단상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씁쓸하다.갈수록 대형화 되어가는 무대와 현대적 메카니즘이 필수적인 공연 형태에서 원론적이고 기초적인 예술관은 더 이상 설자리가 없어져 가고 있다. 예술이 그 생산을 자본에 기대는 것조차 부정할 수는 없지만, 자본에 의해 철저히 제어되는 무대예술 시스템 속에서는 투자되는 비용이 예술의 질을 결정하는 중대한 요소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무대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돈대로 나온다는 자조적 넉두리는 한 예술가가 자기의 예술 세계를 웅변하기에는 막강한 자본의 기획력 앞에 얼마나 무기력해질 수 있는가를 우회적으로 설명하고 있다.무대 예술가들도 사람이다. 생존해야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 같은 요인에 의해 좌절하고, 나아가 절대적 맹종으로 기우는 것만은 반대하고 싶다. 예술이 사람에 의해 생산되고 사람을 위해 기능한다는 사실, 그리고 이를 통해 서로가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라 믿는다면, 예술의 존재 이유와 당위성이 뒤바뀐 상황을 바로 잡을 노력도 가능하고 또 필요하리라 믿기 때문이다. 지난 해, 중남미 국가 순회공연 때였다. 명색이 국립극장인데도 각종 장비는 형편이 없었다. 백 년 이상씩 된 오페라극장에는 사람의 손에 의해 무대세트가 오르내려야하는 불편함과 불안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불편함을 여유있게 받아들이는 그들을 보면서, 그 불편함이 그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불편함을 불행하다고 생각한 것은 오히려 우리였다. 그렇다. 넘치는 것이 모자라는 것보다 낫다는 말을 아직은 인정하고 싶지 않다. /김정수(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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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1.04 23:02

[문화마주보기] 시는 그저 시일 뿐

가뜩이나 시를 읽지 않는 세상, 그걸 노래로라도 만들어서 함께 부르자고 하는 데 더 할 말이 있겠는가마는······한 개그맨이 열 몇 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은 부부한테 각각 똑같은 질문 몇 가지를 던지더니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는다. “결혼한 날짜도 똑같고, 함께 살아온 세월도 똑같고, 집 주소도 똑같고, 아이들 이름도 똑같은 걸 보니 두 분이야말로 천생연분이네요.” 억지스럽긴 해도 그런대로 개그 한 토막은 된다 싶었다. 시(詩)와 음악도 그와 비슷한 사이지 싶다. 리듬이 바탕을 이룬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아니, 이 둘은 애시당초 혼인하듯 함께 출발했다는 게 옳다. 우리 문학사를 보면 오늘날의 시는 시가(詩歌) 양식으로 애창되었다. 향가가 그랬고, 시조 또한 그랬다. 이따금 듣는 시조창(時調唱)은 맛깔스러운 구석이 있다. 널리 애창되는 우리 가곡(歌曲)들 또한 시와 음악의 ‘천생연분’ 같은 결합으로 생겨났다. 내가 좋아하는 우리 가곡 <동심초>의 가사는 중국 당나라의 설도라는 여류시인이 지은 한시(漢詩)에서 빌려온 것이라고 하는데, 시의 정서와 곡조가 참으로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들을 때마다 애잔한 감흥에 젖게 한다. 정지용의 <향수>는 오랜 세월의 억류기간을 거친 뒤 대중가요의 가사로 거듭나서 일반인에 널리 알려졌다. 고향을 그리는 시인의 아련한 심사가 노래의 전편에 아름다운 선율로 녹아 있어서 이 또한 더할 나위없다.이렇듯 한 편의 시 작품과 음악의 조화로운 만남은 잘 맺어진 부부처럼 보기도 듣기도 부르기도 좋다. 그런데 다 그런 것만은 아니어서 그게 문제다. 시와 음악이 한 집안 태생인 건 분명해 보이지만, 하나로 묶여 있으면서도 서로를 등지고 각각 반대 방향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걸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하루가 멀다하고 삐걱대는 부부 사이 같다고나 할까. 과거와 달리 시는 이제 더 이상 노래로 존재하지 않는다. 활자화되어 읽히고, 그런 읽음을 통해 독자 저마다의 독특한 감흥으로 되살아나는 것이 바로 시 양식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한 편의 시가 만들어내는 감흥은 그것을 찬찬이 읽은 독자의 수와 비례한다. 시는 오로지 읽는 이의 자유로운 정서와 만났을 때 진가를 발휘한다. 그뿐이다. 가미(加味)도 제약도 필요하지 않으며, 그것이 가해져서도 안 된다. 그런데 이따금 시와 음악을 한 곳에 억지로 묶어놓자고 드니 그게 문제다. 서로 죽고 못 살아서 묶어주어도 문제거늘, 하물며 정략결혼시키듯 둘의 성격이나 취향까지 깡그리 무시하고 칭칭 동여매놓으니 영락없는 개발의 편자 꼴이다. 곡을 붙이다 보니 정서는 하나로 제한되고, 결국 그 시는 더 많은 상상력을 자아낼 수 없는, 단지 어설픈 노래 한 곡의 노랫말로 전락해서 억울하게도 꽃다운 나이에 요절해버리고 마는 꼴이다. 기왕에 시를 가져다 곡을 붙여서 노래를 만들 거라면 그 시의 정서를 제대로 살려냈으면 좋겠는데 그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시낭송이라는 것도 가끔 듣다 보면 이따금 소름이 돋는 경우가 있다. 감흥 때문이 아니라 저게 아닌데 싶어서다. 그건 필경 낭송자의 감정 과잉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겨레 칠천오백만 국민시인인 소월의 <진달래꽃>에 붙여진 곡은 부조화의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로큰 롤 밴드 반주에 곁들여진 여가수의 째질 듯한 음색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시가 좋아서 그걸 가져다 노래로 만들라치면 그 시가 갖고 있는 보편적 정서에 대해서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보았으면 정말 좋겠다. 그게 자신 없으면 차라리 시집 속에 그대로 두는지. 화단에 피어 있는 장미꽃이 하도 아름다워서 그걸 곁에 두고 보자고 꺾어서 방안에 들여놓으면 며칠 못 가 시들어 버린다. 장미꽃이야 또 피우면 된다고 하지만, 밤을 꼬박 새우며 피어난 그 꽃을 제대로 만날 수 없게 되어버린 더 많은 이들의 아쉬움은 어떡하라고. 가뜩이나 시를 읽지 않는 세상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걸 노래로라도 만들어서 함께 부르자고 하는 데 더 할 말이 있겠는가마는, 그래도 이건 아니지 싶다. 물론, 시인도 아닌 것이, 작곡이 뭔지도 모르는 것이, 마구 풀어낸 생각의 일단이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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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준호
  • 2005.12.27 23:02

