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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논술과 독서 - 정수완

지난 일요일 수시 대학 입시 논술 고사 채점위원으로 하루 종일 학생들의 논술 고사 채점을 했다. 빽빽이 써내려간 많은 아이들의 답안지를 채점하면서 논술이라는 제도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암기식, 주입식의 현 교육제도의 한계를 보안하고, 창의적이고 논리적인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해 언젠가부터 각 대학들은 앞다투어 입시에서 논술 고사의 비중을 강화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인터넷의 급속한 보급과 함께 긴 문장 읽기와 오래 생각하기를 힘들어하게 된 아이들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줄 수 있다는 점에서 논술은 필요한 제도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마치 모범답안지를 외워 쓴 듯한 120명 입시생들의 똑같은 답안지를 보면서 과연 논술 고사가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사실 논술 고사가 대학 입시에서 당락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며 호들갑을 떨며 논술 학원을 보내고, 논술 과외를 시키는 주위의 학부형 친구들을 보면서 논술이 창조적인 아이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영어, 수학 등 많은 과외 수업에 힘겨워하는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짐을 지게 하는 것은 아닌가하고 걱정하곤 했다. 자기 생각을 하는 창조적인 아이들을 만들겠다는 의도로 생긴 논술 고사가 오히려 아이들을 정형화되고 기계적인 사고를 하는 로봇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었다. 며칠 전 외국어고등학교 입시를 마친 아들을 둔 친구가 입시 논술 시험에 자신이 예상해준 문제가 그대로 나와 아들이 시험을 잘 보았다고 자랑하던 모습이 생각이 났다. 아들이 자신이 만들어준 모범답안대로 잘 쓰고 나왔다는 것이다. 친구 아들이 좋은 학교에 합격할 수 있다면 축하해줄 일이지만, 그 말을 듣는 나는 어딘지 마음 한 구석이 편하지 않았다.요즘 아이들은 책 한권, 영화 한편을 제대로 볼 시간이 없다고 한다. 논술에 대비해 고전들을 읽긴 읽어야 하는데 두꺼운 고전을 제대로 읽을 시간이 없어 고전을 쉽게 풀이하여 간단하게 정리해 놓은 다이제스트판 고전을 읽는다고 한다. 심지어 영화의 자막 읽는 일을 귀찮아하여 외국 영화 대신에 한국 영화만 보는 아이들 덕택에 한국 영화 산업이 유지되고 있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창조적인 아이들을 만들기 위해 시작된 논술이 오히려 아이들에게 책읽기와 생각하기의 즐거움과 중요성을 잃어버리게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일요일 내린 비로 끝날 것 같지 않던 여름 같던 가을이 끝이 났다. 이제 본격적으로 가을이 시작될 모양이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번 가을 학생들이 시험의 부담에서 벗어나 편안한 마음으로 한권의 책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 중학교 때 처음 읽었던 <제인에어>와 <데미안>이 내 인생에 얼마나 많은 힘이 되는지를 생각해보면, 이번 가을 학생들이 그들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한권의 책과 만날 수 있기를 바래본다. /정수완(전주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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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0.25 23:02

[문화마주보기] 불어라 문화의 맞바람 - 홍성덕

한 5년쯤 전의 일이다. 교동 한옥마을 개발에 관련된 의견이 분분했고, 전주역사박물관 건립이 한참 진행되고 있었을 무렵으로 기억된다. 전주 문화판에서 이리 저리 잡일(?)을 하고 있던 젊은 연구자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만나 맞바람을 피운 적이 있다. 여러 가지 지역문제에 대한 기탄없는 이야기들이 오고갔었다. 대략 2시간 정도 진행되는 사이버 공간의 만남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정말로 가감없이 내 뱉어버리는 그 공간은 변화에 목마른 30대 힘의 분출구였기도 했다.그리고,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이제는 40대 중반의 언저리에 앉아 30대와 50대를 위아래로 바라보면서 낀 세대가 되어가는 것을 족히 느끼고 있다. 맞바람에서 이야기한 것은 당시에 진행되고 있던 한옥마을 개발방식, 향토사박물관, 전주시의 문화판 등등에 대한 맞바람 회원들의 기본적인 고민은, 지역 문화판의 주체이고 방향성에 놓여있었다. 뜬구름 잡는 원론을 말하지 않고 무엇을 위해서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백가쟁명식의 진지한 잡담들이었다. 그때 갈무리한 파일을 보고 있으면 웃음도 나고, 그런 열정은 어디에 간 것일까 하는 자조감에 빠지기도 한다.지역문화의 주체와 방향에 대한 논의의 틀은 지금도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지역의 문화판이 커지고 많은 사람들이 문화판 속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그 한 구석에는 지역이 배제된 행위들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어느 학교 출신이 있기 때문에 억울한 피해를 받았다는 등 학연과 지연이 여전히 꼬리를 물고 있고, 건전한 비판과 의견은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런 바닥에서도 젊은 피들은 힘 있게 버텨내고 있다. 전주시내 문화시설들에 종사하는 20-30대의 힘은 그래서 아름다워 보인다. 열악하고 힘든 상황을 굳이 내색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삼척동자라도 그건 이제 모두 다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럼,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젊은 문화일꾼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문화의 맞바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때 거침없이 쏟아 내었던 지역문화를 사랑하는 힘 그 힘에서 부는 그런 맞바람이 필요한 것이다. 문화시설이라는 현실 속에 갇혀 평가의 굴레를 벗어나 버릴 수 없겠지만 20-30대 문화꾼들의 맞바람은 불어야 한다. 숨가쁘게 달려가고 있는 문화판이 더 오래 끈질기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젊은 문화꾼들의 맞바람이 크게 일도록 하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전주 문화정책의 실패는 곧 이들에게 있음을 이제는 조곤히 앉아 살펴보아야 할 때이다.△ 홍성덕 연구사는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에 근무하다 전주로 내려와 전주시청 연구원을 거쳐 현재 전북대학교 박물관에서 일하고 있으며, 대통령비서실 정책자문위원,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등을 맡고 있다. /홍성덕(전북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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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0.18 23:02

[문화마주보기] 교양 없는 사회, 인문의 위기 - 이재규

요즘 젊은 후배들에게 최근에 읽은 소설이나 인문사회과학서적이 뭐 있느냐고 물어보면 일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책을 읽는다는 축도 대부분 실용서적이나 처세술이 대부분이다. 영화나 음악에 대해선 시시콜콜한 것까지 쫙 읊어대는 친구도 문학, 역사, 철학은 까막눈인 경우가 적지 않다. 국문학 전공자조차도 교과서에 나오는 근현대작가들 이름과 대표작품 줄거리 정도를 암기할 뿐 원본을 찾아 읽거나 최근 작품을 읽는 경우가 드물다. 인문학 계통의 책들 중에 몇 천 부 판매를 넘기는 경우에는 대박이 났다고 할 정도로 인문 교양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밑바닥 수준이다. 인문학자들의 자가진단을 빌지 않더라도 도처에서 인문(학)의 위기를 실감한다. 인문학의 위기가 최근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문사철(文史哲; 문학, 역사, 철학)을 기본으로 세계에 대한 인식과 실천의 통일성을 내세웠던 인문학, 지식인의 존재는 급속한 근대화, 자본주의 고도화 과정에서 계속 주변으로 밀려 나야 했다. 물질과 권력 중심의 이 사회에서는 총체적인 지식인 보다는 기업이 요구하는 표준화된 노동력을 양산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교육정책이 지배해왔으니 당연한 귀결이기도 했다. 인문학의 위기를 좁혀 본다면 돈 안되는 학과인 인문학 전공의 홀대, 인문계의 몰락이 바로 눈앞의 현상일 것이다.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본다면 진정한 근본 문제는 학과를 막론하고 우리 후세대 모두가 인간과 인간 가치에 관한 앎으로서 반드시 갖춰야 할 기본교양, 인문을 잃어버린 조각 지식창고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시대 당대 최고의 선비보다 현대 대한민국 초등학생이 습득하고 있는 정보량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뿐이랴. 실시간으로 세계 반대편의 소식을 전해듣고 원하는 어떤 정보도 인터넷 클릭 몇 번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이 세상이 아닌가. 그러나 컴퓨터를 제 아무리 능숙하게 다룬다 하더라도 단순한 지식정보의 총합이 세계에 대한 인식과 인간의 내면에 대한 깊은 성찰, 소통, 통합의 능력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 전통에서는 문사철, 인문을 관통해야 진정한 지식인 대접을 받았다. 서양 사상가 키케로도 모든 영역을 두루 꿰뚫어 보는 지적 능력, 공동체에 대한 의무감, 주어진 상황과 주제를 파악하고 효율적으로 연설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 이 세 가지 능력을 기르고, 심화시키는 지식과 교육하는 학문 분야를 인문학(studia humanitatis)으로 보았다. 문사철의 다른 표현인 셈이다. 인문학의 위기는 관련 학자들만의 위기일 수 없다. 인문적 교양이 사라지고 파편화된 지식만으로 쌓아올린 공동체는 영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 일반의 인문적 교양을 드높이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공인하며 인문학적 상상력이 다양한 전문능력을 적극적으로 발휘하게 하는 사회. 진정한 의미의총체적 인간을 지향하는 그런 세상이야말로 인문학이 꿈꾸는 이상사회가 아닐까. /이재규(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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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0.11 23:02

