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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 보장해야

현실에서 아프다는 것은 가난한 사람에게는 죄악과 같은 것이다. 전 인생을 통해 가난하지만 가족들을 위해 헌신해 왔던 아버지, 어머니들이 노년기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거나 자식들의 눈치를 보느라 몸 둘 바를 모르며 미안해하는 것 중의 가장 큰 이유는 건강 악화로 인해 병원신세를 지는 것이다. 우리의 의료보험 제도는 미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제도이고 발전 가능성이 높다. 하나 아직도 중요병력에 대한 자부담 비율이 높고 특히 고가의 의료행위와 치료에 있어 비보험 항목이 많아 발병 후 채 몇 달이 되지 않아 쉽게 집 한 채를 날리기도 한다. 치매 등 노인성 질환은 대부분 완치가 어렵고 장기적인 치료를 요하는 경우가 많다. 있는 자들은 치료를 지속하지만 대다수 서민들은 어쩔 수 없이 치료를 포기한다. 아픈 것은 철저히 개인과 가족의 일로 치부되어 고통으로 가정 파탄이 나기 일쑤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병마가 진행 중이고 고통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의 경제적 파탄을 우려하여 치료를 미리 포기하거나 중단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돈 없으면 맘 놓고 치료 받을 수 없는 것이다. 며칠 전 전주 교차로 유창희 회장으로부터 아이스버킷 챌린지 운동의 참여를 공개적으로 제안 받았다. 난 사진 찍는 것 자체를 대단히 싫어한다. 내가 사진 속에 들어가면 굳은 얼굴로 인해 전체적인 분위기를 망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투쟁적으로 산 대가가 얼굴에 나타나 있다. 오죽하면 내 평생소원이 고 문익환 목사님 같은 밝고 선한 얼굴을 갖는 것이다. 앞으로의 인생이 목사님의 발꿈치라도 쫓아가는 삶이 되도록 하여 생전의 문익환 목사님 표정의 십분의 일이라도 닮고 싶다. 과거 학생 운동 시절 오랜 수배 생활로 인한 습관이 굳어져서 그런지 변변한 사진이 거의 없다. 지금도 어디 놀러가도 사진을 잘 찍지 않고 카메라도 없다. 요즈음은 생각이 약간 바뀌어서 스마트폰으로 인화하지 않는 사진을 가끔 찍을 뿐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시민운동가로서 뒤를 돌아보며 근신하고 있는 중에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참여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도 잘 판단이 서지 않았다. 더욱 기부문화 확산과 동참은 좋은 일인데 일상적인 기부행위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서 한마디로 자격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도 소중하고 좋은 취지의 행사이고 평소 가까운 형이나 동지처럼 생각하는 분의 제안이라 숙고 끝에 결단을 하여 바통을 받았다. 이러한 기부문화 확산운동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법과 제도개선을 통해 돈 없고 힘없는 민초들이 아플 때 아무런 부담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주어야 한다. 국가가 너무도 당연히 앞서서 할 일을 자꾸 개인들의 선행에 의지하고 순간을 넘기려는 것은 옳지 못하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에서 국가와 사회의 총체적이며 구조적인 모순과 부실을 보았다. 한심한 정부와 정치계에 비해 서민들은 자신의 일처럼 아파하고 함께 고통을 나누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환란이나 국가적 중대사는 민초들이 앞장서서 나눔과 기부를 통해 해결해 왔다. 최근 의료민영화를 위한 정부의 움직임이 한층 빨라졌다. 그나마 조금 나은 의료제도마저 송두리째 망가뜨릴 의료개방과 영리행위허용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미국으로 이민 간 동포들이 출산과 치료를 위해 모국을 방문하고 있는 현실과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미국 서민들의 모습을 매일 보고 들으면서도 의료민영화를 추진하는 일부 부도덕한 재벌들과 보험 업계, 소수의 대형병원세력들의 대리인 노릇을 하는 정치인을 가려내어야 한다. 이번 루게릭병의 치료를 위한 기부운동이 단지 캠페인에 머물지 않고 불치병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이 병원비와 사회적 편견의 틀을 벗어나 원하는 만큼, 원하는 장소, 원하는 방법, 원하는 기간 동안 치료받을 수 있는 법과 제도 개선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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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29 23:02