[문화마주보기] 잘 산다는 것

우리는 서로서로 행복하게 잘 살라고 덕담을 해 준다. 가끔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고민하지만 쉬운 것 같으면서도 정의 내리기가 쉽지 않다. 학식이 높거나 명예가 있거나 고매한 인품을 가진 사람이 뛰어나 보인다. 도덕 교과서에서 배웠던 든 사람, 난 사람, 된 사람이 떠오른다. 어떤 사람이 잘 사는 것으로 보이는지 살아가는 모습을 살펴보기도 한다. 언제부턴가 이웃이나 친구가 잘 산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돈을 많이 가지고 있구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물론 돈이 많으면 사람 도리를 하며 살아야할 때 편리하다. 좋아하는 일을 부담 없이 하며 여유 있게 살 수 있다. 살아갈수록 돈의 위력을 크게 느끼며 돈이 없어서 좌절하는 사람도 늘어간다. 아이들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부자가 되고 싶다는 대답을 종종 한다. 부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이나 이후의 구체적인 삶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못한다. 돈이 주는 달콤한 것만 기억하고 상상한다. 아이들도 돈의 마력을 눈치 채고 있다. 그런데 돈이 삶의 목적이라 생각하며 자라는 것이 문제이다. 돈으로 할 수 없는 것을 같이 찾아보며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지 않기 위해 정신 무장을 한다.우리는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 따위의 광고가 거리낌 없이 나오는 가치관이 흐트러진 세상 속에 산다. 성인들이 머리 둘 곳 없이 살다 갔어도 그 인격이 보잘 것 없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힘들게 살기를 원하지 않고 그럴 용기도 없기 때문에 쉽고 편안한 삶을 택하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 진다. 그리고 그 말처럼 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쟁취해야 된다는 최면에 걸리기도 한다. 어쨌든 돈이 많은 것과 잘 산다는 것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건 분명하다. 돈이 많아도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 숨 막히게 더운 날 엘리베이터 수리하던 젊은이를 보았다. 기름이 묻은 작업복을 입고 땀 흘리며 일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민망하여 얼른 돌아섰지만 등 뒤에서 들리는 젊은이가 부르는 콧노래 때문에 마음이 놓이고 기분이 좋아졌다. 힘든 일을 기피한다지만 밝은 마음으로 자신의 일을 하는 그는 참 아름다웠다. 이른 새벽에 딸그락거리는 소리가 나서 밖을 보면 채 걷히지 않은 어둠 속에서 쓰레기를 치우는 손을 볼 수 있다. 폭우가 쏟아져도 눈이 쌓여도 쉬지 않는다. 주위를 둘러보면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 많이 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이웃에게 사람의 정을 나눠주며 사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도 있다. 물질보다 정신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사는 이들이 있다. 잘 산다는 것이 어떻게 사는 것인지 아직도 모른다. 그렇지만 한 해가 또 기우는 이 때,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낸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것도 잘 사는 것이라 확신하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꿈꾼다. 사람만이 희망이기 때문에. /한경선(글짓기 논술지도교사)

  • 오피니언
  • 기타
  • 2005.12.20 23:02

[문화마주보기] 아드보카트 감독의 미소

지난 주말,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2006독일월드컵 조 추첨 행사를 TV를 통해 보았습니다. 한국이 G조에서 프랑스 스위스 토고와 한 조가 되는 순간, 현장에 있던 아드보카트 한국팀 감독의 씩 웃는 장면이 화면에 클로즈업되더군요. 그의 웃음은 한결 여유로워 보였습니다. 그때 저는 만약 저 자리에 본프레레 감독이 앉아있었더라면 어떤 표정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갔습니다.그렇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 앉아있어야 했습니다. 작년 6월 한국축구팀 감독을 맡은 이래 어쩐지 맥 빠진 경기를 하는 듯 했지만 어쨌든 월드컵 본선 진출의 성과를 이뤄낸 장본인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거기에 앉아있지 못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가 한국팀 감독으로 있었던 시절, 저처럼 그를 비난했던 한국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였을까요. 그것 때문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를 지지하고 도와주려고 했던 사람들도 많이 보았거든요. 히딩크 감독도 처음엔 그랬다. 좀 기다려봐라. 왜 한국사람들은 기다릴 줄 모르니? 그리고 그게 왜 감독 혼자만의 책임이고 문제냐?라거나 이제 와서 감독을 또 바꿔봐야 무슨 소용 있겠냐 고 말한 친구들을 여럿 보았거든요.비교적 좋지 않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그는 꽤 긴 시간동안 한국대표팀 감독을 유지했습니다. 그리고 여론에서 비난의 화살이 쏟아질 때마다 그는 억울해 했습니다. 게임에 질 떼마다 준비한 시간이 너무 짧다든지 선수들의 정신이 해이해진 탓이라든지 하면서 결코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한국 대표선수들은 성숙해보였습니다. 본프레레 감독에 대하여 무능력하다거나 감독의 책임이라거나 비난한 예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본프레레는 한국팀의 월드컵 4강 성적에 대한 프라이드를 이렇게 꺾어놓기도 했습니다. 2002년은 과거의 일이다. 그때와 비교는 부당하다. 정말 그는 안 된다는 정신으로 똘똘 뭉쳐진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결국 그의 운명을 바꿔놓은 것은 지난여름 개최된 동아시아대회였습니다. 형편없는 성적으로 아시아 축구 하류국의 슬픔을 안겨준 채 그는 한국축구는 감독들의 무덤이란 말을 남기고 짐을 싸야했습니다.지난 10월, 아드보카트 감독이 부임했습니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이란 스웨덴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등 강팀과 맞붙어 2승 1무의 멋진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항간에 그의 성적을 행운이 따랐기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성적에 행운이 따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행운의 여신은 반드시 준비된 자에게만 손짓한다는 걸 여러분도 잘 알고 있겠죠.2006년 독일월드컵을 기다리는 한국인들을 미덥게 한 것은 성적도 성적이지만 역시 그의 태도였습니다. 어느 조에 속하든 우리는 당당히 맞설 것이고 승리할 것이다. 우리에게 만약이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 만약에 어느 조에 속하면 거기는 죽음의 조이기 때문에 절망할 것이고, 만약에 또 다른 어느 조에 속하면 거기는 쉬운 상대들과 함께한 조이기 때문에 웃을 일이 아니라는 거겠죠. 아마 이날 조 추첨에서 한국은 어느 조에 속하더라도 강팀들을 피하진 못했을 겁니다. 2002년 우리 한국팀이 쉬운 상대들을 만났기 때문에 4강까지 올라갔던 것이 아니듯 말입니다. 그보다는 꿈이 있었고, 그 꿈은 이뤄진다는 믿음을 온 국민이 가졌기 때문이었죠.또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아드보카트 감독의 여유로운 웃음이 한국축구 2006년을 더욱 미덥게 하듯 우리도 씩 웃으며 새해를 맞이했으면 좋겠습니다./배석호(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예술사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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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2.13 23:02

