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3시 대한축구협회 OB축구회 사무실을 찾았을 때 정남식옹(86)은 회원들과 정담을 나누고 있었다.
1시간여전부터 기다렸다는 정옹은 기자를 반갑게 맞이하며 4층 협회 회의실로 안내했다.
전날 과음했다는 정옹의 모습은 여든 여섯이라는 나이가 믿기 않을 정도로 강건해 보였다. 요즘 건강은 어떠시냐고 물었더니 “아직도 소주 2명은 거뜬히 마시고 하루에 담배 1갑을 피우고 있다”며 은근히 건강을 자랑했다.
고령임에도 정옹은 인터뷰내내 자세의 흐트러짐이 전혀 없었고 힘있는 말소리에 50여년전의 과거를 또렷하게 기억해냈다.
취재에 앞서 정옹은 “최근들어 일본의 요미우리 신문 등 언론에서 과거 한·일축구사에 대한 인터뷰 요청이 잇따르고 있지만 대부분 거절했다”면서 “그러나 우리고향의 신문사라 요청에 응하게 됐다”고 말했다.
인터뷰 취지를 설명하자 정옹은 전주의 월드컵 개최도시 선정과정의 뒷얘기를 먼저 꺼냈다.
“전주가 월드컵 개최도시로 선정된데는 나도 한 몫을 했지. 어쩌면 나 때문에 전주가 선정됐는지도 몰라. 당시 회의에 참가한 15명의 월드컵조직위 집행위원 가운데 축구인 출신으로는 내가 유일했는데 그 자리에서 내가 전주선정의 당위성을 강력하게 주장했지. 선정된 뒤에는 도지사가 감사하다며 전화를 했더구만.”
이어 정옹은 축구를 시작한 어린시절부터 전국적으로 명성을 날렸던 보성중과 고려대, 국가대표 및 실업팀으로 이어지는 40여년의 축구인생을 1시간 30여분동안 풀어놓았다.
대화가 지난 54년 국가대표팀이 처음으로 참가한 스위스 월드컵대회에 이르자 0-9(헝가리), 0-7(터키) 참패의 아픈 기억이 되살아 났는지 잠시 말을 끊은 뒤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스위스대회보다 6년 앞서 열린 48년 런던 올림픽대회로 잠시 화제를 돌렸다.
해방후 처음 참가한 국제대회였던 이 대회에서 대표팀은 스웨덴에 0-12의 최다 골차이로 패했지만 두번째 상대인 멕시코에는 5-3으로 승리, 세계 축구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최전방 공격수인 정옹은 이 경기에서 3골을 넣어 주목을 받았다.
“처음으로 월드컵 출전티켓을 따낸 우리는 배로 일본 요코하마에 도착했지. 그러나 어떤 사정인지는 몰라도 스위스로 떠날때는 팀을 2개로 나눴어. 나를 비롯한 베스트 11은 선발대로 먼저 출발했고 나머지 선수들은 뒤에 왔지.”
당시 정옹의 나이는 38살. 은퇴할 나이를 훨씬 넘겼지만 당시 정옹의 기량이 탁월한데다 주력과 체력이 젊은 선수들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등 대체할 선수가 없어 선수로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대회에 참가했다.
“스위스에 도착해 호텔은 잡았으나 운동장을 구하지 못해 호텔앞에서 잠시 몸을 푸는 걸로 만족해야 했지. 국내에서도 합숙훈련같은 것은 없어서 선수들은 발 한 번 맞춰보지 못하고 시합에 나간 셈이지."
정옹은 “체격은 물론 기량차이가 워낙 나서 우리는 유치원생이나 마찬가지였다”면서 “워낙 약하니까 다른 생각이 들지 않더라구. 이겨보겠다는 생각 보다는 그저 뛰어다니는 정도였지”라며 당시를 회고했다. 그러나 정옹은 “결코 기는 죽지 않았었다”고 강조했다.
스위스 월드컵대회 참가 주전선수중 현재 생존해 있는 사람은 정옹과 골키퍼였던 홍덕영씨 등 단 2명뿐이다.
열악한 환경속에서 선수생활을 보낸 정옹에게 2002년 한일월드컵은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아 소감을 물었다.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개최된다니 만감이 교차하지. 월드컵 유치로 축구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국민들의 열기가 대단히 좋아져 축구인의 한사람으로서 가슴이 뿌듯합니다.”
그러나 정옹은 “우리의 축구수준이 예전에 비해 퇴보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현역시절 최고의 골잡이로 활약했던 정옹은 한국축구에 대해 ‘문전처리 미숙’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선수들이 개인기가 없고, 두뇌플레이를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정옹은 “경기장에서는 감독보다 선수 자신이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면서 “특히 골잡이는 경기흐름을 파악하고 있어야 하며 상황에 따라 순간적으로 판단해 볼을 차 넣는 감각이 있어야 한다”며 자신의 지론을 역설했다.
