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어떤 문학상 시상식에 가보았다. 시, 소설, 평론 세 분야에서 활약이 두드러진 세 사람이 상을 받았고 많은 문인들이 와서 축하해 주었다. 나는 그 중 두 사람과는 조금 아는 처지여서 여간해서 안 나서는 걸음을 하여 여러 번 박수를 치는 노릇을 마다하지 않았다. 식이 끝난 후 수상자들은 상금을 쪼개어 손님들에게 편하게 어울려 떠들고 더러 취할 자리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글꾼들에게 상을 주고받는 자리는 여느 예술 영역의 사람들과는 다른 의미가 있다. 이는 글쓰는 일이 혼자만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특수성 때문이다. 떠들썩하게 모일 기회가 자주 없는 글꾼들은 이런 자리에서 안부도 묻고 회포를 풀기도 한다.
시 쪽에서는 나희덕 시인이 상을 받았다. 그는 문단의 이런저런 파당에 상관없이 두루 좋게 평가받는 시를 쓰는, 드문 시인이다. 큰 상만도 여러 번째여서 나를 포함해 상과 별로 인연이 없는 지인들한테서 이제 상 좀 양보하라는 투의 농담 섞인 푸념을 듣기도 한다. 나는 여러 해 전 그와 우연히 인사하게 되었는데, 대면은 늦었지만 걸친 옛 인연과 사람들이 있어 영광스럽게도 가깝게 여기는 사이가 되었다.
나희덕 시인은 깔끔한 외모뿐 아니라 다정하고 경우 바르고 영특한 품성으로 시 이외에도 사람들에게 두루 호감을 준다. 일찍이 결혼하여 학교 다니는 두 아이의 어머니인데, 몇 년 전에는 느닷없이 대학원 공부를 시작하더니 어렵다는 대학 선생 자리를 쉽사리 얻어내기도 했다.
드러난 삶을 보면 그가 참 티없이 유복한 사람이겠거니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이 알고 있는 꼭 그렇지 않다. 그의 개인적인 삶은 우리들이 가진 평균적 행복보다 위쪽에 있지 않다. 그가 겪은 불행과 절망의 조건들을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으나, 그의 시를 보며 짚어볼 수는 있다.
예를들면, 최근에 나온 시집 {어두워진다는 것}에서, 낡은 축음기의 소리를 들으며 <저 낡은 소리는 어떤 상처를 읽은 것이다 바늘은 소리가 남긴 기억을 그 만져지지 않는 길을 천천히 되밟으며 지나간다 아무리 여러 번 읽어도 상처의 길은 더 깊게 패이거나 덧나지 않는다 닳아가는 것은 그것을 읽는 바늘끝일 뿐> ([축음기의 역사])라고 쓴 데서, 또 과수원을 떠올리며 <가을엔 나비조차 낮게 나는가 내려놓을 것이 있다는 듯 부려야 할 몸이 무겁다는 가지가 휘어지도록 열매를 달았던 사과나무, 다 내려놓고 난 뒤에도 그 휘어진 빈 가지는 펴지지 않는다 아직 짊어질 게 남았다는 [중략] 사과 한 알을 내려놓는 데 오년이 걸렸다> ([사과밭을 지나며])라고 쓴 데서 구절구절 시인의 아픔은 예사롭지 않게 전해져 온다. 가을엔> 저>
삶의 곤고함이 우리를 분발하게 한다는 해묵은 진리는 나시인에게도 그대로 들어맞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마음 아프게도, 좋은 문학은 자주 자신을 만드는 사람의 불행과 절망에 뿌리내리고 꽃핀다. 나시인의 시가 나날이 더 좋아진다는 평판을 듣는 데에는 이런 까닭이 있지 않나 싶다. 내 개인적 의견은, 시가 밋밋해지더라도 삶이 더 행복해졌으면 하는 것인데, 사람이 어쩔 수 없는 일임을 어찌하랴.
/이희중(시인, 전주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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