[문화마주보기] 씨름과 인터넷문화

씨름은 유목사회에서 출발한 야외 스포츠로 알려져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는 씨름은 현재도 한국을 비롯하여 몽골, 러시아, 터어키, 일본 그리고 알프스의 목동 사이에서까지 성행하고 있다.한국이나 몽골과 같이 두 사람이 맞달라붙어 힘을 겨루는 씨름의 형태는 이미 기원전 초원의 기마민족 사이에서 유행하였던 듯, 스키타이 풍의 북방 청동기에 그 원초적 형태가 뚜렷이 남아있다.그러나 한반도를 거쳐 일본열도에 들어간 씨름은 일본인 특유의 감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스모로 변모하였다. 씨름과 스모에는 여러 차이점이 있으나 스모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상대방의 눈을 읽으며 승부에 임하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씨름의 경우 심판이 삿바를 마주잡은 두 선수의 등을 두드리는 것으로 시합이 시작되지만, 스모는 두 선수가 적당히 떨어진 거리에서 상대방의 표정을 읽으며 무언의 합의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정확하게 시작하기조차 힘들다. 스모의 이와 같은 특징은, 일본어에도 잘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철저하게 상대방의 눈치를 살펴가며 대화를 꾸려나가는 일본인 특유의 심성이 스포츠에 여실히 반영된 결과로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스모를 국기로 여기고 있을 뿐 아니라, 가장 일본다운 문화의 한 단면으로서 대내외에 상징화되어 있다.사람과 사람이 서로의 의사를 소통하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표정을 읽는 것이다. 그리고 그 표정이란 다름 아닌 마음의 창 눈을 읽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의 주장을 경청한 후 자신의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표현하며 상대방과의 의견 차이를 조율해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대화와 타협의 가장 기본적인 구조가 인터넷시대를 맞이하여 크게 변하고 있다.감추어진 곳에서 상대방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채 무차별적인 언어폭력이 난무하는 작금의 상태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가 지니는 쌍방대화의 결핍을 절실히 느끼게 한다. 이는 우리 교육과정의 가장 큰 결함인 주입식 교육과도 무관하지 않은 듯 하다. 평소에 학생들이 생각하는 바를 논리정연하게 토론을 하거나 이를 문장으로 표현하는 훈련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도 타협의 문화가 좀처럼 정착되지 않는다. 소위 TV의 토론프로그램에 자주 얼굴을 내미는 논객들조차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지 않고 말을 끊기 일쑤이며 정제되지도 않은 자기주장을 일방적으로 늘어놓는 경우가 허다하다.상대방의 다양한 표정을 읽으며 상대의 논리를 경청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반론하는 훈련을 인터넷매체를 통해서는 좀처럼 체득하기 어렵다. 오로지 자기논리만이 난무하며 상대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수사로 화면을 채워나가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의사소통의 왜곡된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요즈음 인터넷 실명제가 거론되고 클린 사이버라는 말이 공익광고 등을 통해 강조되고 있는 것은 인터넷문화 강국 대한민국이 당면하고 있는 멀티미디어 시대의 부정적인 문화현상의 한 단면이다. /민병훈(전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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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2.06 23:02

[문화마주보기] 프로는 아름답다

이런 일이 있었다. 늑장을 부리다가 약속시간에 임박해서 집을 나왔다. 서신동에서 교동 한옥마을까지 가는 길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먼 곳에서 찾아온 손님에게 식사를 대접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시간이 빠듯했다. 더구나 차가 밀리는 퇴근시간 무렵이었다. 제 시간에 꼭 도착해야 했으므로 나는 연신 손목시계를 초조하게 들여다보다가 간신히 택시를 탔다. 약속시간에 늦으셨나 보군요. 눈치로 다 안다는 듯 사십 전후로 보이는 택시기사는 룸미러를 통해 빙긋 웃음을 지어 보였다. 예, 조금요. 서둘러서 나왔어야 하는 건데 준비할 게 좀 있어서 이렇게 늦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일곱시까지 도착하는 건 불가능하겠죠? 일말의 기대를 버리지 않고 묻는 내 말에 그 기사는 시계를 한 번 들여다보더니 라디오를 끄며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어떻게든 늦지 않게 도착하게 해 드릴 수는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나는 물론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으므로, 늦지 않게만 해주시면 아무래도 좋다고 말했다.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5분 전에 그곳에 도착했다. 그 기사는 그 시간에 어느 도로가 어떻게 막히고, 그걸 피하기 위해서는 어떤 길로 차를 몰아가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심지어는 좁은 골목길까지 몇 차례 드나들기도 했다. 그렇다고 크게 과속을 한 것도, 신호를 위반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확실한 건, 그이는 전주 시내 도로를 좁은 골목길까지 훤히 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그는 내가 가려고 했던 한식집의 위치까지도 정확히 알고 나를 그 앞에 데려다주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목적지가 보이고, 이제는 약간의 시간 여유도 생겼다 싶어서 나는 그렇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러자 그 이는 당연한 일 아니냐는 듯, 이게 제 직업이거든요, 하면서, 손님들이 비싼 돈을 내고 택시를 타는 이유 중 하나가 목적지까지 빨리 가자는 데 있는 것 아니냐고 오히려 내게 반문했다. 6개월 전에 개인택시 면허를 샀다는 그는,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하기 전에 오늘 같은 일이 가끔 생길 것을 예상해서 꼬박 한 달 동안 전주 시내 도로망과 시간대별 상황을 면밀히 조사했다는 것이었다. 혹시 아까 라디오도 일부러 끄신 겁니까. 그야말로 혹시나 해서 내가 물었다. 그러자 이번에도 그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운전에만 집중해야 하니까요. 이번처럼 시간에 쫓기는 경우에는 라디오 소리도 운전에 방해가 될 수 있거든요. 손님을 안전하게 모셔야 하는 것도 제 임무 아니겠습니까. 내릴 때 보니 미터기에는 5,200원이 찍혀 있었다. 나는 만원 짜리를 내면서 거스름돈은 4,000원만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기사는 800원까지 꼬박꼬박 세어서 내게 주었다. 그러면서 미소띤 얼굴로 또 한 마디 하는 것이었다. 제가 말이죠, 적어도 이 일 만큼은 프로거든요. 나를 내려놓고 멀어져가는 그 택시를 바라보며 나는 그 기사가 마지막으로 내게 건넨 그 프로라는 말을 여러 차례 되뇌였다. 프로는 물론 프로페셔널 혹은 프로페셔널리즘의 머릿글자에서 따온 말이다. 직업으로 번역되기도 하고, 전문가를 지칭하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어원이 같으므로 이 두 단어는 당연히 하나의 뜻으로 해석되어야 하는데 가끔은 따로 떼어서 쓰이는 일도 적지 않다. 물론 많지는 않겠지만, 주요 관공서나 전주시를 대표하는 음식점 혹은 공연장의 위치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거리로 차를 몰고 나온 택시기사도 가끔은 있다는 말이다.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라고 하는 여성의류 광고카피가 있었다. 직업이나 전문가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말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 싶다. 그렇게 하면 프로란,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혹은 그렇게 하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 된다. 세상을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하고, 또한 발전시켜나가는 것은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다. 앞서의 그 택시기사는 그런 점에서 그 자신도 말했던 것처럼 프로라고 할 만하다. 프로가 아름다운 건 바로 그래서다./송준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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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1.29 23:02