[문화마주보기] 신 금수회의록 - 장성수

이십일 세기 초엽, 나이 육십에 가깝도록 속진에 푹 빠진 채 허우적대며 살던 한 서생이 있었는데, 어느 날 이러다가는 제 명대로 못살겠다는 깨달음이 퍼뜩 뇌리를 스치더라. 속세를 벗어나 한적한 시골에 누옥 한 채 지어 거처를 옮겼더라. 어느 봄인들 꽃들 다투어 피지 아니하고, 어느 가을인들 잎사귀 울긋불긋 물들지 아니하리오. 우주 조화의 위대함을 이제야 깨닫겠더라. 자연의 가르침에 미련한 서생 깨우친 게 많았으나, 그 중 으뜸가는 깨달음은 인간의 안목이 조조보다 더 간사하다는 사실이라. 누옥 한 채만 횅하니 있을 적에는 사방으로 둘러싸인 산천초목이 자기 집 정원처럼 여겨져 시야가 탁 트이더니, 앞마당을 만들고 잔디 심고 나무 심고 울타리를 치니 금세 시야가 좁아져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버리더라. 제 앞에만 떡 놓으려 하는 사람치고 청맹과니 아닌 자 없다더니 틀림없는 말인 줄을 알겠더라. 어느 봄날, 백화만발할 제 춘풍 언뜻 불어 꽃향기 온 세상 가득 퍼지니 하릴없는 서생 그 향기에 취해 깊은 잠에 빠졌더라. 꿈길에 언뜻 보니 자기 집 안마당에 온갖 금수 모여앉아 웅성웅성 왁자지껄 소란스럽기 짝이 없더라. 깜짝 놀란 서생 몸을 숨기고 저들 하는 양을 살펴보니, 요즘 인간들의 행태에 관해 갑론을박하는 중이더라. 연단에 올라 한참 열변을 토하고 있는 연사는 배불뚝이 개구리라. 분수 모르는 인간들은 우리를 우물 안의 개구리라 하여 소견 좁다 비웃으며 조롱하나 요즘 인간들 저지르는 소행 볼라치면 차마 목불인견이라. 인간들의 탐욕으로 세상 전체가 오염되어 가는 줄은 진작 알았으나, 남보다 더 배운 식자들만이라도 청렴해야 도리이거늘 오히려 썩는 냄새가 더욱 진동하니 인간세상 청정지역 눈을 씻고 찾아봐야 어디에도 없소이다. 우리 개구리 족속은 우물에 있으면 우물에 있는 분수를 지키고, 미나리 논에 있으면 미나리 논에 있는 분수를 지키나니, 이로 보면 우리가 사람보다 윗길이 아니오이까.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개구리 물러나자, 연이어 입에 거품을 문 채 두 팔을 활짝 펴고 당당하게 연단에 오르는 물건이 하나 있는데 보아하니 무장공자, 게더라.인간들은 우리 게 족속을 가리켜 간도 쓸개도 없는 무리라 하여 업신여기기 일쑤요. 그래, 인간은 우리와 달리 창자가 있긴 있소. 허나 옳은 창자 가진 인간이 몇 명이나 되겠소. 인간도 하느님이 아닌지라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저지를 수는 있는 법, 그러면 사후에라도 자신을 되 돌이켜보아 잘못을 뉘우치면 용서 받을 수 있는데 그러지를 못하니 최소한의 체면이라도 세울 수가 있겠소. 인간으로서의 권위가 이처럼 땅에 떨어졌으니 창자 없는 우리들의 손가락질을 받아도 싸지요, 싸.연이어 들짐승, 날짐승 너도 나도 등장하여 인간을 성토하는데, 백면서생 부끄럽고 참담하여 차마 더 이상 보지 못하고 돌아서는데 가슴이 철렁하며 깊은 잠에서 문득 깨어나니 때는 한여름을 훌쩍 지나 상큼한 바람 솔솔 부는 가을이 되었더라. /장성수(최명희문학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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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9.27 23:02

[문화마주보기] 눈으로 보는 솔직함, 그 내면의 진실 - 홍성덕

문화라는 게 참 묘한 것이다. 시시콜콜 개념이 어떤 것인가 하는 논쟁을 하려는게 아니라, 전주라는 곳 내가 태어나서 줄곧 살아오고 있는 이 도시에 늘 붙어 다녔던 문화라는게 묘하다는 것이다. 전주가 문화도시라는 점에 대해 토를 다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모두가 인정하고 있지만, 전주의 우수한 문화적 역량을 설명하려면 맞닥트리는 고민이 있는데, 그것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이다. 언제부터인가 전주의 역사나 문화를 이야기하는 자리가 만들어 질 때면 맨 처음 꺼내는 이야기가 솔직하자는 것이었다. 솔직히 우리 고장인 전주를 봅시다라고 시작하는 이야기는 문화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는 것으로 종종 끝을 맺는다. 전주가 가지고 있는 전통문화의 우수함을 이야기할 때 쓰는 우수성의 증거들, 언제 만들어졌고, 어떤 의미들을 가지고 있고, 얼마나 아름답고, 유일한 것들이라는 그런 수사들이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하는 고민 때문이다.문화를 산업화할 때 비교적 쉽게 떠오르는 것이 관광산업이다. 전주의 문화코드가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약점은 눈으로 보는 감흥이 적다는 것이다. 전주의 문화적 코드, 소위 7공주ㆍ6공주로 불리는 소리, 음식, 한지, 한옥, 서예, 한방, 영화 등의 가장 큰 특징은 비가시적이고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전주의 역사적 문화유산도 마찬가지이다. 경기전과 풍남문이 경복궁이나 숭례문을 넘기는 어렵다. 그래서 늘 랜드마크가 없다느니 체류하기 부적합하다는 등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눈으로 보는 솔직한 전주의 문화를 가슴에 담고 전주를 이해하지 않으면 그저 우리만 즐거운 동네 문화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관광산업은 보고 즐기는 것에서 체험하고 학습하는 것으로 바뀌고, 웰빙으로 전환하고 있는 중이다. 전주는 그 트랜드 변화의 중심에 서있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웰빙 관광이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보고, 듣고, 먹고 마시는 즐거움은 당연한 전제인 것이다. 오감을 만족시키는 전략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에, 비가시적 문화를 가시적 문화로 전환시키는 내재적 발전전략이 필요하다. 아울러, 전주 문화역량의 솔직함은 지적재산으로서의 가치이다. 비가시적인 문화를 가시적 문화로 바꾸는 것이 꼭 한옥컨벤션과 같은 랜드마크를 만드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비가시적 문화의 산업화 방안 역시 그 문화에 내재되어 있는 지적 가치를 발굴해 낼 때 가능하다. 외형과 내면의 아름다움이 공존해야만 최고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가치는 그 내면의 지적 자산에 의해서만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콘텐츠 이야기를 멈출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주의 문화코드는 인식과 공감만 있을 뿐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자료)은 너무나 적다.△ 홍성덕 연구사는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에 근무하다 전주로 내려와 전주시청 연구원을 거쳐 현재 전북대학교 박물관에서 일하고 있으며, 대통령비서실 정책자문위원,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등을 맡고 있다. /홍성덕(전북대 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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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9.13 23:02

