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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백의 一日五話] 1932년 이봉창의사 일왕 암살 미수

1918년 윌슨 대통령 민족자결 제안

◎ 1월 8일

 

①일왕 암살 미수

 

1932년의 오늘, 백범 김구 선생의 지령을 받은 이봉창 의사는 일왕 히로히토가 탄 마차에 폭탄을 던졌다. 그러나 불행히도 근위병에겐 부상을 입혔으나, 일왕은 무사했다. 당시 일왕은 연병장에서 관병식을 마치고 돌아갈 때 이 의사는 궁성 사쿠라다 문 앞에서 수류탄을 던졌던 것이다.

 

②일진회를 처절히 규탄

 

한말 항일의 급선봉이었던 대한매일신문은 1909년 1월 8일부터 3일간에 걸쳐 ‘한일 합방론 자에게 고함’이란 사설로써 친일분자들을 처절하게 성토했다. 이는 1908년 12월, 친일국적인 매국노 이용구, 송병준 등의 일진회에서 ‘한일합방 상주문’을 제출한데 대한 규탄이다.

 

③평양성 수복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불과 2개월 만에 서울을 거쳐 평양성이 왜군의 수중에 들어갔었다. 그날이 6월 13일이었다. 그러나 그 후, 명나라 이여송 장군이 이끄는 원병과 우리 군사들의 공동 작전에 의해 1593년 1월의 오늘, 5개월여 만에 평양성을 수복했다.

 

④ 박정희 대선출마 반대

 

1963년 군사정권의 민정을 앞둔 1월 8일, 송요찬 장군은 “박정희는 대통령에 출마해서는 안 된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그는 결국 살인혐의 등으로 구속까지 당했었다. 그는 4·19 때는 육군 참모총장으로 난국을 수습했으며, 5·16 후에는 한 때 내각수반을 지냈다.

 

⑤윌슨, 민족자결 등 제안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1918년의 오늘, 의회에 제출한 연두교서에서 1차대전 후의 세계 재건 안을 제기했다. 14개조에 달하는 내용을 보면, ●비밀외교의 배척 ●군비축소 ●민족자결 ●국제연맹의 설립 등이 그 골자였다. 그러나 식민지 문제로 영국·프랑스의 반대에 의해 실현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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