[문화마주보기] 얘들아, 책하고 놀자

모든 부모들은 아이들이 책을 좋아해주기를 바란다. 읽을거리가 부족한 시대도 아니고, 마음만 먹으면 좋은 책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책 읽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억지로 책 읽히는 것도 한계가 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지 않는 이유를 물어보면 학교 갔다 와서 학원 여기저기 돌다오면 피곤하고 시간이 없다고들 엄살을 한다. 그 말도 맞다.독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요즘은 학교에서도 독서 지도에 많은 신경을 쓴다. 수학에 관련된 책이 수학 교과서뿐인 줄 알고 학교 다니던 시절이 아니다. 각 학년과 과목마다 연관된 도서를 선정해서 학생들에게 읽힌다. 바람직한 일이지만 아이들이 책에 흥미를 느끼게 하는 데는 별 효과가 없다. 즐겁게 혹은 지식 탐구의 기쁨을 맛보며 읽는 것이 아니다. 학교에서 선정해 준 책 읽기는 독후감 숙제로 이어진다. 아이들이 책 읽는 것도 싫어하지만 독후감 쓰기는 더욱 부담스러워한다. 그러나 독후감을 쓴 결과가 수행 평가로 이어지기 때문에 소홀히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책을 읽지 않고 숙제를 하는 방법을 찾기도 한다. 책과 친하지 않은 아이에게는 더욱 질리게 하는 효과가 있다. 게다가 학교마다 선정한 책이 딱딱하고 어려운 것들도 많다. 사실 책 읽기에 정해진 기준은 없다. 초등학생 중에서도 중?고등학생이 읽을 법한 책까지 섭렵하는 아이가 간혹 있지만 고학년이라도 책을 많이 접하지 않은 아이는 쉽고 재미있는 것을 먼저 선택해서 읽을 수 있다. 어른이 아이들 동화를 읽으며 충분히 감동을 느끼기도 하지 않는가. 가장 중요한 건 책 읽는 재미에 빠져 스스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책 읽은 뒤에 꼭 독후감 쓰기만 하는 것보다 다양한 독후 활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면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하게 하고, 엽서를 만들어 친구에게 자기가 읽은 책을 권하게 하는 방법도 있다. 책을 읽고 삼삼오오 모여 토론하는 것을 아이들이 의외로 좋아한다. 좋아하는 노래에 책 읽은 느낌을 써서 가사를 바꿔보는 것도 재미있어 한다. 아이들 수준이 천차만별인데 학교에서 섬세하고 다양하게 독서 지도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독후감 숙제를 내는 것으로 책읽기를 일률적으로 확인하려는 것은 부작용이 더 많다. 읽으라는 책은 그렇게 싫어하면서 인터넷 게임에는 아이들이 스스로 빠져든다. 특히 남자 아이들은 게임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어머니가 상과 벌을 줄 때, 게임하는 시간을 늘리고 줄이는 것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어느 방법보다 효과가 있고 아이들과 타협하기에 알맞다. 아이들은 게임을 통해 공부하면서 느끼지 못한 성취감을 맛보는지도 모른다. 못해도 학교 성적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것이다. 무엇보다도 가상현실에서나마 제대로 날개를 펴고 맘껏 나는 기쁨을 맛보며 빠져들 것이다. 책 속에도 그에 못지않은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모른다. 배경 지식을 넣어주려는 욕심 때문에 책 읽기를 강요하는 것보다 어떤 방법으로 다가가서 아이들이 책하고 놀게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한경선(글짓기 논술지도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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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1.22 23:02

[문화마주보기] '코리아 환타지' 들어보셨습니까?

내년은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이자 안익태 탄생 100주년입니다. 벌써부터 모차르트 때문에 전세계 음악계가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는데 비해 우리가 안익태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이 별로 눈에 띄지 않습니다. 제가 8살 때 돌아가셨으니 그분을 잘 모릅니다. 학교에서도 음악이나 역사시간에 애국가를 작곡한 사람이란 것 말고 그분에 대해 가르쳐준 선생님은 한분도 없었습니다.독일이나 프랑스는 말할 것도 없고 적어도 핀란디아를 작곡한 시벨리우스가 핀란드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고, 그리그가 노르웨이에서 어떻게 추앙받고 있는지, 브라질에서 빌라-로보스가 어떤 조명을 받고 있으며, 나의조국을 쓴 스메타나가 왜 그리도 체코인들에게 자랑인지, 미국은 왜 아론 코플란드나 찰즈 아이브즈를 추켜세우는지, 그것을 가르쳐줄 줄 아는 선생님이라면 안익태 선생님을 몰랐을 리 있을까요?모름지기 제 나라의 영혼을 노래할 줄 아는 작곡가 한명을 내세우기 위해서 다른 나라 사람들은 그토록 호들갑인데, 우리는 스스로 힘으로 세계적인 음악가가 된 위인(偉人)을 갖고 도 비판이나 하면서 지나왔습니다. 물론 이렇게 된 데는 우유부단한 정부와 음악계의 친일기득권자들의 시기와 질투가 한몫 했습니다. 우리에게 코리아 환타지가 자주 들려오지 않은 이유도 아마 그럴 겁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귀를 막고 안익태 선생님 작품연주를 외면했던 그들도 이제는 대개 무덤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교향시 코리아 환타지가 어느 조그만 음반수입상인 한 개인의 열망으로 출시된 것은 십수 년 전이었습니다. 좀더 정확한 녹음연대는 1992년 11월 16일이었고 장소는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니홀이었습니다. 연주자들은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원 160명이었습니다. 이 곡을 우리나라 악단이 아닌 외국 악단이 녹음한 것을 두고 크게 의아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코리아 환타지는 한국보다 외국에서 더 많이 연주됐고 더 알려져 있습니다. 그것은 안익태 선생님께서 한국의 음악가라기보다 세계의 음악가였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R. 슈트라우스를 계승한 수제자로 1930년대부터 50년대 세계 유명악단의 바통을 잡은 마에스트로였으며 스페인에서는 선생님을 위해 교향악단을 창설해주기도 했습니다.하지만 선생님에 관한 전기나 평전을 보면, 그분은 한국에서 활동을 하길 원했습니다. 3.1만세운동 때 일경(日警)의 지목대상이 되어 일본으로 기 듯 유학을 떠난 선생님은 이후 미국과 중남미, 유럽 등을 다니면서 음악생활을 했습니다. 해외에서 홀로 음악가로 성공하는 동안 나라 없는 설움을 톡톡히 겪어야했던 선생님께서 애국가를 작곡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50년대 세계 최빈국 중의 하나요,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한국을 잊지 않고 틈틈이 드나들며 헌신했습니다. 국제적인 음악제와 교향악단과 음악학교를 세우기 위해 정부의 지원을 끌어들이고 자신이 외국악단을 지휘해서 받은 연주료까지 헌납했습니다. 그러나, 조국이라는 그릇은 아직 안익태라는 세계를 담기엔 너무 적었나 봅니다. 선생님은 끝내 그리던 조국땅에 돌아오지 못하고 이국땅에서 눈을 감아야했으니까요.내일(독일 현지날짜 11월 16일), 다시 베를린 필하모니홀에서 코리아 환타지가 울려퍼집니다. 베를린교향악단(Berliner Symphoniker)과 칼 포스터 합창단(Karl-Forster-Chor)이 한국 방문을 앞두고 독일에서 갖는 공연입니다. 여러분! 코리아 환타지 들어보셨습니까?/배석호(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예술사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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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1.15 23:02