강단 있고 색깔 있는 의원들을 기대한다

7·30 선거에서 패퇴한 새정치민주연합이 박영선 비대위 체제를 출범시켰다. 혁신과 공감이 자주 등장하며 무언가 변화를 이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박영선 체제 자체가 각 계파들의 절묘한 타협과 안정성에 기반을 두어 출범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기대 반 우려 반의 형국이다. 기존 기득권 계파들과 제대로 한 판 붙으며 종기를 제거하길 바랄 뿐이다. 하지만 전략공천 배제와 오픈 프라이머리가 첫 일성으로 이야기되는 것을 보면 조직력과 자금력, 줄 세우기 및 학연·혈연·지연에 능한 기득권 있는 현역 국회의원들에게 유리한 방식을 벌써 당연시 하려는 것 같다. 동원과 금권 조직선거 아래 현역의원들이 숨은 꼴이다. 앞에서는 변화와 혁신 및 탈바꿈을 이야기 하지만 기득권 유지의 전제 아래 변화를 외치니 항상 그 모양일 수밖에 없다. 전략 공천은 누구를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상식에 입각하느냐의 문제이지 전략 공천이 선악의 문제는 아니다. 특히 호남을 제외한 여타 지역은 상식적인 선에서 전략공천이 필요한 곳이 많다. 호남도 변화와 혁신을 주요하게 본다면 합리적이고 상식적이며 누구나 납득 가능한 전략공천과 공천 배제가 있을 수 있다. 물론 이것이 타 계파나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되지 않아야 한다. 아직도 새정연 국회의원 100%를 자랑하는 전북의 입장에서 오픈 프라이머리 만을 앞세우면 기존 조직력을 자랑하는 기득권 세력 및 단체장을 등에 업고 있는 현역의원들이 득세할 것 같다.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이번 7·30 보궐 선거 이후 손학규 전 대표가 선거 패배의 책임을 통감하며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참으로 안타깝고 아쉽지만 선택에 박수를 보낸다. 어차피 당 대표를 한 번 더하거나 의원 배지 한 번 더 단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본인 스스로 성취감도 없을뿐더러 조금 지나면 노욕으로 보일 뿐이다. 그런데 수상한 것은 손 대표 정계 은퇴 이후 누구도 뒤를 따르는 자가 없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의 새정연 실패에 대해 함구하고 마치 자신들은 아무 일도 없는 것인 양하고 있다. 새정연이 차기 총선 승리와 정권교체에 진정성이 있고 외면하고 있는 민심을 되돌릴 의지가 있다면 이래서는 안 된다. ‘구박하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옛말처럼 새누리당의 안하무인과 목불인견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자신들은 그 당과 다르다고 하면서 반사이익이나 챙기며 터진 사건의 과실이나 따 먹으려는 새정연측이 더 미운 것이 요즈음 선거결과에 나타난 민심인 것 같다. 곡성과 순천의 선택에 말없이 속으로 박수가 터져 나오는 것은 아쉬운 대로 전북에서도 최소 몇 명이라도 새정연이 아닌 정당 후보나 무소속들이 당선되길 꿈속에서라도 기대하는 때문인가 싶다. 새누리당은 벌써부터 자만심에 빠져 세월호 참극을 어물쩍 넘기고 의원 비리도 물타기 하면서 선거 전과 후가 다른 것을 바로 보여주고 있다. 저들이 현실의 최대 권력이며 집권다수파라는 것이 슬프다. 그것이 권력의 주인인 유권자들의 선택이기에…. 현재의 새정연의 모습과 시민사회역량으로는 차기 정권재창출을 기대하기가 난망하다. 그렇다고 새정연 일부처럼 오직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소위 중진이라는 자들이 당권이나 탐하고 계파 지키기와 계보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못된 현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최근 전북 지역 민심도 예외가 아니라고 아우성이다. 그러면서 국회의원들이 가능하면 지역에 머물며 지역 민심 챙기기와 행사 참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참으로 청개구리 띠들이다. 누가 국회의원들에게 지방의원도 아닌데 지역에서 얼굴 알리기에 나서라 했는가? 국회와 정부, 새누리당, 전 국민을 상대로 올곧은 모습을 보이며 의정활동과 예산 활동 및 국가 현안에 매진한다면 충분할 일이다. 전북지역 국회의원들이 지역에서는 군림하나 서울에서는 존재감이 없는 것이 문제이다. 현안과 관련하여 전체 의원들이 전남 한명에도 못 당할 때도 있다. 초선이 많고 선수가 짧아 그런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선수가 짧을수록 부지런히 배우며 부딪히고 더욱 저돌적으로 의정활동을 하고 현안에 발언 할 수 있다. 강단 있고 색깔 있는 의원, 지역만이 아니라 서울에서 인정받고 대접 받는 의원들을 원한다. 지역방송과 신문뿐만 아니라 전국의 방송과 언론매체에 단골로 나와 의제 설정 주도자 및 해설자로서 현안을 이야기 하며 인정받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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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08 23:02

영원한 농민, 故 이수금 의장의 뜻과 열정 새기며

삶이 있으면 누구나 죽음이 있다. 숱한 인간 군상들의 회피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는 없다. 예외 없는 죽음 앞에 인간들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어떻게 살 것인가의 다른 표현이다. 유한한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모든 인간들이 모두 자신의 인생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아니다. 죽음 앞에서 후회와 회한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지는 않지만 인생을 다해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단련하며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던져 조국의 해방이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고 낮은 곳에서 늘 함께한 분들이 있다. 큰 어른의 삶을 산 것이다. 큰 어른을 많이 가진 민족이나 국가. 사회는 내적인 힘이 깊고 튼튼하여 저력을 가진 사회라고 볼 수 있다. 몽골과 일본 침략 등 과거 역사를 돌이켜 보아도 민족의 존망이나 국가의 위기 때마다 굴하지 않고 끝내 이 강토를 지킨 것은 왕이나 위정자들이 아니라 온몸으로 민족과 강토를 사랑한 소수의 변방지도자들과 이를 따른 민초들이었다. 쌀 관세 문제로 농민과 농업에 대해 고민이 깊어지는 즈음에 이 땅의 영원한 농민 이수금 의장이 우리 곁을 떠나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제각각 존귀하지만 내가 보고 겪은 숱한 활동가와 지도자 중에서 이수금 의장 같은 분은 다시금 보지 못할 것 같다. 이수금 의장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1988년 일이다. 1989년부터 함께 활동을 시작하여 전북민족민주운동연합과 민주주의민족통일전북연합,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등을 비롯한 열거할 수 없는 사업과 투쟁을 함께한지 25년 세월이 넘었다. 항상 스스로 노력하여 세상을 터득하고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면서도 정체되지 않고 일과 투쟁을 제대로 병행한 몇 안 되는 이 시대의 참농군이며 활동가요 지도자였다. 워낙 부지런하며 천하장사 능가하는 힘과 열정으로 아스팔트 농사는 물론 사회각계각층의 저항과 투쟁이 있는 곳은 어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항상 ‘함께 가자 이 길을!’ 몸소 실천했다. 그러면서 농사도 무척 많이 지었다. 빈 몸으로 시작하여 젊었을 때부터 넓히며 일군 백마지기 넘는 논과 밭, 산과 하우스 작물에 이르기까지 하루를 범인의 몇 배로 나누어 쓰듯이 땅을 가꾸며 활동하고 배워나가면서 스스로 성장하였다. 흔히 여타의 부문운동가들과 지도자들이 가지는 외골수와 고집, 편견도 극복하고 소통할 줄 알며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지도자로 우뚝 섰다. 숱한 수배생활과 투옥, 투쟁과 일상에서 보여준 낙천성 및 패기와 열정은 말할 것도 없고 청년 활동가들과 스스럼없는 토론과 생활로 항상 젊은 정신을 유지하며 혁신과 개혁에 앞장섰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로 나아가는 지도자였다. 이수금 의장은 누가 뭐래도 농사 현장과 투쟁의 현장에서 빛이 나는 분이었다. 흔히 많은 지도자들은 자기 부문에 머물고 천착하여 여타의 부문을 고려하거나 전체적인 입장을 견지하지 못했다. 고집스럽고 유연성이 부족한 경우가 허다했는데 이 의장은 확실히 남달랐다. 그러하기에 농민운동의 지도자로 머물지 않고 전국 및 전북지역 전체운동의 지도자로서 누구나 함께할 수 있었다. 2000년대에는 시민운동의 지도자까지 항상 변화를 추구하고 자신을 성숙시켜 나갔다. 동료와 선배로서 스승과 어르신으로 누구와도 함께한 이수금 의장이었던 것이다. 이 의장은 결국 투쟁 현장인 차가운 겨울 농협 앞 야외 단식 농성 투쟁 과정에서 쓰러져 몇 년을 병마와 싸우면서도 활동의 끈을 놓지 않다가 합병증으로 돌아가셨다. 이수금 의장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 떠나보내지만 이의장이 꿈꾸었던 농민해방, 민주화와 통일의 세상은 늘 함께했던 사람들의 몫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항상 언제나 변함없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의 가슴 속 깊은 불꽃으로 살아 숨 쉬며 보다 나은 세상과 제대로 된 사회를 만드는데 등대와 나침반으로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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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7.25 23:02