[문화마주보기] 민족의 영토, 그 아련한 꿈 - 이재규

요즘 텔레비전 사극은 온통 고구려 이야기이다. 고구려 개국의 주인공인 <주몽>, 고구려 말기의 영웅 <연개소문>에 이어 고구려 이후의 발해 이야기인 <대조영>까지 모두 한반도를 넘어 만주 일대를 무대로 하고 있다. 중국의 한나라 당나라와 맞서 싸우며 만주벌판을 말달리던 호걸들의 이야기는 잠들어 있던 우리의 대륙기질을 부추기며 한반도 아래쪽으로만 향하고 있던 눈길을 저 멀리 잊었던 땅, 북방으로 돌리게 한다. 우리 민족의 영토가 저기인데. 아쉬움 끝에 마른 입술을 적셔 보지만 드라마가 아닌 현실은 어떤가.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 발해를 중국의 변방정권으로 규정짓는 역사작업의 한편으로, 백두산 경계를 포함한 현실의 국경 유지를 넘어서 한반도 유사시 동남진할 현실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작성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남북대립의 덫에 치어 단일민족국가의 수립이라는 근대의 문도 여직 통과하지 못해 버둥거리고 있는 사이에 말이다. 중원을 공략하려던 고구려의 꿈은 변방 소수민족사의 몇 줄에 그치고 말 뿐 우리의 현실적 영토는 한반도를 지켜내기에도 버거운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일부에서는 1909년 9월 일제가 청나라와 불법적으로 맺은 간도협약에 의해 간도의 영유권을 뺏긴 것이기 때문에 이제라도 되찾아야 한다고 한다. 그럴 수 있을까. 간도협약은 법리적인 측면에서 당연히 무효이지만 현실 국제정치의 세력관계를 볼 때 우리가 간도를 되찾는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간도지역은 현재 중국이 실효적으로지배하고 있을 뿐 아니라 1962년, 64년 조중국경조약을 통해 북한과 중국의 국경지역은 확정된 상태이다. 대한민국 헌법상 북한정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유엔이 인정하는 독립국가인 조선과 중국이 맺은 국경조약을 원천무효로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중국이 백두산 관할권을 옌벤조선족 자치구에서 지린성 정부로 이전한 것을 보더라도 중국은 한반도 통일 이후의 영유권 분쟁을 미리 대비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남은 수단은 전쟁에 의해 무력으로 되찾는 것일 뿐인데 주몽과 연개소문이 한꺼번에 부활한다고 해도 그 전쟁에는 반대하고 나설 것이다. 결국 아련한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면 우리 민족의 현실 영토는 한반도이다. 물론 장구한 역사에서 장차 중국과 러시아가 어떤 변화를 겪을지 모를 일이고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진리에서 보면 미리 그렇게 움츠러들 일은 아니다. 동북아 정세의 변화에 따라 민족의 고토였던 만주, 요동, 연해주 등 지금의 현실적 경계가 어찌 변화될지 미리 예단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장 염려스러운 것은 한반도에서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수준의 분쟁이 발생할 경우 우리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민족의 영토가 오히려 축소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꿈을 놓지 않되 철저히 현실에 바탕한지혜이다. 우리가 60년 대립의 남북분단시대를 넘어 한반도 통일정부를 지혜롭게 성사시켜 나가야만 이 힘을 바탕으로 동북아에서의 주도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고 이 길만이 민족의 영토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고대중국 한나라에 맞서 동북아의 신흥강국을 꿈꾸었던 <주몽>을 보면서 지금 우리 민족의 현실적인 꿈은 어디일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이재규(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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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9.06 23:02

[문화마주보기] 저수지의 밤 낚시꾼들 - 장성수

시골의 우리 마을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그리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규모의 저수지가 있다. 이른 아침 잔잔한 수면 위로 피어오르는 물안개, 그 너머로 주위 소나무 숲에 서식하는 백로 떼들이 창공을 가로 질러 날아간다. 겨울이 되면 청둥오리 떼들이 차가운 수면 위를 먹이를 구하느라 부지런히 자맥질하며 떠다닌다. 억새꽃이 겨울 석양을 받아 은빛 비늘처럼 반짝인다. 출퇴근하는 길에 바라보는 그곳의 풍경은 이처럼 한 폭의 산수화가 따로 없을 만큼 아름답고 평화스럽다. 작년 여름엔 물난리가 나서 온갖 부유물들이 수면 전체를 가득 메우는 바람에 흉측한 몰골이더니, 올해는 옛날 모습을 되찾았다. 수마가 할퀴고 간 상처를 인위적으로 치료하지도 않았는데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것을 보며 자연의 자기치유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마가 끝나고 올 여름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될 무렵, 이곳에 낚시꾼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였다. 다른 낚시터는 외래종 붕어가 이미 점령해버렸는데 아직 이곳은 토종 참붕어가 잡힌다는 것이 주된 이유라고 했다. 낮에만 낚시꾼들이 모이는 줄 알았더니, 밤늦은 귀가 길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푸르게 빛나는 형광체가 수면 이곳저곳에 보였다. 차를 멈추고 물가에 내려가 보니 밤낚시꾼들이 던져놓은 낚시찌였다. 적막한 어둠 속에서 푸르게 빛나는 한 점 찌만을 응시한 채 수도승처럼 앉아있는 그들을 보며 오래 전에 읽은 강용준의 소설 초망지비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하나, 둘 길게 꼬리를 그으며 떨어지는 밤하늘의 별똥들이, 통풍을 위해 걷어 올린 모기장을 통해 시야로 들어오게 된다. 은하수도 들어온다. 은하수 너머 더 먼 우주도 들어온다. 정말이다. 인생관이 바뀌고, 세계관이 바뀌고, 우주관이 바뀐다. 증오감도 사라지고, 조급함도 사라지고, 같잖은 명예욕, 까부는 자식들을 향해 앙다물었던 이의 힘도 스르르 제풀에 풀려나가고, 그렇게 된다. 인간이 살면 얼마나 사는데, 그렇게 된다. 밤낚시 경험이 전혀 없는 나에게는 그들이 정말 그런 깨달음을 얻게 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이 스스로를 어둠 속으로 밀어 넣는 이유가 단지 월척을 낚기 위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서로를 보듬는 언어보다는 상대에게 치명적 상처를 주는 폭력의 언어가 판을 치는 이 번잡스러운 세간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해서는 아닐까. 스스로를 글 감옥에 가두는 문인들이나, 텅 빈 캔버스를 앞에 두고 있는 화가, 내면을 다잡고 악상을 떠올리는 음악가, 흰 벽면을 응시하며 화두에 매달리고 있는 수도승과 그들의 모습은 닮아 있는 듯했다. 출세간함으로써 세간에 드는 묘리를 그들은 이미 터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수면을 고요히 응시한 채 돌부처처럼 앉아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평생 수도승처럼 글을 써온 최명희 선생을 떠올렸다. 그녀가 남긴 어둠은 결코 빛보다 어둡지 않다는 말의 뜻을 알 것도 같았다./장성수(최명희문학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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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8.30 23:02

[문화마주보기] 도시 만보객으로서의 기쁨 - 정수완

파리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서 미국의 한 대학교수가 세계에서 비만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로는 미국이, 가장 적은 나라로는 일본을 꼽으면서 그 이유로 일본인이 하루 평균 6.4Km를 걷는데 비해, 미국인은 하루 평균 1000에서 3000보를 걷는데 불과하기 때문이라고 발표했다는 신문 기사를 읽었다. 건강한 생활에 걷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기사였다. 갑자기 끝없이 걸어 다녔던 파리에서의 일주일이 생각났다. 그리고 나는 걷기가 육체의 건강 뿐 아니라 또 다른 행복도 가져다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파리는 작은 도시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웬만한 곳은 모두 걸어서 갈 수 있다. 실제로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보아도 한 정거장이 30초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래서인지 거리에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나도 그 중 한사람이었다. 개선문에서 에펠탑까지, 오르세 박물관에서 세느강을 건너 루브르 박물관까지, 그리고 룩셈부르 공원에서 솔본느 대학까지... 이렇게 걷다보니 그 동안 보지 못했던 파리의 모습이 내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보지 못했던 파리의 뒷골목이 보였다. 골목과 골목 사이에 있는 작은 상점과 찻집에서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파리의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지도를 보지 않아도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골목 모퉁이에 있는 빵집, 시장 입구에 있는 과일 가게, 어느 벽에 붙어있는 작은 영화 포스터와 콘서트 포스터가 거리의 이름보다 먼저 내 머리 속에 남았다. 파리는 이번이 네 번째다. 지금까지 내게 파리는 박물관의 그림과 영화관의 영화로만 기억되었지, 파리라는 도시 그 자체로는 기억된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걸어 다녔던 골목, 거기서 만났던 사람들이 내 발과 내 머리 속에 그대로 기억되어있다. 지도를 보지 않아도 파리의 모습이 그대로 떠올랐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신문을 읽으며 서울을 떠올려보았다. 30년을 넘게 살아 온 곳이다. 그런데 서울의 모습이 제대로 떠오르지 않는다. 서울의 거리를 걸어 본 기억이 아득하다. 이런 저런 핑계로 서울에서는 참 걷지 않는다. 내 발이 기억하는 서울은 어떤 모습일까? 서울이 아름답지 않은 도시라고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서울을 구석구석까지 잘 알고 하는 말일까? 문득 전주의 한옥마을이 생각났다. 처음 한옥마을을 둘러보며 놀라고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그곳을 차로 지나갔다면 한옥마을에 대한 기억이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기차와 자동차가 처음 생겨났던 근대 초기, 사람들은 걸어 다니며 보던 풍경과 다른 풍경을 보며 경이로워했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너무 자동차의 속도로만 풍경들을 봐왔다는 생각이 든다. 천천히 걸으며 몸으로 도시를 느낀다면 건강이외에 더 많은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수완(전주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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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8.23 23:02

