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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벌초대행

오늘이 벌초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아마도 마지막 주말이 아닌가 싶다. 다음 주 월요일이 추석인 관계로 시간적인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벌초는 처서가 지난 다음부터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다. 여름 더위도 가시고 아침 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부는 처서가 되면 따가운 햇볕도 누그러든다. 이쯤이 되면 풀도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추석을 앞두고 있어서 벌초하기에 적당한 때가 되는 것이다.

 

추석 못지 않게 벌초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중요하다. 성묘를 하러 가야 하는 마당에 벌초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조상에 대한 예의도 예의려니와 자신들이 보기에도 민망할 것이니 말이다.

 

벌초의 세태를 간략하게만 짚어 보아도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낫을 들고 조상의 묘에 길게 자란 풀을 깎는 행위는 단순한 풀베기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었다. 조상의 묘소를 돌보고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 자부심도 느꼈을 터이다.

 

그런데 묘소에서 굉음이 들리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그 굉음이 불경스럽게 생각되었겠지만 이내 사람들은 익숙해졌다. 예초기가 등장한 것이다. 그동안 여러 날을 잡아 벌초를 해야 했던 경험에서 보면 예초기로 작업하는 능률은 그 불경을 극복하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쯤에서 일이 끝난다면 한국 사람이 아니다. 이어서 벌초를 대행하는 사업이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이 일도 처음에는 조상을 홀대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다들 망설였을 것이다. 그래서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나 염치를 무릅 쓰고 벌초를 대행시키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조상 볼 낯만 좀 가리면 그보다 편리한 일이 또 없었던 모양이다. 하여 너도 나도 벌초를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을 하게 되었고 이제는 벌초대행이 새로운 직업으로 등장하여 목하 성업 중이다.

 

그런데 이런 벌초대행업이 세계 최초의 특별한 서비스를 시작하였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디지털 카메라로 벌초 전후의 묘소 전경을 찍어 의뢰인에게 보내는 것은 기본이다. 여기에 인공위성의 도움을 받아 묘소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기록해 두었다가 다음해에는 전화 한 통만 하면 의뢰인의 묘소를 벌초대행업자가 ‘알아서’ 찾아간다는 사실이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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