새 틀 요구하는 한국 축구와 정당 정치

한국 축구는 최악의 성적을 내며 월드컵 16강 진출에 실패하고 일찍 짐을 싸고 말았다. 이번 월드컵은 한국축구의 고질적 병폐인 파벌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배타적인 대표단 구성과 소위 의리 축구의 실체를 여실히 보여주는 일련의 과정과 결과였다. 졸전과 16강 실패를 떠나 한국 축구는 이미 오래 전부터 특정 학맥과 인맥에 의한 독점적인 축구협회의 운영과 대표단 구성으로 곪아터질 대로 터져 있었다. 특정 학맥과 인맥이 결합되어 마치 마피아를 연상하게 할 정도로 공고함을 자랑하며 한국 축구를 좌지우지 하고 있는 세력 정점의 맨 밑바닥에 본인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국가대표 축구단과 홍명보 감독이 자리 잡고 있다. 이번 월드컵 축구대표단의 무능과 무기력, 최악의 결과에 대한 비판 여론을 모르쇠와 버티기로 일관하다 더욱 거센 여론의 뭇매를 맞고 결국 허정무 축구협회 부회장과 홍명보 감독이 사퇴했다. 월드컵 축구단 귀국 후 10일 동안 여론의 악화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사태의 수습에 나선 것이다. 물론 홍 감독의 사퇴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고질적인 한국 축구의 병폐인 특정 세력의 독점 상황이 조금은 공평하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거듭나길 바랄 뿐이다. 공정성과 형평, 최소한의 룰이 있으나 마나 한 것은 비단 축구뿐만이 아니다. 세월호 사건에서 보듯이 독버섯처럼 사회 곳곳에 자리 잡고 깊은 뿌리를 내린 특정 학맥과 인맥으로 형성된 독점적 기득권 세력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서로 거미줄처럼 결합되어 밀고 당기며 다른 세력을 배척한다. 애애초 공평한 잣대는 기대하기 어렵다. 오직 자신들의 이익과 기득권만이 유일한 기준이다. 국민조차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이번 64 동시 지방선거에서의 기득권 정당 모습에서도 그대로 투영되어 나타난다. 어려울 때는 국민을 들먹이지만 조금만 빈틈이 보이면 승냥이처럼 반대세력을 무차별적으로 물어뜯으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원칙도 룰도 외면한다. 청문회에 나온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대체 온전한 사람, 상식적인 사람이 하나도 없다. 마치 범죄 경력을 자랑하는 경연장 같다. 청문회에 나온 대학교수와 변호사 및 지도층 인사들은 하나같이 밥 먹듯이 논물 표절하고 대리 논문에 학생 연구비 갈취, 편법과 탈세 및 부동산 투기까지 모든 왜곡과 비리의 집합체 같다. 어느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면서 낯 두껍게 권력까지 얻으려는 것도 똑같다. 실망을 넘어 분노가 인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청문회 문턱이 너무 높다 항변한다. 현재 청문회는 보통 이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성인군자와 청백리를 가리는 곳은 더욱 아니다. 국민들이 납득할 수준에서의 최소한의 상식과 평범함, 도덕적 잣대만을 요구할 뿐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 개조를 이야기하며 다른 한편으로 청문회를 약화시키려는 발언이나 시도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제 2의 세월호 참사를 막기 위해서도 최소한의 상식이 통하는 기준과 룰을 지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제 한국 축구는 눈앞의 대회나 경기의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K리그 활성화 및 축구저변 확대와 인프라 구축 등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현 정당 정치도 마찬가지이다. 눈앞의 선거에 연연하여 원칙도 룰도 없는 짓거리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지난 64동시지방선거에서 보여준 기존 정당의 모습은 거론조차 필요가 없을 정도로 한마디로 개판(?)이었다. 그런데 또다시 730 보궐선거 양당의 공천은 상식도 없고 예측도 할 수 없는 파행으로 점철되고 룰도 없다. 자파 심기와 승리논리만이 판을 쳤다. 오직 결과만을 중시하는 풍조는 종국에는 결과조차도 파탄 낼 수 있다. 얄팍한 수는 한두 번 통할지 몰라도 지속적인 성공을 담보하지 못한다. 정직함과 정의로움, 원칙을 지키는 정당과 정치만이 불황에 허덕이는 서민들의 지지를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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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7.11 23:02

