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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빠롤레, 빠롤레, 아 ~ 달콤한 속삭임! - 박영주

"그대는 바이올린을 노래하게 만드는 바람과 같고, 장미의 향기를 멀리로 실어 나르지," 달리다(Dalida)와 알랭 드롱(Alain Delon)이 불렀던 "빠롤레 빠롤레(Parole, Parole)"라는 노래의 한 부분이다. '달콤한 속삭임!' 제목이 참 멋스럽다. 선율만을 감상하고 있자면 알랭 드롱의 목소리는 참으로 감미로워 달콤한 속삭임처럼 들린다. 그런데 가사를 음미해 보면 말(Parole)이라는 것이 참기 어려울 만큼 가볍고, 쉽고, 약하여 공허하기가 그지없다. 그래서일까 달리다(Dalida)는 끊임없이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는 남자를 향해 "빠롤레, 빠롤레",말, 그저 말일뿐 이제는 끝나버린 사랑과 그동안의 숱한 빈말, 거짓말에 대해 탄식하며 오직 말뿐인 사랑 고백을 거절한다. 요즘 여기저기에서 변화를 부르짖으며 어려워진 경제를 살린다, 다 같이 잘살아보자며 듣기 좋은 말들이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그 많은 말들이 말이 아니라 단지 소리의 난무를 추면서 난장판을 벌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선거 때마다 자신의 지역구나 또는 전국의 국민(서민?)을 찾아다니며 친근한 척 손을 잡아끌어 악수를 해대고, 한 표를 달라며 '주민 여러분, 국민 여러분 사랑 합니다, 머슴처럼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섬기겠습니다, 747 공약을 꼭 이루겠습니다, 조세제도를 개편하여 서민의 세금 부담을 줄이겠습니다, 주가지수는 임기 내 5000을 돌파할 것입니다' 라고 한다. 참으로 감미로워 듣기만 해도 배가 부르고 서민들은 머지않아 자신과 자신의 집도 상위 20% 계층에 속하게 될 것 같은 꿈에 부푼다. 어리석은 백성이라 했던가. 말이 말다우려면, 듣는 자에게 진실 되게 받아들여지려면 말이 지니고 있는 의미가 그에 따른 행동의 결과로 드러나야 할 것이다. 747은 온데간데없고, 세금 덜 내게 해준다는 정책은 강남사람들과는 달리 서민들에게는 체감하기엔 거리가 멀고, 상호적이라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소통은 아무리 속삭이는 소리가 감미롭더라도 그 말은 너무 가벼워 바람에 흩어져 버리거나 소음이 되어 아, 또 시끄럽게 말만 하는구나, 정말 믿어도 되는 것인가 하며 의심만 더 커지지 않겠는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10년을 찾으려니 마음도 바쁘고 그러자니 말실수에 그에 따른 엇박자의 결과도 나올 수 있는데 성급하게 말의 의미가 지켜지지 않는다고 벌써(?)부터 성화를 부리냐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흔히 하는 말로 첫 단추가 잘 끼워져야 한다고들 하지 않던가. 그러니 성화라고, 급하다고 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믿고 기다려 달라고 하려면 타당한 설명이 있는 대책을 제시하면서 믿게 해주어야 할 것이다. 무조건 참고 기다려 보라고 하기엔 서민의 일상은 시시때때로 너무 버겁다. 국민은 오직 4년, 5년에 딱 한번만 사랑 받을 자격이 있는 서민이고 나머지 시간동안에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마음대로 휘둘러도 되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말고 내뱉는 말에 믿음이 배어나도록 말의 진솔함을 보여주기 바란다. /박영주(우석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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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09.16 23:02

[문화마주보기] 디자인은 상상력+창의력 -정성환

디자인 - 물론 누구나 할 수도 있다.아인슈타인은 '상상력은 지식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창의력이란 훈련된 상상력은 이다.'라고 창의력이 정의되기도 한다. 어찌되었든 상상력, 창의력은 지식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은 꼭이 디자인이 아니어도 모든 분야에서 당연시 되고 있다.상상력, 창의력, 디자인 - 이렇게 생각하는 것, 이렇게 시작하는 것.매일 쓰는 비누가 매번 물에 퉁퉁 불어 있어 불쾌했다. 참으면 상상력도 창의력도 필요 없다. 자전거 보관대에 놓아두었던 자전거 바퀴의 바람이 빠져 낑낑대고 바람 넣으러 가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 역시 상상력도 창의력도 필요 없다. 그렇지만 파인애플 통조림 모양으로 생겨 걸어 놓을 수 있도록 비누를 만들면 어떨까, 자전거 보관대 끝에 공기펌프를 달아 놓으면 어떨까 라고 생각해보았다면 그것이 곧 상상력이고 창의력이다. 문제점을 발견하고 그에 대한 해결방법을 찾는 것- 그것이 디자인이다. 누구나 상상을 시작하는 순간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디자인 - 그렇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대부분의 디자인은 처음 제안된 것과 최종 결정된 것이 전혀 달라진 경우가 많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계원이 고치고 계장, 과장, 부장, 그래서 사장까지 고치고 나면 결국 원래의 디자인은 괴물이 되기 마련이다. 애초에 디자이너의 의견 따위는 별로 안중에도 없고 자신의 경험과 몇몇 디자인을 예를 시작으로 경쟁적으로 평가를 시작, 결정과정에 참여한 모든 이의 의견을 종합하면 도무지 아무런 대책이 없는 난감한 경험을 디자이너라면 대부분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종종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왜 다들 그렇게 디자인에 대해서만은 자신이 넘치는지 자신의 의견을 꼭 반영하려 하는지.더 큰 문제는 여론조사로 디자인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것도 각각의 디자인에 딱지를 붙이는 -방송에서 하는 것과 같은 원시작인 조사방법으로- 디자인 목표, 의도, 예측되는 결과에 대한 전략적 이해가 전무한 상태에서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그래서 좋은 디자인이 결정될 수는 정말 없지 않은가.기적을 이루는 디자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디자인의 성공 사례 중 극단적인 사례로 일본의 한 유제품회사는 브랜드와 포장디자인을 교체하여 매출이 180배가 증가하였다고 한다. 멕시코에서도 시장점유율 1위의 맥주회사의 매출이 1.8배가 증가했다는 사례도 있다. 두 사례 모두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디자인이 기업에 기여하는 바는 크다고 할 수 있다.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은 이해와 신뢰가 있어서 이지 않았을까. 디자인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며 디자인은 디자이너들의 정말 치열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통해 만들어지며 결과가 예측 가능하다라는 믿음을 가져줄 때 기적을 만드는 디자인은 가능하지 않을까.본디 디자이너들이란 잘 쉬지 않고 잘 자지도 않으면서 고민을 하는 족속들이다. 내 주위에 많은 디자이너들은 백발에 머리가 절반쯤은 빠진 이들이 많다. 나 또한 아주 젊어서부터 백발이었다. 이것만으로도 디자이너들이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보다는 좀 더 전문가일 수도 있다고 믿어만 준다면 디자인이 지금보다는 훨씬 신날 것 같다./정성환(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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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09.09 23:02

[문화마주보기] 내기 하실래요?

내가 생각하기에 너무 당연하거나 분명한 일에 대해 상대방과 의견이 대립될 때 나는 곧잘 이렇게 말하곤 한다. 내가 옳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의사표현인 셈이다. 대개는 커피내기 또는 식사내기를 하지만 이런 나의 성향을 도박성이라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누군가 물어온다. 내기를 좋아하시는 거보니 도박게임도 좋아하시겠는데요? 나는 도박성향이 강한 것일까?BC3000년~BC2000년경 이집트와 인도에도 정형화된 내기가 있었으며, 성서에도 제비뽑기를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걸 보면 도박의 역사는 꽤 긴 것 같다. 유흥과 모임이 유난히 많았던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1926년 대중적인 도박장이 합법화된 이후, 고용창출을 포함한 경제적 파급효과를 이유로 많은 국가가 전략적으로 사행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마카오는 명실상부한 "동양의 라스베이거스"를 만들기 위해 대규모의 카지노 호텔을 조성하고 있고, 싱가포르 역시 센토사 인근에 대규모 카지노 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강원도가 폐광으로 인해 위축된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카지노를 택했으며, 중독과 부정?부패 등 각종 사회적 비용과 지역경제활성화라는 양 측면을 경험하고 있다.최근 한 조사에 의하면 한국성인 중 20%가 도박을 즐기고 이 중 20%가 중독성향을 보인다고 한다. 이 결과가 맞다면 전체성인의 4%는 도박중독인 셈이다. 사감위는 2000년 6조원대에 머무르던 국내 사행산업규모가 2007년에는 15조원에 육박했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0.67%에 이른다고 발표하였다. 사행산업은 경마, 경륜, 경정, 복권, 카지노 등을 포함한다. 온라인 도박 사이트나 음지화 된 도박시장까지를 포함하면 실제 도박시장의 규모는 이를 훌쩍 뛰어 넘을 것이다. 급기야 정부는 9월에 강력한 사행산업 규제안을 마련하고 사행산업의 규모를 제한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규제안은 국내 사행산업에 매출총량제를 도입하고 그 규모를 2011년까지 단계적으로 축소한다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2007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0.67% 수준인 사행산업 시장규모를 2011년 0.58%로 줄이고 2011년 이후에는 시장 성장률을 GDP 성장률에 연동시킨다는 것이다.지역발전의 성장동력을 관광산업의 육성과 관광객 유입을 통해 달성하려는 지자체가 많아질수록 사행산업의 도입에 대한 찬반의 논란은 뜨거워질 수밖에 없다. 사행산업의 사회적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사행산업의 총량규제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에게 "노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추석이 다가온다. 추석에는 대보름 놀이, 강강수월래 등을 하고 논다고 배웠지만 실제로는 먹는 것과 고스톱이 전부인 사람들에게 어떤 놀이 방법을 알려주어야 할까?/정명희(전북발전硏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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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09.02 23:02