[문화마주보기] 문화재와 모사·모조

작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제28차 회의에서 북한의 덕흥리 벽화무덤, 약수리 벽화무덤 등 모두 63기의 고구려 벽화무덤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북한의 고구려 벽화무덤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TV나 책자 등으로 공개되어 왔지만, 불과 20여년 전에 소개된 내용과 비교해 볼 때 벽화에 너무 많은 손상이 진전되고 있어 우리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고구려 무덤벽화와의 관련성으로 유명한 이웃나라 일본의 다카마쓰(高松) 무덤벽화 역시 더 이상의 훼손을 감내하지 못하고 드디어 해체보존이라는 최후의 방법을 택하기에 이르렀다.고구려 무덤벽화나 실크로드에 산재한 여러 석굴사원의 벽화 등은 그 소재 등이 환경의 변화에 매우 취약하기 때문에 인위적 요소나 자연의 재해 등으로 언젠가는 무너져 내릴 위험성이 있다. 이 때문에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보존과학자 등이 여러 방책을 강구하며 수리와 보존처리에 임하고 있지만 결국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 퇴색이나 열화를 피하기 힘든 운명을 안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벽화와 같은 문화재는 옛부터 현 상태를 원화와 동일한 안료를 사용하여 그대로 화폭에 담아 전하는 현상모사작업이 매우 중시되어 왔다. 이미 불타 없어진 일본 호류지(法隆寺)의 금당벽화나 훼손된 고구려 벽화는 이와 같은 모사작업이 없었다면 원래의 모습을 유추하기 조차 힘들었을 것이다.때문에 모사나 모조는 양(洋)의 동서를 막론하고 고대로부터 수많은 예술가들이 고전의 재생과 새로운 창조의 원동력으로서 이에 적극적으로 임하여 왔다. 한국이나 중국 일본에 서도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서화가나 공예가들에 의해 모사 모조의 전통이 꾸준히 계승되어 왔으며, 이를 통하여 높은 예술성과 고도의 제작기술 역시 전승될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는 전하여지지 않고 있는 작품들에 대해서도 재료나 제작기법 등 다양한 조사와 연구를 통하여 복원모조를 시도함으로써 새로운 전통을 창조하고 이를 발전시켜 나가기도 한다.전주는 옛부터 한지의 고향으로도 유명하였지만, 조선시대의 궁중에서 사용하였던 고급 지류의 생산기술은 단절된 지 이미 오래되었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근근이 그 명맥만을 유지해오고 있다. 그리고 근자에는 원주 등지로 그 주도권마저 넘어가려 하고 있다. 앞으로 한지공예나 죽공예 등 전통문화도시 전주의 전통 수공예와 예술의 활성화를 기하고 창조적인 장인의 맥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도, 대학 등에서 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관련학과의 설치 및 산업현장과의 접목이 필요하다. 그리고 대학이나 시의 부설기관으로서 전주의 전통공예를 종합적으로 연구하고 이를 문화산업으로서 연계시킬 수 있는 전문 연구소의 설립과 활성화 또한 절실하다. 그래서 전주에서만 접할 수 있고,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경쟁력을 지닐 수 있는 뛰어난 디자인의 품위 있는 문화상품을 개발해 나가야 한다.나아가 지난 8월에 탄생한 국립고궁박물관이나 국내 유수의 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는 관련 작품을 체계적으로 분석연구하고 모사 또는 모조작업을 통하여 축적된 제반 기술정보를 바탕으로, 전통의 창조적인 계승발전을 도모하고 나아가 후세의 한국미술과 공예 발전의 기반을 구축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민병훈(전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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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1.08 23:02

[문화마주보기] 진안 친구 망할 친구

사람이 되야 갖고 넘들 형편도 좀 생각혀 주기도 허고 양보도 좀 허고 그려야지, 저거 어디 쓰겄냐. 암만 갑갑혀도 1분만 참으면 될 턴디, 쯧쯧.지난 일요일, 칠순을 맞은 어머니를 모시고 가족들과 함께 금산사로 가는 길이었다. 서신동에서 삼천천을 따라 몇 개의 언더패스 도로를 지나서 박물관 쪽 다리를 건너가려고 1차선에 차를 세우고 직진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자동차 경음기 소리가 내 차 바로 옆 2차선 쪽에서 들렸다. 저걸 꼭 울려대야 직성이 풀리나 싶으면서도 잠깐 눌러대다 말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혹시 길을 물으려는 건 아닌가 해서 고개를 돌렸더니 그것도 아니었다. 운전석의 사내는 아예 경음기 버튼에 손을 얹어 두고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앞차에 대고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대충 짐작이 갔다. 자동차 서너 대가 언더패스 도로로 향하는 2차선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저럴까 싶어서 그 차 안을 건너다보았다. 그랬더니 웬걸, 그쪽도 우리처럼 일가족 나들이인 모양인데 가장의 일그러진 표정과는 달리 동승한 여자와 아이들은 희희낙락이었다. 졸지에 길바닥에서 뒤통수에 욕을 얻어먹고 있는 사람도 궁금했다. 바로 앞 차 안에서는 운전대를 붙잡은 중년 여자가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딱해 보일 지경이었다. 그런데 사실은 그 중년 여자도 덤프 트럭에 가로막혀 있는 처지였다. 그리고 우연히 목격한 그 중년 여자의 차는 타 지역 번호판을 달고 있었다.그러거나 말거나 경음기 소리는 계속 울려대고 있었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하도 시끄러워서 내가 퉁명스러운 소리를 한 마디 내뱉었다. 그러자 뒷자리에 앉아 계시던 어머니가 한 마디 거들고 나섰다. 저런 것도 다 공해여. 네? 네에. 그럼요. 소음공해도 큰 공해지요. 소음공해도 소음공해지만 저건 사람공해라서 사단이다. 사람공해요? 너도 글 쓴담서 생각 좀 혀 봐라. 저그 저 사람, 지 속에서 부글거리는 화를 못 참고, 그걸 분풀이허자고 저렇게 시상 시끄럽게 혀서 넘들헌티 공연한 피해를 주고 있잖으냐. 그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경음기 소리는 사이렌처럼 멈추지 않았다. 가장이 저러니 그 아이들은 뭘 보고 배울까 싶었다. 그런 내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어머니는 해묵은 이야기를 슬그머니 꺼내는 것이었다. 내가 처녀 적에 진안으로 시집간다고 헝게 누가 그러더라. 진안 친구 망할 친구라고 허는 말도 못 들어봤냐고. 생판 타향으로 시집가는 세상물정 어두운 처녀헌티 그게 헐 소리고 아니고는 관두더라도, 그러거나 말거나 가서 살아봉게 내 보기에는 진안 사람들 더없이 순하고 착허기만 허더라. 근런디 어쩌자고들 그런다냐 허고 가만 생각혀 봉게, 담박에 알겄더라. 필경 진안 사람 누가 외지 사람헌티 참말로 망할 만한 짓을 혔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망할 짓 허고 댕기는 사람은 어디 가도 다 있는 것인디, 하필이면 진안 사람이 헌 짓만 침소봉대되야 갖고 그렇게 된 것일 테지. 그런 말이 떠돌아댕기게 망할 짓을 헌 사람이나, 그걸 한 데 묶어갖고 망할 말을 맨들어서 퍼트리고 댕긴 사람이나, 지금 저렇게 한길에서 넘들헌티 피해를 주고 있는 저 사람이나 알고 보면 다 똑같다.진안 친구 망할 친구라는 말은 어릴 적에 나도 자주 들었다. 그때마다 괜히 억울하단 생각이 들곤 했지만 도리가 없었다. 어머니의 얘기는 계속됐다.저그 앞에 서 있는 차를 봉게 외지에서 온 것 같은디, 운전하는 저 여자는 또 어떻게 생각허겄냐. 전주라고 허는 디를 가봉게 거그 사는 사람들은 모다 심성도 불뎅이 같이 급허고, 넘들 입장은 요만큼도 생각혀 주지 않더라고, 언감생심, 문화도시는 무슨, 택도 없는 소리라고 안 허겄냐. 거그까지만 혀도 괜찮은디, 저 여자 딸이나 아들이 나중에 장성해 갖고 어쩌다가 전주 사람허고 혼인 말이라도 오고 가게 되면 필경 오늘 일이 떠오르지 않겄냐. 그러면 그 손해를 당허게 되는 아무 죄도 없는 다른 전주 사람들은 어떡하라고. 사람이 되야 갖고 넘들 형편도 좀 생각혀 주기도 허고 양보도 좀 허고 그려야지, 저거 어디 쓰겄냐. 암만 갑갑혀도 1분만 참으면 될 턴디, 쯧쯧./송준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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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1.01 23:02