[문화마주보기] 천년전주, 한옥마을의 승부수 - 홍성덕

전주는 전통을 꿈꾼다. 정확하게 전통에 기반한 현대 생활문화를 지향하고 있지만 전통이 갖는 시공간적 의미와 평가에 대해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언급할 필요가 없다는 착각 속에 빠져 있기도 하다. 전주가 가지고 있는 전통의 문화자산들은 분명 조선시대에 크게 발전하였거나 만들어진 것은 분명하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는 우리의 전통문화도 조선시대 유교이념에 의해 형성된 문화를 지칭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선지 전주의 한옥마을에 대해서도 막연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한옥은 조선시대 기와집이라는 생각 때문에 전주를 방문한 여행객들이 한옥마을이 어디에요?라고 묻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시대에 형성된 마을이 아닌 전주 한옥마을에는 우리가 보았거나 알고있는 생각 속의 한옥이 없다. 한옥마을의 우수성을 이야기 하는 것은 한옥이라는 건물의 외양이 갖는 전통성이 아니다. 한옥이라는 기와집 형태의 가옥이 전근대에서 근현대에 이어지기까지 자생적으로 발전해 오고, 전주사람들이 그 속에서 살아 왔기 때문이다. 1999년 조사결과에 따르면 한옥마을에는 일복식 목조건물이 11%를 차지하고 있고, 일제시대에 지어진 가옥이 46%, 해방 이후 70년대까지가 49%를 차지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전주 한옥마을은 조선시대 마을이 아니라는 것이다. 도시한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전주한옥마을의 역사 때문이다.지금 전주 한옥마을은 공사 중이다. 곳곳에서 낡고 칙칙한 한옥을 걷어내고 조선시대 형식의 한옥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이런 변화는 마을의 자생적 발전이 탄력을 받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러다 천년전주, 전주한옥마을만의 색깔과 목소리는 없어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정비례해서 쌓이고 있다. 도시한옥과 주미의 생활은 사라지고 무늬만 조선시대인 한옥과 가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몇 년이 지나면 도심 속에 자리잡은 민속촌이 하나 형성될 듯하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전주한옥마을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없게 될 것이다.전주 한옥마을의 정체성은 근현대 100년의 가옥과 생활에 있다. 경제적 논리에 의한 변화는 최소화하고 한옥마을이 가지고 있는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는 정책이 시행되어야 할 때이다. 시대별 주거의 변화와 근현대 생활사를 느낄 수 있도록, 시기별 대표적인 한옥을 매입하여 당시 생활상을 복원하고, 그 점들을 연결하는 한옥마을 관광루트를 개발해야 한다. 아울러 현재 남아있는 도시한옥에 대해서라도 종합적인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 조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그 속에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조사이다. 한옥은 껍질이고 사람은 알맹이이기 때문이다. 알맹이를 빼놓고 껍질만 바라보는 것은 앙꼬 없는 찐빵과 다름없다. 전주한옥마을의 승부수는 조선시대로의 회귀가 아니라 근현대 100년의 문화자산을 끌고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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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8.16 23:02

[문화마주보기] 전북의 문화발전지수 얼마? - 이재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7월 27일 발표한2004~2005 민주발전지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화영역의 민주발전지수(5.00점 최고기준)는 3.00으로 전체평균 2.91에 비해 다소 높게 나타났으나 시민사회 영역 안에서는 하위에 해당되는 점수를 받았다. 정보, 교육, 인권, 여성 영역에 비하면 상당히 뒤처지는 것으로 나왔다. 문화영역은 공공도서관 수, 문화관광 관련예산, 도서관 이용회수, 가계지출 중 문화비지출 비중, 1인당 도시공원면적 등 주로 문화 인프라에 관련된 사항을 기준으로 평가했다고 한다. 이런 방식의 계량화가 문화발전의 객관적 지수화에 딱 들어맞는 것이냐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일정한 한계를 감안하고 하나의 비교 치로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공공도서관수는 인구 1만명당 0.1개로 나타나 체코, 불가리아, 에스토니아 등 동구권 국가들의 3.8~7개에 비해 그 수가 적게 나타났으며, 1인당 연간 평균 도서관 이용회수도 선진국의 20회 이상에 비해 평균 3.48회로 매우 적게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도서관 수가 제법 늘고 있는 추세인데도 그렇다.또한 가계지출 중 문화비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10~20%로 20% 이상 문화비를 지출하는 선진국에 비해 많이 부족한 편이다. 정부 예산 가운데 문화관광예산은 전체 정부예산에 대비해 선진국은 3% 수준인 반면 우리는 1%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주목할 점은 문화전문가들이 문화시설의 지역간 격차가 매우 심각하다고 평가했으며, 소수자 문화나 주변부 문화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는 답변을 내놓았다는 점이다. 문화인프라의 지역 간 격차, 계층 간 격차는 결국 지역주민들의 삶의 만족도를 떨어뜨릴 것이고 지역 간, 계층 간의 갈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지만 일반인들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시민들의 문화생활을 위해 기울이는 노력 정도를 그저 그렇다고 평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지역의 문화발전지수는 어느 정도일까. 지방자치 15년 동안 축제 등의 문화행사는 외형상 크게 늘어났지만 지역주민이 체감하는 문화적 삶의 질은 그렇게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할 것 같다. 주5일제근무가 확산, 강화되면서 여가,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졌지만 이러한 욕구를 수용할 문화공간과 프로그램은 크게 부족하기만 하다. 고령화시대로 접어들면서 노인들의 여가문화 등 새로운 문화적 욕구를 담아내는 특별한 정책도 시급하기만 하다. 시민들의 문화적 욕구와 기대를 담아낼 수 있는 인프라의 구축과 프로그램의 개발에 시민(사회), 지방자치단체, 정부가 함께 나서야 한다. 소득 몇 만 불 시대, 집집마다 차 몇 대 하는 경제적 차원의 사회발전 지표보다 우리 마을에 도서관이 몇 곳, 문화공간과 프로그램은 얼마, 우리 집의 읽을만한 책은 몇 권인가를 가장 중심적인 삶의 질로 계측하는 그런 고장, 진정한 문화중심도시를 꿈꾸어본다. /이재규(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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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8.09 23:02