박근혜 정부에 세월호는 이미 없다

어제 박근혜 대통령은 정홍원 국무총리의 유임을 결정했다. 한마디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국민에게 정 국무총리는 이미 총리가 아닌지 오래 되었다. 다만 새로운 총리가 선출될 때까지 업무의 연속성 때문에 총리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양해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국민 모두가 다 아는 일이다. 대통령과 총리 자신도 알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반성으로 대통령의 진심어린 사과와 총리를 비롯한 관계 부처 장관 사퇴 및 책임자들의 처벌, 국가적 차원의 시스템 구축과 재발방지책의 마련은 이미 국민적 공감대가 이루어진 내용이다. 그 첫 출발이 총리사퇴였다. 그런데 이것이 뒤집혀졌다. 2명의 총리 후보가 도덕성 논란으로 사퇴한 뒤 나온 얄팍한 결론이다. 이것은 국민에 대한 도전이고 폭거이다. 대한민국의 총체적 부실과 부정부패의 결정판이 세월호 참사이다.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의 전 사회에 뿌리내린 구조적 문제점들을 낱낱이 드러났다. 이를 해결할 단초를 여는 것이 수많은 억울한 죽음에 대한 산 자들과 국가가 가져야 할 예의이며 의무이다. 국가지도자는 도덕성과 청렴성, 열정과 능력을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국무총리로 추천되는 후보군들이 최소한의 도덕적 여과장치도 통과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지도층들의 천민성과 부패성을 반영하는 것이며 꼭 극복해야 할 지상과제인 것이다. 현재 제시되는 도덕적 잣대는 결코 어려운 것들이 아니다. 불법 군대 면제, 부정입학, 이중국적, 부동산 투기와 탈세, 부도덕한 부의 축적, 논문 표절, 친일전력 및 논란 등 국민의 상식적 수준에서의 최소한의 가치일 뿐이다. 보통의 시민 누구나가 지켜내고 있는 단순한 기준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거창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외국의 사례처럼 거창한 기준도 아니다. 이것은 애애초 기대하지도 않는다. 다만 일반 시민들의 수준에서 보통의 도덕성을 이야기 할 뿐이다. 이러한 기준조차도 쉬이 통과하지 못하는 상황이 바로 한국 국가 지도자들의 몰가치성 및 타락상을 보여주는 일이다. 한국사회에서 부와 권력의 획득은 순리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초법적인 조건에서 일방적인 밀어주기와 무경쟁, 국가적 차원의 법적 제도적 지원, 학연·혈연·지연 등으로 형성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금도 거의 면제 수준이었다. 이렇게 부와 권력을 축적하고 탐하다 보니 대한민국은 천민자본주의와 금권만능의 수렁에 빠지게 되었다. 인간성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부와 권력을 쥔 자들이 명예까지 독점하고 있는 사회, 모든 이들이 불나방처럼 이를 쫓아가거나 이들에 굴종하고 있는 사회를 변화시켜야만 세월호와 같은 구조적 모순에 근거한 대형 참사들을 막아낼 수 있다. 이를 통해 사회구조적인 비리를 해결해가는 단초를 열 수 있다. ‘매 앞이 아니라 돈 앞에 장사 없다.’는 것이 실제로 가능한 대한민국을 뿌리부터 고치고 다듬어 최소한의 상식이 통하는 인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세월호 참사가 주는 교훈이다.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세월호 참사를 있게 한 사회구조적인 모순들을 사회 구석구석에서 극복하려는 변화와 혁신의 노력과 단초를 열어나가는 것이다. 여기에는 정부와 국민, 여와 야의 구분이 따로 있을 수 없다.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과거의 국가적 재난 때와 마찬가지로 용두사미나 대충대충 미봉책으로 끝날 것이다. 더 이상 뼈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 정흥원 총리는 이제 즉각 물러나야 한다. 조변석개하는 사람, 자신의 책임을 스스로 번복하는 사람이 어떻게 총리직을 수행하겠는가? 청와대 눈치 보며 월급이나 축낼 사람일 뿐이다. 정흥원 국무총리는 즉각 사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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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6.27 23:02

정치적 다양성 공존하는 변화와 혁신 기대

6·4 지방선거가 드디어 끝났다. 당선자들은 지지자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새로운 구상으로 들떠 있다. 낙선자들은 분루를 삼키며 패배를 곱씹고 저마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1년여 넘게 계속됐던 선거전이 종료되고 대략 2년 가까이 지역에 이렇다 할 선거가 없을 것이다. 물론 어디선가 선거법 위반 사례가 적발되어 법의 심판을 받고 재선거가 시행된다면 다르겠지만,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 차분하게 본인에게 맡겨진 일들을 해야 한다.이번 선거는 두 축의 상반된 결과로 나타났다. 이미 오래전부터 안철수 현상으로 나타났던 ‘새 정치’에 대한 열망은 전북에서 ‘새정연’의 무원칙한 합당, 공천제 번복, 공천 파행과 40여 년 기득권에 연연한 독선과 아집에 대한 견제 심리가 거센 무소속 바람으로 나타나 무소속 기초단체장 7명 당선과 무소속 시·군의원 50여 명의 당선으로 나타났다. 놀라운 결과였다. 바닥에서 민심이 요동치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새정연 당선자들도 상당히 고전하며 힘겨운 싸움을 전개해야 했다. 한편으로는 ‘묻지 마 투표’와 ‘무조건 지지’흐름도 여전하였다. 진안과 임실 지역 광역의원 2명을 제외하고 전북지역 모두에서 새정치민주연합 광역의원 공천자가 당선되었고 도지사 선거는 싱겁게 끝났다. 다만 인지도도 없는 새누리당 도지사 후보가 처음으로 20% 넘는 득표율을 올린 것을 위안으로 삼는 상황이다. ‘이석기 사건’ 및 분당·분열로 흩어진 통진당과 정의당 및 진보정당 계열은 너나 할 것 없이 새정연의 대척점에 서는 데 실패하여 초라한 성적표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개표 결과를 보면 사전 투표, 특히 관외 투표에서 새정연 공천자들이 상당한 몰표를 받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것은 구 민주당에 대한 ‘묻지 마 지지’가 아직도 여전하고 완강함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후보가 누구인지 잘 모르는 광역 선거와 전주시를 비롯한 도시에서 더욱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새정연에 대한 ‘미워도 다시 한 번’과 견제 심리가 동시에 표출된 선거 결과로 분석된다. 이제 무소속 당선자들에게 바란다. 무소속 당선은 시민들의 준엄한 뜻이다. 무소속으로 활동하면서 새정연을 비롯한 제 정파와 소통과 협력, 긴장을 반복하며 지역의 발전을 공동으로 모색해야 한다. 이제 새정연에 입당하지 않아도 일만 잘하면 정치생명에 하등의 지장이 없는 상황으로 전북 정치가 서서히 나아가고 있다. 무조건 새정연 입당은 선출해준 유권자들을 무시하는 처사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제 전북지역은 더디지만 다양한 정치세력이 공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진보정당 계열을 비롯하여 새누리당, 무소속, 새정연이 공존하며 선의의 경쟁을 펼칠 수 있는 기초를 더욱 튼튼히 해야 한다.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에서는 현행 정당법과 정치관계법, 선거법의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서울 중심의 현행 정당법의 위헌 여부를 묻는 소송을 진행하려 한다. 여기에 권역별 비례대표제, 소선거구제를 비롯한 선거법과 정치관계법 전반의 문제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 법과 제도 개선을 위해 전국적인 시민행동을 조직하여 지역 스스로 내재적 발전이 가능한 조건을 창출하기 위해 사력을 다할 것이다. 또한 전북지역 변화의 흐름이 지방선거에서 멈추지 않고 시민적 일상생활과 차기 총선과 대선에 이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이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전북지역 정치의 ‘고이고 썩은 물’을 도려내는 데 앞장설 것이다. 새로운 당선자들은 당선 확정의 기쁨 속에 가졌던 초심을 잃지 않고 제 세력을 포용하여 크고 넓고 깊은 정치를 통해 유권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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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6.13 23:02