[문화마주보기] 9월을 맞으며 - 이원복

금년은 온고을도 꽤나 무더웠다. 수은주는 매년 기록을 갱신하니 지구의 온난화溫暖化를 절감하게 된다. 장마철을 보내고 나서 국지적으로 많은 비가 내렸으며 내년부터는 장마예보도 사라진다고 한다. 지구의 노쇠인지 생태계 파계가 초래한 이상현상인지? 세찬 풀벌레 울음소리와 더불어 염장군炎將軍의 기세는 처서處暑를 넘기자 한풀 꺾였다. 이 시기에 떨어지는 감은 지상에서나마 노랗게 바뀐다. 8,9월 뙤약볕 속에 결실은 성숙으로 달린다. 생활여건과 의학의 발달로 인류의 수명은 매년 늘어난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에서 빗겨갈 유기체는 없다. 젊음의 아름다움은 이를 보낸 뒤 깨닫게 된다. 같이 있을 때는 고마움을 모르고 잃었을 때, 떠났을 때 비로소 그 가치를 깨닫게 됨은 사람이나 나이나 마찬가지이다.올 여름 열기는 베이징 올림픽과 함께 더했다. 역사를 살필 때 우리 강토는 외침 등 열강의 각축장角逐場으로 시련이 적지 않았다. 이번 세계 7위의 등수는 넓진 않으나 짧지 않은 역사를 지닌 결코 만만하지 않은 나라란 생각과 더불어 민족에 대한 자존自尊과 긍지矜持를 더하게 된다. 기특하고 대견한 민족임을 재삼 확인하게 된다. 이젠 잔치는 끝났으나 오늘을 새로운 시작의 날로 삼아야 한다. 내일은 오늘에 의해 결정되기에 이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 누군가가 '어제는 역사history, 내일은 신비mystery, 오늘은 선물present'이라 했는데 가슴에 와 닿는다. 결실의 9월은 인간의 삶에선 노년기에 해당된다. 하지만 가을에 뿌리는 씨들이 있듯이, 후반생後半生 새로운 삶을 꾀하는 이들에겐 노년은 아니다.얼마 전 서울 지하철 내에서의 일이다. 그날 회의가 오후 2시여서 지하철은 붐비지 않았고 빈 좌석도 있었다. 건너편에 한 돌 반쯤 보이는 아이가 엄마와 이모 사이에서 부산한 태도로 신을 벗지 않겠노라 실랑이를 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를 바라보다 아이와 시선이 만나게 되자 다소 무게 실은 낮은 목소리나 미소를 머금은 편한 표정을 지으며 '이리 와!' 하니 칭얼대던 녀석이 별로 낯을 가리지 않는 듯 다소 뒤뚱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악수를 청하니 그대로 따른다. 나이 든 이를 알아봄인가.곧 되돌아가 엄마 품에 안기면서 먼저 내게 손을 뻗으며 '하부지!' 하더니만 내 곁에 있는 학생에겐 '삼촌'하는 게 아닌가. 순간 뜨끔했고 잠시나마 여러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이 순수한 아이 눈이 가장 분명한 것 아닌가. 동안童顔으로 통하며 또래보다는 젊다고 자부하며 비교적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사는 편이나 친구들과 막걸리 잔을 기울인 다음 날 아침 거울에 비친 얼굴은 자신에게도 생경한 노인에 가깝다.사무엘 울만이 지은 '청춘이란' 길지 아니한 글 속에는 '용기 없는 20대는 노인이며 용기 있는 60대는 한참 청춘'이라고, '나이를 먹음으로 늙는 것이 아닌 꿈을 잃어갈 때 늙는 것', '세월이 얼굴에 주름을 남기듯 정열을 잃으면 정신에 주름'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도홧빛 볼생동감 넘치는 긴장감을 동반한 젊음의 풋풋한 아름다움이 있는가 하면 여유餘裕와 완숙完熟이 주는 중후한 아름다움도 엄존한다. 새 포도주의 싱그러움과 오래 묵은 깊은 향을 지닌 술맛이 다르듯. 강렬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타오르는 정열, 신선한 정신, 생동감을 주문처럼 외우며 가을, 9월을 맞이한다. 아직은 청춘이라 외치며.../이원복(국립전주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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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08.26 23:02

[문화마주보기] 너도 한 자리, 나도 한 자리 - 박영주

국가의 수반이 바뀌면 그를 주축으로 새로운 인물들이 등용된다. 국민들은 새로운 인물들이 그들의 능력과 기량을 펼쳐 이전 보다는 더 나은 결과를 생산해 주기를 기대한다. 얼마 전 한 방송사의 신임 사장 선출 장면을 보았다. 소통보다는 무지막지한 인간 장벽을 앞에 두고 불과 몇 초 만에 사장이 선출되는 것이 참으로 가관이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잠깐 궁금했다. 개그 프로그램을 방불케 하는 과정을 통해 사장이 된 사람의 심정은 어떨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쁠까?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절차에 따라 선출되었는데도 많은 직원들이 인정할 수 없다며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으니 기분 나쁠까? 열렬한 환영은 아닐망정 적어도 낙하산 타고 적진에 투하되는 병사의 모습 보다는 조금은 "폼"나게 선출되었으면 오죽이나 좋았을까! 그리고 조금 더 궁금해졌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바뀌는 사람은 얼마나 되고 또 바뀔 자리 수는 몇 개나 될까. 3천개? 7천개? 그렇다면 지금까지 총 몇 개의 자리에 새로운 사람이 앉았을까. 또한 그들이 앉아 있는 자리들은 진정으로 자리의 성격에 부합한 주인을 찾았을까. 아직 남은(?) 자리를 향해 간절한 바람으로 내 자리는 언제나 비워질까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될까.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이 있다. 이는 인사문제가 그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다는 것일 게다. 중국 당나라 때 관리를 선발하는 기준은 신언서판(身言書判 )이었다는데 오늘날 우리나라의 선발기준은 무엇일까. 부모는 자식에게 집안의 대소사를 맡길 때 무엇을 기준으로 맡길까. 부모는 자식에게 "난 너를 믿는다."라고 말하며 책임감 강하고 능력을 갖춘 자식에게 집안일을 맡기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어떤 부모는 좀 더 사랑(편애?)한다는 이유나 아니면 자식이 하고 싶다고 떼쓰거나, 그저 원한다는 이유로 책임감도 부족하고 자격도 없는 자식에게 집안의 대소사를 맡기기도 한다. 이런 자식이 "운" 좋게 일을 잘한다면야 더 이상 바랄게 없겠지만 어찌 집안의 대소사가 단지 운으로만 이루어지겠는가. 이런 부모는 자식이 실패나 실수를 할 경우 원인을 분석하고 평가하여 향후에는 현명하게 헤쳐 나갈 수 있도록 길러주기 보다는 맹목적인 사랑으로 자식이 벌려 놓은 일을 대신 책임진다. 자식은 그런 부모가 한없이 고맙겠지만 그의 무의식 속에서는 그것이 진정한 사랑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는 자식의 수동적 의존성을 더 키우고 나아가 진정으로 독립된 자유와 도덕적 능력이 발달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 역시 사랑의 이름으로 뒷감당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는 자신에게 있음을 용납하지 못하고 오직 실수만을 만회해 보려는 안간힘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형태의 인사관리 체제일지라도 기본은 있어야 할 것이다. 즉, 특정학교나 종교, 특정지역에 국한되기 보다는 자리의 성격에 부합된 실력(智)을 갖추고 신념이 있어야 하며 상대에 대한 배려와 자신이 하는 일의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용기 그리고 감정이나 개인적인 인연에 연연하지 않는 엄격함이 그것이다. 이러한 기본을 갖춘 사람, 말뿐이 아닌 진정으로 국민 섬기기를 다하는 사람이 자리에 앉아야 한다./박영주(우석대 교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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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08.19 23:02