[문화마주보기] 자서전을 씁시다 - 장성수

우린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또 그것을 오랫동안 배워왔지만, 정작 우리 자신의 역사를 갖지는 못하였다. 우리가 배운 역사란 왕조나 지배계급의 흥망성쇠, 위대한 인물들의 영웅담, 그리고 거창한 사건들로 대부분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역사의 큰 물줄기를 이루는 다수 보통사람들의 삶과 그 자취는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잊혀져가는 이들의 삶을 기록하고 해석하는 일은, 따라서 역사를 민주화하는 작업이며 은폐되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는 일이기도 하다.그런데 이런 일은 먼 옛날을 통해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가까운 옛날인 지난 20세기에 주목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 시기도 그렇게 한가하게 해찰할 여유가 없다. 시대를 증언해 줄 많은 분들이 이미 세상을 떠났고,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이 시대 생활의 흔적이 급격히 파괴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서둘러야 할 일은 지난 20세기를 살아온 그들 스스로의 입으로 자신의 생애를 이야기하도록 하는 것이다. 역사의 객체로만 머물러 있던 그들을 역사의 주체로 세우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이야기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역사 없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날의 삶일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민중들에게 일상적 삶은 전쟁이나 혁명보다 중요하다. 20세기 한국 민중이 겪은 거창한 사건들도 이러한 일상생활을 떠나면 진정한 역사가 될 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들 스스로가 말하거나(구술하거나) 쓴 생애사 또는 생활사, 다시 말하면 자서전은 역사 바로 잡기의 구체적 실천 가운데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 동안 우리는 역사에 이름을 남길만한 사람들이나 자서전을 남기는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해왔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민중들의 자서전이란 이른바 잘난 사람들이 쓰는 자화자찬 일변도의 찬양록이나 회고록과는 분명히 구별된다. 일제시대, 6?25전쟁 등등으로 이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 속에서 한국의 민중들은 어떤 형태로든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그들의 마음 속 깊이 넣어둔 삶의 응어리들은, 그것이 자서전으로 복원되는 한, 한국 현대 생활역사 자료의 귀중한 보고가 된다.그들의 파란만장한 일상적 삶의 역정을 듣고 기록하는 일은 그들의 생애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지금 바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올해로 4년째 이런 일을 해온『20세기 민중생활사 연구단(www.minjung20.org)』에서는 때마침 민중자서전을 널리 공모하여 수집하고 있다. 가능한 한 그것들을 많이 모아 체계적이고도 종합적인 자료집성을 구축해야 한다. 21세기 우리 세대들에게 주어진 역사적 책무이다. 그 임무 수행의 구체적 방법이나 내용에 대해서는 연구단 홈페이지에 들러 그들의 작업을 참고하기를 권한다./장성수(최명희문학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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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8.02 23:02

[문화마주보기] 나를 찾아 떠나는 산사로의 여행 - 정수완

해인사를 다녀왔다. 신임교직원 여름수련회라는 조금은 강제적인 모임 때문이었다. 영화제 프로그래머라는 일을 시작하고부터 계속된 잦은 출장으로 짐을 싸고 짐을 푸는 일에는 이력이 났다고 생각했는데, 2박3일의 짧은 여정의 해인사 여행을 앞두고는 무엇을 준비해야할지 많이 망설여졌다. 스님들과 똑같은 생활은 아닐지라도 산사에서의 생활은 도심의 세속 생활과는 다른 생활이 될 것이다. 그곳에서의 생활에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필요치 않을까?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가득 안고 떠나던 출장 때와는 달리 해인사로의 발길은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산사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입고 있던 옷을 벗어버리고 수련복으로 갈아입는 일이었다. 산사에서는 나를 꾸미거나 치장할 필요가 없었다. 꾸민 겉모습이 마치 나인 것처럼 생각하고 살았던 속세의 생활을 버리고, 모두가 같아 보이는 속에서 진정한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두 번째로 산사에서 필요 없는 것은 말이었다. 길을 걸을 때나, 밥을 먹을 때나 묵언을 해야 한다. 하지만 말을 잊음으로서 얻는 것들이 많았다. 오랜 만에 밥의 참맛을 느낄 수 있었다. 밥의 단맛, 고추장의 달콤한 내음, 콩나물의 고소함... 그동안 우리가 밥을 먹으면서도 제대로 밥을 먹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걸을 때에도 말을 줄이니까 생각이 늘었다. 보이는 것도 늘었다. 하늘이 보이고 땅이 보였다. 그리고 잊고 있던 내가 보였다. 게다가 속세에서 말 때문에 생기는 많은 오해와 싸움들을 생각해보면 묵언은 참 많은 소중한 것들을 가져다주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산사에서 필요 없는 것은 잠이었다. 10시가 넘어야 하루의 일과가 끝이 난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3시 예불로 또 하루가 시작된다. 잠이라고 해서 제대로 잘 수 있는 시간은 4시간이 채 못 된다. 그러나 짧은 4시간의 산사에서의 잠은 속세에서의 긴 잠보다 더 꿀맛 같았다. 이처럼 옷과 말과 잠을 버린 산사의 생활에서 꼭 필요한 것이 있었다. 고통이었다.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1시간이 넘는 산행을 해야 했고, 저린 발을 주물러가며 참선을 해야 했다. 익숙하지 않은 움직임으로 108배에 도전해야했고, 암모니아냄새가 코를 찌르는 재래식 화장실에 익숙해져야했다. 그러나 이런 고통들이야말로 너무 익숙해서 잊고 있었던 우리 생활의 많은 편리함에 대한 고마움을 새롭게 인식하게 해주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해인사는 조선팔경중의 하나인 가야산에 위치하고 있어 아름다운 산사로 유명할 뿐 아니라,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 문화유적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이런 해인사에서의 2박3일은 산사의 아름다움 이상의 아름다운 추억을 내게 주었다. 가끔은 자연과 문화를 만나고, 그 속에서 새롭게 나를 발견하는 산사로의 여행도 권한만 하다. /정수완(전주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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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7.26 23:02

[문화마주보기] 태조어진과 전주사고 조선왕조실록 - 홍성덕

약탈문화재 환수가 아닌 도쿄대학교의 기증형식으로 돌아온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 47책을 보면서 착잡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기록의 도시를 강조해 온 우리는 뭘하고 있나? 전주를 떠난 지 4백년이 넘은 실록뿐 만 아니라 1년 전에 대여해 간 태조 어진도 감감 무소식이고, 완판본이나 전라도에서 출간된 옛 전적을 제대로 소장하고 있는 곳 역시 우리 고장에는 없다. 두해 전 모 대학에서 조선왕조실록 전주사고본을 환수하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뒤 2년이 흘렀지만 환수 움직임은 전혀 없고, 태조어진은 누가 잘못했느니 하다가 어진전을 세우는 것이 좋네 마네하고만 있다. 그럼에도 우리고장은 출판의 고장이고, 기록의 도시란다. 무엇이 문제일까 ?실록, 애초에 방향이 잘못되었다. 조선왕조실록 전주사고본은 전주 것이 아니다. 임진왜란 때에 전라도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냈지만, 조선전기 전주사고본은 그후 선조~철종대가지가 합쳐져서 정족산성본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약탈되지 않은 전주사고본만을 환수하자는 것은 맞지 않다. 그보다는 오히려 적상산성본 환수운동을 벌이는 것이 맞다. 적상산성본은 한국전쟁 때 북한이 약탈해간 문화재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전 기간 동안 실록을 보존한 곳은 전라도가 유일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된다.태조어진 문제의 핵심은 보물로 지정된 어진에만 있지 않다. 보존관리 측면에서 보면 어진이안에 사용된 각종 장엄구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문화재청이나 국립전주박물관, 전주시, 전문가들 모두 이 점에서는 똑같다. 지정된 보물만 관리해야 할 문화재인가? 어진과 동 시기에 제작된 장엄구들 역시 하루빨리 보존 관리해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이 유물을 속히 박물관에 위탁 보존토록 한 뒤, 어진 반환을 이야기해야 한다.태조어진은 일단 무조건 가져와야만 한다. 어진 외의 장엄구들에 대해 일언반구 한마디 없는 문화재청이나 국립고궁박물관이나 이참에 어진을 차지하려는 그 꿍꿍이 속은 똑같다. 국립고궁박물관이나 국립전주박물관 모두 국립박물관이다. 어진이 굳이 고궁박물관에 있을 이유가 없다. 일단 국립전주박물관으로 가져다 놓고 이야기하면 된다. 국립전주박물관 역시 그저 임기만 채우고 떠나면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앞장 서야 한다. 국립전주박물관만이 현 단계에서 어진을 제대로 관리할 시설도 있고 인력도 있기 때문이다. 그저 상황이 되면 할 수 있다는 수동적인 생각을 버리고 우리가 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문화재청과 고궁박물관을 설득해야만 전북에 있는 국립박물관으로 사랑받을 것이다.어진에 대한 우롱과 실록환수에 대한 한탄 속에서 이제 적상산성본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와 어진반환위원회를 꾸려야 할 모양이다. 위원회 세상이라지만 꼭 필요한 것을 만들지 않을 수는 없지 않은가? △홍성덕 연구사는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에서 근무한 뒤 전주시청 연구원을 거쳤으며, 대통령비서실 정책자문위원,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등을 맡고 있다. /홍성덕(전북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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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7.19 23:02