낙후 전북정치 변화는 무소속 바람으로 시작돼야

1980년 5월 광주에서는 시민과 학생들의 “계엄군 물러가라!” “전두환 군부 물러가라!” 는 평화적인 시위에 계엄군의 무차별 발포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에 저항하며 분연히 일어선 시민들이 광주를 평화의 도시로 만들고 전시민적 항쟁을 진행했다. 당시 시민들의 바람(민주주의, 평화, 통일)은 살아남은 자들에게 각인되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2014년 오늘은 세월호 참상이 계속되고 있다. 추모 분위기에 선거는 완전 깜깜이 선거이다. 세월호 참상의 원흉들인 기득권 세력과 이에 빌붙어 연명하는 정치세력들에게 너무 좋은 조건이다. 변화될 여지가 거의 없고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묻지 마 투표’를 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전북은 새정연의 독점과 독재로 인해 이미 대부분의 선거가 거의 결론이 나 있다. 단체장 선거는 전주와 완주, 임실, 무주, 진안, 고창 등에서 과연 민주당의 독점과 전횡을 막아내고 무소속 돌풍을 일으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관심사이다. 아니 관심을 여망으로 여망을 바람, 바람을 돌풍, 돌풍을 표로 만들어 30년 넘게 아성을 구축하고 자신들의 기득권만 지키며 전북을 낙후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새정연을 여기서나마 심판해야 한다. 도민들이 나서야 한다. 풀뿌리 지방자치를 위해 다양한 정치세력이 공존하는 전북, 기득권 당이 아니라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사람, 시민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뽑아야 한다. 현재 조건에서는 무소속 바람이다. 김완주 시대 16년을 돌아보면 전주시장 초기에는 상당히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사업들을 역동적으로 진행했다. 하나 어느 순간부터 결국 관료적 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남은 시장과 도지사 임기동안 경전철과 새만금, 실패한 대형 프로젝트에 갇혀 10여년 넘는 세월을 허송했다. 도지사 초의 충성의 편지는 안위와 보신 속에 갇힌 도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시장후보토론회에서 김승수 후보가 지역을 위해서라면 무릎도 꿇고 탈당도 불사한다며 신용 비어천가인 ‘충성의 편지’를 두둔하는 발언을 하는 것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정권의 눈치와 칼끝을 두려워하며 복종하는 자에게 역대 어느 정권이 예산을 주고 발전을 지원한 적이 있던가? 정치상황을 보면 광주 전남은 김대중과 최근의 피와 투쟁을 바탕으로 중앙정부에 저항하며 성장했다. 이에 반해 전북은 다르다. 이철승, 김원기, 정동영, 정세균, 김완주 하면 바로 알 수 있다. 쉬이 타협하고 복종하는 자에게 처음에는 사법처리도 면해주고 떡고물도 주는 것 같지만 큰 흐름에서 보면 ‘우는 자식 떡 하나 더 준다.’는 격언처럼 명분도 없는 품안의 자식은 무시하기 마련이다. 김 지사의 용비어천가 이후 전북의 달라진 점이 무엇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기뻐하고 충성의 편지를 공개하며 활용하는 당시 이명박 정권과 서부신시가지와 35사단 등 대규모 토목공사와 관련된 사정 회오리를 피해간 것 외에 딱히 기억나는 것이나 획기적으로 변화된 모습이 없다. 지도자는 민초 즉, 시민을 두려워해야 한다. 부도덕한 현실 권력을 두려워하여 광우병 파동의 와중에 이명박에게 충성의 편지를 쓴 지사를 단지 그의 비서였다고 두둔하는 것은 과거 5공의 장세동과 같은 조폭의리의 모습일지언정 참 지도자를 꿈꾸는 자의 모습은 아니다. 진정으로 전주시민들을 두근두근하게 하려면 내재된 조폭 이미지와 가공된 이미지가 아니라 진정 새로운 참신함을 보여줘야 한다. 말뚝만 박으면 당선되는 민주당 후보라 하여 시민을 무시하고 궤변으로 사태를 호도하면 안 된다. 전북낙후와 새만금, LH유치실패, 삼성의 희극, 서부신시가지 도로망과 땅값 상승, 경전철과 35사단 문제만으로도 답이 나와 있다. 아무리 그 밑에서 성장하며 꿈을 키웠고 양자를 자처해도 말을 가려야 한다. 주류에 기댄 아전 정치가 아니라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모습이어야 한다. 현 전북정치의 모습은 자체로 스트레스이다. 답이 없는 전북정치에 능력 있는 무소속 후보들이 새바람을 일으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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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5.23 23:02

안하무인·후안무치의 새정치연합 표로 심판해야!