[문화마주보기] 야, 이 사람 사람 잡네! - 정성환

가슴 아픈 얘기MP3 '아이리버 신화' 주역의 몰락, 레인콤 창업 멤버 L씨 친정 회사서 기술 도용 진정서 제출해 구속이라는 가슴 아픈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삼성전자 엔지니어로 고속 승진, 34세에 개발담당 부장, 레인콤을 설립, 2000년 당시 소니 필립스 등 세계 굴지의 업체들이 진출해 있는 MP3플레이어 사업에 '멀티 코덱' 기술과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뛰어들었고, 시장의 반응은 뜨거워 미국 진출 6개월 만에 점유율 1위, 2004년 매출액은 4540억 원. 세계 MP3 시장의 11%를 차지했다.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아이리버를 공개 시연회에서 수차례 소개할 정도였다.그러나 미국 애플사가 '아이팟'을 출시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다. 매출은 줄어들고 적자가 쌓였고 2006년 8월 L씨는 창업멤버 4명과 함께 퇴사했다.배 아픈 얘기'이분들 전화기 때문에 이러고 계십니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사진 두 장과 함께 실렸다. 왼쪽 사진 - 일본 도쿄 오모테산도 쇼핑가에서 동물 탈을 쓰고 세계 22개국에 동시에 출시되는 애플의 3세대(3G) '아이폰'을 사기 위해 줄지어 앉아 있는 일본 소비자들. 오른쪽 사진 - 미국 뉴욕 5번가 애플 매장에서 '아이폰'을 구매하기 위해 지난 4일부터 애플 매장 근처에 캠프를 차려 판매 개시를 일주일간 미국 소비자들은 기다렸다.'아이팟', '아이폰', 그리고 스티브 잡스. 멀쩡하게 잘 나가던 회사를 쓰러뜨리고 멀쩡한 사람들을 1주일 동안 한시적 노숙자로 만드는 사람. 그렇게 해서라도 갖고 싶어 하는 것을 만들 줄 아는 사람. 그의 말대로 소비자들에게 그들 스스로가 바라고 있었는지 조차 알지 못하는 것을 디자인해서 보여주는 사람. 스티브 잡스는 디자이너가 아니다.문제를 정확히 알고 해결하는 창의력을 가진 사람. 디자인을 잘 이해하고,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뼈아픈 얘기서울시교육청, 디자인과목 신설 결정. '문제 해결-창의력에 도움'. 디자인이 21세기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2010년부터 서울시내 중고교에 디자인 과목을 신설하기로 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시교육청은 "새 정부의 중점과제 가운데 하나가 '창의적인 디자인 강국 육성'일 정도로 디자인의 중요성이 경제나 실생활에서 커지고 있다"며 "이 같은 시대적 추세를 반영해 디자인 과목을 중고교 교육과정에 도입하기로 했다"고 말했다.요즘 디자인에 대한 엄청난 관심에 정작 디자이너인 나조차도 어리둥절할 때가 있다. 기업에서, 지자체에서 드디어 중고교에서 부터 디자인을 가르친단다. 전주가 아니고 전라북도도 아니고 왜 또 하필이면 서울에서 부터냐.우리는 언제 우리의 스티브 잡스를 키우지. 우리의 스티브 잡스는 또 서울보다 한참 후에 나타나는 걸까./정성환(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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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08.12 23:02

[문화마주보기] 9일 놀기위해 한 달 월급 소비한다고 - 정명희

"유류할증료는 별도구요. 항공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52만원부터 70만원이 넘기도 하거든요"연일 계속되는 유가상승 소식에 유류할증료가 많이 올랐을꺼라 짐작은 했지만 이건 좀 심하다 싶다. 성수기 동안 유럽항공권은 작년 가격의 두 배 가까이 가격이 올랐고, 9일 정도의 휴가를 위해서 예상되는 지출금액은 평균 근로자의 한달 월급을 훌쩍 뛰어넘는다. 여행업계는 2003년 "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이후 2개월 연속 해외여행객이 감소하고 있으며, 당분간 이런 추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한다.▲ 바야흐로 레저홀릭 시대!"21세기가 원하는 경쟁력은 휴식에서 창조되고 놀이에서 발견된다" 던가 "잘 쉬고 잘 노는게 경쟁력" 이라는 휴테크(休tech) 경영전략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웰빙, 주5일제 등과 더불어 여가는 우리 삶에서 중요한 이슈로 대두되었다. 일을 지향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오직 일을 통해서만 행복을 얻었으나, 여가가 사회의 지배적 패러다임인 현대사회에서는 여가가 삶의 질을 좌우한다. 그러나 여가를 즐기기 위해 반대로 노동시간을 늘려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일과 소비의 교활한 악순환"쇼르(Schor)는 미국사회에서 지난 20년 동안 생산성이 급격하게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동시간은 증가하고 여가시간은 감소하는 모순적 결과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였다. 여가와 소비에 쓸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은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생활수준을 극적으로 향상시켰지만, 이를 유지하기 위한 노동생활은 점점 과도해진다. 특히, 자본주의의 결과물인 소비주의는 소비자의 불만을 새로운 자원을 소비함으로써 해소하게 하고, 이러한 소비를 위해 사람들은 보다 장시간 노동할 수 밖에 없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현대의 여가생활은 대부분 소비활동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며, 비용적 제약이 여가활동을 좌우하는 큰 변수로 나타나고 있다. 국내 여가산업의 규모는 2005년 기준으로 GDP의 28.78%에 해당하는 232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가계 총소비지출액에서 차지하는 오락문화비만 국민 1인당 연간 66만 2천원으로 나타났다.〈휴테크 성공학〉 〈노는 만큼 성공한다〉 등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휴가분산제, 여가시간 총량제 도입에 대한 캠페인이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여가를 즐기기에는 금전적인 한계가 따른다. 휴가를 반드시 해외로 가야 하는가 또는 많은 금전적 소비를 필요로 하는가는 논외로 하더라도, 여가를 위해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하고, 이를 위해 보다 많이 일해야 하는 현상은 자본주의의 '장시간 노동'을 위한 구조적 결과라고 볼 수 있다.9일을 쉬기 위해 한달 월급을 바칠 것인가?그 판단은 개인의 가치관과 관련된 것이므로 옳다 그르다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일과 삶의 조화(work and life balance)는 이상적이지만 현실에서는 참 어렵고도 멀게 느껴진다./정명희(전북발전硏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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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08.05 23:02

[문화마주보기] 조선시대 초상화 초본 특별전 - 이원복

한여름 장마철엔 습도에 민감한 서화를 대상으로 한 기획전시는 가급적 피하는 게 원칙이다. 전시실은 현대적인 시설과 장비로 조명은 물론 온습도 조정이 가능하나 이동 중 문제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립전주박물관에선 원래 예정과 달리 초복 사흘 뒤 대서(大暑)인 지난 7월 22일 '조선시대 초상화 초본(草本)' 특별전시를 열었다. 이는 지난해부터 복원수리에 들어간 보물 제931호인 〈태조어진(太祖御眞)〉 귀향 예정일에 맞춘 그야말로 특별한 파격적 처사였다.하지만 이 어진 귀환이 10월로 늦춰져 본의 아닌 차질이 발생했다. 이에 이 지역 출신 어용화사(御容畵師) 채용신(蔡龍臣,1850-1941)이 그린 〈고종어진(高宗御眞)〉으로 대체했다. 별도의 개막행사는 접고 22일 당일 두 차례에 걸쳐 전시품 설명회를 개최했다. 지난해 중앙서 연 전시이나 서울과 달리 박물관에 기탁된 보물 제792호로 〈이상길(李尙吉,1566-1637)초상〉등 명품들이 추가되었다. '조선의 화불(畵佛)'로 지칭되는 김명국(金命國,1600-1663이후)이 1634에 그린, 드문 조선중기 양식을 지닌 점에서 중시된다.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초상화는 우리 옛 그림에서 점하는 비중이 높고 그림 됨됨이인 화격(畵格)이나 기량 모두에서 크게 주목된다.잘 알려진 것처럼 용산에 신축된 국립중앙박물관은 근 10년 걸려 규모나 내용 모두에서 국제적으로도 손색없는 대규모 박물관으로 일신되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답보상태였던 지역 소재 국립박물관들도 지난해부터 특화사업이 시작되어 국립전주박물관은 금년 봄 '고대문화실'이 새롭게 탈바꿈을 시도했다. 연말까지 2층 '미술실'을 그동안 발굴과 학문성과를 반영하고 이 지역 출토 문화재를 중심 불교문화와 도자공예, 조선 종실서화 및 전북의 서화 등 지역적 특징을 강조한 전시실로 새롭게 개편한다. 2010년 후년이면 개관 20주년을 맞으니 그 때까지 세 전시실이 모두 바뀌니 일단락된다. 새 정부 들어서 일단 금년 말까지로 제한적이긴 하나 전국 국립박물관 모두는 대규모 기획전을 제외한 상설전시는 무료이니 전주도 예외가 아니다.염장군(炎將軍)의 기세가 대단한 그야말로 복중(伏中)이다. 장마가 끝난다는 보도는 휴가와 피서여행 등 마냥 꿈에 들뜨게 할 무렵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제적인 고유가 등 국내외 결코 밝지 않은 경제 여건은 우리들에게 예년과는 같지 않다. 도심에서 냉방시설이 썩 잘된 곳으론 은행이 있다. 잠간 무더위를 피할 장소로 애용되어 특히 노인 분들이 즐겨 찾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에 지지 않는 다른 장소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도심에서 조금은 외진 곳이나 시내버스가 닿는 곳, 근 2만 평에 이르는 대지, 푸름이 싱그러운 소나무 숲이 있는 곳, 정문을 거쳐 매미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걸어 들어와 현관을 통과하면 된다. 다름 아닌 완산구 효자동 쑥고개길에 위치한 국립전주박물관이 다름 아닌 그곳이다. 전시를 두루 둘러본 뒤 정원 한 모퉁이 언덕,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한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박물관 뜰을 내려보는 멋도 각별하다./이원복(국립전주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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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07.29 23:02