[문화마주보기] 전북 브랜드가치 ‘문화’가 중심 - 이재규

김완주 신임 도지사의 취임사에 문화가 발견되지 않아 의아했다. 날이 갈수록 하락하는 도세와 지역경제의 열악함을 반영하여 경제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대중적기치의 절박함을 이해 못할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부분에선가 균형을 맞추었겠지 하는 생각이었는데 교육, 문화, 의료의 격차를 해소한다.는 한 줄 언급을 빼고는 김 지사의 고유 브랜드처럼 알려졌던 문화가 증발해버린 것이다.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전주를 맛과 멋의 고장, 전통문화중심도시로 내세우면서 지역의 브랜드 매니징을 문화에 맞추었던 전주시장 시절의 판단은 전라북도의 수장이 되면서 급전환하게 된 것일까 궁금증이 커졌다. 지난 경제성장 정책에서 소외되었던 지역들이 나서 지역문화브랜드 개발 전략을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성장을 도모하는 정책을 펴 온 것이 최근의 지자체 발전 전략의 전반적 추세였다. 문화를 중심 이미지로 활용하는 자치단체도 상당수에 이르렀다. 문화와 관광이 결합하고 이것은 다시 문화토건사업으로 이어졌다. 관광단지가 줄을 지어 건설되고 온갖 시설물들이 문화의 이름 아래 시도되었다. 전국 곳곳에서 여러 이름의 축제와 영화제의 행진이 이어졌다. 물론 나비와 반딧불 등 연성전략을 통해 성공한 몇 지자체 외에는문화산업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지역은 아직 드물다. 그렇다면 다시 대규모 공단과 기업 유치, 첨단신산업의 시도로 중심점을 옮겨야만 할 것인가.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기회의 시간은 사라져 버리고 경쟁도시들은 저만큼 앞서가 버리고 있다. 이웃한 광주는 2023년까지 20년 동안 2조원이 넘는 돈이 투자되는 등 참여정부의 지원 아래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지역경제의 동력이자 대안모델로 내세우고 있다. 5.18의 경험을 세계적으로 확장시켜 아시아 인권, 평화의 중심도시라는 이미지를 정착시키기 위한 대형 이벤트도 지속적으로 조직하는 눈치다. 전북은 어떤가. 호남에 대한 정치적 고려라는 과실을 광주전남이 독식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들려오긴 한다. 하지만 정작 문화 인프라의 가장 핵심적 요소인 문화자원을 어느 지방보다 경쟁력 있게 갖추고 있는 전북의 잠재력을 효율적으로 발휘하고 배치하는 일에는 서툴기만 한 것 같다. 아시아, 문화만 해도 전북이 훨씬 더 다양하게 많이 채워나갈 수 있다. 전북의 정치역량과 문화일꾼이 집중점을 설정하여 그것을 못해내고 있을 뿐이다. 예를 들면 한국문학을 이끄는 중견 작가들의 연고가 강한 전북에서 21세기 세계의 새로운 전망을 열어가는 <아시아아프리카 작가대회> 같은 것을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전북을 아시아문학으로 열린 창, 문학거점으로 확산해가는 시도 같은 것은 어떨까. 한국문학의 산실이라는 기존의 보유가치를 아시아로 연결하면서 고유 브랜드 가치로 선점,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여기에 맛과 멋으로 집약되는 전북의 문화컨텐츠가 가져올 여러 부대효과를 잘 짜 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전북인이 이미 잠재력을 갖고 있는 일을 중심으로 전북발전전략을 짜고, 이와 연관된 일을 자꾸 엮어내면서 큰 흐름을 만들어 가려는 특별한 노력 속에 21세기 문화 전북의 미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재규 처장은 전민련 정책위원, 시민행동21 공동대표를 지냈으며, 전북CBS <생방송 사람과사람> 진행자,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사무처장(현), 6.15남측위원회 부대변인(현)을 맡고 있다./이재규(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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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7.12 23:02

[문화마주보기] 도시인의 새내기 시골 생활 - 장성수

작년 겨울, 그 동안 살던 전주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시골에 황토 집을 지어 이사를 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탈도시화 바램을 앞장 서 실천한 선구자적 용기가 대단할 뿐만 아니라 부럽기까지 하다는 반응이었다.그러나 나는 정작 엉겁결에 감행한 시골로의 이주가 어떤 이유로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 만한 행동이었는지를 잘 알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 난생 처음으로 시작한 시골 살림이 상당히 두려웠다. 60에 가까운 세월 동안, 도시를 떠나 생활해 본 적이 없는 완전한 도시인이 바로 나였기 때문이었다. 과연 도시에서 시골로의 이주는 단순한 공간의 이동이 아니었다. 두려움은 곧 현실로 나타났다. 그것은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자연으로부터 왔다.그 해 여름에는 동네에 큰물이 났다. 장맛비가 줄곧 내리더니 큰 개울이 넘쳐 개울가 집을 덮쳤다. 산사태로 도로가 막히고, 전기와 식수가 끊겼다. 새로 편입한 자에게 가해지는 통과의례라고 하기엔 너무 충격적이었다.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자연의 폭력성에 나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시련은 겨울에도 닥쳤다. 폭설로 출퇴근길이 자유롭지 못했고, 본의 아니게 도시의 여관 신세를 지기도 했다. 화장실 하수구로 느닷없이 기어 나오는 지네, 눅눅한 방바닥을 옴찔옴찔 기어 다니는 벌레, 처마 밑에 집을 짓고 왱왱거리는 말벌 떼에 가슴 졸여야만 하는 일상생활의 어려움은 편안한 도시의 아파트 생활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원망을 저절로 우러나오게 했다.그러나 자연은 시련만을 주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도시생활에서 생겨나는 갈등과 번민이 이곳에 들어오는 순간, 씻은 듯이 사라진다. 도시의 소음과 공해로 답답했던 가슴이, 찌들었던 눈과 귀가 확 트인다. 트인 가슴으로는 맑은 바람 한줄기 시원스레 지나가고, 밝아진 눈으로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더욱 영롱하게 반짝이는 별무리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아침이면 앞마당 나뭇가지로 내려와 앉아 다투어 지저귀는 새떼들 소리에 귀도 덩달아 즐겁다. 뽑고 돌아서면 또 다시 돋아나는 잡초들 등살에 허리가 뻐근하고, 텃밭에 심어놓은 고추며 토마토, 가지, 오이에 서식하는 진딧물 잡기로 몸은 고단하지만, 심간은 편안하여 속리의 신선이 따로 없다.개망초, 개양귀비, 질경이, 환삼덩굴, 소루쟁이, 쇠뜨기, 비단풀, 쇠비름, 비비추, 감국 등 그저 잡초로만 알고 있던 야생초의 이름을 알게 되고, 그들이 피워내는 수줍은 꽃들을 황홀하게 바라보는 가외의 소득도 얻게 되었다. 아직은 농촌의 현실을 모르는 한가한 소리라고 비난하지 마시길 바란다.여전히 도시와 시골을 오가며 어정대고 있는 처지이지만, 머지않아 도시의 찌든 때를 완전히 벗게 되는 날,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우리 동네 이장 노릇 한번 해 봤으면 하는 소원이 요즘 새로이 생겼다.△전북대학교 교수회 부회장 역임전북대학교 중앙도서관 관장 역임한국문학이론과 비평학회 회장 역임현) 전북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20세기 민중생활사 연구단』공동연구원『최명희문학관』관장/장성수(최명희문학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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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7.05 23:02