아직도 더딘 구조작업과 세월호 참사의 본질을 알면 알수록 분노와 미안함으로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전북의 정치카르텔 기득권 집단인 새정치민주연합의 폭거는 민란을 요구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무능하고 무기력한 정부와 정치권, 관료들의 울타리 안에서 벌어졌다. 한 사회의 시스템이 이렇게 완벽하게 망가질 수는 없다. 책임을 통감해야할 정치권은 여전히 밥그릇 챙기기와 기득권 지키기에 여념이 없다. 최근 새정연의 공천심사과정과 결과를 보면 과연 저들이 원칙과 이성을 갖고 있는 집단인지 의심이 들게 한다. 원칙이 존중되지 못하는 사회에서 발생한 세월호 참사의 모습이 그대로 새정연에도 스며들어 있는 것 같다. 정부와 새누리당과 관료들만 나무랄 일이 아니다. 새정연의 자격심사와 공천 기준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강한자의 정적 제거 무기로 전락하여 기준과 룰이 일관되지 못하고 춤을 추며 조변석개처럼 종잡을 수가 없다. 한마디로 기득권과 계파 챙기기의 명분으로 구호만 개혁 공천을 주장했다. 봐줄 놈은 봐 주고 죽일 놈을 죽이는 수단으로 룰이 적용되고 절차와 과정도 투명하지 못하다. 또한 이들에게 지역은 존재도 없는 곳으로 지방자치의 정신은 묵사발이 되었다. 지역 민심은 애애초 이들에게 의미가 없다. 오직 자신들이 후보만 공천하면 말뚝만 박아도 당선되는 곳, 비판하다가도 묻지마 투표로 도로 민주당, 아니 민주당보다 더한 새정연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는 오만함만이 있다. 일례로 현역인 단체장과 의원은 임기 중에 구속되었거나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물의를 일으킨 것을 평가해야 한다. 특히 지난 민선 5기 단체장과 의원이 심했다. 그러나 현실은 이들 대부분이 구제되었다. 하지만 임정엽 후보는 완주군수로서 로컬 푸드를 비롯하여 새로운 농촌 활력 사업의 전형을 내와 전국적인 모범사례로 벤치마킹되고 농촌 복지와 예산확보, 인구 유입 전반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았음에도 수 십 년 전의 전력을 문제 삼았다. 정적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공천을 이용한 것이다. 중앙 정치에 줄이 없거나 비주류인 후보들은 인물과 능력과 관계없이 희생양이 되는 예이다. 아직도 도지사와 기초단체장 후보도 확정하지 못하고 싸우기에 여념이 없는 새정연은 정책과 공약은 필요 없고 “오직 공천만이 살길이다.”를 외치는 전북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제 지긋지긋한 30년 넘는 짝사랑을 확실하게 끝낼 때가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낙후와 패거리 정치 및 무능한 민주당 일당 독점과 독재를 용인한 지역과 시민들로 기억될 것이다. 안철수 현상과 신당 창당으로 변화를 모색했던 시민들이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 현 정치권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 선거 이후 후회해봐야 소용없다. “혹시나!” 가 “역시나!”만 될 뿐이다. 도로민주당이 된 새정연에 대한 심판으로 전북 정치권의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 여나 야, 진보와 보수, 무소속 할 것 없이 인물과 능력을 우선하는 투표를 통해 민심을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 전북도당의 공천 과정으로 더욱 확연해진 것이 있다. 의레기(의원 쓰레기)인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무능과 무기력, 눈치 보기와 줄서기, 밥그릇 챙기기와 지역민에 군림하기는 더욱 심각한 수준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전북의 새로운 정치세력의 출현은 중앙 정치에 기대지 않는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세력으로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중앙과 서울의 거수기가 아니라 지역의 자주적인 정치활동이 가능할 것이다. 그 출발이 이번 지방 선거에서 묻지마 투표를 거부하고 후보자의 과거의 활동과 능력을 확인하며 철저하게 정당을 배제한 투표를 통해 새바람의 단초를 열어가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의 무능, 기성정치에 대한 불신, 야당의 무기력함, 중앙집중적 패권주의와 지방자치 실종과 무시, 관료조직의 타락을 이번 지방선거에서 심판해야 한다. 지역에서는 새정연에 대한 심판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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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5.09 23:02

총체적 부실의 현주소, 세월호 침몰

4월은 또다시 잔인한 달이었다. 대한민국의 4월은 왜 이리 어린 학생들의 억울한 죽음으로 핏빛 물이 드는가?1960년 4월은 남원 출신 마산상고 1학년 김주열 군이 경찰이 쏜 최루탄을 맞고 숨진 뒤 바다에 유기되어 시신으로 떠올라 이승만 독재 정권을 몰아낸 4월 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 2014년 4월은 또다시 잔인한 달이 되었다. 올 4월은 무능하고 무기력한 정권과 행정, 여와 야의 정치권, 있으나 마나 한 구조시스템으로 충분히 기회가 있었으나 최악의 결과를 야기한 진도 세월호 침몰로 다가왔다. 앞길이 구만리 같은 어린 학생들이 어른들의 잘못으로 산화해 갔다. 지금 이 시각에도 밤낮으로 구조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분들과 일주일 째 뜬 눈으로 밤을 새워가며 생환을 기다리는 가족들, 피 같은 자녀를 잃은 모든 분께 미안하고 죄송할 뿐이다. 우리는 이미 1993년 10월, 우리 지역인 위도 앞바다에서 292명의 귀한 생명을 앗아간 서해 훼리호 침몰 사건의 악몽과 아픔을 기억하고 있어 더욱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재난 구조시스템 미비와 총체적 부실 및 원칙이 존중되지 못하는 사회, 대한민국의 시계는 그때나 지금이나 한 치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위도 훼리호 사건의 교훈은 망각되고 어디론가 증발했다. 이번 진도 세월호 침몰사건은 “빠르게!”를 외치며 양적 성장 만능주의와 인간으로서의 양심 및 인명 존중과 원칙의 준수 등 최소한의 사회 버팀목조차 망각한 부실 덩어리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다.하지만 더욱 가관인 것은 정치권이다. 진도 세월호 침몰 직전의 2014년은 정쟁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는 여야 정치권이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지방 선거 승리와 기득권 지키기로 날을 새며 이전투구를 일삼고 있던 시기이다. 대통령과 집권당은 국민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날리고도 사과는커녕 남의 탓만 하며 여론의 눈치나 살폈다. 겉으로는 마치 자신들은 약속을 철석같이 지킬 것처럼 행세하며 대통령과 집권당에 약속을 지키라고 강변하던 야당 사람들. 새정치 하겠다는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민주당과 합당하여 역시나 약속을 팽개치고 “승리만이 살길이다!”를 외치며 여당과 공동 정범이 된 여야 그들만의 리그에서 불나방처럼 이익만 좇고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슬픔과 죄스러움, 분노로 멘붕에 빠진 실종자 가족과 국민을 상대로 막말과 색깔론을 덧씌우는 일부 국회의원이나 정치지도자의 모습, 제 동생 친구들 또래의 학생들의 억울한 죽음 및 국민적 슬픔과 분노에 대해 막말을 일삼는 천민자본주의의 전형과 사고를 보여주는 모 단체장 후보의 아들, 기득권의 한 축을 형성하며 사건이 터질 때만 요란을 떠는 정부와 야당 지도자들, 공직자들의 퇴직 후 낙하산 인사로 채워지는 산하 기관장들, 그리고 뒷북 입법으로 호들갑을 떠는 국회의원들, 모두 4월을 잔인한 달로 만든 축들이다. 충분히 살릴 수 있었던 그날에 우왕좌왕하는 재난본부 간부들과 선원들, 정부관계자와 정치권은 목숨을 걸고 바다에 뛰어들어 구조를 하고 있는 보통의 해군, 해경구조대와 잠수부들, 일부 선원들과 교사들, 내 자식 일처럼 아파하며 초초하게 구조되기를 기다렸던 다수의 시민들과는 확실하게 다른 사람들임을 확인시켰다. 지금 이 시간에도 기득권과 지분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정치권의 모습들, 겉은 개혁 공천으로 번지르하게 포장하고 원칙도 명분도 일관성도 없이 땅 따먹기와 정적 죽이기로 활용하는 여야의 공천 룰 정하기와 자격 심사, 평상시에는 안중에도 없다가 사고가 나면 호들갑을 떠는 모습까지 과거 서해 훼리호의 사고 시기와 변한 것이 없다. 뒷북행정은 말할 것도 없고 뒷북 정치권의 모습은 더욱 가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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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4.25 23:02