[문화마주보기] '좋은 국민' 을 만들려면 - 박영주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대통령이 국민들과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며 연거푸 사과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래서 소통의 문제를 바로 잡아주려나 하는 기대로 기다렸더니 사과 담화문이 곧 소통이라 착각했는지 이제는 오히려 국민들이 정부와 대통령을 이해하지 못하고 잘못된 정보에 현혹되어 국가의 안녕을 어지럽힌다고 살수차, 소화기, 방패 등 1970년대 유행했던, 한물가도 한참 간 공포의 종합선물세트를 안겨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 특이한 소통 방법이다.한 가정의 가장이 부모라면 한 나라의 가장은 대통령이다.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를 성공하는 아이, 좋은 아이, 나아가 자신이 원하는 아이로 만들고 싶어 한다. 대통령인들 국민을 자신을 믿어주는 국민, 좋은 국민으로 만들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국민을 망치는 교육법만 피하면 될 일이다.《기트너 교육법》으로 알려진 앨리스 기트너 박사가 얼마 전 내한하여 우리나라 부모들을 대상으로 성공하는 아이를 위한 교육법에 대해 강연을 했는데 그 중에서 "아이를 망치는 교육법"이 눈길을 끈다. 사실 좋은 아이, 공부 잘하고 똑똑하고, 성공하는 아이로 키우는 법에 관한 정보들은 너무 많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부모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내 아이가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혹시 부모 탓인가 하는 죄책감마저 갖게 된다. 그에 반해 아이를 망치지 않기 위해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의외로 간단한데 이는 바로 아이를 위협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사탕발림 같은 보상으로 꼬드기지 말라는 것이다. 앞으로 한 번만 더 그러면 가만 안 놔둔다는 식의 위협은 아이의 자율성을 심히 저해한다. 사실 사람의 심리가 위협을 받으면 오히려 반감이 커질 수 있고 금지하는 것을 어기고 싶어 하는 마음이 더 커지지 않던가. 아이에게 차근차근 설명하면 될 일이다. 이것이 소통 아니고 무언가! 마찬가지다. 화가 난 국민들에게 소통이 안 돼서 벌어진 일이라 사과를 했으면 그 다음엔 정말 소통다운 소통을 하면 좋은 국민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대통령과 국민을 이어주는 진정한 소통, 대화는 국민의 감정에 대응하는 것이다. 왜 화가 났는지 알아달라고 외치는 국민들을 향해 그들로 인해 경제가 어려워지고, 외국관광객의 방문이 줄어들고, 하는 이런 어줍지 않은 죄의식을 심어 주려는 구태의연한 방식에 의존하지 말고 분노한 연유와 무엇을 요구하는지 들어보면 되는 것이다. 즉, 이해와 감정이입이 위협보다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이다.말과 행동은 지그재그이면서 단지 부모라는 이유로,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일방적인 권위를 행사하는 것은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것과 같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부모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말 잘 들어 줄 때만 사랑스러운 내 아이이고, 정부가 무슨 짓을 해도 아무런 의사표시 없이 조용(?)한 국민일 때만 좋은 국민이라면 이는 아이의 자아형성을 망치는 지름길이요 민주사회를 죽이는 지름길이다. 부모의 권위는 아이에게 이해되어 질 때 진정한 권위가 된다. 좋은 아이, 어진 국민을 얻고자 한다면 이해와 감정이입이 바탕이 된 소통을 해야 할 것이다. 이는 위협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간단하다!※ 박영주 교수는 프랑스 리용 2대학에서 심리학 석사박사 과정을 마치고 2000년부터 우석대학교 심리학과에 재직하고 있습니다./박영주(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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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07.22 23:02

[문화마주보기] 창의력 돋보이는 필립스탁 디자인 - 정성환

선물로 파리채 받아 본적 있으세요?한 학기 수업을 끝내고 감사의 표시로 내게 미국인 교수가 선물이라며 책상서랍 속에서 긴 박스를 꺼내 건네었다. 고마움의 표시가 파리채라.그런데 그게 필립스탁 디자인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필립스탁은 파리채 아랫부분에 삼각대처럼 생긴 다리를 달아 세워 놓을 수 있도록 했는데 역시 파리잡는데는 더 효과적일 것이다. 또한 윗부분의 재미없는 연속무늬를 점의 크기를 달리해 재미있는 표정을 집어넣었다.비행기에서 포크, 나이프, 스푼 챙겨 가지고 내리세요?911 테러사건 이후 기내에서는 플라스틱 포크, 나이프, 스푼만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는데 사용상의 문제해결을 위해 필립스탁이 디자인한 에어 프랑스의 포크, 나이프, 스푼은 승무원의 양해를 구하고 챙겨 와야 할 만 한 것으로 이는 어떤 분의 경험담이다.레몬 즙 짜는 물건을 왜 대리석 좌대 위에?필립스탁 디자인의 레몬즙 짜는 도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대부분은 마치 현대 조각 작품처럼 소중하게 디스플레이해 놓고 감상한다.마치 럭비공모양의 작은 머리통을 거미의 다리같이 생긴 세 개의 다리로 구성되어 있다. 머리 부분은 레몬즙이 아랫부분으로 흐르게 하고 높은 다리 밑에 컵을 놓을 수 있는 기능을 고려하여 디자인되었지만 형태 또한 매우 조형적이다.필립스탁 디자인은 공통점들을 가지고 있다.첫째, 디자인들이 대단한 발상이나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든 것이 아니라 너무나 상식적이고 주변에 흔히 있는 것들을 활용한 디자인임에도 그 방법이 절묘하다는 것이다.둘째, 다른 사람은 의식하지 못하는 것을 문제를 발견했고 그렇기 때문에 해결방법 또한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셋째, 그를 세계적 디자이너로 만든 사고의 유연성, 관찰력, 상상력 그리고 이것들을 모두 합친 창의력은 사물을 남들과는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었으며 그 결과로 어떤 사물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고 디자인을 통해 가치를 실현되도록 했다.미래의 주역인 학생들에게 훈련된 상상력이라고 정의되기도 하는 창의력만큼 소중한 것이 또 있을까.아침마다 중학생인 애들 교복을 다림질하면서 생각한다. 이렇게 똑같은 교복, 두발상태, 미술, 음악, 체육도 암기해서 시험을 치러야 하고, 방과 후 학원으로, 과외로, 학습지로.우리의 애들은 무엇을 상상할까, 이런 교육으로 창의력이 개발될까, 우리의 아이들이 한번이라도 문제를 발견하기 위해 깊게 사고하는 시간이 있을까?그러다가 우리 아이들에게서 필립스탁은 고사하고 필립도, 스탁도 안 나오는 것 아닐까?※ 정성환 교수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제일기획 등에서 일했으며 1989년 이후 전북대학교 예술대학 산업디자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정성환(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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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07.15 23:02

