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들이 늘 가까이 두고자 했던 대나무는 사군자중의 하나이다.
매화 난초 국화등 4군자 모두가 지조 절개를 나타내지만 특히 대나무는 흔히 대쪽같은 선비를 비유할때 많이 사용한다.
‘대나무의 맑음을 보면, 염치를 생각하게 되어 백성의 재산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대나무의 바름을 보면, 절개를 바꾸지 않고 지키게 된다.대나무의 비어있음을 보면, 대중을 너그럽게 받아들여 가혹한 마음이 없어진다. 대나무의 곧음을 보면 시류에 따라 아부하지 않고 홀로 우뚝 서 있을 수 있게 된다’
고려시대 문인 안축(1287∼1348)의 근재집 중 일부다.
이번 주말에는 환상적인 대나무 숲이 인상적인 전남 담양 소쇄원을 찾아보자. 전주에서 2시간이면 넉넉하게 도착할 수 있을만큼 가까워 가족과 함께 가기에 안성맞춤이다. 대숲에 부는 바람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소쇄원 대나무숲은 바로 “새로운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는 휴대폰 광고에 등장했던 바로 그 배경이다.
◇전남 담양 소쇄원
조광조의 제자 양산보(1503∼1557)가 낙향하여 별서정원을 지어 소쇄원이라 이름 짓고 자신의 호도 소쇄라 칭한 후에 여생을 학문에 몰두하며 보낸 곳이다.
소쇄원의 주인 양산보의 유언과 이를 지금까지 지켜 온 후손, 제주 양씨들의 정성이 남아 있어서 그 개방성이 예나 지금이나 이어져 오고 있다. 소쇄원은 쉽게 말하면 양산보의 별장 정원쯤으로 여기면 된다.
소쇄원은 매화가 핀 봄은 봄대로 단풍들고 낙엽지는 가을은 가을대로 멋과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소쇄는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의미이나 소쇄원은 단순한 은둔처나 정자 몇 채가 들어서 있는 정원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조상들의 미의식이나 자연관을 짐작할 수 있다. 크게 자연을 해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최소한의 인공미를 더해 정자를 짓고 자연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자신의 모습에 만족한 것 같다.
그저 자연의 한 부분을 빌려와 적당히 담을 쌓고 그속에 온갖 자연의 모습을 담아놓은 소쇄원이야말로 우리나라 전통적인 정원을 대표한다고 해도 부족하지 않다.
소쇄원은 세상과 이치를 놓고 고담준론하던 선비들의 학맥이 숨쉬고 정신이 깃들어 있는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대표적 원림이다.
소쇄원의 조용한 뜰을 거닐며 산책을 하노라면 욕심없이도 화려하고 화려하면서도 소박할 줄 알았던 우리선조들의 참 멋을 조금이나마 배울 수 있을 듯하다.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장관
담양에서 순창으로 이어지는 24번 국도는 양쪽에 도열해 있는 웅장한 메타세콰이어가 장관을 이룬다.
하늘로 쭉쭉 미끈하게 뻗어있는 메타세콰이어는 삼나무과의 거대수종으로 공룡이 살던 신생대초기부터 있었던 수종이다.
워낙 나무가 크고 우람해 사람들도 이 가로수 아래서는 개미처럼 작게 보인다.
장쾌하게 뻗은 메타세콰이어는 가까이서보다는 멀리서 멀리서 바라볼때 높이과 크기가 전해주는 생명의 존엄함을 더욱 진하게 느낄 수 있다.
특히 이 길은 산림청과 생명의 숲 가꾸기 국민운동본부가 가장 아름다운 거리숲으로 선정한 곳이다.
◇담양 대나무골 테마공원
소쇄원을 구경하고 담양군 담양읍에서 전북 순창 방향으로 24번 국도를 따라 가로수길을 5㎞쯤 달리면 석현교가 나온다. 여기서 우회전해 호젓한 농로를 따라 2㎞정도 올라가면 3만여평의 대나무숲이 한눈에 들어선다.
이곳이 바로 죽림욕장인 담양 대나무골 테마공원이다.
대나무골 테마공원은 대나무밭을 걸을 수 있도록 산책로가 잘 꾸며져 있다.
테마공원 규모는 3만여평으로 사진작가 출신의 신복진씨가 30년간에 걸쳐 조성한 이곳은 국내 유일의 대나무 숲 공원이다.
하늘을 찌를 듯 빽빽하게 솟아있는 대숲을 스쳐온 바람은 대처럼 푸른 기운이 묻어 있어 대나무숲에 들어서면 심신의 묵은 때를 말끔히 씻어 내릴 것만 같은 싱그러운 공기가 온몸을 휘감는다.