[문화마주보기] 밥상앞에서

밥상 앞에서한 경 선이 음식이 우리를 위해 희생한 것 같이 우리도 남을 위해 희생하게 하소서.라고 하는 식사기도를 들으며 음식을 가볍고 쉽게 대했던 마음을 되돌아 본 적이 있다. 세상에 있는 동식물들의 생명을 흡수해서 우리 생명을 이어간다. 음식을 통해서 마음을 전하기도 하고 정성을 담기도 한다. 한 끼 식사를 간소하게 해결하는 부족도 있지만 대부분의 나라 사람들은 다양한 음식을 먹는다. 현대인들은 먹는 것을 유난히 즐긴다. 여행지 소개를 할 때 그 주변의 음식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음식 기행도 추억으로 남을 수 있으니 그 정도는 애교로 봐 준다 해도 텔레비전에서까지 시도 때도 없이 먹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침이나 저녁, 주말에는 주말대로 리포터나 연예인이 나와서 음식을 소개한다. 너무 잦은 음식 이야기가 식상한데다가 먹는 것에 집착하도록 부추기는 듯해서 민망할 때가 많다. 이렇게 먹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음식에 대한 불신과 불안은 가시지 않는다. 요즘 널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주인공은 단연 중국에서 건너온 먹거리이다. 납꽃게가 식탁에 오르더니 명절이 되면 제수용품 고르는 것도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무분별한 농약 사용이나 믿을 수 없는 첨가물을 넣어 가공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어서 중국산에 대해 거부감이 있다. 중국산 김치는 일본으로 수출하는 김치보다 질이 낮은 상품이 우리나라로 들어온다고 한다. 일본 사람들은 김치 공장 위생 상태와 재료를 꼼꼼히 살피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찌 됐든 원가를 낮춰서 만들어 달라고 주문을 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유해한 먹거리 유입을 남의 탓이라고만 할 수 없게 되었다. 국산품이라고 안심할 수도 없다. 가짜가 앞에 붙은 참기름이니 고춧가루는 고전에 속한다. 농약 함유량이 많은 채소와 과일이 심심찮게 뉴스를 장식한다.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즐겨먹는 과자에 해로운 첨가물이 범벅되어 있다고 해서 쓴 입맛을 다셨다. 최근에는 축산물 항생제 과다 함유 문제가 불거지더니 또 양식 물고기에서 말라카이트 그린이라는 발암 물질이 검출 되었다고 야단이다. 그것뿐이랴. 물위로 떠오르지 않은 숱한 문제점들이 더 많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오래전부터 먹거리를 신뢰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것저것 다 따지다가는 백이숙제처럼 산속에 들어가 고사리만 먹든지 굶어야 상책이기에 모르는 척 넘어가기도 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요즘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왕이면 몸에 좋은 것을 먹고 싶어 한다. 국제적으로는 조류 독감, 광우병 때문에 육류 먹는 것도 개운치 않다. 게다가 두부 하나를 사더라도 유전자 변형 식품인지 살펴봐야 한다. 배고픔을 겪은 사람들은 배부른 소리라 할지 몰라도 골라서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다. 눈앞의 이익만 쫓느라 눈이 먼 사람들 때문에 모두들 번지르르한 겉모습과 달리 속으로 병들어가고 있다. 사람답게 먹고 살 권리를 찾고 싶다. 정직한 먹거리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고 싶다. 제발 먹는 것 가지고 장난 좀 치지마라./한경선(글짓기 논술지도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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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0.25 23:02

[문화마주보기] 전주도 서울같이...

단골로 다닌 서울의 몇몇 콘서트홀에서 자주 마주치는 반가운 얼굴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대구에서 내과의(內科醫)로 일하는 K선생, 몇 개월 동안 서울의 공연장에 가질 못해 뵌 지 꽤 됐습니다. 정읍의 L선생도 서울에선 한달이 멀다하고 뵐 수 있었는데, 가까운 전주에 있으면서도 아직 인사조차 못 드렸습니다. 이 분들 외에도 특별한 약속 없이 공연장 로비에서 자주 마주치는 콘서트고어(Concertgoer) 중에는 상당수가 거리를 마다않고 멀리서 온 분들이었습니다.K선생은 병원 문을 닫자마자 대구서 비행기 타고 왔다가 공연을 보고 고속버스 막차를 타고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L선생은 자동차를 운전해서 늘 부인과 함께 왔었지요. 두 분 다 클래식음악을 어찌나 좋아했는지 웬만한 곡은 달달 꿰고 있었죠. 그 많은 음반을 모아서 언제 다 들을 거냐고 물으면 보기만 해도 마음이 푸근해진다고 했어요. 당시 저는 그들의 대단한 열정에 감복하고는 세계의 유명 콘서트가 연일 열리고 있는 서울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곱씹어보곤 했습니다.그러던 저도 이젠 전주생활 8개월째 접어들었습니다. 이곳에 와서 가장 먼저 피부로 느낀 공연문화 양상은 잘 알려진 유행가수들의 공연이 무척 많다는 것입니다. 지금 방송에서 한창 뜨고 있는 스타부터, 흘러간 스타들 과거 TV에서나 본 적 있는 가수들을 매월 한 두 차례는 지역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했습니다. 서울의 아트센터에서도 이런 공연들을 볼 수 있었던가? 생각해보니 거의 없었습니다. 소위 밤(?)무대라는 곳과 가끔 신문광고를 통해 호텔에서 유명 가수들이 출연해 디너쇼를 한다는 것은 보았지만... 대체로 대중음악은 홍대입구나 대학로 근처의 카페나 소극장 같은 데서 매니아(mania) 중심의 장르별로 공연되는 게 다반사였습니다.비단 전주뿐 아니었습니다. 전국 각 지방의 공공 공연장에서는 대중음악 쇼가 생각보다 많이 열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경북 상주에서 일어난 참사를 다시 기억해봅니다. 역시 전국어디서나 치러지고 있는 행사 중 하나였을 겁니다. 그날 수많은 군중들은 K나 L선생처럼 음악에 대한 대단한 열정 때문에 공설운동장에 밀려들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고급예술을 접하기 어려운 지방 여건상, 그것이라도 봐서 공허한 영혼에 꽃을 피워보자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요? 그렇다면 그들의 공허한 가슴을 채워줄 꽃은 무엇일까요? TV에서 늘 보고 있는 얼굴의 대중스타들을 지역에 불러들여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대면케 해주는 걸까요?그것은 잠깐의 공허감은 메워질지언정 정신의 심연까지 뒤흔들어 무한한 이상의 세계까지 보여주진 못합니다. 8개월 전, 고속도로를 달려 전주로 내려오는 길은 아직 푸르지 않은 봄이었습니다. 자동차는 새벽안개를 아주 낭만적으로 헤엄치듯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운전을 하며 저는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전주도 서울같이, 매일 저녁 클래식음악의 황홀에 빠뜨리자.../배석호(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예술사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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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0.18 23:02