그는 “중학교때까지는 개인기를 배우는 것이지만 고등학교부터는 머리로 하는 것”이라며 축구에서의 두뇌플레이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이번 월드컵대회에서 한국의 16강 진출 가능성을 묻자 정옹은 단호하게 ‘NO’라고 잘라 말했다. 정옹은 “16강, 16강 하는데 이는 한국축구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면서 “물론 16강에 올라가면 좋은 일이지만 지금 한국축구의 실력을 안다면 어떻게 그런 소리가 나오겠는가”라며 반문했다.
일본 축구에 대해서는 “오랜전부터 일본이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를 앞지를 것으로 예견했었다”면서 “일본선수는 우리선수들과는 달리 머리를 쓰고 있다”고 답했다.
끝으로 한국축구의 장래에 대해 정옹은 “성급하게 서두르기 보다는 장기적인 전략을 세워 한단계씩 올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축구사 산증인 정남식옹은...
정남식옹은 한국축구사의 산증인이다. 해방후 처음으로 출전한 48년 런던 올림픽과 54년 스위스 월드컵대회 모두를 참가했던 유일한 생존 선수다.
김제 만경의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축구를 시작한 정옹은 어려서부터 축구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고무공이 혹시라도 터질까봐서 헝겊으로 싸서 공을 찼던 시절, 정옹은 자신의 모친이 돌아가신 것도 모른채 시합을 즐길 정도로 축구에 푹 빠졌었다고 술회했다.
초등학교 시절 우등생이었던 정옹은 졸업후 명문이었던 서울 보성중에 합격하면서 상경,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정옹이 선수시절 두뇌플레이에 능했고, 후배들에게 ‘축구는 몸으로 하는게 아니라 머리로 하는 것’이라고 누차 강조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 비롯된다.
보성중 시절 전국대회를 휩쓸며 이름을 날렸던 정옹은 대학 입학후 곧바로 국가대표팀에 선발되는 등 기량을 인정받았다. 소석 이철승씨와는 대학입학동기로 같은 교실에서 공부를 하는 등 절친한 사이다.
정옹의 진가가 유감없이 발휘된 것은 54년 스위스월드컵 지역예선. 마지막 관문인 일본과의 예선전에서 그는 1차(5-1승)·2차(2-2무승부)전에서 혼자서 5골을 넣는 기염을 토하며 한국의 첫 월드컵 진출을 이끌었다.
아직도 일본과 이웃 홍콩의 원로 축구팬들이 정옹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홍콩의 체육관에는 국내선수 가운데 유일하게 정옹의 사진이 지금도 걸려있다.
대학졸업후에는 인천 HID 및 조일양조장, 조선전업 등 입단한 정옹은 39살까지 현역 선수로 뛰는 등 활발하게 활약했다. 은퇴 후에는 모교인 고대와 한양대 및 국가대표 감독을 맡기도 했으며 축구협회 기술·심판위원장에 이어 OB축구회 명예회장직을 역임하는 등 현재까지도 축구와 인연을 맺고 있다.
두뇌플레이로 앞선 축구 구사
현역시절 정옹의 별명은 ‘미남자’였다. 흙투성이가 된 다른 선수의 유니폼과는 달리 정옹의 옷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깨끗했기 때문이다. 또한 정옹은 헤딩을 잘 하지 않는 선수로도 유명했다.
이에 정옹은 “축구는 머리로 하는게 아니라 발로 하는 것”이라면서 “쓸데없이 몸을 날리거나 뛰어다니는 등 힘을 낭비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토탈사커를 구사하는 현대축구에는 다소 맞지 않지만 그는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움직이는 두뇌플레이를 하는 등 남들보다 한발 앞선 축구를 구사했다.
정옹을 기억하는 많는 사람들은 “세계무대에서도 통하는 세계 제일의 개인기를 갖춘 선수였다”고 높이 평가했다. 정옹 자신도 “개인기는 나를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면서 “지금처럼 외국진출이 자유롭다면 유럽무대에서 이름을 날렸을 것”이라고 자부했다.
전성기때는 홍콩 프로팀의 제의가 잇따랐다. 그러나 국내 축구인들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정옹이 인천의 조일 양조장에서 새로 창단한 조선전업으로 이적하려 했을 때 그의 기량을 높이 평가한 사장이 백지수표를 건네면서 잔류를 권유했던 일화는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약력
△17년 김제 만경 △보성중-고려대 △인천 조일양조장, 조선전업, 인천 HID·고려대·한양대 축구부 감독, 국가대표팀 감독(59년·65년), 축구협회 기술위원장·심판위원장, 월드컵조직위 집행위원, OB축구회 명예회장, 수원대 축구부 고문 △48년 런던올림픽·54년 스위스 월드컵 대회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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