[문화마주보기] 반갑다, 꽃뱀 - 김유석

유월은 소리의 천지이다. 새벽마당을 쪼아대는 참새에서부터 늦은 밤의 개구리 울음에 이르기까지 온갖 자연의 화음이 귀를 씻는다. 이따금 시꺼멓게 하늘을 몰아세우는 우레와 양철지붕을 박음질 하는 소낙비소리, 하루를 들놓고 돌아오는 주인을 맞는 초저녁의 누렁이 소리조차 그윽하게 들판을 적신다. 게다가 새참을 내놓고 어이! 하며 지나치는 발씨들을 붙잡는 컬컬한 목소리는 또 얼마나 가슴에 감치던가. 투박하고도 무심하게 몸에 익은 소리들을 모름지기 따르다보면 결코 무심할 수만은 없는 세월의 잔해들이 묻어난다. 참새들의 지저귐 속에는 홀어미 혼자 사는 마당귀의 적막이 감나무 그늘 밑 청태처럼 끼어 있다. 공명하듯 서로의 가슴을 맞받아 흥얼거리다가도 일순간 툭 끊기는 개구리 울음 사이엔 일말의 긴장감 같은 것이 서려있고 어이라는 말의 다정함 속에는 사람이 사람을 부르는 외로움이 숨겨져 있다. 그나마도 아직은 그것들에 위로받을 수 있는 순간이 남아있기에 망정이지 그것들마저 사라진다면 산다는 것의 쓸쓸함을 어디에 감추겠는가.실은 이 밤 온 들판을 끓이는 저 개구리울음이 반가우면서도 조금은 서글프게 들리는 까닭이 있다. 보리쌀 씻는 소리처럼 배고프던 시절 우리들을 대신해서 칭얼대던 토종들의 울음이 점점 끊기게 된 사연은 참으로 씁쓸하다. 농기계소음에 묻혔거나 오염된 환경 탓쯤으로 모두가 무심했던 그것들의 종적은 홀연 들려오던 정체불명의 괴성 속에 있었다. 황소개구리, 커다란 덩치에 겁나고 징하게 고함질을 질러대던 이 외래종들에게 무참히 희생당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심지어는 무자치들까지 잡아먹으며 마구잡이로 생태계를 교란하던 무법자들이 먹이가 줄자 필경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으면서 도태될 때까지 어디론가 내몰렸던 토종들. 다행히 멸종만은 면한 그것들이 다시 제 터전에 돌아와 저렇듯 뒤섞는 기쁨과 슬픔을 듣는 마음이 여간 착잡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개구리들만의 애환이 아니라 배스, 블루길 등에 의해 전철을 되밟고 있는 물고기들을 생각하면 반성보다 분노가 앞서기도 하지만. <개구리를 먼저 보면 부지런해지고 배암을 먼저 만나면 게을러진다>는 어릴 적 우스개를 떠올리며 올 봄 뱀 한 마리와 마주친 적이 있다. 꽃뱀이었다. 뱀에 대한 달갑지 않은 선입견과 토끼풀 무덤에 묻혔다 스르르 풀리는 소리가 여전히 기억을 섬뜩하게 하였지만 한편으론 여간 반갑지 않은 우연이었다. 한 마장 학교 길을 줄창 끌고 다니며 징그러운 모습을 공연히 들볶기도 하고 때론 음산한 눈초리를 피해 다니기도 했던 족속들. 그땐 서너 걸음마다 똬리를 틀만큼 흔했던 녀석을 수 삼년 만에 들길에서 만난 것이다. 서로 경계하고 서로 마주보다가 숙연한 생각을 끌고 아스라한 기억 속으로 슬그머니 꽁무니를 감추는 녀석이 얼마나 미덥고 또, 얼마나 고맙던지.다시 돌아오고 있다. 도롱뇽, 자라, 너구리, 참게 등등 이 땅의 들과 물가에 살던 얼굴들이 하나 둘씩 제 터전을 되찾고 있다. 떠나게 된 사연을 묻지도 말고 돌아온 생각을 앞질러 따지지도 말고, 그냥 내버려 두자. <자연>이란 말 그대로 상관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모습으로든 지금보다야 훨씬 무성해지지 않겠는가. 인간의 개입으로 인해 <고질라>와 같은 돌연변이 생길지도 모르지만 우선은 반갑다, 꽃뱀!/김유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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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6.28 23:02

[문화마주보기] 월드컵과 우리 동네 - 김정수

월드컵이 먼 나라 이야기였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가 출전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요즘처럼 미디어가 발전하지 못했던 때, 월드컵은 하나의 신화였다. 펠레의 공차는 모습을 본적 없는 아이들도 펠레를 알았고, 그들에 의해 펠레는 살아있는 전설이 될 수 있었다. 현대의 월드컵은 국가적 전쟁 영웅이 범법자로 지탄받는 시점에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꿰차고 들어왔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영웅이 필요한가 보다.지난 2002년 월드컵의 최대 성과는 무엇보다 우리 국호의 완전한 사용이었다. 그동안 각종 매체가 한국으로 즐겨 써왔던 우리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확실히 정착시킨 계기가 2002월드컵이었으며, 붉은악마가 숨은 공로자였다. 월드컵 개최 경험은 올해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세계축구팬들에게 새로운 응원 모델을 제시했다는 거리응원도 2002년의 유산이다. 도시마다 간선도로를 응원을 위한 공간으로 내놓는 것이 자연스럽게 자리잡았으며, 응원을 어디에서 누구와 할 것인가가 사람들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다.티 브이가 없던 시절, 밤 시간은 참 길었다. 해 질녘까지 함께 놀았던 동네 아이들은 저녁밥을 챙겨먹고 난 후 다시 모였다. 어둠 속 숨바꼭질이 본격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청년티 나는 아이들부터 세살박이까지 함께 할 수 있는 놀이였다. 어둠 속에 은밀한 스릴은 짜릿했다. 가끔은 동네 어른들 모인 자리에서 재롱잔치도 벌어졌다. 일종의 소규모 학예발표회다. 기껏해야 학교에서 배운 노래와 유행가 몇 가지지만 치마나 보자기를 활용한 소품과 의상이 있는 꽁트도 있었다. 그렇게 동네의 밤은 함께 하는 시간이었다.지난 주 월드컵 토고전이 벌어진 날, 내가 사는 아파트 관리실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임대하여 단체 응원을 준비했다. 누가 얼마나 나올까 하고 시큰둥하게 생각했고, 반응 또한 영 시원찮아 보였다. 그런데 경기 시작 무렵, 밖에 나가본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아파트, 이웃 아파트에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살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태어난 아이들이 줄고 있다는 뉴스 때문이 아니라 실제 내 눈으로 아이들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랬다. 아이들은 재난과 박해를 피해 지하동굴에 숨은 은둔자들처럼 내 눈 밖에 벗어나 있다가 해방의 날, 어둠과 함께 하나 둘 나타난 것이다. 학교수업에 학원 수강, 야간타율학습, 성적관리, 건강관리까지 강요당하느라 숨쉴 틈이 없었던 그들, 엄마 손을 잡고 나온 꼬마부터 중고등학생들까지 오밀조밀 붉은 옷을 입고 모여앉아 기특하게도 대-한민국을 함께 외치고 있었다. 참 안쓰러운 감동이었다. 이들에게 어쩌면 월드컵이 모처럼 맛보는 공인된 해방구였는지 모른다. 단 하루만이라도 부모의 눈총과 선생님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는 기쁨을 누렸는지 모른다. 아이들의 외침과 탄성을 들으며 참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죄를 많이 짓고 있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국가주의, 상업주의의 첨단을 달리는 월드컵이 그래도 우리 동네에 기여하는 바가 최소한 하나는 있구나 싶었다./김정수(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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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6.21 23:02