[문화마주보기] 평생학습과 박물관

지난 7월부터 주5일 근무제가 시작되었다. 주5일 근무제는 단지 여가활용의 기회 확대 차원을 넘어 지역사회에도 많은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특히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경우 지역사회의 역사와 문화를 다음세대에 전하는 전달장치로서의 기능을 뛰어넘어,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휴게공간, 학교교육의 연장선으로서의 학습현장, 고령화시대의 평생학습 기관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문화공간으로서의 새로운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길목인 개인소득 1만불의 시대를 맞이하면 대개 자신의 역사나 문화의 뿌리찾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고, 2만불을 넘어서면 지자체에 이르기까지 지역의 문화를 대변하는 박물관?미술관의 설립과 운영에까지 관심이 확대된다고 한다. 그리고 저 출산에 의한 인구감소와 고령화사회를 함께 맞이하게 된다.이미 70년대부터 시작된 우리사회의 핵가족화, 도시화, 고학력화 그리고 국제화에 따른 정보화의 심화와 더불어 고령화사회의 도래는 문화면에 있어서도 이에 대한 체계적인 대비책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박물관이나 미술관은 단순히 지역사회의 기억장치로서의 보존기능과 다양한 자료의 공개를 운영의 축으로 삼는 일방적인 문화 메신저로서의 기능에 만족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시민의 박물관 미술관 이용 및 참여의 확대로 쌍방간의 대화가 중시되는 인터랙티브 뮤지엄(interactive museum) 운영이 요구되고, 이를 통한 시민생활의 질적향상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교육시설로서의 기능강화가 요구된다.이와 같이 주민 자신 특히 노령층을 중심으로 한 다채로운 학습활동의 확대는 인터넷시대의 급변하는 사회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정신적인 여유를 지닐 수 있게 하며, 퇴직 후의 제2의 인생설계에도 적지 않은 도움을 주게 된다.그리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의 평생학습의 중요성 증진에 따라, 보다 나은 학습활동 지원을 위하여 자원봉사 활동 역시 그 중요성이 증대된다. 노령층 주민들은 이와 같은 평생학습과 자원봉사 활동을 통하여 미지의 이웃들과의 새로운 만남을 이룰 수 있고 나아가 삶에 대한 새로운 활력을 얻을 수도 있다.이와 같이 평생학습의 시대를 맞이하여 박물관과 미술관에 부여된 새로운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뮤지엄 에듀케이터(educator : education과 curator의 합성어)의 채용과 양성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된 자원봉사제도의 조직적인 운영과 봉사자로 참여하는 성원들의 수준향상이 함께 도모되어야 한다.지자체 운영의 뿌리가 아직 견실하게 내리지 못한 우리의 지역사회에서는, 70-80년대의 개발 지상주의에 따라 상실된 우리의 과거문화를 복원하기에도 벅찬 실정이다. 그러기에 수집과 보존을 그 기본개념으로 하는 제1세대 박물관의 확산도 아직은 절실한 상황이지만, 이들 자료를 체계적으로 전시하여 공개를 그 주된 기능으로 하는 제2세대 박물관의 기능과 더불어, 참여와 평생학습을 지향하는 제3세대 박물관의 기능이 함께 요구되고 있는 시대상황이다. /민병훈(전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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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0.11 23:02

[문화마주보기] 미원탑의 추억

무진장 촌놈인 내가 청운의 꿈을 안고 상전(上全)해서 맨 먼저 배운 단어는 아마도 빈대극장(지금의 명화극장 자리에 있던 제일극장)하고 미원탑이지 싶다. 언필칭 제일(第一)극장이 졸지에 빈대로 전락해버린 까닭을 나는 임예진 나오는 진짜 진짜 잊지마를 보러 갔다가 단번에 알아챘다. 말로만 듣던 미원탑은 지금의 홍지서림 입구 네거리 한가운데에 드넓은 팔달로를 굽어보며 거대한 동상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바로 그 70년대 후반, 나는 도청 소재지 입성을 자축하듯 기민하게도 미원탑을 입에 달았다. 미원탑은 다분히 상업적 전략에 따라 조형된 것일 텐데도, 그 어감이 주는 친근함과 네온등의 심미적 이미지, 혹은 당시까지만 해도 식탁 한 켠을 점유하고 입맛을 돋우던 조미료와 관련되어 있다는 복합적 이유로 많이들 친근해했던 건 아닌지.사실 나는 그 미원탑이 화려한 불빛을 내뿜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어쨌거나 그 미원탑 아래에는 담배꽁초를 구두 뒤축으로 비벼끄며 초조한 표정으로 주위를 연신 두리번거리던 이들이 참으로 많았던 걸로 기억된다. 그 미원탑이 소리 소문도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한동안 관통로 객사 앞이 익숙해질 때까지 미원탑 사거리를 버리지 못했다. 1980년 가을의 전국체전을 앞두고 조성된 동서관통로를 우리는 그냥 관통로라고 불렀다. 80년대에 20대 청춘을 이 도시에서 보낸 이들은 관통로 객사 앞이 하나의 보통명사였음을 안다. 아, 그런데 관통이라니. 도대체 어느 누가 이 도시의 중심가를 섬뜩하게도 관통로라고 이름하였던가. 더구나 객사(客舍)는 가끔 객사(客死)를 연상시키기도 했으니 조합(組合)치고는 참 얄궂기도 했다.물론 정겨운 이름 하나는 있었다. 바로 시집가는 날이다. 그 시집가는 날 앞을 서성거리면서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지 않고 그 시절을 보낸 청춘들이 있었을까. 웨딩드레스 맞춤 혹은 대여점이었던 그 시집가는 날 앞이야말로 그 시절 우리의 또 다른 보통 명사였고, 명소(名所)였다. 전통문화의 중심임을 자부하는 우리 도시 도처의 이름짓기 패러다임도 이제는 바꿀 때가 되었지 싶어서 하는 말이다. 돌아보자. 관통로는 언제부턴가 충경로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충경로는 그 어감이 주는 작위성은 차치하고라도 20년 넘게 머리와 가슴을 관통당해 버린 이들에게는 좀체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리고 둘러보자. 동부우회도로, 서부우회도로, 진북터널, 어은터널은 얼마나 밋밋하고 멋대가리 없는 이름인가. 동부시장남부시장중앙시장서부시장도 그 위치와 방향성을 그대로 따왔을 터이니, 나온 순서에 따라 김일순김이순김삼순으로 명명하는 것과 매한가지다. 하긴 뉴 밀레니엄 시대 전주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택지 개발지구 이름도 서부신시가지다. 그에 비하면 전통문화의 거리 태조로는 무겁기는 해도 멋스러운 구석이 있다. 청사초롱길로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훗날, 우리 지역 어느 곳에 새로 만들 터널이 있다면 국악기 이름 하나 빌려와서 아쟁터널 쯤으로 명명하는 건 어떨까. 서부우회도로와 동부우회도로는 서편제로(西便制露)와 동편제로(東便制露)로 바꿔 부르는 건 또 어떨까. 어감도 그럴싸하거니와 그 길을 지나는 사람은 애 어른 할 것 없이 판소리의 갈래 정도는 모두 알게 될 것이다. 경기도 수원에는 축구선수 이름을 딴 박지성로도 있다는데, 그 옛날 미원탑이 있던 곳에서 다가파출소 방향으로 금은시계점이 아직도 즐비한 그 거리를 이창호길 쯤으로 명명할 수 있는 여유나 멋도 이제는 부려볼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다. 누군가 나서서 이런 일을 추진해야 한다면, 그 누군가는 아마도 <전통문화중심도시추진단>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송준호(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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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0.04 23:02