[문화마주보기] 전북, 관광선진 프로젝트 필요 - 정명희

새정부 출범과 함께 관광선진화를 위한 5대 과제가 발표됐다.세계 관광시장은 성장추세임에 반해 한국관광시장의 지속적인 정체 상태로 관광수지 적자의 폭이 심화되고 있다는 위기감에서다.그 결과 정부는 매력적인 관광상품 개발과 함께 파격적인 규제완화와 세제지원, 환경개선 등의 과제들이 도출됐다.새만금 방조제 개통을 계기로 전라북도 관광산업에 대한 기대감이 과거 어느 때보다 높다. 전북 관광산업에 대한 진단과 점검에 관한 로드맵이 필요한 시점이다.그렇다면 전라북도 관광선진화를 위한 과제는 무엇일까? 문제점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대비가 필요하다.한국관광공사에서 실시하는 국민여행실태조사 결과 국내여행 경험률 및 1인당 국내여행 참가회수는 1999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그러나 전북은 2004년 이후 관광총량 및 숙박관광 참가자 수가 줄고 있어 정체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2006년 국내관광객의 전라북도 숙박관광 경험은 5.3%로 전남(9.3%), 충남(9.5%), 경남(10.0%)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전라북도 관광산업의 부진함은 여러 가지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으나, 관광서비스에 대한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관광숙박시설 등 물리적 시설은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우나 관광서비스와 같은 소프트웨어는 단기간의 교육만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하지만 도내 음식점 숙박업 종사자들을 보면 서비스 정신에 대한 철학이 부재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숙박 관광의 비율이 낮아지는 것도 결국 서비스를 개선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된다.따라서 서비스 질 저하로 전북의 관광산업의 부진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타 지자체가 관광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정책을 발굴하고 있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북에서도 서비스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경상북도는 지난해 '경북방문의 해'의 성공적 개최를 계기로 '경북 관광 아카데미'를 매월 운영해왔다. 관광업체 종사자 및 유관기관 단체 직원, 담당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친절한 관광서비스와 전문성을 갖추기 위한 프로그램이었다.관광업체종사자 등 일반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는 '친절서비스 소양교육' 4개 과정과 관광분야 담당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직무 역량 강화교육' 4개 과정 등을 실시해 민간인 뿐만 아니라 공무원들에게도 필요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시해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지방자치단체간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는 시기에 전라북도도 관광 선진화를 위해 새로운 비전을 담은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도내 관광종사자와 관계공무원들의 관광 마인드를 제고하고 전문화하여 지역관광의 리더로 운용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정명희 전북발전연구원 문화관광팀 부연구원은 한양대 관광학과 대학원 석사박사과정을 마친 뒤 한양대 BK21 연구원, 농촌생활연구소 연구원, 한양대 관광연구소 연구원 등을 거쳐 전북발전연구원 문화관광팀에 재직하고 있다.문광부에서 기획한「문화관광축제 평가모형 개발」「농촌관광 체험 프로그램 개발」등 각종 프로젝트에 참여해왔다./정명희(전북발전硏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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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07.08 23:02

[문화마주보기] 소치 탄생 200주기를 맞아 - 이원복

전통문화 형성에 있어 나라 밖의 영향은 문화의 속성상 어느 민족도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 옛 그림을 살핌에 있어 조선후기 진경산수나 풍속화만이 참된 우리 그림이고 정형산수인 중국풍의 남종화는 단순한 모방이나 아류로 봄은 큰 잘못이다. 문화와 예술에는 국제성과 토속미가 공존한다. 국제적 흐름에 적극적, 능동적으로 동참하여 새로운 독자성을 이룩함이 민족의 문화역량이다.금년은 19세기 조선화단에서 묵포도로 이름 높은 옥구의 최석환(1808- 1883이후)과 '남도산수화의 종장(宗匠)'인 진도의 소치 허련(1808-1893)이 탄생한지 2백주년이 되는 해이다. 두 화가 모두 호남 출신으로, 특히 소치는 이른바 지식층 그림인 남종화의 거장으로 생존 당시부터 명성이 지대했다. 몇 차례 소규모 소치 기획전이 열렸지만 국립광주박물관에서 그의 예술세계와 생애를 조명하는 대규모 특별전인 '남종화의 거장, 소치 허련 2백년'(2008.7.8-8.31)을 개최하니 이는 문화사적 의의를 지니는 쾌거가 아일 수 없다.김정희는 편지 글에서"우리나라의 누추한 습관을 깨끗이 씻어 버렸으니 압록강 동쪽에는 이에 비교할 그림이 없다."라 극찬했다. 오늘날 전해온 묵서 중에는 대원군 이하응이 쓴'소치서화대방가(小癡書畵大方家), 민영익이 쓴 현판'운림소치묵신(雲林小癡墨神)', 정인보는 추사가 소치를'묘수(妙手)'로 지칭함이 언급되었고 최순우는'원말 사대가풍의 산수 그림 중에서 시골티를 활짝 벗은 가작을 남긴 지식인 화가'등 긍정적 평가가 이어졌다.소치가 산 말기화단은 왕조의 말폐상과 열강의 각축 등 내우외환으로 범벅된 시기이나 이런 와중에도 미래를 향한 바람직하며 긍정적인 일련의 움직임도 엄존한다. 소치 그림세계는 묵란과 서예에 집중한 추사의 회화 창작의 욕망을 구현해준 그리고 그가 꿈꾸던 세계를 소치가 현실에 형상화 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말년 매너리즘으로 양식화된 그림을 제외하면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이다.소치는 탄탄한 이론을 바탕으로 많은 고서화를 접하고, 실제로 수집하며 감식안을 키웠으며 오랜 세월 쉼이 없이 붓을 잡았다. 시서화를 아우른 학문과 예술의 일치로 필법과 구도에 있어 남종화의 법통을 이어 자신의 모습으로 개진했다. 때론 끝이 달아서 무디어진 몽당붓[禿筆]을 사용해 먹 위주의 거칠고 분방한 필치에 담청과 담황 가채로 강약의 조화를 이룬다. 그림과 글씨가 동가를 이루며 속기가 배제된 청신하며 유현한 분위기의 조촐하면서도 맑고 담박한 그림세계이다.남종화로 대변되는 문인화는 전통을 맹목적으로 고수하거나 답습함이 아닌, 법고창신(法古創新)과 청출어람(靑出於藍)이 말해주듯 과감하게 새로운 시도를 꾀해 자신만의 화경(畵境)을 이룩함에 그 진정한 의의가 있다. 이점에서 조선의 남종화는 동양화가 아닌 우리 그림, 한국화가 된다. 오늘날 소치를 되새기는 의의 또한 다름 아닌 이 점에 있다.▲ 이관장은 서강대학교 사학과 석사박사과정을 마치고,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를 시작으로 국립공주박물관장, 국립청주박물관장,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 국립광주박물관장을 지낸 뒤 현재 국립전주박물관장로 활동하고 있다.저서로는 「나는 공부하러 박물관 간다」, 「한국의 말 그림」, 「회화」 등 10여편의 공저가 있다./이원복(국립전주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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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07.01 23:02

[문화마주보기] 겉치레 연하장 삼가자 - 정수완

2006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지난 한 해를 반성하고 밝아오는 새해를 준비할 시간입니다. 여러 가지로 바쁜 때이지만 이맘때가 되면 매년 잊지 않고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연하장을 보내는 일입니다. 한 해를 보내며 지난 1년 동안 도움을 주신 많은 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연하장을 준비하는 일은 참으로 아름다운 우리의 풍속중의 하나입니다. 늘 감사의 마음이 있어도 이렇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아니면 우리의 마음을 그분들께 전하지 못하는 게으름이 죄스럽기도 하지만, 이렇게 한 해 한번이라도 감사의 마음을 표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기도 합니다.그런데 원래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풍속인 연하장 보내기가 요즘은 형식적인 행사로 전락하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지난 주 연하장을 사기위해 한 서점에 들렀습니다. 받아보실 한 분 한 분을 생각하며 그분들이 좋아할 만한 그림의 연하장들을 고르면서 도움 받은 많은 분들을 떠올리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연하장을 한 무더기씩 쉽게 골라 계산대로 향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겉치레 때문에 연하장을 보내는 일은 이제 그만두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와 같은 불쾌감은 연하장을 받는 입장이 될 때에도 느끼게 됩니다. 똑같은 문구로 시작하는 마음이 담기지 않은 연하장은 바쁜 현대 생활을 생각할 때 이해하기로 했지만, 받는 사람의 이름이 틀려 있거나, 똑같은 사람으로부터 2장의 연하장을 받았을 때의 기분은 썩 좋지 못합니다. 이름도 확인하지 않고 바쁘게 보내야하는 연하장이라면 차라리 보내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이런 얄팍한 감사의 마음 전하기는 다만 연하장 보내기에만 국한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연하장 계산대에서 계산기가 고장이 나서 10분을 기다렸습니다. 다시 계산기가 가동되자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계산이 시작되었습니다. 계산기 뒤에는 1년 동안 아껴주신 고객들께 감사하다는 말이 크게 적혀있었습니다. 우리사회에서 너무나 쉽게 사용되는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이제는 진정한 마음이 담긴 감사와 사과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해를 되돌아보면 감사드릴 분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가깝게는 부모님과 동료, 선후배들로부터, 영화제에 도움을 주셨던 많은 분들과 모자라는 글을 넓은 마음으로 읽고 격려해주신 많은 독자여러분들에 이르기까지 한해를 무사히 보내기위해서 너무도 많은 분들께 신세지고 도움을 받았습니다. 모두 찾아뵈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어 아쉽고, 대신 연하장으로 마음을 전하지만 그것도 모두 할 수 없어 죄송합니다. 모두에게 연하장을 보낼 수는 없지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연하장 준비가 진정한 마음을 보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여러분 모두 2007년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정수완(전주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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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2.27 23:02