새정치는 한여름 밤의 꿈이 되었다

또 다시 도로 민주당으로 부활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새누리와는 텃밭과 기득권이 전라도와 경상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낮에는 싸우는 척하다가 밤에는 형님, 동생하며 서로 공생한다. 홀로서기를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며 제왕적 의원들의 기득권 유지에는 뜻을 같이하는 종자라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이다. 애애초 안철수가 주장했지만 표를 의식하여 자신들도 동조했던 대국민약속이었다. 어느 누구도 기초선거 공천폐지가 정치 개혁의 중요한 내용이라도 말한 적도 없다. 다만 의원들의 줄서기 강요와 돈 공천에 지긋지긋하여 한번 쯤 무공천 했으면 좋겠다는 일부 의견들이 있었을 뿐이다. 무공천 사태가 정당정치의 실종이니 후보의 난립이니 하며 호들갑을 떨 이유도 없었다. 국민과의 약속을 결국 양당은 저버렸다. 타 당의 핑계를 댈 필요는 없다. 그것은 결코 한시도 기득권을 놓을 수 없는 제왕적 국회의원들과 변화를 바라지 않는 기득권 세력들이 헌정치의 양당 구조를 부활하려는 음모에 다름 아닌 것이다. 지방자치의 확장과 정치개혁의 핵심인 로컬 파티 인정과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문제는 거론조차 되지 않고 사장되었다. 어차피 정치개혁의 핵심과제는 논의조차 되지 못한 것이다. 이제 새정치민주연합 즉 도로 민주당과 제왕적 국회의원들의 수확거두기만 남았다. 잠시 동안 얼마나 외로웠을까? 기초공천이 없어지자 국회의원이 왕림해도 가방 들어주고 도열하며 줄서는 사람이 많지 않아 속으로 불편했을 것이다. 친히 문자까지 보내 공천부활에 목숨을 건 의원만 나무랄 일이 아니다. 이춘석 의원을 빼고 구별이 어려운 차이였을 것이다. 한국정치에서는 “아! 옛날이여!” 가 지나간 세월의 회한이 아니다. 언제든지 부활의 노래를 부르며 현실 권력으로 더욱 빛나면서 살아 돌아 올 수 있다. 안철수 신당과 민주당의 전격 합당으로 민주당을 탈당하여 자유로움을 잠시 느꼈던 사람들이 얼마나 당황스럽고 황당했을까? 아니 자유로움을 느낄 새도 없이 도로 민주당으로 귀환했으니 참 민망했을 것이다. 이러니 정치하려면 능력은 없어도 눈치는 9단으로 줄을 잘 서야 한다는 속설이 생겼다. 제왕적 중앙 권력과 국회의원들의 횡포로 인해 생긴 일이다. 안철수와 김한길 대표가 순간 합당을 선언해도 백 명이 넘는 국회의원들 중에서 문제 있다고 주장한 의원이 몇 명이었나 생각해보면 아찔하다.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국회의원들이 흔들기를 통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사수했으니 기회주의자들과 양다리들이 살아남는 것을 또 한 번 확인시켰다. ‘모난 것이 먼저 정 맞는다.’는 속설이 살아 움직이는 곳이 정치권인 것이다. 속마음을 감추고 복종하며 때를 기다려야 웃는 오늘이 있다는 것이다.이제 기초출마자 중 상당수가 출마를 포기할 것이다. 공천이라는 이름의 ‘사천 과정’을 통해 국회의원들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만 남아 활개 칠 지방선거의 풍경이 재현될 것이다. “아! 옛날이여!”가 아니라 부활하는 제왕적 의원과 아전들의 재현 및 줄서기가 시작되었다. 어사출도는 가짜 암행어사로 규정되었다. 아전만이 살 수 있는 세상이 다시 된 것이다. 전북지역 선거는 예선전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안철수 신당으로 경쟁 체제가 들어설 것처럼 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역시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던가? 삼일천하는 종료되고 전북지역에서 지방선거는 낙천운동 외에 다른 무엇도 필요 없게 되었다. 과거 민주당 보다 훨씬 강력한 새정치 연합의 깃발로 경쟁 구도 없이 공천 곧 당선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역시 정치개혁과 해방은 핍박받는 자들의 몫이지 지배자들의 은전과 떡고물로 이룰 수 없다는 진리를 확인하는 기초선거 무공천 해프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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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4.11 23:02