[문화마주보기] 2005년 추석이야기

추석이 다가오자 무언가에 쫓기는 듯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 느낌이 우리나라 며느리들에게 있는 명절 증후군에 따른 우울증과는 달랐다. 짧은 연휴 때문인가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더 깊이 들어가 보니 마음 속 깊은 곳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안개처럼 깔려 있었다. 그것은 얇은 주머니 사정과 맞닿아 기분을 무겁게 가라앉혔다. 경제가 언제나 나아져서 서민들의 주름이 펴질지 알 수가 없다. 추석 장보기를 하는 사람이나 장사하는 사람들 모두 얼굴이 밝지 않았다. 고향 마을 골목에 세워놓은 차들이 헤싱헤싱했다. 귀향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매스컴에서 분석한 것처럼 삼 일밖에 안 되는 연휴 때문에 못 왔을 것이다. 미리 성묘를 하고 여행을 가거나 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전문가들 말대로 우리나라 명절 문화가 바뀌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는 게 힘겨워서 못 온 사람이 많았을 것이라는 마음이 자꾸 앞섰다. 아직은 고향에서 가족들이 모여 함께 명절을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생활이 풍요롭다면 분명 그 흥을 고향에서 풀고 싶을 것이다. 금의환향은 못해도 내년에는 괜찮아질 것이라고, 배짱 좋은 큰소리는 칠 수 있어야 고향 갈 맛이 나지 않는가. 골목 가득 뛰놀던 아이들도 이젠 없고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는 추석 아침은 적막했다. 우리 어렸을 때의 명절을 다시 떠올렸다. 손꼽아 기다리던 명절이 오면 새 옷, 새 신발을 머리맡에 두고 잠을 설쳤다. 도시에 나갔던 언니, 오빠들이 선물 상자를 들고 환한 얼굴로 마을을 들어서면 온 동네가 술렁거렸다. 그런 모습을 보는 어린 아이들에게 도시로 간 언니, 오빠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명절은 오랫동안 못 만난 가족과 친척, 친구를 만나는 만남의 장이었다. 고향 바람은 지친 도시 생활에서 쌓인 먼지를 털어내는 카타르시스 작용을 했다. 먹거리의 풍성함으로 보나 계절로 보나 설보다는 추석이 더욱 축제 분위기를 자아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붙들어놓고 싶은 세상 풍속은 변하고 문화도 바뀌어 간다. 해마다 추석이면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해서 긴 팔 옷을 입었었는데 올해는 후텁지근한 날씨가 계속 되고 잦은 비가 내렸다. 추석이 일찍 들은 탓도 있지만 지구 온난화로 인한 우리나라의 기후 변화를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이래저래 뒤숭숭한 추석이었는데 낯선 날씨까지 마음을 심난하게 했다. 누가 올 추석 연휴 짧은 것이 큰 불만이라고 한 것일까? 방송에서 재빨리 내년 추석에는 징검다리 휴일까지 9일이나 쉴 수 있다는 정보를 희망인 양 알려주었다. 그 말조차 반갑지 않았다. 며칠 쉬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살림살이가 나아져서 내년에는 훈훈한 마음으로 추석을 맞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 듣고 싶은 것이다./한경선(글짓기 논술지도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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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9.27 23:02

[문화마주보기] 판소리 사세요!

몇 년 전, 비발디의 사계 연주로 유명한 이 무지치(I Musici)의 악장이었던 마리아나 시르브 여사가 한국에서 연주를 마치고 돌아가면서 한 말 기억납니다.그동안 한국을 수차례 다녀갔으면서도 한국음악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주최사 도움으로 정동극장에 가보았습니다. 마침 한국음악이 연주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한국의 악기 소리들을 듣고 아, 이런 소리도 있었구나 하고 너무 놀랐습니다. 물론 중국이나 인도 음악을 접했던 것은 꽤 오래 전이었지만, 그때 느낌하고는 다른 감흥을 받았어요. 앞으로 제 연주생활에도 영향을 끼칠 거예요.그 이후 이 악단에서 한국가곡과 민요를 소재로 한 모음곡 한국의 사계라는 타이틀을 붙인 음반을 낸 것을 보았습니다. 외국인들에게 국악은 경이로운 예술로 비쳐집니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초월의 소리이며 국악기에서 나오는 범상함에 흥미를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전주세계소리축제를 앞두고 이 생각이 난 것은 왜 일까요? 저는 처음 이 축제의 명칭을 대했을 때 누구 아이디어인지 참 잘 생각해냈다고 무릎을 탁 쳤습니다. 이 행사는 분명 월드뮤직 페스티벌을 말할 텐데 역시 소리의 고장인 전주에서 먼저 생각해냈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때는 바야흐로 21세기로 접어드는 시기였고 마침 제3세계 음악들이 소개되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월드뮤직이라는 생소한 용어까지 생겨난 터였죠.서양의 클래식 연주가들은 새로운 소리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20세기의 대가들이 이미 정복해놓은 고전음악의 위대한 영역(기교적, 철학적으로 완성된)을 그대로 답습할 수 없었습니다. 이미 정상급 연주가들 중 몇몇은 기존의 클래식 작품에 남미의 탱고 리듬을 섞기도 하고 중앙아시아의 민요나 아프리카 북소리를 집어넣어 음악을 연주했습니다. 정말 세상은 넓고 음악은 많았습니다. 그런데 전주세계소리축제라니요. 이거 대단한 아이디어 아닙니까?이 모든 음악들이 모이면 월드뮤직 시장(Fair)이 되는 겁니다. 시장에 오는 사람들은 손님들이 아니라 고객들입니다. 손님이 오면 대접을 해야 하지만, 고객이 오면 팔 수 있습니다. 또 저희들끼리 직접 팔거나(계약) 홍보할 수 있도록 부스를 임대해줘도 되겠지요. 그렇습니다. 각 나라의 음악회사들이 부스를 신청할 것입니다. 여기에 지구촌에서 음악가들과 음악도, 음악교육자들, 공연 또는 음반기획자들, 악보출판자들, 악기상과 악기제작자들, 극장 운영자나 무대예술연출가들, 종족음악학자와 문화인류학자 또는 고고학자이거나 교수인 사람들, 음악비평가 또는 음악저널리스트들, 여기에 영상제작자들이나 인쇄업자 또는 캐릭터 상품 개발자들까지 몰려들 것입니다.그렇게 되면 판소리 어떨까요? 해외초청 계약이 많이 이뤄질 겁니다. 전주시민들 어떨까요? 외국사람들(음악)은 어떤지 구경하러 오지말래도 올 겁니다. 고객으로 온 외국인들, 판소리만 듣고 갈까요? 아마 잠도 자고 밥도 먹고 이 지역 특산품도 좀 사가지고 갈 겁니다.전주세계소리축제는 축복입니다./배석호(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예술사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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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9.2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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