[문화마주보기] 한해 중요한 일 기록을 - 홍성덕

올 겨울 들어 첫눈이 소담스럼게 내리던 날, 장성에 조문을 갔다. 호남 지역의 대표적인 한학자이신 산암(汕巖) 변시연(邊時淵)선생이 15일 오전 별세했기 때문이다. 생전에 일면식도 없이 글로써만 선생을 뵈었을 뿐이라 자손들과의 인연이 앞섰지만, 한 시대를 지역에서 꼿꼿하게 보내신 어른의 영전에 뒤늦은 인사를 올리는 것이 지역이 좋아서 살겠다고 작심한 마음에 조금이나 힘이 되지 않을까 하는 자위적인 조문이었다.선생은 장성에서 태어나 전남향교재단 이사와 한국고문연구회장을 지냈으며, 1958년부터 1990년까지 한국 시문을 집대성한 문원(文苑) 73권을 편찬했고, 저서로 산암문집 32권을 남겼다. 50년 넘도록 한문으로만 일기를 쓰신 선생은 선비로서 해야 할 것과 남겨야 할 것들에 대해 몸소 실천하신 분이셨다. 역사학과 기록학의 언저리에 앉아서 지역에서 뭘 해야 할 지를 고민하고 있는 필자에게 선생의 그런 모습들은 큰 힘이었다. 겨울에 뵙기를 약속하고 준비하려는 중에 선생의 부음을 들었기에 발인 일에 내리는 눈이 그리 애처로웠는지 모른다.장성장례식장의 빈소는 유학자의 모습답게 만사(輓詞)가 걸려있었다. 요즘은 좀처럼 보기드문 만사들을 보면서, 새삼 삶과 기록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의미들을 생각해 볼 수 밖에 없었다. 눈물이 마를 일이 없이 슬픔이 앞선다는 만사의 글귀들은 고인을 보내드리는 지인들의 애절함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장례의 풍습이 언제부터 변화하기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어릴적 기억에 남는 것은 곡(哭) 소리에 묻힌 고스톱의 소리가 전부였던 것 같고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의례들이 갈수록 사라져 버린 듯한데, 만사를 보면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남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던 것이다. 만사를 남기시도록 한 건의가 잘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 역시 우리들이 찾아 볼 수 없는 귀중한 기록이 될 것이라는 점은 확신하고 있다.이달 초 전주역사박물관에서 발표한 1960년대 이전 전주관련 사진 공모작 중에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사진집이 하나 있었다. 어행록(御行錄)이라 이름 붙여진 사진집은 평화동에 사시는 김홍두 선생이 출품하신 것으로 장례식의 제반 절차를 촬영하고 사진집으로 기록화시켜 놓은 것이었다. 돌아가신 날부터 하관할 때까지의 일자별 기록을 맨 앞에 붙이고, 각 절차별로 사진을 찍어 설명을 달아 놓은 이 사진집 한권이야말로 1950년대 후반 전주사람들의 장례 풍경을 설명하는 둘도 없는 자료이다. 올해 몇 차례 열린 옛 사진 공모전을 보면서 조선왕조실록은 보관했던 전라도의 역사정신을 되새겨볼 수 있었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새밑 가족들이 둘러 앉아 음주가무로 한해를 보내기 전에 한해의 기억을 정리하고 간단하게 남겨둔다면 훗날 훌륭한 역사로 후손들에게 비쳐질 것이다./홍성덕(전북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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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2.20 23:02

[문화마주보기] ‘말’로 열어가는 남과 북, 공동의 미래 - 이재규

올해 북핵 문제로 남북관계가 또 한 번 파동을 겪었지만 이미 한반도는 새로운 전환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물론 남북이 지독한 증오감에 휩싸여 서로의 존재를 전면 부인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이제 막 화해와 협력의 길목에 들어섰지만 올해 목격하듯 일촉즉발의 전쟁위기가 채 가시지는 않은 과도기이다. 백낙청 선생의 지적대로분단시대의 끝자락, 통일시대의 들머리가 충돌하는 지점이기 때문에 모든 일이 순탄하게 나가지는 않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숱한 우여곡절과 우회, 반전이 숨어 있는 6?15시대에는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기만 하면 되었던 이전의 냉전시대보다 훨씬 정교한 대응을 필요로 한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은 6?15시대를 상징하는 사업이 아닌가 싶다. 2005년 2월 19일 남북공동편찬위원회가 금강산에서 결성되면서 겨레말사전은 16년 전의 약속에서 현실의 문제가 된 후로 2년 동안 여덟 차례의 공동편찬회의가 서울, 평양, 개성, 금강산, 북경을 오가며 열렸다. 겨레말큰사전은 남과 북의 언어 뿐만 아니라 오랜 이산의 삶을 살아온 재외동포의 말까지도 포괄하는 최초의 우리말 대사전 작업인 관계로 중국 지역 조선족 동포가 살고 있는 연변지역을 방문할 기회가 몇 차례 있었다. 남과 북의 교류협력이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이뤄지기 전에 연변 조선족 사회는 북과 접촉하는 유일한 우회통로였다. 중국 연변지역은 사회주의 체제의 지배원리가 작동하고 지리적으로도 인접한 곳이며 말과 혈통을 같이하는 조선족이 집단거주해온 사회였기 때문에 중국과 수교가 이루어진 뒤에 연변은 북을 들여다보는 창(窓)과 같은 역할을 했다. 실제 연변 조선족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려서 배운 조선말과 글의 기준은 다 북쪽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 조선족 사회는 한국과 거의 실시간으로 움직인다. 위성방송으로 한국의 인기드라마를 같은 시간대에 시청하고, 왕래가 빈번하기 때문에 생활어도 남쪽을 많이 닮아간다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조선말, 한국말, 연변말이 뒤섞이면서 아직 북측 언어체계를 따르고 있는 교육현장과 실제 생활과의 괴리 등 여러 부문에서 정체성의 혼란이 나타나고 있다. 연변 쪽 분들을 만나게 되면서 한반도 근현대사의 격동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지켜보았고, 두 개의 사회제도를 경험하고 있으며, 조선동포이면서 동시에 중국 인민이기도 한 연변 조선족의 특수한 처지가 역설적으로 한반도의 미래를 편견 없이 볼 수 있는 제3자의 눈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우리가 지향하는 통일이 1945년 이전 시점으로 돌아가 남과 북을 단순통합하자는 것이 아니라면, 통일이란 남과 북이 각기 걸어온 길의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의 다른 측면을 적극 받아들여 우리 모두가 풍성해지는 길일 것이다. 우리의 통일이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먹어버리거나 일 대 일로 단순 통합하는 것이 아니듯 겨레말큰사전편찬사업은 남과 북의 어휘를 단순히 통합하는 작업이 아니라 겨레말에 녹아 있는 우리 민족의 유산과 얼을 발굴하여 민족 공동체 의식의 폭과 깊이를 확장하고. 통일 조국의 밝은 미래를 담보하는 일이다. 어디 이 일이 한반도에만 그칠 일인가. 중국, 러시아, 일본, 미주, 유럽에 이르기까지 집단적 이산의 삶을 살아온 우리의 묵은 상처가 회복되는 순간, 민족어의 영토가 한없이 넓어지면서 우리의 언어도 그만큼 풍성해질 것이다. 물론 공통의 사전 한 권을 우리들 손에 올려놓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6?15시대의 특징이 그러하듯 남과 북의 편찬 작업자들은 어느 한 순간 긴장을 놓지 못하고 격돌하고 논쟁하며 또 한편으론 서로를 아울러 갈 것이다. 평양과 서울, 북경과 개성, 금강산을 종횡으로 연결하며 이어가는 공동편찬회의. 우리 민족이 오랜 고통의 시간을 대가로 지불한 이 유례없는 우리만의 역사를 버물려 가장 풍성한언어의 창고를 함께 만들어내는 작업에, 작은 역할이나마 거들고 있다는 사실에 매번 감격하곤 한다./이재규(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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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2.13 23:02