변화·혁신의 선봉에 대학이 함께 해야 한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전이 달아오르고 있다. 한 지역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하려면 지역민과 지역공동체의 단합된 힘에 근거한 발전이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전북지역은 새만금과 호남고속 전철, 김제공항, 전주·완주 통합 등을 비롯한 주요 사업, 정치 사안이나 발전 방안과 정책에 있어 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전북도가 나서서 적극적인 사전 조정이나 소통을 이루지 못하고 무사안일하게 정치권의 눈치를 보거나 표에 연연한 경우가 많았다. 매번 내부의 반대가 강하게 존재하거나 남의 집 이야기처럼 나 몰라라 하는 경우가 많아 특정 지자체의 문제로 치부되거나 지자체와 정치권이 따로 국밥인 경우가 많으니 제대로 사업이 추진될 리 만무했다. 어떤 사안은 행정의 추진 사업에 대해 정치인들의 사적인 욕망이나 기득권으로 인해 딴죽을 걸고 사업을 무력화시키는 경우도 많았다. 최근 10여 년 동안 전북지역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의 성공사례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 선거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단히 중요한 분야가 대학교육의 위상 찾기 및 활성화이다. 최근 전북대가 보여준 가능성과 비약적인 성장과 비전은 대학만이 아니라 모든 지자체가 본받아야 할 성과로 볼 수 있다. 전북대학교는 국립대학으로 전북의 거점 대학이다. 하지만 서거석 총장 체제 이전의 전북대학교는 총장과 교수들의 구속이라는 초유의 사태와 대학 공동체의 분열과 반목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전국적으로 보면 제 밥도 찾아 먹지 못하며 존재감이 미약한 대학이었다. ‘북대’가 상징하듯이 자기비하가 너무도 당연시되던 시절이었다. 여기에 학생운동도 뉴라이트와 북한 민주화운동으로 전환되어 희망의 노래가 들리지 않는 곳이었다. 자괴감과 외면의 세월이었다고 본다. 하지만 변화의 시작은 대학구성원들로부터 나왔다. 특히 서거석 총장 이후의 대학 당국과 공동체는 자기 살을 깎는 성찰과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개인을 헌신하고 희생하는 작풍을 서서히 세워나가 무한 경쟁의 전국적인 상황에서 성과를 내는 과정과 결과를 도출해 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것이 광주로 통하는 요즈음 전북도의 상황에서 전남대나 기타의 영·호남 지역 대학이 부러워하며 벤치마킹하려는 대학으로 변화한 것은 누가 뭐래도 총장이하 변화를 갈망했던 대학교수들의 결집된 힘이 밑바탕 되었다고 본다. 서 총장 체제는 소수의 지지를 점점 대학 구성원 전체의 지지로 확대해가며 어제의 경쟁 그룹까지도 포괄, 수용하여 함께 변화를 추구한 힘이 원동력이었다. 여기에 다름에 집착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최선을 다한 대학 공동체의 힘이 집적되어 이룩한 성과였다. 그러나 최근 새로운 총장을 선출할 시기가 다가오자 결집된 힘들이 이완되고 각자 도생을 모색하면서 또다시 분열과 반목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고인 물은 썩을 수 있듯이 다시 변화의 틀을 모색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성과를 보존하고 혁신을 추구하는 것과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며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 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루기는 어려우나 까먹는 것은 순식간이다. 사실 어떠한 변화도 명분에만 치우치면 제대로 변화를 이루지도 못하며 목소리만 크다가 명분과 실리 모두 잃고 분열로 나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신들의 역량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며 교육부나 정권과의 투쟁을 합리적으로 전개하는 것에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마치 선명성 경쟁이라도 하듯이 ‘모 아니면 도’와 같은 무조건적인 투쟁이 최선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누구나 알고 있다. 선거를 앞에 두고 진영의 유·불리에 의한 투쟁은 성공할 수 없다. 구성원들의 단결된 힘을 모아가는 새로운 체제의 성립을 통해 전북대의 성과가 전북 모든 대학과 지역 전체의 성과로 지속될 수 있도록 대학구성원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가 함께 최선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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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3.28 23:02

전화착신 문제 분명하게 해결해야 한다

요즈음 진행되고 있는 각종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비용이 많은 전화면접 여론조사를 제외한 대다수의 ARS 방식의 여론조사 응답률이 채 5%가 되지 않는다. 원하는 샘플을 얻기 위해 더욱 많은 공력을 들여야 하고 비용 절감을 위해 특정 연령층은 보정이라는 이름으로 해결해버리는 경우도 많다. 이러다 보니 여론조사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 한다. 이런 상황임에도 전북의 경우 전화착신 회선수가 12만 6500여개라니 억 소리가 절로 난다. 물론 사업이나 사무실 운영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착신 행위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중의 상당수가 선거를 의식한 전화착신 행위라면? 혹시 착신 비용을 대납하고 있다면? 착신대수가 한사무실에 한 두 대가 아니라 수 십 대에 이른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선거가 자주 있게 되면서 여론조사가 일상화 되었다. 여론조사는 특정 후보들에게유불리를 주어 선거 과정이나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기에 다양한 목적의 숱한 여론조사가 시행되고 있다. 불법, 탈법이 없는 선거 여론조사라 하더라도 인지도 조사처럼 되어 기득권을 갖고 있는 현역에게 유리한데 여기에 더해 전화착신까지 막강한 조직력과 자금력으로 구축한다면 정치신인에게 여론조사는 해보나 마나이다. 또한 영세한 여론조사 기관의 공정성도 큰 문제이다. 하도 많은 여론조사를 통해 각 가구나 응답자들의 정치적 성향을 이미 다 파악하고 있다. 만약에 의뢰자와 함께 샘플의 구성을 조작한다면 여론 왜곡의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과거 지방선거의 최종 후보를 선출하는 여론조사에서 갑자기 꼴등 후보가 1등을 하고 1등 후보가 꼴등을 한 경우들이 있어 세간을 놀라게 했는데 여러 의구심을 들게 했지만 확증이 없어 유야무야된 경우가 있었다. 샘플 조작의 의심 사례였다. 이처럼 합법적인 여론조사 과정이나 결과도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우리에게 전화착신 12만 이상은 한마디로 여론조사 무용론에 쐐기를 박는 것이다. 응답률 45%이내에서 12만대 이상의 착신은 이들이 전체 여론조사와 여론을 독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응답 대기조가 응답률 45%에서 12만이 넘으면 이들이 여론조사 전화를 받을 확률은 거의 100%가 아닌가? 소름끼치는 일이다. 이참에 경선 과정이나 특정여론조사에서 전화착신자들의 여론조사 배제를 시행하던지 아니면 여론조사 결과 반영을 아예 확 축소해버려 변별력을 갖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현재 전북지역의 12만 여대의 착신 전화를 그대로 둔 채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여론조사를 적용하면 막강한 동원력과 자금력을 갖는 후보들이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여론조사 방법 이외의 객관적인 후보 선출 과정이 많지 않은 조건이기에 더욱 신중한 접근으로 전화착신자들을 제외한 방법들이 검토되어야 한다. 시민참여인단 모집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특정 도지사 후보는 아예 전화착신을 더욱 독려하여 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개진했다고 보도된다. 자발적이라 하더라도 전화착신은 여론을 심각하게 왜곡시키는 일이다. 1당 독식의 전북이지만 엄연히 타당이 존재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끼리끼리 하는 편법과 여론 왜곡이 무엇이 문제냐는 발상은 극히 위험한 사고이다. 독점과 1당 지배 의식이 뼈 속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반증이다. 아니면 막강한 동원력과 조직력에 대한 신뢰의 표현이거나 이미 착신할 만큼 했다는 자신감의 표현일 수 있으나 가당치 않은 주장이다. 편법을 용인하여 불법을 조장하는 행위로 오해될 수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12만이 넘는 전화착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어떠한 여론조사나 방법도 공정성을 획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선거과정이나 결과를 심각하게 왜곡할 수 있는 전화착신에 대한 분명한 답을 내어 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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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3.14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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