대나무향이 상큼하고 시원하며 공기가 좋아 온갖 세상사를 잊고 명상하기 좋은 곳으로 운치가 그만이다. 대밭을 빠져나오면 마사토가 황토가 잘 섞인 소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테마공원에서는 청량한 대숲 바람속에 죽림욕을 즐기거나 소나무숲 오솔길을 송림욕을 할 수 있다.
하지원의 사극 다모, 최민수 주연 영화 청풍명월, 안성기 이미연 주연 흑수선의 촬영지로도 유명세를 탄바 있다. 테마공원입장료는 어른 2000, 학생 1500원, 어린이 1000원 (061-383-9291)
선비의 푸른 정신으로 혼탁한 영혼을 씻다...설정환 광주 전남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소쇄원(瀟灑園)은 배추에 벌레를 잡는 허리 뻐근한 촌노의 이웃집이다. 대나무의 고장 전남 담양에 자리잡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정원이라는 수사를 무색케 하는 폄하 발언처럼 들린다. 조선 중종 때 조광조의 제자 양산보가 은거한 곳이라는 이력까지 더해지고 나면 소쇄원에 대한 마음은 사라지고 마는 느낌이다. 소쇄(瀟灑)란 맑고 깨끗함을 의미한다.
일각에서는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소쇄원이 몸살을 앓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소쇄원에 대한 관리와 보존 사이의 다양한 이견들 사이에서도 소쇄원의 광풍각(光風閣)과 제월당(齊月堂)에도 소쇄한 가을 달빛은 어김없이 들었다. 본래 소쇄처사 양공지려(瀟灑處士 梁公之廬)라 한 대로 깨끗하고 시원하고 조촐한 집. 가을 달빛이란 이런 곳에 들른 사랑방 손님처럼 묵어 가는 것이어야 한다.
양산보의 후손과 인연이 되어 서리 내린 늦가을 제월당에 장작불을 지피고 하룻밤 묵은 일이 있었다. 십장폭포를 타고 흘러내리는 자분자분한 계곡물 소리와 창호문을 닫아 두기에는 참으로 힘들 가을 달빛에 겨워 시심을 잃고 사는 황량한 삶을 스스로 책망한 일도 있었다.
산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대웅전에서 한참을 떨어진 산문(山門)을 지나야 하는 것처럼, 제월당과 광풍각에 닿기 위해서는 우선 청청하게 쭉 뻗은 대나무숲 사잇길을 지나야 한다. 온갖 소음에 길들여진 사람이라면 바람의 작은 미동에도 사그락사그락 대는 댓잎의 향연에 귀를 씻으면 될 일이다. 맑고 깨끗함에 접신(接神)하기 위한 첫 관문인 셈이다. 사뭇 경건해지는 순간이니 발소리 큰 사람, 말소리 높은 사람들은 조신을 당부한다.
작금에 와서는 한산한 소쇄원의 정취를 오롯이 취하는 일이 찾아오는 발길로 방해 받기가 십상이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침묵한 채 삶의 단상을 아우르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사는 곳에서부터 게으르게 짐을 꾸려 늦은 저녁 때에 닿게 하는 것도 좋겠다고 조언하고 싶다.
소쇄원에 가서 소쇄원만을 완성하고 오는 것은 허탈할 가능성이 크다. 소쇄원은 소쇄원만으로 한 폭에 담을 수 없을 만큼 큼직한 무등산 자락의 조촐한 마을이기 때문이다. 가을걷이가 한창인 황금들녘이 지척이라 가을 소쇄원에는 발걸음을 조용히 다루는 것마저 호사로 비칠가 싶은 곳이면서, 한 해의 수고와 고단을 뒤로하고 삶의 미진한 지혜를 나누기 위해 쑤신 허리를 툭툭 털며 소쇄원을 오르는 촌노의 밭은 숨결이 느껴지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소쇄원의 자태가 자연을 억지로 매만지지 않은 자연미 외에도 선비의 농민에 대한 사려도 상상해 봄직하다. 선비의 은둔을 화려로 장식치 않고 차마 폭풍으로도 쓰러뜨릴 수 없는 대나무를 앞에 두고 수련했다는 것, 여느 살림집을 보면 집 뒤안이 울타리로 대숲이 둘러쳐지기 마련인데, 마치 세상과의 장막과도 같은 대숲을 집 앞에 둠으로써, 소쇄원 주인의 기개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한편 소쇄원의 고뇌와 정신을 마을의 한 가운데로 끌어 들임으로써 촌노의 삶에도 누가 되지 않으려 애쓴 모습까지 상상하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무서리를 머리에 이고 소쇄원으로 떠나고자 하는 귀한 객들이라면 자연미에 만취함을 더해 선비의 푸른 정신으로 씻고 씻어 돌아오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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