[문화마주보기] 산촌의 겨우살이 - 장성수

산촌의 겨울은 빠르게 찾아온다. 겨울로 접어든 산골 마을은 황량하다. 가을걷이를 이미 끝낸 논은 벼 그루터기만 앙상한 채 비어있다. 고랑 사이로 헤어진 검은 비닐 조각만 바람에 흔들릴 뿐 밭도 마찬가지다. 감나무 가지 끝에 달려있던 까치밥도 까치와 산비둘기 떼가 이미 다 쪼아 먹어버렸다.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들었던 앞 뒷산도 어둔 색으로 산색을 바꾸었다. 이제 머지않아 동장군의 칼바람이 세차게 불어올 것이다. 그리고 폭설도 내릴 것이다. 바야흐로 산골마을은 세상과 뚝 떨어진 채 기나긴 겨울을 외롭고 힘들게 견뎌야 한다. 봄이 다시 와 막힌 길을 열어줄 때까지.그래서 산골마을은 겨우살이 채비로 분주하다.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쟁이는 일이다. 아낙들은 배추를 절이고 무를 씻어 김장을 담가야 한다. 땅에 파묻은 항아리에다 동치미와 포기김치를 쟁이면서 아낙들은 백만금 재산을 얻은 것보다 더한 뿌듯함을 느낀다. 저들은 서서히 숙성되어가면서 온 식구들의 구복을 즐겁게 해줄 것이므로 아낙네들의 기다림은 지루하지 않다. 항아리에다 볏짚을 깔아 차곡차곡 쟁여둔 대봉시는 그들의 부족한 영양을 챙겨줄 것이므로 더욱 마음이 든든하다.한편 남정네들은 온 산이 눈으로 덮이기 전에 떨어진 낙엽을 끌어 모아 쟁여야 한다. 황토방의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는 불쏘시개로는 솔잎과 솔가지가 제격이다. 숲속을 돌아다니며 간벌해놓은 통나무들을 주워다가 알맞게 톱질하여 마당 한편에 쟁이는 일도 그들의 몫이다. 추운 겨울을 나는 데에는 무엇보다 등이 따스워야 하기 때문이다. 한밤중 아궁이 속에서 아직 발갛게 빛을 발하고 있는 숯덩이를 모아 헛간에 쟁여둔 밤과 고구마를 구워 헛헛한 배를 채우는 일도 중요하다. 기나긴 겨울밤을 무사히 나려면 등도 따스워야 하지만 뱃속도 든든해야 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세상과 단절된 산촌의 겨우살이에서 정말로 중요하고도 필요한 것은 마음의 채비이다. 그것은 홀로 살아 감(獨居)에 편안함과 충족감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자세이다. 그것은 또한 말 많고 탈 많은 세속의 시끄러움에서 등을 돌려 스스로를 외롭게 할 수 있는 용기이기도 하다. 켜켜이 쌓인 세속의 온갖 영리와 욕망이라는 먼지들을 떨어내고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할 수 있어야 한다. 폭설로 고립된 산촌에서 오로지 간간이 지저귀는 새소리에 기쁨을 느끼는 귀만을 열어놓아야 한다. 차디차고 흐린 겨울 하늘이 쩍 갈라지며 언뜻 내비치는 한소끔의 햇빛에 다시 돌아올 봄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눈만을 열어놓아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침묵할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겨울은 우리에게 소외와 단절의 시간이 아니라 정화와 생성의 순환을 깨닫게 해주는 귀중한 시간이다.벽에 걸린 추사선생의 세한도를 다시 한번 바라본다. 선생의 서릿발처럼 올곧은 겨우살이를 헤아려 보며 마음을 다잡아 보는 지금은, 바야흐로 한창 겨울이다./장성수(최명희문학관 관장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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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2.06 23:02

[문화마주보기] 음식도 문화예술도 골고루 섭취 - 정수완

<비타민>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요즘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우리가 즐겨먹는 식품 속에 우리의 질병을 다스리는 성분들이 있음을 알려주는 위대한 밥상이라는 코너라고 한다. 몇 년 전부터 전국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웰 빙 붐과 함께 잘 먹음으로서 잘 살 수 있음을 알려주는 유익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방송되었던 내용이 책으로까지 출판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애독되고 있다고 하고, 실제로 방송된 식품이 방송 후 바로 시장에서 동이난다고하니 이 프로그램이 실제로 인기가 있긴 한 것 같다. 그리고 이런 프로그램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을 보니 현대인들에게 질병 없이 장수하는 것이 큰 관심이긴 한 모양이다. 필자도 몇 번인가 이 프로그램을 본 일이 있다. 토마토가 몸에 좋다고 하면 토마토를 꼭 먹어야할 것 같았고, 시금치가 몸에 좋다고 하면 시금치를 꼭 먹어야할 것 같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매회 프로그램이 진행될수록 몸에 좋은 식품들이 하나씩 늘어나면서 <비타민>이 주장하는 것처럼 10년 젊고 건강하게 살기위해서는 매일 매일 먹어야할 식품들이 너무 많아 도저히 다 먹을 수가 없게 된다는 사실이다. 결국 매일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 편하게 골고루 섭취하면 우리 모두 건강하고 젊게 살 수 있는 것인데 너무도 단순한 이 사실을 그동안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다만 음식문화에 국한된 현상만은 아닌 것 같다. 이는 우리 문화 전반에 걸쳐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몇 해 전만해도 대중들과 쉽게 만나기 힘들었던 뮤지컬이 요즈음 새로운 대중예술매체로 급부상하고 있다. 해외에서 크게 각광받는 한국 오리지널 뮤지컬들이 제작되고 있고, 뮤지컬 배우들이 새로운 스타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해외에서 인기 있는 외국작품의 한국 공연을 통해 한국 뮤지컬 연출의 독창적인 시각이 평가받기도 하고, 외국 뮤지컬 스타들에 견주어 뒤지지 않는 한국 뮤지컬 배우들의 능력이 재평가되기도 한다. 뮤지컬 배우들의 팬클럽도 활성화되고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뮤지컬의 발전은 대중 예술의 다양화의 측면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새롭게 부상하는 뮤지컬의 위상이 다른 대중문화를 위축시키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아도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연극계가 뮤지컬로 위축되지 않고 상호작용을 통해 함께 발전하기를 바란다. 최근 뮤지컬의 인기가 상승하면서 각 대학의 연극학과들이 뮤지컬학과 만들기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연극학과가 연극학과라는 이름을 없애고 뮤지컬학과와 통합하여 공연예술학과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와 같은 발전이 연극과 뮤지컬이 더욱 발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한 음식이 몸에 좋다고 그 음식만 먹어 건강할 수 없듯이 건강한 예술문화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매체에 대한 다양한 관심들이 꾸준히 있어야 할 것이다. /정수완(전주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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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1.22 23:02

[문화마주보기] 전통문화자산의 지식정보화 - 홍성덕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라는 말이 있다. 어느 분야에서건 미칠 정도로 집중하지 않으면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처럼 미치도록 찾아서 뛰는 것이다. 그냥 책상 앞에만 앉아서 경쟁력이 있다고 말하고, 누군가를 설득시키기 위해 힘을 쏟기보다는, 경쟁력이 있음을 찾아서 미치도록 보여주는 것이고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자산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할 때인 것이다. 왜 아직도 검증받기를 원하는가 ? 전통문화중심도시, 한브랜드 전략기지화 사업 등에 있어 전주와 전라북도가 가지고 있는 자산은 모두가 수긍하고 있는 우리의 강점이다. 그런데 너무나도 당연한 그것에 대해 우리들은 우리가 우리만이 이렇게 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수많은 논리개발에 몰두해 왔다. 많은 사람들을 불러다 전주를 보여주고 전주와 전라북도가 얼마나 전통문화를 잘 간직하고 있는지를 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하였다. 참가자 대부분들이 우리의 명제에 대해 동의하기도 하였고, 유익한 코멘트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갔다. 서서히 드러나는 사업들이 보이긴 한다. 그럼에도 왠지 허전한 것은 그 모든 것들이 대부분 청사진만 있을 뿐, 체감지수는 매우 낮기 때문이다. 적절한 시점에 필요한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여전히 미쳐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이 보이지 않는다. 설득에 힘을 쏟았는지 새롭고 놀랄만한 아이디어는 보이지 않는다. 늘 뒤만 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불안감도 상존하고 있다.정통부에서 추진하는 지식정보자원관리 사업이 있다. 1999년부터 과학시술, 교육학술, 문화, 역사 등의 분야 227개 과제에 총 3,479억원이 투자된 정보화사업이다. 호남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전북대학교박물관이 호남지역 고문서 디지털화 사업을 추진한 불모지의 사업분야이다. 2007년도에 사업공모가 진행 중인 이 사업의 수요조사를 보면 우리들이 뭘 해야 하는지를 생각게 한다. 수요조사에서 제시된 과제는 104개였다. 이 과제들 중에 우리 지역에서 제시한 것은 전통소리문화, 호남지역 고문서, 전통복식 등 단 3건에 지나지 않는다. 한옥, 성씨문화는 경북지방에서 하겠다고 제안했고, 유교문화는 수년째 안동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추진하고 있다. 가진 것이라고는 전통문화자산밖에 없는 우리가 갈 길은 그 자산을 고도화시킬 수 있는 콘텐츠의 집적에 있다. 지식정보화사업은 우리가 우수하다는 것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는 분야로서 정말로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사업인 것이다. △ 홍성덕 연구사는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에 근무하다 전주로 내려와 전주시청 연구원을 거쳐 현재 전북대학교 박물관에서 일하고 있으며, 대통령비서실 정책자문위원,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등을 맡고 있다./홍성덕(전북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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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1.15 23:02

