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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 어진 111년만에 역사밖으로

경기전에서 전주박물관으로 관련 유물 14점도 함께 이안

역사 밖으로 첫 외출 한 조선왕조의 창업자 태조 이성계 어진(御眞).

 

12일 태조 이성계 어진이 경기전에서 전주박물관으로 옮겨졌다. 국립전주박물관(관장 유형식)이 조선왕조 본향으로서 전주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기획한 특별전 ‘왕의 초상-경기전과 태조 이성계’의 전시(17일부터 6월 30일까지)를 위해서다.

 

어진이 공식적으로 이안(移安)된 것은 이번이 처음. 비공개로 이뤄진 이날 어진 이안에서는 보물 931호로 지정된 태조 이성계 어진 외에도 관련 유물 14점이 함께 옮겨졌다. 1872년 서울에서 제작된 어진을 전주로 옮겨온 가마 신연과 봉안 행렬에서 신연 앞에 놓였던 향연, 경기전 부속 의식구들, 제사 관련 물품 등이다.

 

이번 이안은 111년 만에 이뤄진 것.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위봉사로 긴급하게 봉안됐다 환안된 이후 처음이다.

 

왕이 거동할 때와 마찬가지로 어진 이동도 향정자, 신연, 양산, 용선, 봉선, 청개, 홍개 등 의장물 행렬이 따를 정도로 예우를 했던 만큼 전주박물관은 섬세한 노력을 기울였다.

 

국립전주박물관측은 오전 9시부터 진행된 어진 이안 작업이 전주이씨 대종종약원 고유제가 끝나고 어진을 하안까지 7시간이 걸렸다고 밝혔다. 또 유물 포장을 위해 국립박물관 용산 이전 과정에서 국보와 보물 등 유물 10만여점을 이동한 국립중앙박물관 김홍식 학예연구관이 직접 내려와 지휘를 맡는 등 치밀한 준비작업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보존상태 사전 점검, 보험가입과 일정 협의, 포장과 해포, 운송 등의 계획이 세워졌고, 왕의 존재를 의미하는 어진의 경우 용안을 덮은 후 3중 보자기로 싸서 흑장궤에 넣는 등 이동시 포장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어진 관련 유물 운송에는 전주중부경찰서 호송 아래 무진동 차량이 사용됐다.

 

이번 전시를 위해 태조 어진을 내준 경기전에는 1999년 제작된 태조 어진 모사본이 모셔졌다.

 

이수미 학예연구관은 “신성한 공간에 모셔졌던 왕의 초상이 세월의 변화에 따라 대중과 함께하는 박물관으로 옮겨져 일반에 공개될 수 있었다”며 “많은 공력을 들여 완성한 경기전 태조 어진은 조선왕조 문화의 깊이를 보여줄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111년 만에 이뤄진 태조 어진 이안 작업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도내 문화계에서는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이안 작업이 보안상 이유로 비공개된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문화재에 대한 지역민의 인식과 관심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부분적으로 공개하지 않은 배려가 아쉽다”는 지적이다.

 

태조 이성계 어진은 조선 전기 전주 경기전을 비롯 전국 6곳에 봉안됐지만, 전란 등으로 전주 경기전과 영흥 준원전 두 본만이 남겨졌다. 이후 1872년 전주 경기전 어진을 모본으로 이모본으로 제작돼 유일하게 전해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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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휘정 desk@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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