[문화마주보기] 예술의 상상할 자유 - 김정수

전 세계의 관심 속에 개봉된 영화 다빈치 코드가 완성도 논란 속에서도 순항중이다. 한국기독교 총연합회의 극단적인 개봉반대운동에도 불구하고 개봉 4일만에 140만을 넘기며 국내 영화계를 휩쓸고, 세계 가톨릭국가들에서도 박스오피스 1~ 2위를 달리고 있다.한기총은 역사적 소재를 표면에 내세워 교묘한 소설적 허구 전환의 기만적 기법을 통해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에 대한 엄청난 오해와 기독교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갖게 한다면서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었으며 허구를 역사로 착각하게끔 하여 일반인은 물론 기독교인들에게 소설보다 더한 혼란과 갈등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하지만 이런 한기총의 태도는 처음부터 웃음거리로 전락할 공산이 컸다. 소설이나 영화는 아무리 사실을 근간으로 창작되었다 해도 허구다. 그런데 영화의 허구성을 규탄하는 일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다. 스스로 현실을 가장한 허구임을 명백히 하는 예술작품을 규탄한다는 것처럼 비논리적인 일은 없다. 과연 일반인들이 혼란을 느낄 것은 무엇이며, 영화 한 편에 기독교인들이 갈등을 느낄만큼 그동안의 기독교 교리가 허술한 것이었나 반문하고 싶다.최근 발견되었다는 유다복음과 같은 외경과 위경의 사실성까지 굳이 들먹일 것까지도 없다. 전제컨대, 나는 헐리우드 영화에 관한 반감과 함께 기독교적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종교적 신념과 신앙의 문제가 종교를 가진 사람에게 중요한 만큼, 종교를 바깥에서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견해나 판단도 소중히 인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의 문제다.보수 교단이 다빈치 코드를 특별히 문제 삼는 이유는 예수의 신성에 도전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신성을 상상하면 발칙한 일인가? 예수의 결혼설이나, 예수의 신격화 과정에 관한 인간적 상상력은 정녕 금기시되고 단죄해야 하는 문제인가? 나는 오히려 이 작품이 현대인들에게 예수와 그 시대에 관한 깊이 있는 사유를 제공했다고 생각한다.이 작품을 처음 읽을 무렵, 종교를 가진 많은 사람들이 상당한 공감을 보인 점을 분명히 기억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배교를 결행했을까? 내 주변엔 결코 그런 사람이 없다. 그들의 신앙이 그렇게 유아적이고 단세포적이라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염려하는 종교지도자들의 수준이 염려스러울 정도다.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타인과 공유하고픈 욕망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종교인에게는 종교탄압과 똑같은 폭력이 될 수도 있다.예술은 상상력의 소산이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서로 다양한 생각들을 갖고 산다. 그 때문이라도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는 일만큼은 자유로워야 한다. 침대에 맞추어 사람의 다리를 자르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김정수(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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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5.24 23:02

[문화마주보기] 디지털치매 - 김유석

그런 말이 있는지 모르겠다. 언어 동작이 느리고 정신 작용이 완전하지 못함이라는 치매의 사전적 의미에 시대의 화두인 디지털이 합성된 신조어쯤으로, 컴퓨터나 핸드폰 등의 기기에 지나치게 의지하는 세태를 꼬집을 때 쓰이는 예를 몇 번 들어본 것 같다. 치매가 보통 노인성 뇌질환을 일컫는데 비하여 디지털치매는 디지털문화에 민감하게 노출된 보다 젊은 세대들의 정서질환을 겨냥한 증후군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듯싶다.기기 가운데서도 가장 빠르고 다양한 용도로 생활화된 컴퓨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낼 정도로 무소불위의 필수품이 되어버린 반면 감당해야 할 병폐 또한 만만치 않게 드러내고 있다. 사소한 부주의나 개인적인 책임일 뿐으로 공공연히 묵인해 가고 있는 그런 사건사고를 일컬음이 아니라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증상도 없는 인터넷의 그늘, 홀릭이 아닌 사람일지라도 모름지기 노출되어 있다 할 수 밖에 없는 인터넷의 함정을 말함이다.여전히 컴맹에 가깝지만 컴퓨터를 켜는 일이 점점 늘어 간다. 그 대부분이 인터넷임은 두말 할 나위 없다. 대문 앞 우편함을 흘긋거리는 대신 틈틈이 이메일을 들여다본다. 그전 같으면 수첩이나 주소록 같은 데에 꼼꼼히 적던 중요한 일들을 그 안에 저장해 두고 혹 날아갈까 봐 기우에 시달리기도 한다. 만년필이 아닌 키보드를 두드려 글을 쓰기도 하고 부질없이 이곳저곳 사이트를 들락거리다가 우연히 유익한 정보를 얻을 때도 적잖다. 보고 싶은 영화나 노래를 내려 받을 줄 안 뒤로 영화관에 가고 디스크를 사 본 기억이 까마득하고, 게임은 할 줄 모르지만 솔직히 야동을 몇 번 즐긴 적도 있다. 그 정도야 기본 아니겠는가, 적어도 폐인은 아니니까. 그러다보면 저도 모르게 멀어지는 것들이 있다. 무엇보다 책읽기가 그렇다. 클릭 몇 번이면 폭풍의 언덕을 읽지 않고서도 등장인물은 물론 줄거리를 훤히 꿸 수 있으므로 굳이 먹고사는 일이 아닌 것들에 긴 시간을 할애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책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인물들의 감정과 복선 등은 바쁘다는 핑계를 대면 그만이다. 어디 책뿐이겠는가. 만물상처럼 없는 게 없고 백과사전 못지않게 브리핑되어 나오는 지식들, 흘려들은 얘기로는 컴퓨터 하나로 논문을 쓴 작자들도 있다나? 필요한 것들은 머리와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기 속에 다 들어있으므로 자판기의 커피를 뽑듯 꺼내 쓰면 된다는 얘기다.이쯤 되면 편리함을 들먹거리기 전에 홀려간다는 표현이 어울릴 듯싶다. 신발이든 옷가지를 사든 꼭 쇼핑몰에서 택배로 구입하는 아이에게 물었더니 유행이라고 그런다. 유행이란 말을 문화로 바꿔 들으며 어릴 적 어머니를 졸졸 따라다니던 읍내 장날을 떠올려봤다. 시간도 아끼고 값도 발품을 파는 것보다 저렴하다하니 일거양득인 것만은 분명하다 싶은데 뒷맛이 여간 씁쓸하지 않은 까닭은 디지털치매가 역설적으로 디지털문화를 낯설어 하는 쉰(?)세대를 호칭하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여느 때처럼 컴퓨터가 켜진 밤이다. 마땅히 사용해야할 일이 없어도 우선 컴퓨터부터 켜놓고 책상을 닦거나 하루의 생각을 정리한다.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하고도 무서운 질환이다. 클릭, 클릭, 또 클릭./김유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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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5.17 23:02

[문화마주보기] 문화도시의 성공조건 - 전효관

전국적으로 문화도시 열풍이다. 물론 이런 현상은 부분적으로 과열일 것이다. 사람들은 거의 모든 도시가 문화도시, 창조도시 만들기에 나섰다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문화도시 프로젝트는 문화가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를 반영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중소도시의 경우에 문화도시 만들기는 매우 현실적인 과제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도시에서 구도심의 쇠락현상, 재래시장의 붕괴는 일반적으로 관찰된다. 문화도시 프로젝트는 이 현실에 대응하는 문화적 전략이자 대안을 구축하는 작업으로서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그런데 이 구상은 성공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문화도시 프로젝트에 대해 의구심이 많다. 요즘 나는 광주에서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사업을 진행하면서 이 의구심들에 답하느라 바쁘다. 광주 프로젝트의 요지는 구도청 부지에 교류와 창조를 통해 가동되는 문화 발전소를 만들고 그 성과를 도시 전체로 확산하여 새로운 인본주의 도시(neo-humanic city)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또 이와 유사한 프로젝트가 광주뿐만 아니라 전주, 경주, 부산 등에서도 추진 중이다. 또한 국가 프로젝트 위상에서는 아니지만, 지역의 자구적 차원에서도 문화도시화 계획이 속속 수립되고 있다. 그래서 최근 기획예산처가 주관한 문화 예산 토론회에서 문화도시 프로젝트를 국가 예산으로 감당하기는 힘들다는 목멘 소리가 대세를 이루기도 했다.어쨌든 문제는 문화도시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는 조건일 것이다. 먼저, 한 도시가 문화도시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도시 자체의 문화적 자생력이 필수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말하자면 예산 지원이 우선이 아니고 문화도시를 만들어갈 자생력이 있을 때에만 예산 지원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자기 프로젝트가 없이 예산이 배정되면 마치 떳다방처럼 행동하는 사람들만 있는 곳에서 문화도시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또 하나, 문화도시 프로젝트는 문화적 행정이 발전한 곳에서 성공할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문화도시는 창의성을 핵심으로 하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창의성을 존중하는 프로세스가 필수적이다. 문화행정이 제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찾을 줄 알고, 그들이 수행하는 작업의 저작권을 존중할 줄 알며, 남의 아이디어와 사유의 힘을 제대로 초대할 줄 아는 곳에서 문화도시는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해관계에 의해 결정하고, 기획에서 기획자의 이름을 지우고, 남의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행정에서 문화도시는 불가능하다. 아마도 문화도시 프로젝트는 문화적 자생력과 문화행정 사이의 생산적 관계가 설계되는 곳에서 성공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문화도시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는 누가 선점하는가의 문제가 아닌 누가 문화적 과정을 설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일 수밖에 없다. /전효관(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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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5.1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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