[문화마주보기] 남북문학인 단일조직을 지켜보며 - 이재규

지난달 30일 금강산에서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 문인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단일문학인 조직이 출범했다. 작년 평양에서 열린 민족작가대회를 통해 60년 만에 얼굴을 마주했던 남과 북의 작가들이 이번에는 <615민족문학인협회>라는 이름으로 단일한 문학조직을 결성한 것이다. 애초 7월로 예정되었던 대회가 북측의 수해로 인해 불과 하루를 앞두고 긴급하게 취소된 후 삼개월 동안 남북관계는 6?15공동선언 이전의 상황인 것처럼 긴박한 대치국면으로 전환되었고 대회 자체의 성사도 한치 앞을 가늠하기 어렵게 되었다. 어렵게 일정이 잡힌 대회를 다시 연기하자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북 핵실험 이후 남쪽 사회의 변화된 대북 정서는 간단치 않은 문제였다. 그렇지만 작가들은 다시 만났다. 동족끼리의 전쟁과 오랜 이산이 가져다준 우리 내면의 상처에 대해 누구보다 민감할 수밖에 없는 작가들이기에 전쟁을 반대하고 이 땅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자신들이 먼저 무거운 짐을 져야 한다는데 공감했던 것이다. 물론 현장에서의 팽팽한 긴장과 갈등도 적진 않았다. 작년 작가대회에 이어 이번 협회 결성의 실무과정을 지켜보고 또 거들면서 현장에서 느낀 답답함을 지면으로 다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엄연한 체제의 차이가 가져오는 생각의 차이는 대회 진행의 세세한 대목에서 충돌을 불러왔다. 연설문 자구 하나하나, 축하 노래 한곡을 선정하는 데에도 살얼음을 걷듯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남쪽의 최근 언론환경을 잘 아는 남쪽 작가들의 언행은 조심스럽다 못해 안쓰럽기까지 했다. 분단체제라는 괴물이 어느 순간 다시 우리를 덮칠 것인지 오래 몸으로 겪어온 작가들의 지혜가 발휘되어 대회는 그렇게무사하게 성사되었다. 6?15민족문학인협회는 분단문학을 극복하고 남북의 문학적 공동체를 복원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 최초의 남북 단일조직의 탄생은 남북교류사에서 큰 획을 그은 것이 되지만 무엇보다 앞으로 전개될 모든 예술교류의 차원과 형식을 바꾸게 될 것이다. 특히 남북 작가들의 공동 취재와 공동 집필, 문학작품 교류 등이 실행되게 되면 남북 문단은 본격적인 문학교류를 시작하게 된다. 남북의 작가들이 오랫동안 각자의 지역에서 다른 이념을 교육받고 다른 방식으로 사고했던 독자들만을 대상으로 문학 활동을 전개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이제 북의 작가들은 남측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남측 작가들은 북의 독자들을 염두에 두는 시대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일제 강점에 의해 36년간 겨레말을 빼앗기고 살았다. 해방이 되자마자 다시 강요된 분단으로 그 후 61년 동안 민족어공동체가 분단된 채 서로를 적대하며 살면서 말과 상상력을 규제당하고 살아야 했다. 한반도를 떠나 이국을 떠돌던 재외동포들의 삶도 이 대립구도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어떨 땐 더 가혹하게 분단의 실체와 마주치기도 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생각해보면 이 오랜 분단과 이산의 결과 우리 민족은 이 세상의 어떤 다른 공동체도 경험하지 못한 서로 다른 두 체제의 길, 생활방식, 사고의 체계를 한 민족 안에서 두루 경험한 유일한 민족이 되었다. 20세기 냉전체제의 비극적 산물로 고통을 강요받았던 우리 민족이 화해와 통합, 이질적인 것의 공존을 주축으로 발전해갈 21세기 인류의 새로운 미래를 선도하고 경계를 넘는 상상력을 폭발시킬 축복을 받은 것은 아닐런지. 금강산호텔에서 북측 실무성원과 서로 언성을 높여가며 생각의 차이를 주고받으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그런 역설적 축복에 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이었다. /이재규(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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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1.08 23:02

[문화마주보기] 프랑스 한 시골의 책 마을 - 장성수

지난 12일부터 열흘 남짓한 일정으로 프랑스를 다녀왔다. 프랑스의 여러 박물관과 각 지방의 자료집성 센터를 방문하여 그들의 자료 집성에 대한 기술 동향을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초가을의 날씨였지만 그곳의 풍광은 사뭇 달랐다. 처음 우리가 머물렀던 수도 파리는 듣던 대로였다. 유명한 르부르 박물관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기차역을 개조해 만든 오르새 미술관이나 대통령 친구의 도움으로 세워졌다는 께 브랑리 아시아 및 아프리카 인류학 박물관은 우리들의 부러움을 살만 했다. 프랑스인들에게 옛날과 오늘은 서로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니었다.바쁜 일정으로 자세한 속내를 드려다 볼 수는 없었지만, 단순한 관광여행에서는 보지 못할 몇 가지를 볼 수 있었다. 그 중 스위스와 독일의 접경에 위치한 로렌 지방의 퐁트누와 라 주트라는 조그만 시골 마을은 특이한 곳이었다. 세계적인 크리스탈 생산지로 유명한 바카라에서 약 7Km 떨어져 있는 이 마을은 인구가 겨우 280여명밖에 안되는 곳으로 우리 일행을 안내해준 프랑스인조차 잘 모를 정도로 한적했다. 검은 구레나룻이 멋진 촌장이 이곳의 역사를 들려주었다.이곳에 지역구를 둔 프랑스와 기욤이라는 프랑스 정부의 농림부 장관이 자신의 고향이 점점 쇠락해 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책 마을 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이곳이 적격지로 선정되었고, 마침내 96년에 책 마을을 열게 되었다. 프랑스 전체에서 세 번 째로 조성된 책 마을이다. 당시 이곳은 지속적으로 농민인구가 감소했고, 따라서 빈집이 늘어났기 때문에 서점을 유치하는 일이 상대적으로 용이했다.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만이 이 마을로 들어올 수 있는데 18개의 책방 외에 출판, 책 수선, 서예(서양식) 등 책과 관련된 가게가 8곳이 있다. 총 26개의 가게가 행정관청 주위의 마을 중앙에 몰려있다. 문을 연 당시부터 10년 동안 방문객의 수는 80만 명으로 일년에 평균 7만 명 이상이 다녀갔다. 이 마을로 책을 사러오는 사람들은 프랑스인뿐만 아니라 벨기에, 독일, 멀리는 북유럽 사람들까지 있다.프랑스 정부는 국가예산을 책정해서 책 마을 조성사업을 지원하였다. 마을로 들어와서 책방을 운영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정부로부터 이주에 관련된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집 구입, 수리 및 개조 등을 할 수 있는 자금이 정부로부터 지원되었다. 초기에는 빈집이 많아서 이주가 비교적 수월했던 반면, 현재는 상황이 달라졌다. 책 마을에 대한 소문이 나면서 이주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집의 수는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 이상 이 마을에서 빈집을 찾을 수 없다. 이 점만 보아도 농촌회생운동은 성공한 것이다. 대도시에서 책방을 경영하다 초기 이 마을로 이주했다는 최고참 서점 주인은 이전보다 훨씬 수입이 좋다면서 한국 사람들의 방문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지역 농민, 상인 간의 대타협과 화합이 이런 명소를 만들었다며 여유 있는 웃음을 지었다. 내 머리 속에는 날로 피폐해져 가는 우리의 농촌이 떠올랐다. /장성수(최명희문학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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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1.0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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